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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진보매체의 희망 찾기

감원·감부 등 생존 자구책 속 콘텐츠 다양화 나서… 정부·독자가 ‘민주주의 버팀목’ 지원
등록 2009-11-25 18:15 수정 2020-05-03 04:25

서유럽의 진보적 매체들도 활자 매체의 사양산업화라는 큰 흐름에다 전세계적 금융위기의 여파까지 겹치면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부분 거액을 대출하거나 기자를 포함한 직원들을 구조조정하며 위기에 맞서고 있다. 타개책으로 지면을 혁신하는 한편 인터넷에서의 수익 기반 창출에 꾀를 모으는 중이다.

프랑스 <르몽드> 직원들이 지난해 4월 파리의 본사 건물 안에서 인력 감축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그들이 들고 있는 펼침막에는 “르몽드가 그의 아이들을 잡아먹고 있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REUTERS/ PHILIPPPE WORJAZER

프랑스 <르몽드> 직원들이 지난해 4월 파리의 본사 건물 안에서 인력 감축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그들이 들고 있는 펼침막에는 “르몽드가 그의 아이들을 잡아먹고 있다”는 문구가 쓰여 있다. REUTERS/ PHILIPPPE WORJAZER

그동안 영국은 물론 인근 나라의 신문들 사이에서도 잘 버틴다고 부러움을 산 이 조만간 2차 구조조정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월간 최근호가 전했다. 모기업인 ‘가디언 뉴스 앤드 미디어’(GNM)는 지난 11월11일 소속 직원 100여 명을 줄이고 일요일에 내던 도 축소 발행한다고 밝혔다. GNM은 지난해 68명의 기자와 82명의 경영관리직 직원을 이미 구조조정한 바 있다. GNM은 지난 회계연도에 3680만파운드의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그 뒤로도 광고 매출이 계속 줄고 독자마저 감소하자 고육지책을 내놓은 셈이다. 정리해고 대상이 될 경영관리직 직원은 12월 초께 가려질 예정이다. 기자들의 경우는, 알아서 나가기를 기다리되 여의치 않으면 내년 즈음 칼을 댈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술의 진보에도 뒤처지지 않아”

경영상의 어려움과 발행 부수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은 여론시장에서 지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9월 인터넷 누리집 방문자 수가 3295만 명에 달해 영국 언론 가운데 최고를 기록했다. 1년 전에 비해 36% 이상 크게 늘어난 수치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국내 방문자가 1188만여 명이고 나머지는 모두 영국 바깥에서 접속한 이들이라는 점이다. 전세계 공용어인 영어를 쓰는 매체라는 배경이 뒤에 놓인 것은 틀림없지만, 영국의 다른 매체들은 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런던대학 미디어커뮤니케이션 박사과정에 있는 이봉현씨는 “은 진보적 목소리를 내면서도 저널리즘의 기본에 충실하고 인터넷 기술의 진보에도 뒤처지지 않고 투자한 영어권 매체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인터넷 누리집은 다른 매체에 비해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활성화된 블로그도 장점으로 꼽힌다.

은 지난 2005년 오프라인 신문의 판형을 영국에서는 가장 먼저 대판에서 베를리너판으로 바꾸며 젊고 인텔리적인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요일별로 다채롭고 풍부한 섹션을 내고, 관련 콘텐츠를 출판으로 연결하는 등 다른 매체보다 충성도가 높은 독자들을 겨냥한 ‘집토끼’ 전략을 펼쳐왔다.

여기에 덧붙여 은 경영위기 타개책의 하나로 ‘회원제 프리미엄 서비스'를 검토하고 있다. 기존 누리집은 누구나 접근하게 하되, 돈을 내고 회원으로 가입하는 독자에게는 더 특별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각종 이벤트에서 할인 혜택을 주는 한편, 기자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도 주겠다는 방안이다. 대신 다달이 돈을 내라는 것이다. 의 이런 방침은 루퍼트 머독이 올해 하반기부터 온라인 유료화 정책을 밀어붙이자 다른 나라 진보 매체들도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흐름에서 다소 벗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보다 훨씬 심각한 경영위기를 겪으며 한때 문 닫는다는 얘기까지 나돌던 는 얼마 전 부도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13억유로에 이르는 회사채를 보유한 채권단과 출자전환·자산매각을 비롯한 구조조정에 들어가기로 얼마 전 합의하면서다. 는 머독이 를 사들이면서 그와 갈등하던 기자들이 뛰쳐나와 만들었으나 아일랜드의 거부 토니 오릴리가 대주주가 된 이후 진보적 색깔이 많이 퇴색해 요즘엔 중도 매체로 분류된다.

