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두 번째다. 전국 교도소와 구치소에 분산 수용된 59명의 사형수는 이명박 정부에서 이미 두 번 죽었다. 이제 갓 취임 1년을 넘긴 이명박 정부에서 ‘사형 집행’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이 두 차례라는 뜻이다.
“법무부가 앞장서 법을 어기고 있는 셈”?
이 정부에서 사형 집행에 대한 논쟁이 불거지리라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이 사형제 찬성론자다. 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언론 인터뷰에서 “사형제는 범죄 예방이라는 국가적 의무를 감안할 때 유지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또 그는 취임 초부터 법질서 확립과 공권력의 권위 회복을 가장 중요한 국정 과제로 천명해왔다.
사형 집행 논의를 주도하는 한나라당 논리도 ‘법질서 확립’이다. 박민식 한나라당 의원은 “사형제를 아예 없앤다면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사형제가 존재하는 한 법무부 장관은 법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이 말한 ‘법’은 형사소송법 465조를 말한다. 이에 따르면 법무부 장관은 사형 확정판결이 내려진 뒤 6개월 이내에 집행을 명령해야 한다. 박 의원은 “누구보다 법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할 법무부가 앞장서 법을 어기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지난 2월12일 법무부 등과의 당정협의에서 사형 집행 문제를 논의했다. 장윤석 한나라당 제1정책조정위원장과 이귀남 법무부 차관, 정창섭 행정안전부 제1차관 등이 참석했다. 회의가 끝난 뒤 장윤석 의원은 기자들에게 “사형 집행에 대한 국민 여론을 전하자, 정부는 ‘이런 여론이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이날 사형 집행에 대한 결론은 없었다는 것이 한나라당 설명이었다.
한나라당은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 사건 범인이 검거된 뒤 줄곧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희태 대표와 홍준표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앞장섰고, 검사 출신 의원들도 가세했다. 2월12일 당정협의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에 공식적으로 사형 집행을 촉구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민주당의 김부겸·박지원 의원은 이튿날 “사형제 폐지는 이제 국제사회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사형을 집행해선 안 된다”며 “사형제도가 범죄 예방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도 “강OO 사건을 계기로 갑자기 사형을 집행하자는 것은 양은냄비에 물 끓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제한 두지 않던 서신 왕래 월 4회로여권이 사형 집행을 구체적으로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1년 전인 지난해 3월에도 양상이 비슷했다. 당시 안양 초등학생 납치 살인사건으로 흉악 범죄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들끓었다. 이때 일부 언론을 통해 사형 집행이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물론 법무부는 즉각 해명 자료를 통해 “사형 집행을 추진한 바 없다”고 수습했다.
지난해 3월과 최근, 어떤 식으로든 정부가 사형 집행을 입에 올린 과정을 요약하면 이렇다. 흉악 범죄가 발생한다. 국민적 분노가 들끓는다. 일부 언론이 익명의 정부 관계자 말을 인용해 사형 집행이 검토되고 있다고 보도한다. 법무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며 진화에 나선다.
이와 관련해, 사형수에 대한 교정 당국의 움직임이 확실히 달라진 점도 눈에 띈다. 특히 사형수에 대한 처우 변화를 주목할 만하다. 사형수에 대한 규정이 바뀐 탓도 있지만, 교정 당국이 예민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서울구치소의 한 교화위원은 “사형에 대한 공개적 논의가 나온 이후 교정 당국이 긴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전했다.
법무부가 최근 우윤근 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부터 사형수에게 접견은 매달 4회, 전화 통화는 3회로 제한됐다. 2008년까지는 매일 접견이 가능했고, 전화 통화도 월 5회까지 할 수 있었다. 서신 왕래만 하더라도 예전에는 특별히 제한을 두지 않았지만, 최근 한 달 사이에 4차례로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전교도소의 한 교화위원은 “10년 넘게 교화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당국이 이렇게 민감하게 ‘원칙’을 강조했던 적은 처음”이라며 “접견을 예로 들면, 예전에는 한 번 가면 3~4명의 사형수를 만날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한 번에 한 명만 만나고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 번에 한 명만 만나라는 게 법이지만, 과거에는 사형수 교화를 위해 규정을 유연하게 적용해줬다”고 말했다.
언론의 사형수 접촉도 어려워졌다. 공식적으로는 미결수에 준하는 사형수의 신분 때문에 취재를 금지한다는 것이 이유다. 이명박 정부가 ‘법질서 확립’을 특히 강조하는 만큼 이 말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사형수 이야기가 기사화될 경우 이들에 대한 동정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는 정부의 우려도 깔려 있다.
서울구치소의 한 교화위원은 “올해 초 문화방송 시사 프로그램 PD가 구치소의 한 사형수에게 사형제도에 대한 의견을 묻는 편지를 썼는데, 이 사실을 알게 된 구치소에서 사형수에 대한 언론사의 접근을 막았다”고 말했다.
