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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이 강수 두면 북한은 초강수로 나온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에게 듣는 ‘북한의 심중’… “대북 강경책이 오히려 북핵 개발 부추길 것”
등록 2010-06-04 21:30 수정 2020-05-03 04:26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북한 조선인민군 총참모부는 지난 5월27일 ‘중대 통고문’을 발표했다. “역적패당이 우리에게 감히 전면 대결의 선불질을 하기 시작한 만큼 그에 대응한 우리 혁명무력의 실제적인 중대 조치가 시행된다는 것을 엄숙히 통고한다”며 7가지 조처를 밝혔다.

주요 내용은 △남북교류 협력사업에 대한 군사적 보장조치 전면 철회 △대북심리전 재개에 대한 군사적 대응 △해상분계선 침범에 대한 물리적 타격 △남쪽 선박·항공기의 북한 영해·영공 통과 불허 등이다. 북쪽 영토·영해·영공에 대한 남쪽의 ‘침범’을 군사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북한은 전쟁을 준비하는 것일까? 그들은 왜 초강경 대응을 불사하는 것일까? 지난 5월27일 오후,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 연구실에서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났다. 그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시기에 걸쳐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북한 내부 사정에 관한 한 진보와 보수를 통틀어 그의 정보와 식견을 따를 이가 별로 없다. 그에게 북한의 초강수에 대한 분석을 주문했다. 그는 “한국이 강수를 두면, 북한은 초강수를 둘 것”이라며 “대북 압박정책이 오히려 북핵 개발을 부추기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 한국 정부의 천안함 사건 조사결과와 후속 조처 발표 이후, 북한도 강경 대응으로 나오고 있다.

= 서로 강수를 둘 때는 가진 것이 많은 쪽이 불리하다. ‘부자 몸 조심한다’는 말이 있다. 가진 것이 많으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 한국은 북한을 잘못 관리해 받는 불이익이 크다. 처음에는 반북 여론이 득세하는 듯해도, 경제에 미치는 영향 때문에 상황을 관리하는 과정이 한국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북한은 예상할 것이다. 한국이 강경하게 나오면, 북한은 더욱 초강수를 던져서 상황을 밑바닥까지 떨어뜨리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황의 반전도 그만큼 빠를 것이라는 기대를 북한은 하고 있을 것이다.

- 북한의 대응책 가운데 대북 확성기에 조준사격을 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 북은 대북 확성기 방송을 민감하게 생각한다. 체제에 미치는 충격이 크다고 생각한다. 2002년 남북 장관급 회담 때부터 상호 비방을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북쪽이 먼저 꺼냈다. 회담에서 저쪽(북쪽) 사람들이 솔직하게 고충을 털어놓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확성기 방송이 북쪽 20km 지점까지 들린다. 북쪽 주민이 밤에 잠자는 것도 힘들었을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인데, 2002년 월드컵 때는 확성기 방송으로 한국팀 경기까지 중계방송했다고 하더라.

우리는 그 요구를 들어주는 대신, 북쪽의 군사적 위협 요인을 줄이자는 안을 내놓았다. 바로 그것이 서해상 남북 함정 간의 무력 충돌 방지를 위한 조처였다. 그 이전엔 서로 의사교환이 안 되니까 배가 넘어가면 혼선이 빚어졌다. 서해에서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서해 어장을 중국에 뺏기는 경제적 손해도 막기 위해 남쪽 평택 해군기지와 북쪽 해주 해군기지 사이에 핫라인을 설치했다. 서해상의 남북 협력을 약속받고,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는 협상이었다. 그렇게 해서 확성기 방송을 중지한 것이 2004년 6월이다. 이제 그 방송을 다시 시작하면, (확성기에 대한) 조준사격은 물론 서해 바다와 경의선 일대까지 (군사적으로) 위협받게 될 것이다.

- 북한 내부에서 중국과 밀착하려는 ‘친중파’가 득세하는 것이 아닌가.

