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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을 재판하라

인권위, “경찰 주의의무 위반” 의견 법원에 내기로…
새로 공개된 경찰 간부 진술 “현장 상황 전달받았다면 진압 중단시켰을 것”
등록 2010-01-22 11:23 수정 2020-05-03 04:25

지난 1월11일 국가인권위가 ‘용산 참사’와 관련해 김석기(56) 당시 서울경찰청장 등을 재판에 회부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법원에 제출하기로 의결했다. 인권위가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안건이 처음 상정된 2009년 12월28일 인권위는 격론이 오가던 중 현병철 위원장의 일방적 산회로 회의가 중단됐다. 1월11일 회의에서도 표결(7 대 3)까지 거친 끝에 법원에 의견서를 내기로 결론이 났다. 과연 어떤 내용이기에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것일까?

지난 1월10일, 355일 동안 차가운 영안실 냉동고 안에 잠들어 있던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영결식이 서울역에서 열렸다. 춥고 눈발이 날리는 날씨에도 3천여 명의 시민들이 영결식에 참석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지난 1월10일, 355일 동안 차가운 영안실 냉동고 안에 잠들어 있던 용산참사 희생자들의 영결식이 서울역에서 열렸다. 춥고 눈발이 날리는 날씨에도 3천여 명의 시민들이 영결식에 참석했다.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경찰권 남용 ‘강력한 판단’ 담아

인권위가 법원에 제출하려는 내용은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용산 참사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법과 경찰관직무집행법에서는 공공의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할 때, 경찰관은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조치를 취하거나 누군가의 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하지만 자의적 경찰권 행사를 금지하는 조항도 있다. “경찰관의 직권은 그 직무 수행에 필요한 최소한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하며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된다”(경찰관직무집해법 1조 2항)는 게 대표적이다.

결국 ‘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부드러운 표현은, 가급적 최소한도로 행사돼야 할 경찰권이 남용됐다는 ‘강력한 판단’을 담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경숙 인권위 상임위원은 “당시 경찰의 주의의무 위반은 세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경찰특공대 조기 투입 결정이고, 두 번째는 진압에 들어가면서 안전장치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점, 세 번째는 화재 위험이 큰 상태에서 무리하게 2차 진입에 나선 점”이라고 말했다. 이 세 가지 주의의무 위반이 결과적으로 철거민과 경찰관의 사망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고, 이는 △업무상 과실치사 △직무유기 △경찰관직무집행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게 인권위의 판단이다.

우선 첫 번째 주의의무 위반으로 지적된 경찰특공대 조기 투입을 살펴보자. 검찰은 2009년 8월 김석기 전 청장 등의 불기소결정서에서 “시민들의 안전에 심각한 위해 발생이 예상되는 급박한 상황에서 중대한 불법사태를 막고 공공의 안녕 등을 보호하기 위해 시위 진압에 전문성을 갖춘 경찰특공대를 투입하여 농성을 진압하기로 한 경찰 지휘부의 결정과 직무 수행은 객관적 상당성을 상실하였다거나 현저하게 불합리한 조치라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적법하고 합리적인 테두리 안에서 경찰권이 집행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권위는 경찰특공대의 신속한 투입이 이례적이라고 지적한다. 조국 인권위 위원은 “1월19일 새벽 5시30분에 철거민 농성이 시작됐는데, 불과 3시간 뒤 경찰특공대에 출동 지시가 내려졌다”며 “농성자들의 폭력시위 정도를 지켜보고 경찰특공대 투입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특공대를 투입하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물론 “시민 안전에 심각한 위해 발생”을 언급하며 경찰 손을 들어줬지만 철거민들의 위력 행사 대상은 시민들이 아니었다. 경찰이나 용역들이 건물에 진입하려 시도할 때만 이를 저지하기 위해 화염병이나 유리구슬 등을 던졌기 때문이다. 법원에 제출된 현장 경찰지휘관의 진술조서에도 “(일반 시민들이 다니는) 도로 쪽으로 화염병이 떨어지는 것은 다음날 새벽 작전을 개시하기 직전에 처음 봤다”고 돼 있다.

