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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행과정의 플랜을 세워라”

연쇄인터뷰 ②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키코 같은 금융상품은 미국에선 손해배상감”
등록 2008-09-26 11:00 수정 2020-05-03 04:25

경제개혁연대 소장인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는 ‘현재의 금융위기는 금융자본주의의 실패’라는 규정에 대해 “근본적 비판이기는 하지만 이행 과정의 액션 플랜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현실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고 평가했다. 그는 9월19일 전화 인터뷰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국에도 제2의 외환위기 같은 파국을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이를 막기 위해 단기적으로는 정부 정책의 신뢰성을 높이고, 장기적으론 밀어붙이기식 금융허브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한국 땅에 소액주주 운동을 처음 소개한 사람 중 하나였고, 삼성 특검 때의 활약을 비롯해 재벌체제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경제학자라는 점에서 장하준 교수와는 차별점이 뚜렷하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겨레 강창광 기자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 한겨레 강창광 기자

-이번 금융위기가 금융자본주의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는가. 또 이번 사태가 한국 경제에 던져주는 핵심적인 교훈은 무엇인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새로 형성될 자본주의적 경제질서를 염두에 둔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금융시장에 공공적 규제가 강화된 시스템이 자리잡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전망·희망과는 별개로 현재의 금융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나갈 것이냐에 대해선 금융자본주의 비판자들의 목소리가 큰 도움이 안 된다.

지금은 미국의 자본시장과 투자은행 모델을 중심으로 한 한국 금융산업 발전 전략이 가진 위험성을 제대로 진단하는 게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내년 2월부터 자본시장통합법(자통법)이 발효되면서 사실상 현재의 미국과 똑같은 코스를 걷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어떻게 통제할 것이냐를 묻는 게 지금 현실적인 문제의식이다. 결국은 자통법 체계나 자본시장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금융산업 발전 전략을 재점검하고 보완책을 마련하는 노력이 중요하다.

-자통법을 다시 들여다보는 작업을 새삼 강조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자통법 체계라는 게 미국의 자본시장을 벤치마킹하는 것이다. 이는 크게 두 요소로 구성되는데, 하나는 금융투자회사가 발행할 수 있는 금융상품을 열거주의에서 포괄주의로 바꾸는 것이다. 업무 영역에 대한 규제도 풀어주고. 대신 규제 완화로 발생하는 위험을 통제하기 위해 투자자 보호장치를 지금의 증권거래법보다 강화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자통법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제도적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규제가 완화된 상황에서 금융투자회사의 건전성을 감독할 감독기구의 능력 향상이 첫 번째고, 두 번째로는 자본시장에서 불법부당 행위가 생길 때 적용할 피해자 구제제도나 소송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그런 제도적 인프라를 구축한 미국에서조차도 투자은행 중심 자본시장 발전의 위험을 통제 못한 게 드러나지 않았나. 자본시장 발전 전략을 좀더 신중히 재검토하고 속도를 늦출 필요가 있고, 우리 사회의 감독 능력이나 사법제도와 같은 제도적 인프라 개선에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해 단박에 글로벌 투자은행을 확보해야 한다는 식의 주장은 현실성과 타당성이 있다고 평가하나.

=국내 증권사가 자체적 성장으로 글로벌 투자은행이 된다는 건 실현 불가능한 일이다. 인수·합병이 유효한 전략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해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재무적·경영적 능력이 담보돼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다. 민유성 산업은행 총재가 ‘내가 인수했으면 리먼브라더스가 파산까지 안 갔다’고 주장하는 건 코미디다. 리먼브라더스 협상 과정에 다녀온 사람의 얘기를 들어보면, 인수자가 좀더 유리한 조건을 만들려고 적극 협상에 임하는 게 아니라, 진짜 ‘봉’ 취급을 당하다 왔다고 하더라. 또 청와대가 위험을 평가해 인수를 포기하게 했다며 자화자찬식 얘기를 하는데, 이건 산업은행의 액션에 정치적 판단이 키가 됐다는 걸 다시 한 번 보여준 것밖에 안 된다. 이런 정치인·관료들의 개입이 근절되지 않고는 투자은행의 발전은 불가능하다. 1960~70년대 자동차·철강 산업 육성식으로 접근하는 순간, 정치적·정책적 판단이 우선될 수밖에 없다.