= 지위의 높낮이에 구분 없이 북한 사람들이 입에 달고 사는 단어가 ‘뙤놈’이다. 그것이 중국에 대한 북한의 인식이다. 그런데 지금은 ‘친중파’가 아니라 해도 중국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사는 것이다. 그들로선 한국과의 협력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식 때 조문하러 온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을 만났다. 그의 이야기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에 여러 실망스러운 일이 많았지만, 이번에 우리가 아주 큰맘 먹고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노력)해보고 안 되면, 그다음부터는 어쩔 수 없이 각자 자기 길 가야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후 지난해 11월 대청해전이 발생했다. 북이 50여 발을 쏘고, 남이 4950여 발을 쏘았다. 북이 엄청난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안다. 그때 북은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를 접었을 것이다. 남은 게 있었다면, 한국이 옥수수 1만t을 북에 지원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런데 해가 바뀌고 2010년의 절반이 지나도록 그 옥수수는 끝내 북에 넘어가지 않았다. 그게 돈으로 환산하면 t당 300달러씩 우리 돈 30억원 정도다. 그조차 지원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북한은 (한국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을 것이다. 북한 처지에서는 ‘이 사람들 믿고 있다가는 시간만 낭비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했을 것이다. 상대 의지를 알아보기 위해 북한이 즐겨 택하는 방법이 있다.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이다. 지금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 북한의 변화가 없다는 점에서 교류협력 정책에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닌가.

= 북한과 중국의 밀착이 지속되면 ‘북한 경제의 중국화’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문제다. 관계 개선의 방법론은 결국 경제협력이다. 유럽연합과 동·서독의 경우가 모두 그랬다. 문화가 다르고, 심지어 과거엔 적대적이던 나라들조차 경제협력을 시작하면서 사회·문화적 연대를 높이고 정치 연합까지 이룬 것이 유럽연합(EU)이다. 그런데 지금 남북 간 경제 연대는 끊어지고 대신 북-중 경제 연대가 강화되고 있다. 대단히 심각한 문제다.

서독이 동방정책을 시작한 것은 1971년이고 동·서독이 통합된 것은 1989년이다. 경제적 연계를 고리로 삼아 상대방을 변화시키는 유도 전략은 15년 이상 지속돼야 효과가 난다는 게 역사적 경험이다. 그런데도 과거 동서 냉전 사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난 10년 동안 아무 성과가 없었다고 말한다. 북한은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가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관계 자체를 끊을 수 없다. 경제적으로 연계를 맺어놓으면 동·서독이 경험한 (통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데, 잘해줘봤자 아무 변화도 없다는 식으로 성급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단견 중 단견이다.

- 남북 간 국지전 또는 전면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나.

= 남북 관계에서 어느 정도가 우발 충돌인가? 그것이 어느 정도에 이르면 국지전으로 넘어가는가? 군사적 긴장이 어느 정도 높아져야 전면전으로 확대되는가? 그걸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서로 긴장을 고조시키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국지전·전면전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차이가 있다. (전쟁 상황에 대해) 북한을 말릴 자가 없다. 중국조차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한국은 미국이 손목을 잡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미국이 전시작전권을 갖고 있다. 한국은 큰소리를 쳐도 허장성세에 그칠 수밖에 없다.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미국이 과연 “그래, 이번에는 내가 직접 저들의 본거지를 때려주마” 하고 나서겠나? 그렇지 않다. 오히려 “한두 번 얻어맞은 것으로 끝내자”고 할 것이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 북한의 무력 도발에 대해 한국 정부가 ‘행동’에 옮기려 할 때마다 미국이 말렸다. 한국의 국방장관이 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북한이 지금보다 더 강하게 나올 때, 그 결정적 순간에 한국 정부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북한은 그것까지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욱 마음대로 하려고 한다. 어쨌든 미국의 역할 때문에 국지전이나 전면전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은 상대의 변화를 이끌어낼 카드가 ‘세게 몰아치는 것’밖에 없다. 그런 북한을 상대로 한국이 강수를 두는 것이 과연 현명한 판단인가.

지난 5월5일 북한 서해함대사령부 군관 김광일이 〈조선중앙TV〉의 ‘건군절 78주년 기념무대’에 나와, 지난해 11월 대청해전 직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

지난 5월5일 북한 서해함대사령부 군관 김광일이 〈조선중앙TV〉의 ‘건군절 78주년 기념무대’에 나와, 지난해 11월 대청해전 직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

- 대북 압박 정책이 효과가 없을 것으로 보나.

