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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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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셋 미래의 위기

금융권력의 언론 유착에 신뢰 흔들… ‘내 맘대로’ 인사이트 펀드에 따가운 시선
등록 2008-10-30 13:17 수정 2020-05-03 04:25

설마 했던 주가 네 자릿수 붕괴가 현실로 나타났다. 노태우 정부 시절이던 1989년 3월31일 코스피가 처음으로 ‘꿈의 1천 선’을 밟았으니 주식시장 온도계는 거의 20년 전 수준으로 돌아간 셈이다. 시장은 다시 한국 증시의 최대주주인 미래에셋만 쳐다보고 있다. 그 시선의 체온은 1년 전과는 정반대다.
지난해 이맘때 한 펀드 발품꾼의 금융가 탐방기를 복기해보자. “ㄱ은행 내부가 완전히 바뀌었더군요. 예전에 입출금 업무하던 곳의 대부분이 투자상담 창구로 변했어요. 어떤 아주머니가 번호표 뽑아놓고 잠든 아기를 안고 있으니까 간부급 직원이 나와 대신 일처리까지 해줬어요. 펀드 하나 권하면서요. 물론 은행 자회사에서 운용하는 것들이에요. 미래에셋증권은 세 번째 방문해서 겨우 상담이 가능했어요. 대기자 수가 50명이 넘더라고요. 어느 할아버지는 20만원을 넣은 펀드 영수증을 받고 어린애처럼 좋아하시네요. 서민의 돈 부디 잘 운용해주길… 제발 조정장이 오지 않기를….”

미래에셋증권

미래에셋증권

기름 끼얹은 백미

이번엔 지난 10월16일 방영됐던 문화방송 의 백미를 클릭해보자. “반토막난 펀드는 어떻게 합니까?” 사회자의 질문에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부소장은 “지금까지 환매를 못한 데에는 개인의 탐욕이나 기대심리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라고 답변했다. 순간 시청자 의견 게시판에는 “장기 투자가 정답이라고 해서 손실이 난 펀드를 들고 있는 내 어머님을 졸지에 탐욕스런 인간으로 매도하느냐” 등 흥분한 글들이 꼬리를 이었다. 함께 패널로 참가한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은 “(위험에 대한) 경고를 작년 말부터 하셨다는데 목소리가 너무 작으셨다”고 꼬집었다. 미래에셋은 파문이 커지자 다음날 그 부소장을 직위해제했다.

1998년 내놓은 뮤추얼 펀드 ‘박현주 시리즈’가 빅히트 행진을 이어가면서 미래에셋은 금융의 벤처 신화를 만들어갔다. 세기말의 정보기술(IT) 거품이 새천년 들어 꺼지면서 박현주 사단은 첫 번째 위기를 맞았지만 ‘은둔의 지혜’로 비켜갔다. 이윽고 2005년 적립식 펀드 돌풍을 일으키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그 뒤 해외 펀드 붐을 주도하면서 재벌 계열사들을 제치고 금융계에 ‘미래에셋 제국’의 깃발을 꽂았다. 글로벌 금융 한파가 몰아치는 지금 미래에셋은 과연 두 번째 시련을 돌파할 수 있을까?

인사이트 펀드가 바로 태풍의 핵이다. 설정한 지 3주 만에 4조원의 시중 자금을 끌어모은 블랙홀이었다. 10월31일 ‘첫돌’을 맞는 인사이트 펀드의 수익률은 지금 반토막이다. 고객이 맡긴 돈 2조3천억원이 사라졌다.

인사이트의 비극은 태생적이었다. 펀드 설정 시점이 글로벌 증시의 대세 상승 끝물이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코스피는 인사이트가 태어난 날 2064.85로 역사상 최고점을 찍었다. 인사이트는 이름과 달리 처음부터 직관(insight)이 빗나가버린 형국이다.

투자 상위 10개 중 9개가 중국 기업

인사이트 펀드 논란의 핵심은 운용 방침에 있었다. 상식적으로 펀드는 어느 지역과 어떤 유형의 종목에 얼마만큼의 비중으로 투자하겠다는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인사이트엔 그게 안 보였다. 투자설명서에 나온 투자 목적은 ‘투자 지역과 자산을 사전에 정해놓지 않고 장기적 시장 모멘텀을 고려한 적극적 자산 배분 전략을 통해 자본 이득을 추구한다’고만 돼 있다. ‘글로벌 자산 배분 펀드’라는 명분 아래 수익이 날 만한 곳이 있다면 자산의 100%까지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투자전략 항목에선 ‘서울 및 해외 법인의 글로벌투자전략위원회를 통해 자산 및 국가에 대해 적극적 자산 배분을 실시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투자 대상 선정의 원칙은 없고, 그냥 해외의 유능한 인재들과 상의해 알아서 운용하겠다는 이야기다. 인사이트가 아닌 ‘블라인드 펀드’란 말이 그래서 나왔다. 또 펀드 매니저의 자의적 운용으로 인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도입된 ‘벤치마크’(측정 기준)를 처음엔 밝히지도 않았다. 논란에 휩싸이고 나서야 모건스탠리 세계지수(MSCI AC)를 기준으로 삼겠다고 공시했다.

