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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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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됐나 박상천, 왜 안 됐나 한명숙

등록 2008-04-17 00:00 수정 2020-05-02 04:25

시골의사 박경철씨의 총선 개표방송 관전기…공심위 홍보간사로 활동하며 들여다본 통합민주당의 속살

▣ 글 최성진 기자csj@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4월9일 제18대 총선 투표가 끝나자마자 서울 충정로로 향했다. ‘시골의사’ 박경철씨 사무실에서 함께 개표방송을 시청하자는 약속이 돼 있었다. 통합민주당 공천심사위원회(공심위)의 홍보간사를 맡았던 박씨는 민주당발 ‘공천 특검’의 대변인이었다. 그는 “6주간의 짧은 경험이었지만 정치인들과 논쟁하고 부딪히는 과정에서 그들의 팬티 속까지 다 들여다본 것 같다”고 말했다. 그 ‘팬티 속’ 일부를 전해주는 박씨의 입담 속에 ‘개표방송 동반 관람’은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전반전
“더 큰 참패가 필요했을지도…”

오후 6시 방송사들이 일제히 예측조사 결과를 내보냈다. 한나라당이 최대 180석 이상을 얻는 반면, 민주당은 60석 안팎에 머물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박경철씨는 말이 없었다.

차이가 크네요.

“사실 공심위가 꾸려지기 전까지만 해도 언론은 60석도 못 얻는다고 했죠. 그래도 공심위가 활동을 시작하면서 공심위원들끼리는 ‘70석은 넘지 않겠느냐’ 이렇게 봤는데.”

왜 이렇게 됐을까요.

“어떤 면에서는 더 큰 참패가 필요했을지도 몰라요. 제가 볼 때 진보·개혁 진영은 ‘통렬한’ 반성이 필요합니다. 내가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한 사람이다, 내가 정통 민주화 세력이다, 이런 교만함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어요.”

공심위원들을 대할 때도 그랬나요.

“우리에게는 그럴 수가 없죠. 갑과 을인데.(웃음) 자신을 소개할 때 느낄 수 있다는 거죠. ‘내가 과거에 어떤 일을 했던 사람이다’라는 말보다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는데, 모호하더라고요. 성장과 분배를 아우르고 좌와 우를 포함하는 중도의 입장에서 개혁을 하겠다는 말은 지금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체성이 모호했다는 건가요.

“자기들은 줄곧 ’중도개혁’이라고 주장하는데, 제가 살다 살다 중도진보는 들어봤지만 중도개혁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봤습니다. 공천 심사 채점 항목에서 정체성에 대한 평가도 40점을 차지했거든요. 심사를 위해 민주당의 정강정책을 읽어봤는데, 한나라당과 90%는 똑같습디다. 나머지 10%도 원래 달랐던 건지, 아니면 한나라당과 차별화하기 위해 일부러 다르게 만든 건지 모르겠어요. 아마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을 모델로 만든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천 과정에서 어려움도 있었죠.

“민주당이 총선을 위해 합당을 서두르다 보니 전혀 화학적 결합이 안 돼 있었습니다. 이른바 ‘합당정신’이라는 게 암초와도 같은 존재였어요. 그게 곧 나눠먹기 아닙니까. 당직도 공천도 나눠갖자는 건데 공심위가 계약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죠. 지역구 공천을 그렇게 하니까 박상천 대표가 손학규 대표에게 ‘계약서대로 해달라’고 요구했겠죠. 손 대표는 견디다 못해 그럼 비례대표라도 가져가라, 그랬을 테고요. 공천이 막바지에 용두사미가 된 겁니다. 비례대표는 우리가 손댈 여지가 없었는데, 까놓고 이야기하면 두 대표가 명단을 제출해서 낙점한 거예요. 박정희 정권에서는 정부가 국회의원의 3분의 1을 직접 임명(유정회)했잖아요. 그거랑 똑같은 거죠. ‘지난 6주간 죽을 고생을 했던 게 바보짓이었나’ 하는 실망감을 크게 느꼈습니다.”

▶중반전
“박상천, 계파 논리에 몰입한 유일한 이”

시곗바늘이 밤 10시를 향해 달려갈 무렵, 박상천 대표의 사진 위에 ‘당선 확실’이란 단어가 떴다. 박씨가 혼잣말로 “저 사람을 탈락시켰어야 했는데…”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지도부 책임론을 묻자 그는 작심한 듯 말의 화살을 날렸다.

