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폐쇄를 둘러싸고 수개월째 갈등을 겪고 있는 발레오공조코리아(충남 천안)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불똥이 국내 사업장으로 번진 사례다. 발레오 본사가 글로벌 경영전략 차원에서 한국 사업장 철수 카드를 꺼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국 본사의 전략에 따라 국내 사업장이 느닷없이 문을 닫게 되는 유형은 다국적 외국인 투자기업(외투기업)에서 전형적으로 발생한다. 발레오 주주들은 외국에서 주주총회를 열어 공장 청산을 결의했고, 국내 발레오공조코리아 대표자는 경영 판단 권한이 별로 없는 상태다. 지난해 11월 한국에 온 발레오 본사 대표자는 노사 대화도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중소기업보다 훨씬 더 다양한 혜택
발레오 자본은 지구촌 곳곳에 생산 거점을 형성하고 있다. 비록 자본에는 색깔이 없지만, 자본가에게는 국적이 있다. 발레오 쪽은 “한국에서 해결할 사안”이라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반면 노동자들은 “발레오 자본을 불러들인 건 정부”라며 “정부가 발레오 철수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물론 국내 시장의 크기 등 사업 환경을 고려해 한국 진출을 선택한 주체는 발레오 자본이지만, ‘정부가 불러들였다’는 말도 과녁이 빗나간 건 아니다. 발레오가 한국 투자 결정을 내릴 때 우리 정부가 외투기업에 제공하는 온갖 특혜를 세세하게 검토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정부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에 ‘인베스트 코리아(Invest KOREA) 본부’를 설치해 개별 외국 자본이 투자하면 어떤 인센티브와 얼마만큼의 지원을 받게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산정해 미리 알려주고 있다.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르면, ‘외국 투자자가 출자한 기업’(외국인 직접투자 금액이 5천만원 이상 및 외국인 투자 비율이 10% 이상인 경우로, 외국인 투자 총지분이 아무리 많아도 ‘외국인 1인’의 지분이 10% 미만이면 여기에 해당하지 않음)에 대해 조세·현금·입지 지원 등 각종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주어된다. 즉 △법인세·지방세 5∼7년 감면 △자본재 도입에 대한 관세 감면 △취득·등록세와 재산세 10∼15년간 50∼100% 감면 △입지 임대료 50∼100% 감면 △용지매입비 보조 등이 제공된다. 각 지방자치단체 역시 △상시 고용인원이 10명(혹은 20명) 증가한 외투기업에 6개월간 1인당 월 100만원(혹은 50만원) 고용보조금 지급 △공장 신증설 때 투자금액의 50% 현금 지원 △기업 컨설팅 비용 지원 △공장 이전 소요 비용 지원 등을 내걸고 있고, 외국인 투자 유치 유공자 포상제도까지 두고 있다. 국내 중소기업에 주는 혜택보다 훨씬 폭넓고 다양하고 많은 금액을 외투기업이란 이유로 제공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1월 김대중 대통령은 외투기업 대표들을 초청한 자리에서 “외투기업을, 국적은 다르지만 한국에 있는 우리 기업의 대표로서 우리 식구로 생각하고 초대했다. 외국인이 국내에 투자하면 우리 기업이 된다. 여러분들과 우리는 ‘한 배에 탄’ 입장”이라고 말했다. 물론 귀가 따갑도록 들어야 했던 ‘국가 신인도(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대적으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던 시절이었다. 조세 감면 등 각종 혜택을 부여해 “세계에서 가장 투자하기 편리한 나라”로 만든다는 게 당시 구호였다.
지식경제부의 외국인 투자기업 정보에 따르면, 1월 현재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투기업은 1만7580개다. 우리나라에서 외투기업은 1962년 미국의 켐텍스가 한국나이론에 처음 투자한 이래 1997년 2274개, 그리고 2001년 1만 개를 넘어섰다. 2003년 기준으로 외국인 투자기업의 고용 인력은 27만5천 명(국내 총고용의 6.6%), 총매출액은 115조원(국내 총매출액의 11.6%)으로 추산된다. 외투기업 노사분규도 증가하고 있다. 노동부 용역보고서인 ‘외투기업 노동고용 관련 실태조사’(2005)에 따르면, 국내 외투기업 노사분규는 1997년 5건, 2000년 31건, 2004년 35건으로 늘었다. 분규도 장기화·대형화하고 있다. 한국네슬레는 직장 폐쇄와 공장 철수 논란을 빚으면서 2003년 145일 장기 파업을 치러야 했다.
한국네슬레가 노사 화합을 도모한 이유그런데 흥미롭게도 당시 한국네슬레는 결국 쟁의를 타결짓고 현재 노사 화합을 도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 시장의 무한한 잠재력을 고려해 여기서 사업을 계속하기로 전략적 판단을 내린 것이다. 한국 정부가 외국 자본에 온갖 특혜를 제공해 대대적으로 환영하고 있지만, 한국네슬레가 보여주듯 사실 혜택을 제공하지 않아도 한국에 투자할 자본은 여전히 투자한다. 철수하는 외국 자본만 강성 노조 운운할 뿐이다.