그런데 지난 1월 나온 첫 운용 보고서엔 중국 주식에 가장 많이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거품 우려가 커지고 있던 중국 증시의 대안을 찾거나 주가 조정기에 대비한 펀드가 아니겠느냐는 투자자들의 애초 기대를 저버린 것이다.

인사이트 펀드 국가별 투자 비중

인사이트 펀드 국가별 투자 비중

지난 21일 나온 인사이트 펀드의 9월 말 기준 자산운용보고서를 보면 중국 투자 비중은 지난 분기보다 6.47%나 늘어난 67.52%였다(그래프 참조). 투자 대상 상위 10개 종목 중 9개가 중국 기업이었다. 산업별로는 금융주 투자 비중이 25%대로 가장 높아, 금융위기 국면에서 앞으로의 수익률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벤치마크로 삼았다고 말했지만 사실상 무관하게 돼버린 모건스탠리 세계지수보다도 수익률이 훨씬 부진했다.

다른 자산운용사들은 인사이트 펀드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꼈다. 지금처럼 민감한 시기에 경쟁사의 상품에 대해 논평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김태훈 삼성증권 펀드 리서치 연구원은 “당시 중국 펀드를 환매하고 인사이트로 갈아탄 투자자들이 많았는데, 나중에 뚜껑을 열고 보니 또 다른 중국 펀드였다는 사실을 알고 허탈해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은 이미 지난 7월 인사이트 펀드의 약속 위반에 대해 직격탄을 날린 바 있다. “주식·채권·실물에 다양하게 투자한다고 말한 뒤 실제로는 중국에 몰빵한 것은 자산 배분의 A·B·C조차 잘못된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렇다면 미래에셋의 ‘통찰력’은 이제 수명을 다한 걸까? 아니다. 펀드 운용 저력은 여전하다. 펀드 평가기관 자료에 따르면, 국내 펀드 수익률 상위 10위권(3년 기준, 20일 현재)에 42%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디스커버리 주식형’ 등 3개 펀드가 랭크돼, 역시 3개를 올려놓은 한국운용과 자웅을 겨루고 있다. 해외 주식형에선 10위권(1년 기준)에 7개를 올려놓아 거의 독무대다.

‘디스커버리’ 대 ‘한국밸류10년’ 맞대결

성장주 펀드의 명품 ‘디스커버리 시리즈’는 인사이트와는 반대로 대세 상승이 시작되는 시기(2001년 7월)에 설정돼 높은 수익률을 올려왔다. 성장주 펀드는 미래의 수익성 증가를 중요시해 주가가 적정 가치에 비해 좀 비싸더라도 프리미엄을 얹어주고 그 종목을 사들이는 스타일이다. 미래에셋의 주요 편입 종목인 ‘동철이’(동양제철화학)가 대표적인 성장주로 꼽힌다. 성장주 펀드는 강세장에서는 초과 수익을 안겨주지만 약세장에선 평균 수익률 밑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미래에셋이 요즘 같은 하락장에 약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한국밸류운용은 ‘10년은 묵혀야 제맛’이라는 장기 가치투자의 대명사로 불린다. 가치주 펀드는 내재가치에 비해 싸게 거래되는 주식의 길목을 지키는 전략을 구사한다. 2006년 4월 출시된 ‘한국밸류10년투자주식1호’는 이름처럼 10년 이상 투자가 원칙이기 때문에 환매 수수료 부과 기간이 3년이나 된다. 상승장에서는 안정적 수익률을 확보하고 하락장에서도 상대적으로 선방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성장주와 가치주의 두 대표 펀드를 맞붙여놓으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한국밸류10년펀드’가 출시된 지 3년이 안 됐기 때문에 최근 2년 수익률 기준으로 디스커버리 펀드와 비교해봤다. 보유 비중 상위 5개 종목(8월1일 기준)에 겹치는 주식은 없었다. 총보유 종목 수는 디스커버리가 43개, 한국밸류는 133개로, 집중과 분산 투자 측면에서도 대비됐다. 2년 누적 수익률은 디스커버리가 8.93%로 한국밸류10년의 7.61%보다 앞서 있다. 이 기간 중 벤치마크나 동일한 유형의 펀드 평균 수익률은 모두 마이너스를 나타내, 두 펀드의 우수한 운용 능력을 뒷받침해준다. 펀드 수익률의 변동성(표준편차)이나 지수 대비 민감도(베타값)를 보면, 디스커버리는 유형 평균보다 높게 나타난 반면 한국밸류10년은 낮게 나타나 위험관리 측면에선 한국밸류10년이 한 수 위였다. 결국 무승부다.

