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한민국에서는 ‘스펙화’된 주체들이 배양되고 있다. 상품으로서 인간의 품질 향상을 위해 저마다 각종 자격증을 따느라 바쁘다. 의 설문 조사 내용도 여기서 멀리 벗어나 있지 않다. 대학생들이 구직자의 졸업 대학별로 가산점을 달리 주는 실태를 지지하고, 대학 평가에서 취업률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하며, 대학이 기업화되더라도 내가 다니는 대학 이미지가 업그레이드되고 그것이 나의 취업에 보탬이 된다면 서슴없이 ‘기업 대학’을 수용한다.
GDP 1천조원의 나라, 희한한 풍경들
오늘날 대한민국의 대학은 수익업체임을 자임하며 대학생들을 스펙화된 주체, 자기계발적인 주체로 내몰며 등록금 이외의 많은 돈을 추가로 벌어들이고 있다. 거기다가 홈플러스까지 끌어들이며 또다시 돈 벌 궁리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에 이어 2008년 금융공황까지 발생한 자본주의의 위기 국면까지 활용해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 외에는 대학생들이 학문에 대한 생각을 할 여유마저 박탈해버린다.
신자유주의란 생산 현장의 논리가 공장을 넘어 전 사회적으로 파급되는 것이다. 생산 현장에 요구되는 품질관리(QA) 방식이나 저스트인타임(just in time) 생산 방식이 이제 대학가를 강타하고 있다. 스펙은 대학생이라는 상품의 품질관리를 위한 인증서이고, 기업이 요구하는 그 상품을 철저하게 관리해 재고 없이 바로바로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은 이미 20세기 초 대학을 가리켜 ‘영업소’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베블런의 말처럼 오늘날 대학은 차를 파는 기업의 대리점과 같다. ‘SKY’ 대학처럼 고급 자동차를 팔 수 없는 지방의 대학들은 중고차를 헐값에 팔아치우는 자동차 매매시장이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생이란 바로 차라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1천조원을 향해 달리는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이 희한한 풍경들. 등교하는 스쿨버스 광고를 보면 취업률 전국 1위가 아닌 대학이 없고 대학생들 얼굴을 홍보도우미로 버젓이 내세우는 이 이상야릇한 풍경.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1~2년 휴학하는 바람에 수업의 연속성은 꿈도 꾸지 못하는 대학. 아니 대학을 몇 년 다니든 졸업장만 필요한 대학. 수업·공부·학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취업 자격증인 졸업장만 손에 쥐면 모든 것이 끝나는 대학. 이 진저리 나는 풍경을 새삼 더 상술할 이유는 없다.
상아탑에서 우골탑, 이젠 아파트탑으로
‘지구는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토머스 그린의 말처럼 값싼 노동력이 전세계에 즐비하기 때문에 하향 경쟁(race to the bottom)이 불가피한 자본주의의 현실이 살금살금 물살을 밀어내며 대학 안까지 점령한 것이다. 이 자본주의의 매트릭스를 인지하지 못한 채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대학생들을 보면 안쓰러움을 넘어 도대체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지 갑갑하기만 하다. 부모가 최저임금을 받는 경우 등록금이 8천원뿐인 프랑스 대학, 등록금 지불은커녕 오히려 한 달 용돈을 받는 러시아의 대학, 공부 안 하고 알바할까봐 임금을 지불해주는 베네수엘라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갑갑한 심정은 더더욱 커져간다. 진작 죽어버린 대한민국 대학에서 학생들의 눈망울을 보다 보면 인문학 이야기를 발설하고 학문의 죽음을 성토하는 것이 어떨 때는 미안함을 넘어 두렵기까지 하다.
상아탑에서 우골탑을 넘어 아파트탑으로 변해버린 대학이 다시 상아탑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 상아탑은 학문의 노스탤지어일 뿐인가? 지금처럼 만신창이가 된 대학은 분명히 사회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그러자면 그 전제는 대한민국 사회 자체가 신자유주의의 공격에서 보호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날로 강화되는 노동의 분할, 1970년대 초 시작한 개발의 빅뱅 등 난제들을 극복하지 못하면 대학은 소생할 수 없다.
이득재 대구가톨릭대 교수·노어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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