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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놓고 돈 먹는 금융의 파산”

연쇄 인터뷰 ①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1980년대 이전 실행해본 대안으로 돌아가야”

제728호
등록 : 2008-09-2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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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경제학)의 자택으로 전화를 건 9월19일 0시께. 미리 전자우편으로 전해받은 번호대로 전화기 버튼을 눌렀지만, 수화기 건너편에서는 엉뚱한 목소리만 흘러나왔다. 세 번의 시도 끝에 장 교수의 목소리를 듣게 됐을 때, “아마 집 전화기에 혼선이 있었나 보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혼선. 장 교수에게 보낸 인터뷰 요청 전자우편에도 동원된 단어였다. 리먼브러더스나 AIG 같은 미 월스트리트 권력의 핵심을 강타한 금융위기가 한가위 연휴를 마친 한반도에 상륙한 이후의 상황을 돌아보자. 언론들은 금융 시스템의 붕괴를 알린 다음날 시장이 안정을 찾았다고 선언하고, 다시 그 다음날엔 파국의 묵시록을 전하는 ‘혼선’을 거듭해왔다. 시장만능을 외치는 신자유주의를 맹렬히 비판해온 장 교수는 지금의 사태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그는 “기본적으로 지난 20여 년 동안 세계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의 파산”이라고 말문을 뗐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한겨레 김진수 기자
-한 달 전 한 일간지에 쓴 칼럼의 제목이 ‘금융자본주의의 실패를 지켜보며’였다. 월가의 몰락이 드라마처럼 전개되는 지금, 그 금융자본주의의 실패가 통제 가능한 실패라고 보는가, 아니면 시스템 붕괴로 이어질 파국이라고 보는가.

=자본주의가 망할 거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다. 대공황처럼 될 거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다. 하나 지난 20여 년 동안 세계를 지배한 신자유주의형 금융자본주의가 파탄을 맞을 확률은 높다. 그러나 크게 망하더라도 그 체제에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질질 끌고 갈 수 있다. 유럽에서 봉건제도가 망했다고 선언된 뒤에도 몇백 년씩 지속됐고, 19세기식 자본주의는 1차 대전이 끝나면서 실패가 증명됐음에도 대공황 때까지 버티고 버텼다.

-지금의 사태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관련해서는 파생상품·복합상품이 너무 많고 손실 보고가 안 되는 ‘오프 밸런스 시트’ 같은 것도 있어서 금융사 자신도 정확한 피해규모를 모른다. 금융거래의 본질이 또 원래 그렇다. 사과를 사면 그 자리에서 집어오는데 금융은 결과를 몇 달 뒤, 아니 주탁담보대출 같은 경우에는 20여 년 뒤에나 받게 된다. 서브프라임 사태도 처음 얘기가 나온 게 2006년 말인데, 1년 넘게 지나면서 핵심부 강타를 시작했다. 핵심부에서 다시 충격파가 퍼지면서 보험회사도 나가떨어진 것이고. 또 다른 금융 부문에 영향을 미치면 대량 해고가 빚어지고 돈 꾸기가 힘들어지고 일자리 창출이 안 되고 소비가 죽는 등 연쇄 과정이 빚어진다. 또 이게 다시 금융 부문의 충격으로 밀려오게 된다. 대공황 이후에 지금같이 큰 금융위기는 미국에선 없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세계가 곧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큰 역사의 변화는 예측이 힘들다.

-한국은 시중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파생금융 상품을 만들 실력이 없었던 덕분에 서브프라임 사태로 큰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번 금융위기는 한국 경제에 찻잔 속 태풍인가, 아니면 제2의 외환위기 같은 파국의 도화선인가.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금융위기가 호재라거나 증시의 외국인 의존도가 줄고 수출 의존도도 낮아진다고 떠드는 걸 보면, 1970년대 초등학교 때 잡지에서 읽은 얘기가 떠오른다. 동네에 불이 나 초가삼간이며 고래등 기와집이며 모두 탔다. 뒷동산에서 거지가 아들한테 ‘집 있으면 뭐하냐. 우리는 집 없으니까 불날 걱정 없다’ 이렇게 자랑한다. 지금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 정치적 아전인수 해석은 결국 거지 아버지와 같은 얘기를 하는 것이다. 어찌하면 이 난국을 막을까 생각해야 하는데 이게 기회라는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니, 참.


-연쇄 부도 사태를 막겠다며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미국 정부의 대응은 적절하다고 보는가.

