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가 지난해 11월 작성·배포한 ‘단체교섭 및 단체협약 체결 관련 지도지침’을 보면 “단체협약은 근로조건을 규율하고 노사관계를 안정시키고 산업평화를 보장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돼 있다. 그런데 요즘 노동부 스스로 공무원노동조합이 몇몇 지방자치단체들과 맺은 단체협약을 무효화하면서 산업평화를 깨고 있다.
상생의 노사관계는 단체교섭을 거치면서 형성된다. 2007년 정부와 공무원노조가 체결한 ‘2006년 정부교섭 단체협약서’와 최근 준비교섭이 시작된 2008년 단체교섭의 노조쪽 교섭 요구(안).
지난 10월22일 노동부는 통합공무원노조 손영태 공동위원장을 입건했다. ‘조직 개편시 노조와의 협의의무’를 담고 있는 전남 무안군청지부(통합공무원노조 소속)의 단체협약에 대한 시정명령 등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행정안전부 역시 몇몇 지방자치단체가 개별 공무원노조와 맺은 단체협약과 관련해 “근무시간 중 (노조 관련) 투표가 가능하도록 정한 단체협약은 실정법을 위반한 무효”라는 지침을 내렸다. 행안부는 또 노동부가 전국공무원노조를 불법단체로 통보하자 즉각 “불법 공무원단체와의 단체교섭을 중지하고, 기존 단체협약 이행의무는 소멸된다”는 자료를 각 행정부서와 지방자치단체에 배포했다. 공무원 노사관계의 직접 당사자인 정부가 ‘평화의무’(단체협약을 이행할 책임) 준수를 위해 노력하지는 않고 오히려 노사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다.
단체교섭은 노동조합에 ‘1년 농사’나 마찬가지다. 노동조합 활동의 핵심 영역이고, 체결된 단체협약은 노사 자치규범이 된다. 공무원 노사관계와 관련해 ‘사용자’로서 정부는 성실한 단체교섭과 성실한 단체협약 이행에 나서야 할 책임이 있다. 하지만 정부는 행안부와 지방자치단체에 공무원노조의 불법활동을 감시·통제할 전담부서를 새로 만들기로 하는 등 ‘노조 관리’에 열올리고 있을 뿐 단체교섭은 시늉만 내고 있다.
지난 10월13일, 정부종합청사에서 공무원노조들과 정부가 ‘2008년 정부 단체교섭’을 위한 첫 준비교섭을 벌였다. 10월27일 2차 준비교섭이 예정돼 있지만 무산될 공산이 커졌다. 오진섭 행안부 노사협력담당관은 “(노동부가 최근 불법단체로 해석한) 전공노 대표가 교섭위원에서 배제되지 않으면 교섭을 갖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입건된 손영태 위원장은 노동조합 쪽 교섭대표로 돼 있다.
당시 준비교섭에서 노조 쪽은 노조 교섭위원에게 공가 3일을 허용하고 준비교섭에 행안부 복무담당관을 참석시키라고 요구했으나, 정부 쪽이 거부하면서 공방이 벌어졌다. 당시 정부 쪽은 “노조가 정부 쪽 교섭위원 자격을 논의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라며 일축했다. 책임 있고 성실한 교섭 태도와는 거리가 멀다.
40여 개에 이르는 전국의 단위 및 개별 공무원노조와 정부가 대선 직전인 2007년 12월14일 체결한 ‘2006 정부교섭 단체협약서’는 △정부는 특정 노동조합에 가입·탈퇴할 것을 강요하지 아니한다 △정부는 조합비 공제 요청이 있을 경우 급여 지급시에 협조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단체협약은 지금도 효력이 있다. 정부가 요즘 공무원노조의 상급단체 가입을 금지하는 조항을 공무원노조법에 새로 넣고, 조합비 일괄공제에 협조하지 않겠다고 한 것은 단체협약 위반에 해당할 수도 있다. 게다가 행안부는 2008년 3월, 당시 체결된 ‘정부교섭 단체협약’을 이행하라고 각 기관에 통보하면서 동시에 공무원노조 운영실태 조사에 전격 착수했다. 사실상 협약을 이행하지 말라는 통보나 다름없었다.
단체교섭은 그 자체가, 노사를 규율하는 법을 새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단체교섭을 통해 노사 문제와 요구를 해결하고, 이것이 축적되면서 노사관계의 관행이 만들어진다. 지금은 정부가 단체협약을 수시로 깨고 흔들고 마음대로 폐기하면서 공무원 노사관계를 끊임없는 과도기와 혼란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양상이다. 아직도 공무원노조를 ‘법외노조’로 인식하는 것일까?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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