외투기업에 관한 한 우리 정부는 무한한 지원만 제공할 뿐, 자본 철수 등에 뒤따르는 고용 문제 등에는 아무런 대응도 못하고 있다. 주무부처인 지식경제부는 지난해 한국 투자유치 설명회에서 “노동조합이 과거보다 더욱 협조적으로 되고 있다”고 선전하는가 하면, 노동부 역시 작성에 열을 올리고 있을 뿐이다. 사실 우리 정부는 40여 년 전부터 그래오고 있다. 정부는 1970년 ‘외국인 투자기업의 노동조합 및 노동쟁의조정에 관한 임시특례법’을 제정해 외투기업 노사관계는 노동쟁의조정특별위원회(위원장 보건사회부 장관)에서 다루고, 노조 설립 및 노동쟁의 발생 때 노동청장에게 직접 신고하도록 했다. 쟁의를 제한하는 특례를 규정한 것이다. 당시 불황기에는 마산수출자유지역 등지에서 가끔 대량 해고가 발생하면서 민족적 감정이 폭발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외투기업의 자본 철수와 이에 따른 고용 문제는 ‘모국효과’라는 개념으로 설명되곤 한다. 투자자본의 국적과 모국 본사의 글로벌 경영전략에 따라 경영적 판단과 노사관계의 성격이 영향을 받는다는 얘기다. 국내 외투기업 394개를 대상으로 분석한 노동부 용역보고서(2004)를 보면, 국내 외투기업들의 본국은 미국과 일본이 각각 30.7%, 28.9%로 가장 높다. 또 표본기업 가운데 82.5%가 다국적기업이다. 특히 미국계 다국적기업일수록 노조 배제 정책 등으로 인해 노사 갈등이 더 많이 촉발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외투기업은 주로 본국 모회사의 의사 결정에 종속되고, 임금인상·해고·노조 인정 등에 관한 의사결정 권한도 본국·본사에 집중되는 구조로 돼 있기 마련이다. 특히 다국적기업들은 핵심 기술은 대부분 본국에서 개발하고 외투기업은 단순 생산기능만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자본 철수가 발생하면 당장 고용불안으로 이어지게 된다.
글로벌 단위 노조협의체 운영하는 폴크스바겐그런데 투자 유치에는 열심인 관련 당국도 일방적으로 공장을 철수하고 떠나는 외투기업 현황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식경제부 투자정책과 쪽은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 투자자본은 (각종 세제 혜택 등이 주어지기 때문에) 100% 신고하고 있고, 이를 분기별로 발표하고 있다”며 “그러나 자본 철수의 경우에 따로 신고하는 외국 자본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저 짐을 싸서 떠나버리면 그만인 셈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전세계에 많은 공장을 거느리고 있는 폴크스바겐의 경우 글로벌 단위에서 노조협의체를 운영하고 있다. 예컨대 브라질 공장에서 고용조정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지역의 폴크스바겐 공장 노조들까지 머리를 함께 맞대고 정리해고 기간을 늦추거나 명퇴를 유도하는 등 글로벌 수준의 대안을 논의한다”고 소개했다. 만약 정해진 정리해고 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노조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공장을 철수할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국적기업 가이드라인’ 위반 여부가 쟁점으로 등장하게 된다. 공장 철수나 생산거점 이전을 앞세워 노조를 협박하면 ‘다국적기업 윤리강령 선언문’(1976) 가이드라인 위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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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전세계적으로 활동하는 초국적기업(TNCs)은 총 8만2천여 개로, 지구상 곳곳에 퍼져나가 있는 초국적기업의 외국 자회사는 81만 개에 이른다. 세계경제에서 초국적기업이 차지하는 비중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초국적기업이 전세계 상품 수출의 3분의 1을 맡고 있고, 고용 인원은 2008년 현재 7700만 명에 이른다. 초국적기업의 총생산·판매·고용은 2006∼2007년에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보였다. ‘자본 지구화’의 물결이 그야말로 최고조에 이른 셈이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2008년에 초국적기업의 총생산·판매·고용은 감소했다.
2007년 전세계 상위 100대 초국적기업 랭킹(해외 자산 규모 기준)을 보면, 1위는 제너럴일렉트릭(GE·미국)이고, 이어 2위 보다폰그룹(영국), 3위 로열더치셸그룹(네덜란드·영국), 4위 영국석유(BP), 5윌 엑손모빌(미국) 등이다. 한국 기업으로는 69위 (주)LG(LG그룹 지주회사), 75위 삼성전자, 87위 현대자동차 등 3개 기업이 랭크돼 있다. 이들 기업의 총자산·판매·고용에서 해외 자산·판매·고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현재 (주)LG 55.4%, 삼성전자 47.4%, 현대차 27.9%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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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제46회 한국보도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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