=지금 미국 정부가 구제금융을 하는 방식은 예컨대 한국이 외환위기 때 취할 수 없었던 것들이다. 이런 게 바로 ‘사다리 걷어차기’다. 미국은 문제가 터지면 대부분 정부가 개입해왔으면서, 한국이나 제3세계에 대해선 그걸 못하게 막는다. 1980~9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저축대부조합 파산사태 때 국내총생산(GDP)의 3%에 해당하는 공적자금을 은행과 금융기관에 부어넣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야당과 진보단체들은 일제히 “미국 금융 베끼기를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미국 금융’의 실체는 무엇인가.

=간단히 얘기하면 미국식 금융자본주의는 ‘돈 놓고 돈 먹기’다. 실물경제와 관련 없이 금융이 돌아가는 것이다. 19세기 말 투자은행이 생겼을 때 이들은 일종의 벤처캐피털 회사였다. 100만달러를 투자할 테니 지분 30%를 달라 하고, 그 회사가 상장하면 지분을 팔아서 몇천만달러를 챙기는 게 주업무였다. 그런 기능을 하던 투자은행들이 인수·합병을 중개하는 것, 즉 장기적으로 기업을 키우는 게 아니라 단기적으로 비슷한 것들을 합치고 직원을 해고하면서 비용을 절감하고, 그래서 이윤을 올리면 성과를 챙기고, 금융공학으로 투명성 없는 복합상품을 만들어 파는 존재로 바뀌었다. 또 보험은 원래 목적이 인생에서 예기치 못한 일들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건데, AIG는 위험성 노출이 잘 안 되는 복잡한 금융거래를 보험해주다 당한 거다. 실물과 상호보완적인 금융이 아니라, 자기 증식 논리를 갖고 돌아가는 게 지금 미국·영국의 금융이다. 이건 틀렸다. 옛날처럼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참여정부의 금융허브론, 이명박 정부의 금융중심지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재검토돼야 한다. 금융자본의 중심지에서 그것의 꽃이라고 불리던 투자은행 모델이 붕괴됐는데, 그걸 계속 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국내에서 여전히 그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뭘까. 하나는 상황 파악을 잘 못하는 거고, 또 하나는 나라는 망해도 자기는 이익을 보니까 그러는 거다. 산업은행 총재의 (리먼브러더스) 스톡옵션 보유 사례를 보자. 그게 꼭 의도해서 한 거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그런 식으로 항상 자기 이익이 관련된 사람이 있고 이들은 자기만 잘되는 일을 할 것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선진국=요즘 미국=신자유주의’라는 공식을 무조건 옳다고 철통같이 믿으니까 문제다. 자본시장통합법 같은 것도 한발 더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에 다가가고 싶다는 얘기 아니냐.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 사회가, 또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근본적 대안은 없는가.

=내가 보기에 ‘투자자 보호 방안’ 운운하는 건 자동차 속도제한을 없애고 교통사고 처벌도 약화시키고는 자전거 이용자의 안전이 걱정되니 정부에서 싼값에 헬맷을 나눠주는 것과 같다.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투자자를 보호할 수 없다. 규제도 잘 안 되는 파생상품을 만들고, 역외 조세 도피처를 만들어 투명성도 없고 규제도 안 되게 만들지 않는가. 과거 소버린이 SK 경영권을 위협할 때 투명성을 제고하도록 뜯어고쳐야 한다고 떠들었으면서 자기들은 이사회 구성도 밝히지 않았다.

1980년대 이전에는 모든 나라가 금융 분야에 대한 규제를 강하게 했는데 경제는 더 잘됐다. 1945~70년에 개도국에서 발생한 외환위기와 금융위기가 17건에 불과했는데, 70년대 중반부터 자유화되면서 이후 1997년까지 95건이나 터졌다. 확실히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실행해본 대안으로 가면 된다. 희한하고 새로운 시스템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자본에 고삐를 채우는 일을) 옛날에 다 해봤다. 물론 되돌리려면 굉장한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

-이번 사태가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근원적 반성을 불러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어떤 기득권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항상 그게 참 예측이 힘들다. 대공황이 났을 때 미국은 이른바 뉴딜 자본주의를 했고, 스웨덴은 조합주의를 했고, 독일·이탈리아는 파시즘을 택하며 다른 식으로 반응했다. 이번 사태가 계기가 돼서 금융을 억제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약한 사람들, 서민들을 더 몰아붙이는 식으로 갈 수도 있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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