검사도 “서둘러 진압할 상황은 아니지 않았나”
용산 참사 관련 일지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용산 참사 관련 일지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지만 경찰 수뇌부는 사실과 다른 발언을 하며 상황을 호도했다. 김수정 당시 서울경찰청 차장은 2009년 1월20일 기자회견에서 “도심지 한복판에서 화염병과 벽돌 등을 무차별로 투척하는 등 도심 테러를 벌여 진압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특공대 투입을 지시한 김석기 전 청장도 2월10일 퇴임식에서 “수도 한복판에서 화염병과 벽돌, 염산병이 무차별로 날아들어 건물이 불타고 교통이 마비되는 준도심테러와 같은 불법 행위였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경찰특공대의 조기 투입과 관련해 문제되는 또 다른 대목은 경찰의 대화 노력이다. 검찰은 불기소결정서에서 “경찰은 수차례 협상 의사를 타진하였으나 농성자 쪽에서 협상을 거부하는 바람에 더 이상의 협상은 진행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권위는 “검찰 조사 내용을 보면, 서울경찰청 정보과 형사가 전국철거민연합 간부와 접촉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찰 전체 차원의 대화 시도 노력과 무관하게 담당 형사의 개인적 판단에 따라 간부를 만났을 뿐”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나마도 철거민 쪽과 답변을 주고받는 등 제대로 된 협상을 하기도 전에 경찰특공대가 투입되는 바람에 대화가 중단됐다는 것이다. 특히 기소된 철거민들의 변호인인 김형태 변호사는 1월15일 “추가로 확보한 검찰 수사기록에는 진압 전날 철거민들이 6자 대화를 요구했으나 용산구청이 거절했고, 김석기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주재한 수뇌부 회의 자리에서 ‘나중에 문제될지 모르니 형식적인 설득 과정이라도 거쳐야 할 텐데’라는 발언이 오간 사실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사실 경찰의 성급한 진압 시도는 검찰에서도 의구심을 드러낸 사항이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경찰특공대 신아무개 제1제대장의 진술조서를 보면, 검사는 “농성을 하던 철거민들이 화염병이나 불법 행위를 한 사실은 없고 다만 경찰이 농성 중인 건물에 다가오는 것을 저지할 목적으로만 돌이나 화염병을 투척하였고, 일반 시민들에게는 별다른 위험한 상황은 없었던 것으로 보여, 굳이 서둘러 진압작전 계획을 세우고 진압에 들어갈 상황은 아니었던 것 아닌가요”라고 물었는데 신 제대장은 “지시에 따라 현장에 투입되어 작전을 하는 것에 불과하여 진압작전이 성급한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는 답변하기 곤란합니다”라고 답했다.

인권위가 두 번째 주의의무 위반으로 지적한 안전조치 미흡은 진압 준비 과정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일반적으로 건물 점거 농성이 진행되면 경찰은 해산 작전에 돌입하기 전 건물 주변에 에어매트나 그물을 설치한다. 농성자나 경찰관이 떨어져 숨지거나 큰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용산 참사 때 경찰은 건물 오른쪽에만 듬성듬성 일반 매트리스 몇 장을 깔아놨을 뿐 에어매트와 그물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로 이해 상당수 농성자들이 건물에서 떨어져 허리와 다리뼈가 부러지는 등 부상을 입었다.

망루 내부 염산 100개·시너 60개 파악해놓고

경찰은 이에 대해 “안전장비를 설치하는 작업 중 더 큰 사고가 우려돼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검찰도 “에어매트 등을 준비해갔으나 건물 주변에 화염병 잔해물 등 유리 조각이 많다는 등의 이유로 설치하지 않다가 망루 화재 발생 직후 설치하였고 (중략) 순간순간 급변하는 현장 상황 등에 맞춰 작전 계획을 변경하는 것은 합당한 조치”(불기소결정서)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경찰 스스로 망루 내부에 “염산(박카스병) 100개, 시너(20ℓ) 60개, 새총 10개, 화염병 5박스(120개), 철근, 벽돌 등 다수의 위험물을 소지… 극렬 저항 및 분신·투신·자해 등 극단적 돌출 행동이 우려된다”(경찰 문서 ‘한강로 3가 남일당 빌딩 점거 농성장 진입 계획’)고 밝힌 상황에서,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진압에 나선 것은 얼마나 합리적인 행동이었을까.