위기 때마다 ‘주주조합’ 가입 급증

도버 해협을 건너와도 사정은 비슷하다. 프랑스 신문 시장도 전반적인 침체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는 지난해 일일 판매 부수가 30만 부가량으로, 2007년에 견줘 5.3% 줄었다. 급기야 지난해부터 올해 3월까지 기자 60명을 포함해 110명이 넘는 직원들을 잘랐다. 대신 지면은 늘리기로 해 3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신문에 부록으로 제공하는 월간지 을 창간했다. 은 여가, 패션 등의 흐름을 짚는 내용을 주로 싣는다. 신문 편집에서는 사진과 그래픽의 비중을 높이는 등 지면 변화를 꾀하고 있다.

2007년 초 로스차일드 은행에 대주주 자리를 내주며 프랑스 좌파를 경악시킨 도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나름대로는, 지난 4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스페인의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를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는 특종을 터뜨리는 등 권력에 각을 세우는 보도를 했음에도 매출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광고 수익은 지난해보다 12%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하루 판매 부수도 지난해보다 7.5% 준 12만여 부에 그칠 것이라는 보고가 나왔다. 은 지난 9월 지면 개편을 단행하면서 토요일치에는 한 주 동안의 주요 기사를 정리한 48쪽짜리 주말판 잡지를 공짜로 끼워주고 있다.

프랑스는 ‘신문이 민주주의의 버팀목’이라는 국민적 합의 속에, 지난 10월30일부터 18∼24살의 청소년에게 매주 한 차례 공짜로 원하는 신문을 넣어주는 ‘나에게 제공된 신문’ 서비스를 시험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정부가 1년에 1500만유로를 지원한다.

독일에서 정통 좌파 신문으로 손꼽히는 전국 일간지 도 어려운 경제 상황에 입술이 바짝 말랐다. 그럼에도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는 게 베를린자유대학 서명준 박사의 설명이다. 유럽 68혁명의 기운을 받아 태어난 는 8천 명 정도의 독자와 직원으로 구성된 주주조합(게노센샤프트)이 자본을 대는 공적 소유 기반 위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와 비슷하다. 하지만 광고 매출이 전체 매출의 20% 이하여서 광고 경기를 크게 타지 않는다. 를 비롯한 한국 신문들은 매출에서 광고 비중이 대개 70%를 넘는다. 서 박사는 “도 여러 차례 경영난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작은 규모의 신문답게 신속하게 홍보 캠페인을 벌여 게노센샤프트 가입을 급격하게 늘리거나 판매를 늘려서 위기를 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거대 미디어와 맞서 선전하는

지난 5월에는 우파 성향의 독일 최대 일간지 의 카이 디크만 편집국장이 의 주식을 사며 게노센샤프트에 가입해 미디어 업계에 화제가 됐다. “는 다음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신문”이라고 말한 디크만은 창간 31주년 기념호 일일 편집국장을 맡기도 했다.

독일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진보적 시사주간지 은 악셀 슈프링거 등 거대 미디어그룹이 잡지 시장에서 공세를 펼치는 속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독일 민주주의의 지원 함포’라는 별명은 여전하다. 의 매출은 지난해 2억2470만유로로, 2002년(2억2710만유로)과 비교하면 살짝 줄었으나 모기업인 ‘슈피겔그룹’의 매출은 되레 늘었다. 2002년에는 3억유로였는데 지난해에는 3억3520만유로를 기록했다. 슈피겔그룹은 보도와 정보다큐 등 텔레비전 채널 등을 부가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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