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훈 신부 안식년 발령 등 술렁이는 천주교… 교단 내부의 갈등 더욱 커질 듯
▣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조용함을 미덕으로 삼는 천주교에도 최근 소란이 일어났다.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일가 비리 의혹 폭로와 촛불집회 시국미사를 주도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하 사제단) 대표인 전종훈 신부가 8월21일 이례적인 안식년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직접 ‘조처’하는 추기경의 스타일
엄기호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위원은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이번 안식년 발령의 ‘이례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천주교가 무서운 점은 절대 무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티칸이 남미의 해방신학을 무너뜨릴 때도 그랬다. 주교를 해임하거나 전보시키는 등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 진보적인 주교가 죽으면 조용히 보수적인 인사를 그 교구의 주교로 임명하고, 신부의 임기가 다하면 외국으로 유학(유배) 보냈다. 이렇게 관례와 전통 안에서 조용히 처치했다. 전종훈 신부 인사발령은 정말로 ‘이례적인’ 인사발령이다.”
이날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한 것은 전 신부뿐만이 아니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평소 사회활동에 적극적이던 함세웅 신부가 서울 청구성당 주임신부로 발령났다. 한 교계 인사는 “애초 일하던 곳(제기동성당)보다 규모가 작은 곳으로 발령난 것으로, 사실상 문책성 인사”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천주교 수뇌부가 스스로의 금기를 깨고 무리수를 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인사권자인 정진석 서울대교구장(추기경)의 스타일을 들수 있다. 한 교계 인사는 “김수환 추기경 때도 시국 상황에 따라 교단 안에서 많은 갈등이 일어났고 그때마다 추기경이 직접 당사자를 불러 봉합하고 넘어가곤 했다”며 “그런데 정 추기경은 고참 신부를 통해 ‘나서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이에 따르지 않으면 인사 조처를 하는 스타일 같다”고 말했다. 실제 교단 안팎에서는 진보적 활동을 펼치던 ㄴ신부가 윗선의 메시지를 받은 뒤 대외활동 자제를 약속하고 이번 인사 대상에서 제외됐다는 말도 들린다.
또 다른 교계 인사는 “천주교에서 좌파를 색출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삼성 출신 인사와 옛 민정당 국회의원 등 일부 평신도가 끊임없이 정진석 추기경을 찾아가 ‘작업’을 해온 것으로 안다”며 “추기경이 교인 전체의 뜻과는 다른 보수·수구 성향 인사에게 둘러싸여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유야 어찌됐건, 이번 인사 조처로 당분간 사제단 등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교단 내부의 갈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지난 6월 말 사제단이 집전한 촛불집회 시국미사에 참석한 신부 200~300명 가운데 상당수는 사제단 소속도 아니고 별다른 연락도 없었는데 자발적으로 찾아온 경우였다. 교단 상층부와 일반 신부들의 정서가 똑같지는 않다는 말이다.
일부 평신도들 반발 기류
교단 전체가 입는 상처도 클 수밖에 없다. 교구장의 명령에 순응하는 것을 절대적인 원칙으로 삼는 만큼 당사자들이야 직접 불만을 표시하지 않고 있지만, 일부 평신도들의 반발 기류는 심상치 않다. 가톨릭인터넷언론 ‘지금여기’(cafe.daum.net/cchereandnow)에는 줄기세포 연구에 줄기차게 반대하다가 정작 〈PD수첩〉이 황우석 박사 연구의 문제점을 보도해 여론의 비판을 받을 때는 침묵한 점 등을 들어 “정진석 추기경은 비겁하다”고 주장하는 글을 비롯해 천주교 수뇌부를 공개 비판하는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그분이 우리의 목자로 서 있다는 게 부끄럽습니다” 등 댓글도 여럿이었다.
이같은 논란과 관련해 천주교 서울대교구 허영엽 문화홍보국장 신부는 인사 직후 평화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신부가 잘못을 하면 직무를 정지시킨다. 활동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안식년은 문책성 인사가 아니다. 사회 잣대로 교회 인사를 평가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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