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동씨. 사진 한겨레 자료
한국방송 의 메인 MC가 교체됐다. 2005년부터 진행을 맡았던 김제동(35)씨가 물러났다. 녹화 3일 전인 지난 10월9일, ‘하차’를 통보받았다. 방송 하차는 적어도 3주 전에 알려주는 게 이 바닥의 관행이다. 이보다 보름 전인 지난 9월24일, 예능제작국장을 비롯한 한국방송 주요 간부가 교체됐다. 다가오는 11월, 이병순 한국방송 대표이사의 임기가 끝난다. 이 대표이사는 연임을 노리고 있다.
연임을 노리는 사장이 전격 단행한 국장 인사와 김씨의 하차 사이에는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게 한국방송의 공식 입장이다. 강선규 한국방송 홍보팀장은 “가을 개편을 맞아, 4년 넘게 프로그램을 진행해 식상하다는 평가를 받는 김씨를 새 진행자로 교체한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김씨의 뒤를 잇는 새 진행자는 지석진씨다. 방송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김씨는 편당 500만원 정도의 출연료를 받는다. 지씨는 김씨보다 100여만원 적게 받는다. 지씨는 김씨와 함께 4년6개월 동안 을 진행하다 지난 4월 교체됐다. 출연료가 문제였다면 자사 아나운서로 교체했을 것이다. 식상한 진행이 문제였다면 새 얼굴을 찾았을 것이다. 지씨를 다시 불러들인 ‘회전문 인사’ 덕분에 김씨의 하차는 더욱 설득력을 잃게 됐다.
김씨와 지씨의 차이는 출연료와 식상함에 있지 않다. 김씨는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추모공연에서 사회를 맡았다. 지난 8월에는 자신의 트위터에 “쌍용을 잊지 맙시다. 우리 모두가 약자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라는 글을 올렸다. 지씨는 그런 일에 나선 적이 없다. “아무 관련이 없다”고 한국방송이 아무리 버텨도 사람들은 사건의 본질을 눈치채고 있다. 포털 사이트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는 김씨의 하차에 반대하고 그를 응원하는 10여 개의 ‘청원방’이 운영되고 있다. 10월16일 현재 2만2천여 명이 여기에 서명했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당한 다른 사람들과 김씨의 결정적 차이는 따로 있다. 김씨는 주눅들지 않고 오히려 진화하고 있다. 그는 오는 12월, 노래가 아닌 대화가 중심이 되는 전혀 새로운 형식의 공연을 시작한다. 이른바 ‘토크 콘서트’다. 30회 정도의 정기·장기 공연이 될 전망이다. 전국 순회 공연을 펼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김씨가 속한 다음기획의 김영준 대표는 과의 인터뷰에서 “김씨가 직접 관객을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풀고, 동료 가수 몇몇이 ‘게스트’로 번갈아 등장해 노래하는 형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 전파를 빌리지 않고 거리에서 관객을 만난다는 점, 연극·노래가 아닌 1인 토크쇼를 공연 무대에 올린다는 점 등에서 파격적이다. 무대에서 관객을 직접 만나는 장기 순회 공연은 1990년대 김광석 등이 택했던 방식이다.
‘토크 콘서트’는 김씨의 활동에 중대한 변곡점이 시작됐음을 웅변한다. 공중파 방송에만 얽매이지 않겠다는 김씨의 뜻이 담겨 있다. 김영준 대표는 “2006년 12월 한국방송 연예대상을 받은 뒤 ‘이만큼 왔으니 이제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싶다’면서 김씨가 토크 콘서트의 꿈을 처음으로 말했다”고 전했다. 그 꿈을 이루기까지 다시 3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김 대표는 “ 하차 결정이 내려진 직후 김씨가 이 콘서트 이야기를 다시 꺼냈고, 회사도 적극 돕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김씨가 이번 기회에 ‘우스개’를 넘어 ‘이야기’로 진화하려 한다는 증거는 또 있다. 지난 10월16일 방영된 문화방송의 파일럿 프로그램 의 진행자로 나섰다. ‘다큐 토크’ 또는 ‘토크멘터리’를 표방한 이 프로그램은 자연을 찾아 1박2일간 캠핑을 하면서 삶과 환경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나눈다. 예능 PD가 아니라 시사교양 PD가 만들었다.
