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년 동안 무슨 생각을 가장 많이 했을까? 혹시 ‘웃자고 한 얘긴데, 죽자고 덤비네…’는 아닐까? 별 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거나, ‘백년대계’를 위한 일이라 여긴 어젠다를 꺼낼 때마다 온 나라가 벌집을 들쑤셔놓은 듯했으니 말이다. 취임 초기 ‘강부자·고소영 내각’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한반도 대운하, 미디어법 등을 둘러싼 논란에 어쩌면 이 대통령은 억울했을지도 모른다.
웃자고 한 얘긴데, 죽자고 덤비네?
유난스런 폭설로 도로가 꽁꽁 언 것처럼 이번 겨울 정국을 마비시키고 있는 세종시법 수정 문제는 그 정점일 수 있다. 지난 2년간 보여온 ‘이명박표 국정운영 방식’을 그대로 농축한 듯하다. 이 대통령은 지난 1월12일 전국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세종시법 수정이) 뜻밖에 너무 정치 논리로 가는 게 안타깝다. 정치적 차원이 아니고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적 차원인데 이렇게 가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이 대통령의 세종시 건설 관련 발언을 살펴보면, 이런 생각엔 일면 일관성이 있다. 서울시장 재직 때인 2005년 3월25일 이 대통령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이다. “수도 이전은 오직 정치적 계산에서 추진한 것이지, 국가균형발전이나 수도 발전을 위해 오래전부터 심각하게 고민해 추진한 것이 아니다. 국익을 위해 결심을 바꾸는 것은 지도자의 진정한 용기다.” 정부 조직이 ‘관습헌법상 수도’인 서울을 떠나면 국정에 비효율을 초래하며, 이런 발상은 ‘표’를 의식한 책략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2007년 대선 때는 세종시 원안 추진을 공약했다. 그리고 나서 “국익을 위해 결심을 바꾸는 지도자의 용기”를 과시했다. 정운찬 총리가 내정되면서 불붙기 시작한 세종시법 수정 논란과 관련해 그는 지난해 11월27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그러지 않았어도 표를 얻었을지 모르겠으나, (대선) 유세 때 처음에는 어정쩡하게 얘기했다가 선거일이 가까워지니까 ‘원안대로 하겠다’며 계속 말이 바뀌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지금 생각하면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잘못을 알고도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며 세종시 계획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의 뜻에 따라 정부는 세종시법 수정 계획을 폭풍처럼 밀어붙였다. 지난해 11월5일 출범한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는 위원 16명의 아홉 차례 토론을 거쳐 두 달 만에 행정부처 이전을 백지화하는 수정안을 발표했다. 참여정부가 세종시를 건설하려고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과 각종 위원회·TF·협의체 등 49개 논의체를 꾸리고 2005년부터 2년 동안 1천여 명이 모두 487차례 논의를 거쳤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른 속도였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법 수정 근거로 ‘효율’을 강조하면서, 국가 균형발전 철학과 수도권 과밀화 해소 방안 마련이라는 본질도 피해가고 있다. 논란의 초점이 ‘효율적인 수정안’ 대 ‘절차를 지킨 원안’이 되면서, 마치 수정안의 내용이 원안보다 낫기 때문에 절차적 하자가 있더라도 원안을 고쳐야 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이다. 하지만 신진욱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세종시 수정안이 효율적이긴 하지만 수정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며 “국민과 한 약속을 어겼다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다. 수정안은 모든 자원을 수도권에 집중시키는 것이므로 국가 전체의 발전 전략으로서도 효율적이지 않다”고 지적했다.
‘탈여의도 정치’ 축약판인 세종시 논란
이런 모습은 이 대통령이 정치적 쟁점에 맞닥뜨릴 때마다 보였던 ‘독선적’이고 ‘일방주의적’인 행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 사업, 영어 공교육 강화, 정부조직 개편 등이 반대에 부딪힐 때마다 이 대통령이 꺼내든 반박 논리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선 안 된다.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해야 한다”였다. 대선 후보 시절엔 자신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쓴 언론사 기자에게 사석에서 “젊은 사람이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해야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면 되느냐”고 불쾌감을 드러낸 적도 있었다. ‘나는 옳고 효율적이다. 반대는 그르고 비효율적이다’라는 논리는 민주적 의사 결정에 꼭 필요한 토론와 의견 수렴 과정을 ‘낭비’로 여겨 더 큰 반발을 불러오게 된다. 집권 석 달 만에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곤두박질치고, 전국이 촛불과 ‘MB OUT’이란 손팻말로 뒤덮인 근본 원인이 이 대통령의 이런 인식에 있었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다.
