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범죄에서 보호막 없는 저소득층·소녀가장·농산어촌·장애아동 등 사회적 약자층 어린이들이 먼저 희생된다
▣ 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무방비 도시의 무방비 아이들이 위험하다.

4월1일 오후 6시. 혜진이와 예슬이가 살았던 동네인 경기 안양시 안양6동 ㄷ공부방에서 아이들이 저녁을 먹고 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이 어울려 식탁에 앉았다. 교복을 입은 중학생 예닐곱 명이 앉은 테이블 한쪽이 유달리 조용하다. 한 여학생이 묵묵히 밥을 먹고 있다. 한창 장난기 많은 중3 남학생들의 짓궂은 집적거림에 이따금 미소를 띠지만, 눈빛엔 슬픔이 고여 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실종된 뒤 주검으로 발견된 혜진이의 언니다. 평소 학원을 다녔던 혜진이와 달리 이곳 공부방에 있던 혜진이 언니는 무사했다.
강남과 구로의 초등학교 풍경
혜진이 언니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이 공부방에 다녔다. ㄷ공부방은 조손 가정, 한부모 가정, 저소득 맞벌이 가정처럼 학교가 끝난 뒤 가족이 아이를 돌봐줄 여건이 안 되는 아이들을 보호하고 교육하는 지역아동센터다. 김소영 ㄷ공부방 대표는 “공부방에 다니는 아이들은 저소득 가정 아이들 중에서 비교적 안전한 편에 속한다”면서도 “우리 아이들도 집으로 가는 길에는 무방비로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과 다르지 않을 만큼 주변 환경이 험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따라나섰다.
퀸 노래빠, 황실 가요주점, 분홍 노래주점…. 초등학교 3학년 혜림(10·가명)이, 1학년 혜영(8·가명)이 자매가 집으로 가는 길은 50m가량. 길 양쪽으로 8개의 ‘노래주점’이 늘어서 있다. 저마다 ‘북창동식 서비스’ ‘기본 3만원, 서비스 확실’ 등 요란한 광고문구와 함께 비키니 차림의 여성 그림을 대문짝만하게 붙여놓고 지나는 남성을 호객하고 있다. 오후 6시10분. 바지 한쪽이 말려올라간 채 슬리퍼를 신은 50대 남성이 취기로 비틀거리며 아이들의 반대편에서 걸어왔다. 혜림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저런 아저씨들이 종종 지나가요. 그러면 조금 떨어져서 걸어가면 되니까 괜찮아요. 무섭지 않아요”라고 말하면서도 동생 손을 꽉 붙잡았다.
5분쯤 걸었을까. ㅊ노래주점이 있는 건물로 아이들이 쏙 들어갔다. 2층 당구장을 지나자 계단에서 30대 남성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어둑한 3층으로 올라가니 현관문 3개가 나왔다. 혜림이가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자매는 일하는 엄마와 함께 산다. 아빠는 별거 중이다. 엄마는 아침 9시에 출근하는데, 돌아오는 시간은 매일 다르다. 오후 4시나 7시에 올 때도 있지만 밤 10시까지 늦을 때도 있다. 공부방이 끝나고 엄마가 올 때까지 아이들만 집을 지킨다. 엄마 전아무개(44)씨는 “집에 두 딸아이만 두고 일을 해야 해서 불안하지만 내가 벌어야 공부를 시키니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그렇게 엄마가 일용직 미싱일로 버는 돈은 한 달에 80만원 안팎이다. 전씨는 “주변 환경이 험해도 이사갈 형편도, 도우미를 둘 사정도 아니다”라며 “아이들에게 철저히 단속을 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제 유괴·납치는 가난한 어린이들을 노린다. 범죄의 양상이 달라졌다. 혜진이·예슬이 사건에서 보듯 범죄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다. 그러다보니 부모의 보호가 어려운, 사회적 약자층 어린이가 더욱 쉽게 희생양이 된다.