법무부 교정본부 수용기획팀 관계자는 “사형수 취재는 2008년 3월 교정본부 내부의 업무 처리 기준을 정비하면서 금지하는 쪽으로 바꿨다”며 “사형수 이야기가 언론에 드러날 경우 사회적 파장이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보니 지난해 4월께에는 해프닝도 빚어졌다. 당시 법무부는 서울구치소에 있던 사형수 가운데 일부를 광주와 대전교도소로 이감했다. 대개 사형수 이감은 사형 집행을 준비하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알려져 있다. 교화위원과 인권단체에서 교정 당국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국가인권위 관계자는 “사형수 이감 소식을 듣고 많이 긴장했지만 나중에 확인해보니 사형 집행과는 무관하게 정기적으로 옮기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사형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던 것과 달리, 사형 집행을 둘러싼 논의가 이처럼 무성한 까닭은 정부가 애매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사형 집행에 대해 3월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강아무개씨 (연쇄살인) 사건으로 딱히 변한 건 없다”며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였다.
정부와 여당이 사형 집행 분위기를 띄웠다 내리기를 반복하는 이유는 사형 집행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2월12일 한나라당과 정부의 당정협의 때도 이런 의견이 제시됐다. 이 자리에 직접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외교통상부의 경우 사형 집행이 외교 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하며 사형 집행에 반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당정협의 참석자는 “정부에서도 사형 집행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특히 외교부는 10년 넘게 집행하지 않고 있다가 다시 시작하면 외교적으로 매우 곤란해진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 역시 “(사형 집행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지지층 사형제 찬성 많아정부의 복잡한 속내에도 불구하고 사형 집행을 둘러싼 논쟁이 적어도 이명박 대통령 임기 동안 쉽게 소멸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보수층을 껴안아야 할 이 대통령 처지에서 “사형 집행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천명하는 건 어려운 선택이 될 것이다. 실제로 여론조사를 해보면 상대적으로 한나라당 지지층에서 사형제 유지 여론이 높게 나타난다. 지난해 안양 초등학생 납치 살인사건 직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는 사형제 유지 의견이 63.4%로, 민주당 지지층(45.4%)보다 높게 나타났다.
지난 2월 기준으로 사형수 58명은 서울구치소와 대전교도소에 각각 15명씩 수용돼 있다. 이 밖에도 광주교도소에 14명, 대구교도소에 13명, 부산구치소에 1명이 있다. 2월26일 안양 초등학생 납치 살인사건의 범인 정아무개씨가 사형 확정판결을 받으면서 사형수는 모두 59명으로 늘었다.
앞으로도 흉악 범죄가 터질 때마다 보수 진영에서는 또다시 사형 집행을 주장하고 나설 수 있다. 사형수 59명은 그때마다 죽음의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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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집행이 가장 많았던 시기는 단연 박정희 정권 때였다. 모두 473명이 사형으로 목숨을 잃었다. 전체 920명의 절반을 넘는 수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61년 7월3일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으로 취임하며 사실상 통치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사형 집행은 그가 국정을 맡은 지 불과 8일 만인 같은 해 7월11일 전격 단행됐다. 이날 사형당한 7명의 죄명은 모두 국가보안법 위반과 간첩 등이었다. 이후에도 사형은 쉴 새 없이 이뤄졌다. 살인 등 흉악범에 대한 사형집행도 있었지만, 국보법 위반과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반공법 위반 등 시국 사범에 대한 집행이 많았다.
이 시기에 국가로부터 ‘사법 살인’을 당한 대표적 인물은 조용수 사장이다. 그는 ‘괴뢰정권이 주장하는 평화통일론을 보도 선동해 반국가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1961년 8월28일 사형을 선고받고, 넉 달 뒤인 12월21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사형장에서 세상을 떴다.
‘인혁당 사건’도 박정희 정권이 자행한 사법 살인의 사례다. 북한의 지령을 받아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민청학련’을 조종하고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인혁당 사건 희생자 7명은 1975년 4월9일 사형이 확정된 지 18시간 만에 목숨을 잃었다.
이승만 정권 때도 사형집행이 많았다. 모두 258명에 대한 사형집행이 이 시기에 이뤄졌다. 이승만 전 대통령 역시 ‘정국 불안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사형을 활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1959년 7월 진보당 사건으로 정적 조봉암 진보당 당수를 사형시킨 것이 대표적 예다.
그 뒤를 잇는 것은 전두환 정권이다. 71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살인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특별법 사범이 사형으로 목숨을 잃는 경우도 여전했다. 모두 11명의 사형수가 전두환 정권 아래에서 간첩죄로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한편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38명이 사형에 처해졌고, 김영삼 정권은 57명을 사형장으로 보냈다. 김영삼 정부 때 전 정권에 비해 사형집행이 많았던 것은 임기 말인 1997년 12월30일 한꺼번에 23명의 사형수에 대한 집행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 관계자는 “김영삼 정부가 임기를 몇 달 남기지 않고 대규모 사형집행을 단행한 탓에 아이러니하게도 다음 김대중 정부가 사형집행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었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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