“손학규 대표 탓은 아니고, 100% 박상천 대표 탓입니다. 공천 과정에서 철두철미하게 발목을 잡은 사람이 박 대표였는데, 이유가 뭐냐면 딱 하나, ‘계파 논리’ 그겁니다. 당의 운명이나 견제세력의 필요성, 여기에 대한 관심보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계파에 몇 명은 줘야 하는데’라는 논리에 몰입했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감히 말한다면, 앞으로도 민주당이 살려면 박 대표가 (당을) 나가야 해요. 또 내보낼 수 있어야 하고요. 박 대표가 그대로 있으면 당이 망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전남 고흥·보성이란 노른자위 공천을 받게 된 겁니까.

“공심위 내부에서는 이심전심으로 박 대표를 배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정말 고민이었습니다. 할 수 없이 공천을 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결국 이거였죠. ‘박상천을 배제하면 당이 깨진다.’ 아마 공심위원 전원의 손과 머리가 따로 놀았을 겁니다.”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된다면 손학규 대표도 자유로울 수 없는데요.

“손 대표에 대해서는 공심위원들이 미안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공심위에서 손 대표와 박상천 대표, 정동영 전 의장, 강금실 최고위원 등에게 지역구 출마를 압박했거든요. 사실 공심위의 월권이었죠. 하지만 다른 의원들을 우수수 잘라놓고, 지도부만 편하게 비례대표 하라고 하면 안 되잖아요. 물론 그중 몇몇은 지역구에 출마할 생각이 있었다고 합디다. 이러다 보니 현실적으로 총선을 총지휘할 사람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또 박상천 대표를 비난할 수밖에 없는데, 유독 자기만 호남에 깃발을 꽂았던 거잖아요. 그러면 자기가 총선을 이끌었어야죠. 하기도 싫고 능력도 안 되는 사람이 대표는 왜 합니까.”

강금실 최고위원은 어땠습니까. 거의 혼자 총선을 이끌다시피 했는데요.

“실망스러웠습니다. 사실 공천 심사 과정에서 굉장한 걸림돌이었습니다. 금고형 이상자 배제의 원칙을 정할 때 가장 강력하게 반대했던 사람입니다. 그렇게 해놓고 바깥에 나가면 ‘개혁공천 지지한다’는 말씀을 하시던데…. 그렇게 지역구에 나가라고 이야기해도 끝까지 안 나가고 결국 정치적 선택을 했어요. 지역구에 나갔어야죠.”

심사 과정에서 좋은 재목도 발견했나요.

“한나라당은 이명박, 박근혜, 정몽준 등 확실한 카드가 있는데, 민주당은 그에 필적할 만한 대중적 스타가 없었죠. 대신 재선·삼선 의원들이 상당히 괜찮더라고요. 특히 (공심위에서 함께 활동했던) 김부겸 의원의 정치력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공심위와 지도부가 파국으로 다가가면 그걸 어떤 식으로든 풀어냈던 사람이 김 의원이었습니다. 끝까지 지도부를 설득해서 공심위가 다시 굴러가게 하는데, 정말 정치인으로서 뛰어난 분입디다. 원혜영 의원도 훌륭했고요.”

젊은 그룹은 어떻던가요.

“지금의 초선 의원이 재선이 되면 잘할 겁니다. 면접을 하면서 관찰해보니까 뭐랄까, 나쁘게 말하면 결기가 사라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상당히 잘 다듬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민주당이 4년 뒤에 희망을 걸어볼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후반전
“최철국 의원, 눈에서 불꽃이 튀더라”

밤 11시가 넘어가면서 초경합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 당선자가 결정됐다. 방송사 예측 결과와 달리 민주당이 82석 정도를 얻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박씨는 비로소 짐을 내려놓은 듯 가슴을 폈다.

“어, 저거 상황이 엄청 달라진다. 그래도 마음이 좀 가볍네. 짐을 하나 내려놓은 기분이죠. 말로는 당 지도부를 욕했지만 사실 우리 공심위원들도 공동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나마 저 정도로 버텨주면 감사한 일이죠.”

한나라당 송은복 후보와 접전을 벌였던 최철국 의원(김해을)의 당선이 확정적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박씨가 탄성을 터뜨렸다.

“와, 저건 노무현의 힘이다.(웃음) 면접을 봤을 때 눈빛이 다릅디다. 눈에서 불꽃이 튀더라고요. ‘내가 목숨을 걸더라도 반드시 살아서 돌아온다, 자신 있으니까 믿어달라’ 이러더라니까요. 사실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그러기가 쉽지 않거든요.”