또 가 인수론을 부추기는 기사를 써댄 것은 투자은행의 특성도 제대로 이해 못한 상태에서 정부 정책에 영합하는 기사로 국민을 ‘봉’ 취급한 거다. 100년 이상 전문적 능력을 쌓아온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투자은행의 핵심 역량이다. 그런데 정확한 재무 상황에 대한 평가도 없이, 또 동종 업종이나 미국 감독기관 등과의 협의·양해도 없이 내가 돈 있으니까 사겠다는 식으로 접근했으니, 저쪽에서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른 게 아닌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경제가 ‘미국 금융 베끼기’를 중단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일면적으로는 타당하고, 일면적으로는 잘못된 말이다. 미국의 금융시장은 유럽형 은행 중심이 아니라 자본시장 중심 체제다. 그 자본시장 중심 금융 시스템이라는 게 차입자와 돈 빌려주는 사람이 ‘암스-렝스 릴레이션십’(Arms-Length Relationship·독립적 관계)을 맺고 있는 거다. 언제든 금융거래 조건에 따라 거래 상대방을 바꿀 수 있되, 채권자와 채무자의 시장규율이 엄격히 작동한다. 그걸 뒷받침하는 게 감독기관과 사법제도다. 이런 미국식 금융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 나라는 미국과 영국, 그리고 과거 영국의 식민지들밖에 없다. 미국식 자본시장 중심 금융 시스템이란 게 금융법 한두 개로 구축되는 게 아니다. 또 한편으론 독일의 은행 중심 금융 시스템도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게르만 민족이 1천년간 살아온 생활방식을 반영한 시스템이다. 거래 당사자들이 장기간 관계를 유지하며 사후적 제재보다는 사전적 조정으로 경제 문제를 해결한다. 어느 모델을 선험적으로 선택하고 따라가는 전략을 추구하기보다는 기본 인프라 구축을 위한 노력을 하는 게 한국 금융개혁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그런 걸 무시한다는 게 문제다.

-글로벌 위기 상황임에도, 정부가 금융산업 정책을 재조정해보겠다는 움직임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

=정부가 금융산업 정책에서 여러 오류를 반복하는 이유는 단기적 성과에 목을 매는 조급증 때문이다. 또 관료들의 정책 결정이 기득권층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도 있다. 이들이 전문성을 빌미로 경제정책 의사결정을 독점하는데, 정권이 바뀌어도 그들에게 끌려가게 돼 있다. 한국투자공사 설립과 역할 확대, 국민연금을 동원한 자본시장 발전 등이 현 정부에 들어와서 산업은행 민영화로까지 뻗어나왔다. 그런 과정에서 목표를 단기간에 추구하기 위해 금산분리 완화를 통해 재벌을 비롯한 산업자본의 금융시장 진출을 허용하게 된 거다.

-한국 시장에서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와 흡사한 복잡다단한 파생금융상품을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한국이 비슷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적은 것 아닌가.

=아니다. 비록 증권 분야 정도에 한정돼 있지만 이미 한국의 선물시장 규모는 미국에 이은 세계 2위다. 그 시장 참여자들 중에는 중소기업이나 개인 투자자가 엄청나게 많다. 선물거래는 대단히 위험이 크기 때문에 전문 투자자만 참여하는 것이 선진국의 일반적 구조인데, 우리는 아무나 다 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자본시장이 전문가들과 일반 투자자 영역이 구분되지 않고, 일반 투자자들을 보호하는 장치가 제대로 안 갖춰졌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거래를 통해 손해가 발생했을 때 내가 재수가 나빴지, 체념하고 자살하는 것만 반복하게 할 게 아니라, 내 손해가 다른 사람의 불법부당 행위 때문에 나왔다면 피해구제를 받게 해줘야 한다. 예컨대 키코(KIKO)와 같은 금융상품을 중소기업에 권유했다는 것 자체가 미국 증권거래법을 적용하면 손해배상감이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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