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13년 만에 손잡은 두 노총

노동부 장관이 불붙인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복수노조 허용’ 첨예한 이슈 앞두고 총파업 결의
등록 2009-10-29 14:33 수정 2020-05-02 04:25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손을 잡았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과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은 10월21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정부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강행할 경우 총파업을 벌이기로 합의했다. 두 노총의 연대 총파업 결의는 1996년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의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항의하며 총파업을 벌인 이후 처음이다. 13년 만의 연대 총파업 결의다.

ILO “입법적 관여대상 아니다”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왼쪽)과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이 10월21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만나 서로 인사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왼쪽)과 장석춘 한국노총 위원장이 10월21일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만나 서로 인사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 박종식 기자

올 상반기 비정규직법 개정이 노동계 최대 이슈였다면, 하반기 ‘뜨거운 감자’로는 공무원노조 문제와 함께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복수노조 허용’ 문제가 꼽힌다.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는 노조위원장 등 노조를 맡고 있는 직원에게 회사가 임금을 주지 않는 것이다. 복수노조를 허용한다는 건 한 사업장(직장) 안에 2개 이상 노조가 생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1996년 노동법 날치기로 통과된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는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주는 것을 금지(24조 2항 ‘노조 전임자는 전임 기간 동안 사용자로부터 어떠한 급여도 지급받아서는 안 된다’)하고 복수노조를 허용(5조 1항 ‘근로자는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있다’)하고 있다. 그러나 그동안 노사 의견 차이로 시행이 세 차례나 유예되면서 이 법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로 방치됐다.

두 사안에 불을 댕긴 건 임태희 노동부 장관이다. 임 장관은 10월1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13년간 해결을 미뤄온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임금 문제는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후진적인 노사관계의 틀을 새롭게 바로잡는 핵심 개혁과제”라고 밝혔다.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복수노조 허용을 더 이상 유예할 수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드러낸 것이다. 노동부는 관련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현 정부와 정책 연대를 맺었던 한국노총이 강하게 반발하며 노정 갈등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형국이다.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내세운다. 하지만 1998년 11월 국제노동기구(ILO)는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에 대해 “법률로 금지할 입법적 관여 대상이 아니다”라고 밝힌 데 이어, 지난 2월에도 “(전임자 임금) 문제에 관해 노동자와 사용자가 자율적이고 자발적인 협상을 통해 해결하도록 할 것”을 권고했다.

노사도 이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사 쪽을 대표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전임자 임금 지급은 현행법대로 완전히 금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수노조 도입에 대해선 경총은 원칙적으로 반대한다. 여러 노조가 생기면 노조 간 경쟁으로 단체교섭이 어려워진다는 이유를 든다. 다만 경총은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전제로 복수노조를 수용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노동계에선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를 ‘노조 죽이기’로 여긴다. 노조 전임자로 나설 사람이 없어 노조의 힘이 떨어지게 되고, 이는 노조의 교섭력이나 활동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타격은 중소기업 노조가 훨씬 더 크다. 우리나라 전체 노조 4900여 개 중 87% 이상이 조합원 300명 이하의 소규모 기업별 노조다. 노동부도 전임자 임금 지급이 금지될 경우 전체 조합원 수를 기준으로 약 16.3%에 이르는 노조의 활동이 불가능해질 것으로 예측했다.

시험무대는 11월7일 전국노동자대회

노동계도 복수노조에는 찬성한다. 단결권과 교섭권은 노동자의 기본권이라고 강조한다. 다만 교섭 창구를 단일화하는 데 반대하고 있다. 반면 경총은 복수노조가 허용되더라도 교섭 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사안에 대해 민주노총보다 한국노총이 더욱 반발하고 있다. 사실 전임자 문제는 한국노총의 ‘아킬레스건’이다. 한국노총은 가입 노조 가운데 300명 미만 사업장이 88%로 대다수를 차지한다. 법이 예정대로 시행되면 대기업과 공기업 위주의 민주노총보다 한국노총이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결국 11월7일로 예정된 전국노동자대회에 현장 조합원들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많이 참여할지가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복수노조’ 문제의 첫 시험무대가 될 것이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