인사이트 펀드 열풍이 불던 지난해 11월(왼쪽)과 주가가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던 올 7월 미래에셋증권 서울 여의도 본점의 풍경이 너무도 대조적이다.

인사이트 펀드 열풍이 불던 지난해 11월(왼쪽)과 주가가 하염없이 흘러내리고 있던 올 7월 미래에셋증권 서울 여의도 본점의 풍경이 너무도 대조적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미래에셋의 위기는 ‘디스커버리식 실력’이 아니라 ‘인사이트식 신뢰’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의 ‘탐욕 발언’ 자체보다는 금융권과 언론의 관계에 주목하는 것이 더 생산적일 수 있다. 발언 파문이 있기 전까지 문제의 발언자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지면을 통해 매주 월요일치에 두 개의 칼럼을 써왔다. 본지엔 객원논설위원이란 직함으로 ‘국제경제 읽기’라는 고정 칼럼을 연재해왔으며, 별지로 발행되는 머니·투자 섹션에는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부소장이란 겸임 직함을 함께 단 채로 칼럼을 써왔다. 또 몇 주 전까지는 같은 미래에셋연구소 이사가 ‘펀드야 놀자’라는 고정 칼럼을 써왔다. 이 신문의 월요일치에 미래에셋 관계자의 글이 3편이나 실려온 것이다. 또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장은 에 매주 ‘금융교실’이라는 고정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다른 경제지나 일간지 경제섹션에는 삼성그룹 금융계열사 간부들의 글이 상대적으로 많이 실리고 있다.

전문가들의 금융 지식과 의견이 언론을 통해 독자에게 전달되는 것은 당연하고 유익한 측면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소속사와 관련된 금융상품을 넌지시 권유하는 칼럼은 논리의 옳고 그름을 떠나 쏠림 현상에 따른 형평성 시비를 낳을 수 있다. 최근 일주일치 기사만 살펴봐도 한 증권사 간부는 은행 후순위채보다는 본인이 소속된 그룹 계열사의 카드채에 투자하는 게 더 낫다고 주장했으며, 다른 칼럼니스트들도 자신의 회사 주력 상품인 상장지수펀드나 주가연계증권 등의 장점을 부각시켰다. 이에 대해 한국언론재단 김성해 연구위원은 “공익과 사익이라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으로, 기사 자체가 상품이 되는 금융저널리즘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렇다 보니 다른 자산운용사, 특히 독립 중소형사들의 소외감은 뿌리 깊다. 인사이트 열풍이 몰아치던 지난해 11월 이들은 ‘미래에셋의 물량 공세에 언제까지 당하고 있어야만 하는가’라는 무력감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펀드매니저들은 “이제라도 ‘미래에셋 따라하기’에 나설 수밖에 없지 않느냐”며 자괴감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M(미래에셋)의 공포’에 사로잡힌 이들의 질시는 경쟁사들의 음해성 루머와 맞물려 ‘M의 스캔들’을 쏟아내기도 했다.

“미래에셋이라면 시간을 잊으셔도 좋습니다”라는 광고 카피는 이 시점에선 애처롭기까지 하다. JP모건의 보고서 한 장에 하한가로 주저앉는 미래에셋증권의 수모는 다음날 부회장이 직접 나서 “유동성에 문제 없다”는 진화 작업으로 이어진다. 시장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신흥재벌 행세 계속될 땐 투자자 돌아설 것

그래도 아직까지는 미래에셋의 미래를 믿는 사람이 적지 않다. 서울 강남에서 투자자문사를 운영하는 ㄱ씨는 “인사이트 펀드의 실패가 예견됐다고 말하는 논객들은 정말 인사이트한 사람들이다. 지난해 10월 말이 고점이라는 것을 당시에 알았다는 것이니 이같은 선지자들에게 펀드 운용을 맡기면 될 것 아닌가”라며 비꼬았다. 인사이트 펀드를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성급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소한 3년 정도의 말미를 준 뒤 평가하라는 것이다. 정보승 한화증권 애널리스트는 “당시 인사이트 펀드가 중국이 아닌 세계 어느 곳에 투자했더라도 결과는 비슷했을 것”이라면서 “인사이트가 2004년에 태어났더라면 미래에셋은 지금쯤 아시아의 ‘노무라’가 되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금융권력’ 미래에셋에 지금 필요한 것은 자금력을 앞세운 머니게임이나 언론과의 유착을 통한 패권주의가 아니라, 어느새 재벌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지 않느냐는 세간의 지적에 대한 자성일 것이다. 먹이가 없어도 풀은 뜯어먹지 않는 사자가 될 것인지, 죽어가는 먹잇감을 낚아채는 하이에나가 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글 한광덕 기자 kdha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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