인권위가 지적한 세 번째 주의의무 위반인 ‘무리한 2차 진입’은 철거민과 경찰관의 직접적인 사인으로 연결될 수 있어서, 더욱 민감하게 다뤄질 수 있는 문제다.

우선 참사 당일 상황을 보자. 검찰의 진압 과정에서 화재는 세 차례 일어났다. 1월20일 아침 6시58~59분과 7시5~6분께 두 차례 화재가 일어났으나, 경찰관들이 휴대한 소화기로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농성자들의 저항으로 7시10분께 특공대원들은 일시적으로 망루 밖으로 퇴각했다. 그런데 경찰 지휘부는 곧바로 2차 진입을 하도록 했고, 10여 분 뒤 대형 화재가 발생해 참사로 이어졌다.

‘용산 참사’ 관련 의견을 법원에 낼지에 대한 인권위 위원들의 판단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용산 참사’ 관련 의견을 법원에 낼지에 대한 인권위 위원들의 판단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도 검찰은 경찰을 옹호한다. “1차 망루 진입시까지 화재를 효과적으로 진화하였던 사실이 인정되는바, 그렇다면 특공대원을 현장에서 지휘한 경찰관이 위와 같은 농성자들의 화염병 투척 등 행위는 충분히 진압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신속히 농성을 진압하여 공공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2차 진입을 결정한 것이 객관적 타당성을 상실하여 현저하게 불합리하였다고 볼 수 없다”(불기소결정서)는 것이다. 1차 진입 때 작은 화재를 성공적으로 진화한 만큼, 2차 진입 때도 화재가 발생하면 진화가 가능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느냐는 얘기다.

하지만 특공대원들은 1차 진입 때 휴대한 개인 소화기를 거의 다 써버린 상황이었다. 최소한의 개인 소화장비 보충도 없이 곧바로 2차 진입을 강행한 것이다. 게다가 앞의 경찰 내부 문서에서 볼 수 있듯이, 경찰 지휘부는 망루 안에 화염병 120개와 시너 60개, 염산 100개 등 인화성 물질이 많이 쌓여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 투입된 특공대원들은 그 사실을 통보받지 못했다. 검찰이 법원에 제출한 경찰특공대원들의 진술조서에서 다수의 대원들은 “망루 구조가 어떤지, 어떤 물건들이 쌓여 있는지 전혀 듣지 못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경찰도 판단받아야” 상식의 외침

인권위가 지적한 세 가지 주의의무 위반 사항을 살펴보면, 관통해서 제기되는 의문이 있다. ‘경찰은 왜 그렇게 조급했을까’이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는 “그 부분은 조사하지 못한 만큼 뭐라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물론 상식선에서 짐작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참사가 일어나기 불과 며칠 전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차기 경찰청장으로 내정됐다. 또 이명박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하는 법치는 고위 공직자·유력자·재벌에는 관대하지만, 노동자·빈민·철거민에게는 매우 엄격하게 적용되는 구호이다.

좀더 근본적인 물음도 나올 수 있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 검경의 주장과 인권위의 판단은 왜 정반대일까? 이는 검경과 인권위가 딛고 있는 논리 구조와 상식의 토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용산 참사는 주장과 가치관을 배제하고 보면 쌍방 폭력의 일종이다. 물론 철거민들의 농성은 실정법상 불법이고, 경찰과 용역에게 화염병과 벽돌 등을 투척한 것은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위험한 폭력 행위다. 하지만 경찰 또한 불법 행위 진압이란 명분 아래 심지어 용역과 합세해 이례적으로 압도적인 위력을 동원했고, 그 와중에 참사가 일어났다. 이같은 쌍방 폭력을 두고 검찰은 공권력 행사 부분은 과감하게 혐의가 없다고 결정 내린 뒤, 철거민들의 실정법 위반 여부는 강도 높게 따졌다. 결국 검찰의 기소 내용만을 가지고 판단해야 하는(불고불리 원칙) 1심 재판부로서는 철거민들의 위법 행위가 분명한 만큼 유죄를 선고할 수밖에 없는 논리 구조다.

