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공업도시 톈진·쑤저우, 말레이시아의 세렘반, 인도의 신산업도시 노이다, 이 도시들은 얼핏 서로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모두 삼성이 아시아의 거점 생산지로 키우고 있는 ‘삼성공화국’의 일부다. 이 도시들에서 수만 명의 삼성 노동자와 그 하청업체 노동자가 일하고 삼성의 글로벌 신화가 이들의 손끝에서 현실화돼간다. 하지만 이들이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떠오른 삼성의 성공을 나누고 있을까?
삼성공화국, 중심부와 주변부의 분리
삼성그룹의 웹사이트는 삼성을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기업시민’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최근의 논자들은 삼성을 ‘삼성공화국’으로 표현한다. 이는 삼성의 영향력을 직시해 한국이 바로 삼성의 공화국이 되었다는 의미로도 쓰이지만, 삼성이 가진 물적·인적 자원의 규모가 하나의 국가와 맞먹을 정도로 커졌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삼성의 2008년 기준 총매출액은 약 1730억달러로, 세계경제 46위인 칠레의 국내총생산(GDP)에 맞먹는 수준이다. 게다가 삼성 지분의 절반가량을 해외 투자자들이 소유하고, 한국에서 20만 명을 포함해 전세계 40여 개 국가에서 약 28만 명을 고용하면서 여러 주권국가를 넘나들면서 사업을 하고 있으니 그렇다면 삼성공화국은 초국적 공화국 (Transnational Republic)인 셈이다. 삼성 공장이 하나 들어설 때 줄줄이 따라 들어가는 하청업체 수를 따지고 또 그 하청업체에서 재하청을 받는 작은 규모의 작업장에 고용된 노동자 수를 따진다면 삼성은 가히 작은 규모의 국가를 이루고도 남음이 있다. 이쯤 되니 삼성의 영향력은 한국에서 그리고 삼성이 진출한 국가,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막강하지 않을 수 없다.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은 몰라도 삼성은 안다는 사실로 볼 때 삼성의 성공 신화는 국민적 자긍심의 바탕이 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 자긍심의 원천은 어디일까? 이 초국적 공화국은 공화국의 시민에게 어떤 권리를 부여하고 있을까? 이 공화국은 얼마나 민주적인 것일까?
‘글로벌’ 삼성이 개발도상국 노동자를 어떻게 관리하는지는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개별 개도국의 삼성 및 협력업체 노동자가 일하는 환경과 한국의 삼성 신화 사이에는 면밀한 연관성이 존재한다. 삼성은 국내에서 노동조합과 노동자의 경영 참여 등 정치적 권리의 결여를 보상할 수 있을 만큼 더 많은 경제적 보상을 기업복지 등을 통해 노동자에게 지급했다. 그 결과 삼성은 가장 근면하고 충실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렇게 증가하는 중심부에서의 노동비용을 감당한 것은 기업을 지구화하는 전략을 통한 주변부 노동이다. 이렇듯 삼성은 충성도 높은 양질의 한국 내 노동력으로 ‘중심’을 구축하면서 해외의 값싼 생산비로 노동의 ‘주변부’를 확장했다. 1990년대 이후 중심부의 한국 노동자를 확고하게 포섭하고 주변부의 노동자를 강도 높게 착취하는 전략을 확고히 한 뒤 중심부와 주변부 노동 간의 다중적 분리를 이끌어내면서 삼성은 글로벌 성공 신화의 밑돌을 깔았다.
인도 정규직 초임 5만원
중심과 주변의 분할 전략은 중국, 인도,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이뤄지는 삼성의 노무관리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중국의 삼성 공장들은 중국 내 타 지역에서 이주한 이주노동자를 주로 쓰는데 이들은 현지 호구제도에 따라 절반의 시민권만 가지고 있는, 대체로 젊은 여성 노동자다. 이러한 노동력은 다시 정규직과 견습생, 파견노동자 등을 포함하는 비정규직으로 나뉘고 이들 간의 임금 격차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견습생의 경우 정규 노동자 임금의 절반인 12만원 정도밖에 받지 못하고 사실상 정규직 승격이 힘들다. 광둥성의 삼성전자 생산라인은 4분의 1이 견습생으로 채워져 있다. 인도 노이다의 삼성전자에서도 정규직·비정규직·수습직 간의 위계관계가 발견된다. 노동자는 대부분 먼 지방과 네팔 같은 인접국에서 온 이주자다. 비정규직은 노동 파견업체를 통해 고용되고 계약 기간은 1년에 불과하다. 2006년 조사에 따르면, 초임 기본급 5만원(약 2천인디아루피)에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는 1년이 넘어서도 기본급 7만원 정도를 받고, 가족을 부양하기에 터무니없이 부족한 기본급을 보상하기 위해 초과근무를 통해 기본급의 절반가량을 추가로 벌어야만 한다. 삼성은 인도에서 노동자의 조직화를 막기 위해 노동력 분산, 고용 불안정, 계급의식 부족 등을 이용한다. 예를 들면 언어·지역·성별상 서로 분리된 노동력을 모집함으로써 노동자 간 접촉을 제한하고, 해고는 시간차를 두고 한 사람씩 진행하는 방식을 쓴다. 말레이시아의 공장에서도 비정규직 비중이 점차 늘고 있으며 현지 하청업체는 많은 수의 계약직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는 방식을 쓴다.
작은 집단행동도 해고로 이어져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삼성의 노동자들은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노동자들을 분리시키고 노동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위계관계를 세우는 삼성의 노무관리는 노동자들의 단결을 저해함으로써 노동조합의 설립이나 단체행동을 힘들게 만든다. 여기에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현지 정부의 협력이 더해져 삼성 노동자들의 집단행동은 사실상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삼성에 지부를 설립하고자 했던 동아시아 각국의 노동조합들은 높은 벽을 실감한 채 단념해야 했다. 말레시이아의 전국전기산업노동조합은 국제 금속노조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노조설립에 실패했다. 삼성의 말레이시아 진출 초기 삼성과 말레이시아 정부 사이에 10년간 노동조합을 허용하지 않는 동의가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런 사례들이 보여주는 것은 삼성이 한국에 근무하는 노동자에게 뿌리는 자본금이 그냥 생긴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 등을 중심으로 층층이 구성된 위계구조의 밑바닥에서부터 서서히 쥐어짜낸 것이라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하에서 심화되는 국가 간 발전의 불균형을 십분 활용하면서 삼성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이러한 끊임없는 움직임 속에서 삼성은 각국의 노동자를 흡수하고 이용하고 돌려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주변부에서는 경제적 보상조차 정체돼 있었다. 삼성맨으로서의 정체성 확립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적어도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 삼성 노동자는 소비자가 브랜드로서의 삼성에 던지는 찬사에 비교할 때 한참 못 미치는 충성심을 보인다. 삼성 신화는 점차 아시아 노동자의 싼 임금체계에 의존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앞으로 이들은 삼성에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할지 모른다.
*이글은 다양한 현지 연구자들이 참여한 ‘아시아 다국적기업감시동맹’의 연구를 바탕으로 쓰여졌습니다. 이 연구의 일부는 (후마니타스·2008)에 소개됐습니다.
장대업 런던대 아시아아프리카대학(SOAS) 개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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