‘탈여의도 정치’라는 수사로 국회와 정당 민주주의를 무시해온 태도 역시 세종시 수정안 논란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정부는 지난해 6월부터 수정안을 검토해왔다지만, 정작 국회에서 수정안 처리를 도맡아야 할 한나라당과는 아무런 사전 논의를 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개헌 논의도 주도하는 모양새다. “지난해 말 대통령으로부터 ‘국회에서 개헌특위 논의가 있고 지방선거 뒤쯤 개헌 논의가 이뤄져 정부 의견을 조율해올 것이니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지시가 있었다”는 게 지난 2월17일 주호영 특임장관의 얘기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지난해 의장 자문기구인 헌법연구자문위원회를 꾸려 개헌안 초안을 마련하는 등 개헌 불씨를 지펴보려고 애썼지만, 별다른 반향을 부르지 못했다. 한나라당도 ‘개헌연구 TF팀’를 만들어 권력구조 개편 등을 검토했지만 메아리는 없었다. 그런데 이제 이 대통령이 나서 시점까지 못박아가며 개헌을 정치의제로 던진 것이다. 입법기관인 국회의 역할과 기능을 인정받지 못한 셈이다.
정상적인 행정부와 국회의 관계라면 결코 용인할 수 없는 탈·불법적인 4대강 사업 강행, 부실한 예산안 자료 등도 ‘거수기 공룡 여당’은 눈감아줬다. ‘바지사장’ 박희태 전 대표, ‘굴러온 돌’ 정몽준 대표, ‘돌격대장’ 안상수 원내대표 등 당 고위 지도부의 권위를 이 대통령도 인정하지 않고, 이들 스스로도 앞으로의 행보를 의식해 ‘대통령 뜻대로’를 반복한 탓이다.
이 대통령은 “잘되는 집안은 강도가 오면 싸우다가도 멈춘다”고 했지만, 사실 한나라당엔 뛰어들만한 ‘강도’도 없다는 데 고개를 가로젓는 이는 많지 않다. 이 대통령이 모든 사안에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충분조건은 허약하고 부실한 야당이고, 이 때문에 모든 구도가 ‘여당 대 야당’이 아니라 ‘친이 대 친박’으로 짜인다는 얘기다.
앞으로 3년도 이런 상황이 지속될까? 시간이 흐를수록 ‘미래권력’으로 힘이 쏠리는 반면, 이 대통령은 레임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지금 같은 강공책으론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집권 중반기에 받아든 첫 과제인 세종시 논란을 이 대통령이 어떻게 풀어가느냐는 앞으로 일방통행이었던 ‘이명박식 정치’가 변화할 지를 가늠할 시험대가 될 수 있다.
밝게 전망하는 이는 찾기 어렵다. 수도권의 한 한나라당 의원은 “뭘 기대하느냐”며 “처음엔 서로 달라도 화합하는 ‘화이부동’의 리더십을 안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진보 세력이든 지난 대선 결과에 흔쾌히 승복하지 않는다고 대통령이 생각하는 이상 모든 게 ‘반대를 위한 반대’로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친서민·중도실용’을 들고 나와 반전을 이룬 것처럼 지방선거 등 특정한 계기를 통해 부분적으로는 변할 수 있지만, 국정운영 철학까지 바꿀지는 의문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갈수록 국정 통제력이 약해질 이 대통령이 지금까지의 문제 해결 방식을 고수한다면, 그는 정치·사회적 갈등을 푸는 대신 더욱 엉키게 만드는 ‘비효율’을 자초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의 눈에는 모든 게 ‘반대를 위한 반대’“국민의 행복보다 정파의 이익을 앞세우는 그릇된 길(邪道)에서 벗어나 통일한국과 7천만 겨레의 앞날을 걱정하는 바른 길(正道)로 돌아와 ‘파사현정’(破邪顯正·잘못을 버리고 바른 것을 따름)의 길로 가기를 호소한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정책은 성공한 예가 없다고 역사는 가르치고 있다.” 지금 이 대통령은 5년 전 3월24일 자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썼던 글을 찬찬히 다시 읽어야 하지 않을까.
| |
|
그동안 박 전 대표가 다른 의견을 내더라도, 이 대통령은 우선 자기 뜻을 밀어붙이는 데 바빴다. 미디어법 강행 처리 과정이 대표적이다. 당시 여의도에선 이 대통령이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법안 직권상정을 요구했다는 말이 ‘정설’처럼 떠돌 만큼 청와대와 이명박계의 의지는 강력했다. 원내 절대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일 기세였다. 하지만 여론은 한나라당에 불리했고, 야당도 ‘결사 항전’ 태세로 맞섰다. 한나라당의 숨통을 틔어준 건 박 전 대표였다. 최대 쟁점이던 신문과 대기업의 방송 진출 허가 기준에 ‘매체별 합산 시장점유율’ 개념을 넣은 절충안으로 이명박계를 설득하는 한편, “이 정도(수정안)면 국민들께서도 공감해주시리라 생각한다”며 야당을 압박한 것이다.