연출을 맡은 조준묵 PD는 등을 만든 정통 시사 PD다. 조 PD는 “재미를 추구하는 예능 프로와 달리 좀더 깊고 진솔한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한다”고 말했다. 보수 언론들은 “한국방송이 버린 김씨를 문화방송이 구했다”고 평했지만, 조 PD는 “최근 일과 전혀 상관없이 지난 9월에 김씨의 프로그램 참여가 결정됐고, 녹화도 9월 말에 모두 마쳤다”고 설명했다. 11월께 정규 프로그램에 편성된다면 ‘지루한’ 진지함과 ‘억지스런’의 웃음을 모두 넘어서는 새로운 토크 프로그램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진솔한 이야기꾼을 본업으로 삼으려는 김씨의 바람은 최근 어느 강연회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씨는 지난 10월8일 마들연구소(이사장 노회찬) 주최 ‘명사 초청 특강’에서 말했다. “나는 독재도 모르고 반독재도 모른다. 오직 상식, 그것만 안다. 깨어 있는 시민들이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칠 수 있는 것이 마이크다. 사람을 웃긴다는 것은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한다는 증거다. 이것이 유머다. 여기에는 어떤 정치적 의미도 없다. 먹고살 게 없는 사람들이 들고 일어나는 건 절규지 폭동이 아니다. 국민은 계몽과 협박의 대상이 아닌 소통의 대상이다.” 그의 말은 이 글보다 훌륭하다. 훌륭한 그는 한국방송이 아니어도 ‘말’을 계속할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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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기획 김영준 대표
- 교체 결정에 대한 김제동씨의 반응은 어땠나.
= 담담했다. 다만 자책을 했다. 회사에 폐를 끼쳐 미안하다고. (이) 경쟁력에서 절대 우위를 가졌다면 논란에 휩싸이지 않았을 텐데, 자신의 능력이 부족했다는 것이지. 나는 자책하지 말라고 했다. 그 프로그램은 개인 토크쇼가 아니다. 출연진만 20명에 MC가 3명이나 된다. 김씨는 그 가운데 하나였다. 며칠 전에 지방 녹화를 갔는데, 팬들의 반응이 달랐다. 예전에는 “사인해달라”고 했는데, 이번에는 “힘내세요” 했다. 김씨가 “나는 총각이라 힘이 남는데, 더 힘내라 하면 어쩌지” 하면서 웃더라. 다만 어머니가 전화해서 울먹이며 걱정하시는데, 그게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 연예인의 사회참여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자는 글을 김 대표가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올렸더라.
= 김씨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구태여 떠들고 다닐 생각은 나도 김씨도 없다. 다만 생산적 합의가 필요하다. 연예인은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산다. 당연히 사회적 책임 의식 정도는 있어야 한다. 그게 여러 형태로 드러난다. 기부 활동을 할 수도 있다. 사회의 주요 사안에 대해 평소 생각을 표현할 수도 있다. 관련 공연에 참여할 수도 있다. 그걸 정치적 시각으로 읽어야 하나? 그것조차 편향된 정치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선거철이 되면 발 빠르게 나서는 연예인들이 있다. 그런 연에인들이 방송에 등장하는 것은 불편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는지 이번 기회에 사회적 합의라도 마련하자는 것이다.
- 사회적 책임 의식과 정치 활동은 무엇이 다른가.
= 김씨는 원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이 많은 사람이다. 가난하게 자랐는데 갑자기 돈을 버니까, 기부 활동을 많이 했다. 최근에도 가 주관하는 캠페인에 돈을 냈다. 지난 몇 년간 기부한 돈만 7억~8억원쯤 된다. 그런데 특정 정치인의 선거운동이나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한다면 그것은 정치 행위다. 그런 연예인들은 멀쩡히 잘 활동하고 있다. 김씨는 그런 적이 전혀 없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보자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모든 일이 정치 행위라고 볼 수도 있겠지. 연예인에게 그런 걸 원하는 것인가? 김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 노제 추모공연에서 사회를 본 것은 당시 장례위원회에서 공식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문상 가는 심정으로 승낙했다고 한다. 주변의 염려가 없지 않았지만, 김씨는 “상식적인 일인데 그것을 왜 정치적으로 보느냐”고 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때 사회를 맡은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취임하는데 국민의 도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 앞으로 활동은.
= 급한 방송 녹화만 끝내고 조만간 지리산에 간다고 한다. 재주가 많으니 방송이 아니라도 대중과 만날 수 있는 자리를 많이 만들 것이다. 사회적 책임 의식이 있는 연예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걸 물적으로 뒷받침할 토대는 소비자가 만들어야 한다. 현명한 소비 대중을 기대하고 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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