= 북한에 도움을 주지 않고 계속 압박하면, 무기를 개발할 돈이 떨어지고 먹고살 돈도 떨어져 결국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금 정부와 그 주변에 있다. 우리(한국)가 아니면 북한이 죽는 줄 아는데, 아니다. 우리가 도와주지 않아도 저들의 방식대로 다 메워나간다.

압박론자들은 아마 미-소 관계, 특히 레이건 정부를 생각할 것이다. 레이건 시절, ‘별들의 전쟁’(전략방위구상·SDI)을 추진해 군비경쟁을 벌이면서 소련을 굴복시켰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과 소련 사이에는 태평양과 대서양이 있었다. 소련이 미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해 미 증권시장에 영향을 줄 수 없다. 대륙간 탄도미사일만 발사하지 않는다면, 실제로 서로에게 위협이 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북한은 재래식 무기만으로도 우리에게 위협이 된다. 장사정포 몇 발을 날리면 수도권은 공황 상태에 빠진다. 얼마 전 이 대통령이 “가장 호전적 집단이 근거리에 있는 것을 잊고 살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잃을 것이 별로 없고 강수를 두면 오히려 얻을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 호전적 세력이 가까운 거리에 있기 때문에 그들을 자극하는 정책이 도움되지 않는 것이다.

-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 정부의 대북 압박을 지지하는 이유가 있나.

= 미국 처지에서 보자면 천안함은 (미국의) 국가적 이슈가 아니다. 동맹국가인 한국이 그것에 죽어라고 매달리니까, 이에 동조해주는 대신 이를 활용해 일본을 요리하고 있다. 미국에 이번 사태의 ‘실체적 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일본 하토야마 내각이 오키나와의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는데, 미국은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미-일 동맹이 아니라 한-미 동맹에 힘을 실으면서, 이 문제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후텐마 기지 등의 문제가 처리되면, 미국도 (천안함에 대해) 지금과는 다른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 시점에서 중국이 6자회담 재개를 통해 국면을 풀어나가려 할 것이다. 북한도 못 이기는 척 끌려나올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점이다. 6자회담이 표류하고, 당사국이 장외에서 샅바싸움을 하는 동안에도 북한은 절대로 놀지 않는다.

- ‘놀지 않는다’는 게 무슨 뜻인가.

= 북한은 협상의 기미가 없으면 미국이 협상에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초강수를 둔다. 미사일 발사든 핵 실험이든 뭔가 하게 돼 있다. 따라서 ‘틈새 시간’이 길어질수록 북한의 핵 능력은 강화된다. 북한은 협상에 대비해 몸값을 높이려 한다. 더 강력한 핵무기, 더 멀리 가는 미사일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게 북한이 믿는 협상력이다.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고 (긴장 조성을 통해) 협상에 나오기까지 더 많은 시간을 주고 나면, 머지않은 장래에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확인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

- 지난 정부 10년 동안의 ‘북한 퍼주기’가 천안함 공격으로 귀결됐다고 보수 세력은 주장하고 있다.

= 정부 차원의 대북 지원은 식량·비료 등 모두 현물이었다. 현물이 아닌 현금이 북에 흘러간 곳은 두 경우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 근로자의 임금과 금강산 관광비다. 두 사업을 합해 북에 들어가는 돈은 연간 1억달러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북한 경제는 ‘인민 경제’와 ‘군수 경제’로 분리돼 있다. 두 분야의 자금이 서로 넘나들지 않는다. 인민 경제는 내각의 경제부처가 알아서 운용하고, 군은 군사경제위원회에서 벌어서 쓴다. 최근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를 보면, “북한이 이란과의 무기 거래를 통해 연간 10억달러를 번다”고 밝혔다. 이 돈이 바로 군대 예산에 들어간다.

북한은 미국과 사이가 나쁜 나라들과의 (무기) 거래를 통해 군대를 꾸린다. 지난해 이명박 대통령이 핀란드를 방문해 “쌀과 비료를 줬더니 여유자금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건 나비의 날갯짓으로 태풍이 왔다는 논리다. 북한이 군사 예산 마련을 위해 무기 거래를 한다는 것은 미국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그런 사정을 대통령이 모르게 만드는 참모는 뭐하는 사람들이냐. 쌀과 비료를 줘서 무기를 개발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국제 무대에서) 바보 취급을 받는다는 이야기를 참모들이 해야 한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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