쇠고기 촛불 정국에서도 이 대통령은 “(광우병 얘기하는 사람들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반대하는 사람들 아니냐”거나 “(미국산 쇠고기가) 마음에 안 들면 적게 사면 되는 것”이라고 버텼다. 누구도 그에게 직언을 못하는 분위기에서 박 전 대표는 “재협상밖에 해결 방법이 없다면 재협상도 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여론을 등에 업은 박 전 대표의 압박에 결국 이 대통령도 손을 들고 말았다.
이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원안’을 밀어붙이면 박 전 대표가 ‘수정안’을 들이밀어 관철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정반대 상황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당이 중심이 돼 결론을 내리라”는 이 대통령의 지시에 이명박계는 일제히 의원총회 소집을 요구했다. 정태근 의원을 비롯해 이 대통령의 친위부대인 ‘안국포럼’ 출신 일부 의원들은 행정부처 일부만 세종시로 이전하는 ‘수정안의 수정안’도 검토하고 있다. 박 전 대표에게 타협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선 해석이 엇갈린다. 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그간 이 대통령의 정치는 의원 수로 밀어붙이는 ‘인해전술’뿐이었지만, 세종시 문제는 그에게 새로운 정치력을 요구하고 있다. 어떻게 ‘협상’을 이끌어내고 완급을 조절하느냐, 어떻게 해야 지더라도 정치적으로 득이 되느냐를 학습하고 시험 치르는 무대가 세종시 문제”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세종시법 수정안을 처리하려면 박 전 대표와의 타협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청와대 안에선 수정안 관철을 위해 이 대통령이 당에 직접 가서 설득해야 한다는 의견도 고개를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세종시 카드는 ‘박근혜 죽이기’ 수순이라는 분석도 팽팽하다. 원안 고수를 못박은 박 전 대표로선 세종시법 수정 자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반면 이 대통령은 ‘9부2처2청’ 가운데 세종시로 이전할 부처를 단 1곳만 줄여도 지는 게임이 아니다. 이 때문에 “이전 부처 수를 줄이자는 ‘수정안의 수정안’은 박 전 대표가 아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수정안이 당론으로 채택되지 않거나 국회에서 부결되더라도 이 대통령으로선 ‘밑져야 본전’이다. 자신의 지지 기반이자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수도권에서 수정안 찬성 여론과 지지율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1월25일 여론조사에서 수정안 지지는 51.2%, 원안 지지는 41.2%였다. 서울과 경기·인천의 수정안 지지율은 평균보다 더 높은 54.2%와 54.9%로 조사된 반면, 충청권 수정안 지지율은 43.0%였다. 윈지코리아컨설팅의 1월13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대통령 지지율도 서울 54.3%, 인천·경기 56%로 평균인 50.5%보다 높았다. 충청권에서는 38.6%에 그쳤다.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이 우호적이기 때문에 이 대통령은 선거 때 굳이 박 전 대표에게 손을 내밀 이유도 없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이승환 구미 콘서트 취소 후폭풍…“김장호 시장은 사과하고 사퇴하라”
[단독] 입법조사처 ‘한덕수, 총리 직무로 탄핵하면 151명이 정족수’
윤석열 쪽 “엄연한 대통령인데, 밀폐 공간에서 수사 받으라니”
‘내란 비선’ 노상원 수첩에 정치인·언론인 ‘사살’ 표현 있었다
이승환 “‘정치 언행 않겠다’ 서약 거부, 구미 공연 취소 통보 진짜 이유”
윤상현, 트랙터 시위에 “몽둥이가 답”...전농 “망발”
12월 24일 한겨레 그림판
[속보] 헌재 “윤석열 통보서 받은 걸로 간주…27일 탄핵심판 개시”
계엄의 밤, 사라진 이장우 대전시장의 11시간…“집사람과 밤새워”
[단독] 윤석열, 3월 말 “조만간 계엄”…국방장관·국정원장·경호처장에 밝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