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천안함 침몰 원인을 ‘북한의 어뢰 공격’으로 공식 발표하면서 한반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민·군 합동조사단(합조단)이 조사결과를 발표하던 중인 5월20일 오전 10시30분께 북한이 최고권력기구인 국방위의 대변인 성명을 내어 “물증을 확인하기 위해 검열단을 파견하겠다. (남쪽의) 그 어떤 응징과 보복행위, 제재에 대해서도 전면 전쟁을 포함한 강경 조치로 대답할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위기는 극한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북, 겉으론 강경하지만…
한국 정부는 북한의 검열단 파견 제의를 곧바로 거절하고, 유엔사령부의 장성급 회담을 북쪽에 역제안했다. 5월21일 “가당찮게 검열단을 운운하지 말고, 이후 유엔사와 북한 사이 판문점 장성급 회담에 나와 유엔사 특별조사단이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정전협정 위반을 조사한 내용에 대해 듣고 설명하라”는 전화통지문을 북한에 보낸 것이다. 유엔사도 미국·영국·프랑스·한국 등 유엔사 소속 국가와 스웨덴·스위스 등 중립국 감독위원회 소속 국가에 특별조사단 소집을 통보했으며, 이달 말까지 조사를 끝낸 뒤 그 결과를 다음달 초 유엔에 보고할 계획이다.
북한이 남한의 이런 역제안을 수용할 가능성은 미지수다. 두 차례 연평해전이 벌어진 1999년과 2002년엔 유엔사의 요구에 응해 판문점에서 장성급 군사회담을 연 적이 있다. 2002년엔 무력충돌 재발방지책을 마련하자는 합의를 하기도 했다. 남쪽이 검열단 파견을 거절하면서 ‘소명 기회’를 잃은 북한으로선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서라도 유엔사 회담에 응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정반대의 예상도 있다. 조사를 하는 유엔사 정전위는 남한 정부의 조사결과에 신뢰를 보내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으며, 북한과 중국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연평해전 당시엔 북한도 자신이 먼저 공격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참여정부에서 통일·안보 분야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포함한 국제 조사기구를 만든다면 모를까, 사건 당사자 양쪽 가운데 한쪽이 실시하는 조사결과를 다른 쪽에 일방적으로 수용하라고 한다면 그걸 받을 가능성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검열단이냐, 북-유엔사 회담이냐’의 힘겨루기 속엔 북한의 검열단 파견 제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문제가 숨어 있다. 물론 북한 국방위 대변인 성명은 ‘전쟁 불사’까지 언급할 만큼 강경하다. “이 시각부터 현 사태를 전쟁 국면으로 간주하고 북남관계에서 제기되는 모든 문제들을 그에 맞게 단호히 대처해나갈 것”이라는 5월21일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성명 역시 살벌하긴 마찬가지다. 하지만 북한의 메시지엔 ‘대화를 통한 해결’ 의도가 분명히 담겨 있다. 대변인 성명과 별도로 남북 당국 간 채널을 통해 ‘5월21~22일 검열단을 보낼 수 있다’고 비공개 제안을 한 점, 조평통 성명에서 ‘선제 행동’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 등이 그 근거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검열단을 보내겠다는 건 북한도 천안함 문제가 남북의 극단적 대결로 전개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신호다. 남쪽이 원한다면 해명해보겠다, 일단 얘기를 해보자는 의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런 측면은 염두에 두지 않는 모습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5월21일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북한이 다시는 무모한 도발을 자행할 수 없도록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도 이날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강도·살인범이 사실이 밝혀진 뒤 제대로 조사했는지 검열하겠다는 것이라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한국 정부는 이런 만행을 저지른 북한에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일 vs 북·중, 냉전적 대립전선
이런 강경 기조에 입각한 ‘단호한 조처’는 5월 말 이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에서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 합동군사훈련 규모 확대 △서해상 대규모 연합 대잠수함 훈련 등 ‘무력 시위’를 비롯해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경협과 교류협력의 전면 중단 △제주해협 봉쇄 △대북 선전방송 재개 등이 거론된다. 국제적 압박도 강화할 기세다. 다음달 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새로운 대북 제재 결의나 대북 비난 의장성명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이런 한국 정부에 미국과 일본은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미국은 로버트 깁스 백악관 대변인 성명에서 “(북한의) 모든 도발에 맞서 역내 평화와 안정을 지키기 위한 협력 의지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도 “한국 정부가 유엔 안보리에서 제재 조처를 제기할 경우, 일본 정부는 지지하겠다”(히라노 히로후미 관방장관)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반면 그간 “(천안함 사고 원인과 관련해)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조사를 통해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해온 중국은 조사결과 발표 뒤 “각국은 냉정하고 절제된 태도로 관련 문제를 적절하게 처리해 한반도 정세의 긴장을 막아야 한다”(마자오쉬 외교부 대변인)는 원론적인 견해만 밝혔다. 대북 제재와 관련해서도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관 당사국들이 공동 노력해 조속히 (6자회담을) 재개하기를 희망한다”(추이톈카이 외교부 부부장)며 6자회담 재개에 더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한반도 주변 국가들의 이런 반응을 두고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한·미·일과 북·중 사이에 냉전적 대립전선이 분명해졌다. 한반도 정세에서 중국의 역할이 가장 중요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의 ‘대북 유화책’ 같은 완충장치가 이 정부에선 폐기됐기 때문에 남북이 충돌할 때 문제를 해결하려면 외부 의존성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태호 참여연대 합동사무처장의 전망은 이렇다. “중국은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실험을 비난하는 안보리 의장성명에 동의했다가 북한과 곤란한 관계에 놓인 경험이 있다. 동북아 지역에서의 영향력도 줄어들 뻔했다. 천안함 문제를 안보리로 가져가더라도 중국이 대북 제재에 동의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해선 ‘동북아에서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미국과 중국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적극 제기할 수 있다.” 구갑우 경남대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북한은 6자회담 복귀를 꾸준히 검토했다. 남북관계가 닫힌 지금은 새로운 활로를 찾아야 한다. 중국이 ‘천안함 사태 재발 방지를 위한 평화체제 구축’을 의제로 회담을 재개하자고 나설 경우 북·미 모두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5월 말 잇따라 열리는 미-중 전략·경제대화와 한·중·일 3국 정상회의에선 이런 논의가 오갈 것이라는 예상도 적지 않다.
중국도 동의할 ‘명확한 증거’ 제시해야이런 모든 상황은 다시 천안함 침몰 원인이 무엇이냐는 ‘원점’으로 귀결된다. 유엔 안보리 제재 여부, 남북대화·6자회담 촉구 여부의 열쇠를 쥔 중국이 동의할 만한 수준의 ‘증거’ 없이 한국 정부 등이 강경 드라이브를 건다면, 북한이 아무리 대응 수위를 높인다 하더라도 중국이 이를 제어하기는 어렵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북한학)는 “안보리 제재를 하느냐 마느냐는 한국 정부가 중국이 동의할 수 있는 수준의 ‘증거’를 내놓느냐에 달렸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바닥을 쳐야 정세도 변하는 건데, 지금은 거의 바닥에 온 것 같다. 당분간은 긴장과 경색이 불가피하지만, 전체적인 국제질서 안에서 남북관계가 변하는 계기가 생길 것”이라면서도 “계기가 생기려면 역할이 커진 중국이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명확한 의혹 해명이 필요하다. 아직은 의혹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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