뒤이어 서울 동작에서 당선된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의 들뜬 목소리가 화면을 통해 전해졌다. “제가 월드컵 때문에 국회에 제대로 출석을 못하고 심려를 많이 끼쳤습니다. 이제 저도 6선 의원이 됐습니다.” 정 의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박씨가 한마디 던졌다.

“우리에게 왔으면 공천 못 받았어. 우린 국회 출석률 낮으면 무조건 아웃이었거든요. 학생이 학교를 가야지. 학교 갈 시간에 밖에 나가서 기타 치고 다니면 그게 학생입니까.”

충북에서도 선전했네요.

“분전했죠. 저는 그럴 줄 알았어요. 이용희 의원(보은·옥천·영동) 탈락시킬 때 정말 힘들었거든요. 당에서는 ’충북의 교두보가 무너지고 충북이 다 넘어간다’고 야단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반대로 ’이용희를 날려야 민주당이 산다’고 맞섰죠. 구시대와 구태를 상징하는 이 의원을 배제해야 충북의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우리를 선택할 명분을 준다고 한 거죠.”

본인은 뭐라던가요.

“와서 그러더라고요. 내가 이 당의 대선 후보(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를 만든 사람이고, 지역구에 당원만 3만 명이라고요. 다들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의석 하나를 날리더라도 저 사람은 탈락시켜야 한다. 그래야 충북에서 최소한 5개라도 건진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더라고요.”

박씨가 아쉬워한 낙선자는 한명숙 전 총리였다. "많이 아쉬울 것 같아요. 여야를 떠나 우리 정치를 한 단계 발전시킬 수 있는 분이라고 느꼈어요. 면접할 때 상대 후보에 대해서도 꼭꼭 ‘한나라당 ○○○ 후보님’이라며 존칭을 썼어요. 포용과 대화의 정치인이라고 많이 기대했는데….”

공심위에서 탈락시킨 박지원 후보는 당선 확정인 것 같은데요.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불편한 결과죠. 하지만 중요한 메시지라고 봐요. 우리가 대의, 혹은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밀고 나갔지만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을 것이고, 바로 그때 민심은 우리의 잘못된 선택을 지적할 수 있는 것이거든요. 저쪽(한나라당)에서 김무성 의원이 당선되고 이방호·이재오 의원이 떨어지는 것도 비슷한 거겠죠.”



세금 체납·전과 후보 중 당선자

세금 체납 전력 21명 당선, 100만원 이상 8명


▣ 이태희 기자hermes@hani.co.kr
은 지난 704호 표지이야기 ‘찍어내자’에서 지난 5년간 단 한 번이라도 세금이 체납됐거나 전과가 있는 후보들의 전체 명단을 공개했다. 이 가운데 과연 몇명이나 살아남았을까.



세금 체납이 있었던 후보는 모두 119명이었고, 이 중 21명이 당선됐다. 가장 눈에 띄는 당선자는 1억2614만원을 체납했던 통합민주당 김재균 당선자(광주 북을)다. 강원 춘천에서 당선된 한나라당 허천 당선자도 2623만원의 세금을 체납한 적이 있다. 100만원 이상의 세금을 체납한 이들은 모두 8명이다. 17대 현역 의원이 2명이다. 민주당 박기춘 의원(경기 남양주을·307만원)과 한나라당 박순자 의원(경기 안산 단원을·126만원). 물론 이들은 모두 공천 신청 이전에 밀린 세금을 완납했다.
이 세금 체납 후보를 공개한 뒤, 명단에 포함된 일부 총선 후보들은 “세금을 모두 완납했는데, 왜 명단을 공개하느냐”고 항의했다. 주택 소유주들은 재산세 납부가 늦어질 수도 있고, 사업을 하는 이들은 법인세나 부가가치세 납부가 늦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은 과거 5년이라는 기간에 주목해 명단을 공개했다. 현역 의원이 재신청을 한 경우는 두말할 나위 없고, 공직을 꿈꾸는 이들은 미리부터 주변 정리가 철저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더우기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는 국민의 세금인 예산을 어디에 쓸지 결정하고 그 씀씀이를 감시하는 일이다. ‘유리지갑’ 유권자들이 세금 체납 후보를 식별하려는 이유다.
한편 과거 전과가 있는 후보(시국사범 제외)의 경우는 전체 40명 중 5명이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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