그런데 일반적 쌍방 폭력은 어떻게 해결하는 게 맞을까? 가장 쉬운 것은 양쪽 모두를 처벌하는 것이다. 좀더 발전한 사회에서는 시비를 가려볼 것이다. 애초 폭력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 제공자에게 더 큰 책임을 묻거나, 약자의 정당방위를 인정해주는 방식으로 문제를 푸는 것이다. 검찰의 결정은 이런 상식과는 동떨어져 있었고, 이에 인권위는 “경찰도 한번 판단을 받아봐야 하지 않겠나”라는 ‘상식’을 외친 셈이다. 인권위 권고가 받아들여진다 해도 경찰관들이 유죄 판결을 받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경찰 수뇌부도 일부나마 후회

이제 공은 법원으로 넘어갔다. 게다가 1월15일 김형태 변호사가 공개한 경찰 수뇌부에 대한 검찰 조사 기록은 검찰 수사 결과에 또 다른 의문을 갖게 한다. 이송범 당시 서울경찰청 경비부장은 검찰 조사에서 “현장 상황을 잘 전달받았다면 진압을 중단시켰을 것이다. 특공대원들이 공명심에 일을 크게 벌였다”고 진술했다. 신두호 당시 서울경찰청 기동본부장도 “망루에서 시너를 투척하고 화염병을 던지는 것을 보고받았더라면 내가 결정권자였다면 중지시켰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경찰 수뇌부도 일부나마 후회하고 있는 사안을 두고 검찰은 “아무런 문제 없는 법집행”이라고 두둔하는 셈이다.

여기에 검찰이 소환조차 안 한 김석기 전 청장은 신두호 서울경찰청 기동본부장과의 전화 통화에서 “현장에 시너가 많다니 특공대원들이 소방관이 입는 옷을 빌려입을 수 있냐”고 묻기까지 했다고 한다. 과연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희생자인가. 과연 법원은 이번엔 어떤 결정을 내릴 것인가.



인권위 의결 나오기까지
힘들게 조사하고도 묻힐 뻔


최경숙 상임위원.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최경숙 상임위원.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용산 참사가 일어나고 약 2주 뒤인 2009년 2월 초 유가족들은 김석기 서울경찰청장 등을 검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검찰은 철거민 20여 명만을 기소하고, 그해 8월 김 청장 등을 불기소 결정했다. 이에 유가족들은 서울고검에 항고했지만 11월 이 또한 기각됐다. 유가족들은 이번엔 서울고법에 재정신청을 냈다. 재정신청이란 검사의 불기소 처분이 적절한지를 관할 고등법원에 묻는 제도로,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이면 피고소인은 강제로 기소된다.
그런데 국가인권위는 왜 용산 참사 자체에 대해 직접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재정신청을 심리하는 재판부에 의견을 제출하는 형식을 취해야만 했을까? 사실 인권위는 참사 직후 진정을 받아 경찰의 인권침해 여부를 조사해왔다. 피해자와 주변 참고인에 대한 조사가 이뤄졌지만, 검찰과 경찰은 인권위 조사를 매우 배타적으로 대했다.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자료 제출은 물론 인권위의 현장 방문조차 막았다.
인권위는 2009년 11월께 서울중앙지검장과 서울경찰청장 등에게 과태료를 부과할 움직임을 보였고, 그제야 경찰이 일부 현장지휘관의 진술서 등을 제출했다. 그런데 몇 달 동안 거의 무대응으로 일관해온 검찰이 갑자기 “수사·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인 만큼 인권위 권한 밖”이라고 회신했다. 인권위법에는 수사 또는 재판 중인 사안은 각하하도록 돼 있다. 결국, 인권위는 조사가 거의 완료된 상태였던 2009년 12월 사건을 검찰로 넘겨야 했다.
이렇게 인권위는 용산 참사 자체에 대해 뭐라고 판단할 기회조차 잃어버리게 됐지만, 유가족들이 법원에 재정신청을 내면서 우회적으로 의견을 표명할 기회를 갖게 됐다. 인권위법 28조 2항에는 인권위가 조사 또는 처리한 내용에 관한 재판이 이뤄지는 경우 담당 재판부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재판부에 대한 의견표명 안건을 주도한 최경숙 상임위원은 “힘들게 조사한 사안임에도 인권위가 아무런 역할을 못하게 돼 안타까웠다”며 “지금 재판의 본질은 공권력 행사의 적절성이지만, 더 깊숙이에는 재개발과 관련한 주거권과 생존권의 문제가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우리 사회가 이 부분에 좀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임지선 기자 sunny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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