“유권자도 넌덜머리가 난 거죠.”
투표 종료를 30분 앞둔 6월2일 오후 5시30분.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후보 선거사무소에서 만난 박범이 정책부위원장이 잘라 말했다. 어느 선거 때보다 보수 진영의 ‘전교조 공세’가 거셌지만 그는 ‘진보 교육감’의 승리를 예감하고 있었다. 2년 전에는 주경복 후보 캠프의 대변인기도 했던 그는 “유권자들은 이미 ‘반전교조 프레임’을 내세워 당선됐던 공정택 전 서울시교육감이 각종 비리를 저지르는 것을 목격했다”며 “교육감 선거에서 더 이상 ‘반전교조’ 논리는 통하지 않게 됐다”고 분석했다.
<font color="#00847C">명단 공개→성적 자료 발표→파면·해임 발표</font>
그의 예감대로 서울에서 ‘진보 교육감’이 탄생했다. 195개 시민사회단체의 추대를 받아 민주진보 단일후보로 나섰던 곽노현 후보가 34.34%의 득표율로 보수 진영의 이원희 후보(33.22%)를 눌렀다. 서울뿐만이 아니다. 경기·강원·전남·전북·광주까지 전국 16개 선거구 중 6곳에서 ‘진보 교육감’을 선택했다. 선거 전까지 진보 단일후보를 추대한 지역이 12개였으니 50%의 승률이다. 선거 막바지까지 “경기 김상곤 후보 한 명도 어렵겠다”는 예측까지 나왔던 것을 생각하면 혁명적인 결과다.
선거 직전 두 달간 보수 진영의 ‘전교조 공세’는 거셌다. 지난 4월19일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은 전교조 가입 교사의 명단을 공개했다. 나흘 전 법원이 내린 공개 금지 결정을 무시한 처사였다. 이어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전교조 교사 비율이 높은 고등학교일수록 수능 성적이 떨어진다는 내용의 자료를 발표했다. 2년 전 “교원평가를 반대하는 전교조에 교육을 맡기면 학교가 망한다”던 공정택 후보의 논리와 비슷하다.
5월23일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나섰다. 민주노동당 후원 등의 혐의로 검찰이 기소한 교수 134명을 전원 파면·해임 징계하겠다는 발표였다. 이에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나선 이원희 후보는 “부적격 교원 퇴출”을 구호로 삼았고, 남승희 후보는 “전교조는 안 됩니다”란 펼침막을 강남 지역에 내걸었다. 5월27일에는 이원희 후보와 정진곤 경기도교육감 후보가 ‘반전교조’ 정책 협력을 선언했다.
이에 진보 후보들도 강하게 맞섰다. 교과부의 징계 방침이 발표된 직후, 곽노현 후보는 “특정 교원단체 소속 교사들에 대한 대규모 징계는 6·2 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파상적으로 전개돼온 낡은 색깔론의 일환”이라며 “교육감 선거를 겨냥한 색깔론 공세를 즉각 중단하라”는 논평을 냈다. 광주의 장휘국 후보는 아예 ‘전교조를 지켜주세요’라는 펼침막을 내걸고 정면 승부에 나섰다.
이번에 당선된 6명의 진보 교육감 중 곽노현(서울)·김상곤(경기)·김승환(전북)·장만채(전남)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소속이고, 장휘국(광주)·민병희(강원)는 전교조 지부장 출신이다. 곽노현 후보 캠프에 참여했던 해직교사 조연희씨는 “전교조를 공격해서 진보 교육감 후보에게 부정적 인식을 덧씌우려는 노골적 행태에 오히려 국민이 분노했다”며 “광주 장휘국 후보의 경우 전교조 후보임을 내세운 뒤 오히려 지지율이 올랐다”고 말했다.
<font color="#C21A8D">광주, 전교조 후보임을 내세워 당선</font>‘반전교조 프레임’을 극복하고 탄생한 서울·경기·강원·전남·전북·광주의 ‘진보 교육 벨트’는 이미 작동을 시작했다. 6월3일 장휘국 광주교육감 당선자는 “전교조 교사에 대한 징계 유보를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6명의 교육감은 앞으로 친환경 무상급식, 혁신학교 신설, 특목·자사고 확대 반대, 학원 심야교습 제한 등 공통 공약도 힘을 모아 실현할 계획이다.
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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