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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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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 비를 멈출 것인가

처마 밑에 쪼그려앉아 금융자본·경제학자·정부·보수 언론의 헛발질을 뒷담화해보지만…
등록 2008-09-25 10:47 수정 2020-05-02 04:25

이제 두 개 남았다. 지구 위를 공룡처럼 쿵쾅거리며 활개 치던 미국의 5대 투자은행 중에서 벌써 세 개가 화석이 되어 박물관으로 들어가버렸다고 한다. 남들의 ‘리스크’를 계산해주는 것을 밥벌이로 삼는다는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가 세상에나 자기들이 도산할 지경이라고 한다. 이 쏟아지는 비가 언제 멈출지- 아니면 혹시 우박으로 변할지- 는 당분간 알 수 없으니 처마 밑에 잠깐 쪼그려앉아 뒷담화나 해보자.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에서 한 직원이 시황을 살펴보고 있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에서 한 직원이 시황을 살펴보고 있다.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남들 리스크를 계산해주고 밥벌이하더니

첫째의 덜렁거리는 깨진 쪽박을 차고서 정부에 달려와 공적 자금 투입을 애걸- 혹은 협박- 하고 있는 여러 금융기관의 장들이다. 이들이 1970년대부터 외친 주장이 무엇이었는가. 금융시장은 자체적인 조정 기능이 있고 자기들은 얼마든지 ‘리스크’를 알아서 해결할 능력이 있다고 했다. 따라서 아무 도움도 안 되면서 간섭이나 하는 정부는 뒤로 빠져야만 금융시장의 효율성과 경제 전체의 무한 성장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틈만 나면, 마이크만 주어지면 이들은 야구장 응원단장처럼 ‘탈규제!’를 외쳐댔다. 의 한 칼럼의 표현대로, 제일 똑똑한 척하며 규제를 풀라고 으름장을 놓을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돼지처럼 꽥꽥거리며’(squeal like a pig) 국민의 혈세를 내놓으라고 하는 것인가.

하지만 이들보다 용서하기 힘든 자들은 대학에 도사리고 앉은 경제학자들이다. 학자로서의 양심과 정직성이 살아 있는 소수의 이들을 제외하면, 이 집단 전체는 사태가 이 지경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마치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집의 할아버지 인형처럼 나비넥타이 예쁘게 매고서 꼼짝 않고 그냥 서 있다. 아니 고장난 축음기처럼 오늘도 강의실에서, 또 보수 일간지의 손바닥만 한 경제 칼럼에다 얼굴을 내밀고서 ‘탈규제는 좋은 것’이고 ‘금융시장의 효율성’ 등등의 소리를 줄곧 틀어대고 있다. 이들은 금융시장의 선수들과는 달리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합리적인 이야기인지를 불편부당하게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는 ‘과학’을 직업으로 하는 이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이 무책임한 금융판의 흐름에 각국 정부와 지구촌 전체가 휘둘리고 결국 1929년 이래 최대의 금융 위기라고 불리는 아수라장이 벌어지도록 자신들의 책임을 방기했다. 실력이 없는 것인지 양심이 없는 것인지, 혹 둘 다인지.

투자은행을 아직도 ‘미래’라 믿는 정부

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금융이 ‘신성장 동력’이라면서 미국의 금융체제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삼아 초거대 투자은행을 육성하기 위해 한국 금융체제를 완전히 뜯어고치겠다고 하는 이명박 정부다. 굴지의 투자은행 서너 개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도 아직도 투자은행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의 미래를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것인가. 기업공개(IPO)도 대규모 인수·합병도 또 자산유동화 증권도 더 이상 판이 크게 벌어질 것 같지 않다. 지금 미국은 선거를 앞두고서 어이없는 공적 자금 투입에 뿔이 난 다수의 국민들로부터 ‘투자은행 때리기’와 강력한 금융 규제 요구가 성난 파도처럼 일어나고 있다. 월스트리트가 이렇게 공적 1호가 되는 것은 실로 1930년 이래 초유의 사태다. 지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금융체제는 근본적 변화의 기로에 서 있으며 투자은행업 시장의 미래는 최소한 지극히 불투명하다. 그런데 여기에다 나라 전체의 금융체제를 밑돈으로 ‘올인’하겠다는 계획을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흔들리지 않고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며칠 전까지도 산업은행이 리먼브라더스를 인수해야 한다고 떠들어대던 경제신문과 보수 일간지의 ‘전문가’들의 헛발질은 바로 그 입장을 대변하다가 나온 오버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뒷담화를 풀었거늘 입만 아프고 비는 멈추지 않고 쪼그려앉은 다리는 저려온다. 노래나 하나 듣자. 흘러간 옛 노래, CCR의 명곡. (Who'll Stop the Rain).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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