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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언론시장 장악한 ‘공룡 미디어’

소유제한 빗장 풀리자 인수·합병 봇물… 신문·방송 다매체 동원 여론 독과점
등록 2009-11-26 11:22 수정 2020-05-03 04:25

날치기 통과된 미디어법이 그대로 시행될 경우 그동안 여론 독과점을 방지하기 위해 금지해왔던 신문과 방송의 교차 소유가 가능해진다. 그렇다면 신방겸영 허용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오게 될까?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언론사의 소유 규제를 풀어준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해답이 나온다.

신방겸영을 허용한 미국에서는 신문과 방송을 동시에 소유한 언론사가 이윤 극대화를 위해 자사 소유 지역 언론사의 운영 인원은 대폭 줄이는 대신 중앙 언론사가 제작한 프로그램이나 취재 내용을 전국적으로 활용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2009년 2월 미국 뉴욕에 있는 <뉴욕포스트> 본사 앞에서 미국 시민이 인종차별적 만평에 항의하고 있다. REUTERS/ BRENDAN MCDERMID

신방겸영을 허용한 미국에서는 신문과 방송을 동시에 소유한 언론사가 이윤 극대화를 위해 자사 소유 지역 언론사의 운영 인원은 대폭 줄이는 대신 중앙 언론사가 제작한 프로그램이나 취재 내용을 전국적으로 활용하는 현상이 빚어졌다. 2009년 2월 미국 뉴욕에 있는 <뉴욕포스트> 본사 앞에서 미국 시민이 인종차별적 만평에 항의하고 있다. REUTERS/ BRENDAN MCDERMID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거대 언론기업들은 로비스트를 활용해 정부와 의회에 강력한 로비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신방겸영이 허용되면서 미국의 언론시장은 소수의 거대 미디어그룹에 장악됐다. 특히 1996년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제정한 ‘텔레커뮤니케이션법’은 거대 미디어그룹의 언론사 소유제한을 대폭 풀어줘 미디어 기업 간 합종연횡을 허용함으로써 미국 언론시장의 소유 집중을 가속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 결과 현재 미국의 언론시장은 6개의 거대 미디어그룹에 의해 독과점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미국의 대기업 중 하나인 제너럴일렉트릭은 1986년 를 사들였고, 세계적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디즈니는 1995년 를 사들였다. 를 사들인 제너럴일렉트릭은 1996년 세계적 인터넷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TV와 인터넷을 통해 24시간 뉴스 서비스를 제공하는 를 창설했다. 이후 다양한 미디어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지금은 19개 케이블 방송사, 26개 TV 방송사, 유니버설픽처스 영화사, 20여 개 국제 방송 채널, 인터넷 회사, 잡지사 등을 소유하고 있다. 를 소유한 디즈니도 미국 전역에 있는 226개 TV 방송사에 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을 공급하고 있으며, 227개 라디오 방송사와 17개 케이블 방송사, 월트디즈니픽처스를 비롯한 10개 영화 관련 회사, 출판사와 음반사 그리고 6개 잡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또 다른 미국의 거대 미디어그룹인 타임워너는 1995년 터너브로드캐스팅을 75억달러에 사들이고, 2001년 1060억달러에 인터넷 전문업체인 AOL과 합병했다. 그 뒤 사업 확장을 통해 각종 언론 관련 업체들을 사들여 지금은 대표적 뉴스 전문 채널인 을 비롯해 16개 케이블 방송사, 12개 지역 TV 방송사, 23개 국제 채널, 워너브러더스 영화사를 포함한 9개 영화 관련 회사, 그리고 150여 개 잡지사를 소유하고 있다.

미국에서 가장 보수적인 미디어그룹인 뉴스코퍼레이션은 루퍼트 머독이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한 미디어그룹으로, 지난 1973년 미국에 진출한 이래 1976년 와 1981년 21세기폭스 영화사를 사들였다. 1986년 폭스브로드캐스팅컴퍼니를 창설하고 본격적으로 미국 미디어 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한 뉴스코퍼레이션은 신문과 방송 겸영을 통해 현재 미국에 27개 TV 방송사, 17개 케이블 방송사, 10여 개 잡지사, 을 포함한 5개 신문사, 그리고 전세계에 약 150개의 신문사를 소유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언론시장의 독과점이 여론의 독과점을 수반한다는 사실이다. 소수 거대 미디어그룹들은 운영경비 절감을 통한 이윤 극대화 달성을 위해 자사가 소유한 지역 언론사의 운영 인원을 대폭 줄이고 방송사와 신문사 운영은 중앙에서 제작한 프로그램이나 취재를 활용하고 있다. 즉, 겉으로는 이름이 다른 다양한 방송사와 신문사가 존재하지만 내용은 천편일률적인 여론의 독과점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결국 정보를 생산하고 전달하는 언론사의 독과점으로 인해 거대 미디어그룹의 이익에 부합하는 편향된 시각의 정보만이 생산·제공됨으로써 여론의 독과점화가 발생하게 되었고, 이로 인한 여론의 왜곡 현상마저 일어나고 있다.

미국 정부가 열어준 조그만 틈새로 언론시장에 들어온 신방겸영이라는 괴물이 미국 언론시장을 야금야금 다 먹어치우고 말았다. 그리고 그곳엔 괴물의 목소리만 남아 있게 되었다.

최진봉 미국 텍사스주립대 저널리즘스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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