충북의 한 농촌마을. 13살·14살 두 자매가 마을의 80대 할아버지와 19살 젊은이로부터 2001년부터 2004년까지 3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당했다. 아이들의 부모는 정신지체 장애인으로, 아이들이 어떤 일을 당했는지, 당해도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 지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 6살 때부터 10살 때까지 4년간 동네 ‘오빠’ 3명에게 21차례 성폭행을 당한 소녀도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가해자인 세 명의 오빠들은 소녀의 할머니가 집에 있는지 전화해 본 뒤 없을 경우 집에 찾아가 성폭행했다. ‘소녀가장’이나 마찬가지인 아이들이 마을 공동체로부터 보호받기는커녕 오히려 범죄의 표적이 됐다.
이제 대한민국에 어디든 안전지대는 없다. 아이는 공포에 떨고 부모는 불안에 떤다. 하지만 불안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는 하나가 아니다. 계층과 지역에 따라 대처하는 강도가 다르다.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팽팽해진 4월3일 서울 구로구 구로본동 구로초등학교 앞. 초등학교 1~3학년의 하교 시간이 다가온 낮 12시30분부터 학부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모여든 학부모 20여명은 모두 ‘일산 엘리베이터 놈’에 관해 얘기했다. “그 사람이 10년 전에 또 성범죄를 저질렀대. 그런 사람이 거리를 돌아다니니, 애 키우기 정말 힘들다.” “우리 동네는 골목길도 많고, 실업자도 드물지 않잖아. 맘 놓고 애들을 내놓을 수도 없고 어쩌면 좋아.” 학교 앞에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을 돌보기 위해 휴직한 이현경(33)씨도 있었다. 이씨는 “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맞벌이하는 엄마 아빠가 많다 보니 애를 데리러 오는 사람도 많지 않다”고 동네 아이들을 걱정했다. 오후 1시20분, 학교 정문에서 쏟아져나오는 아이들은 대부분 ‘어른이 없이 나 홀로 가는’ 귀갓길에 올랐다. 엄마들은 ‘길거리 경호대원 배치’ 등을 원했다. 하지만 재정 탓에 실현은 어렵다.
방과 후 갈 곳이 없는 아이들
같은 시각, 서울 강남구 신구초등학교 앞. 구로초등학교 앞보다 많은 50여 명의 어른들이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학교 주변 골목에는 학원 차량뿐 아니라 자가용들도 빼곡히 서 있었다. 학교 앞 가게 주인은 “안양 사건 이후 이곳에 나오는 어른들이 늘었다”고 전했다. 안양에 이은 일산의 어린이 납치미수 사건으로 강남 부모들 사이엔 비상이 걸렸다. 한 달에 300만원을 받고 등·하굣길에 동반하는 이른바 ‘삼촌 경호원’이 등장했다. 일부러 ‘이상한 아저씨’를 고용해 아이의 위험 대처능력을 시험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사회적 양극화가 안전의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동네 아이들이 부모의 지원으로 그나마 안전망을 갖추는 반면, 여전히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이 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생 △소녀가장을 비롯한 저소득층 어린이 △장애아동 △농산어촌 아이 등이 안전의 각개전투 시대에 사각지대로 몰리고 있다.
2008년 3월 살해된 채 발견된 혜진이와 예슬이, 2007년 3월 제주에서 강간당한 뒤 살해된 허아무개양, 2006년 용산에서 성폭행당하고 살해된 양아무개 어린이. 이들의 공통점은 8~10살의 초등학교 저학년생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안양 사건에서 보듯 형편이 넉넉지 않은 맞벌이 부모가 일하러 나간 사이에 유괴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봉주 서울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취학 전에는 아동을 하루 종일 맡아주는 시설이 있지만 취학 후에는 오히려 방과 후 아동이 갈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며 “학교가 끝나고 부모가 집으로 올 때까지 방치되는 아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공백 시간을 주의하라.’ 이것은 통계로도 증명된다. 국가청소년위원회가 지난 2월 13살 미만 청소년 대상 성범죄 2800여 건을 조사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어린이 대상 성범죄는 오후 2~5시에 819건으로 가장 많이 발생했고, 오후 3~4시에 594건이 집중됐다.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부모가 직장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시간대인 오후 1~7시가 전체의 50%를 차지했다.
특히 가난한 아이들에게 공백 시간은 때로 공포의 시간이다. 이봉주 교수 등이 저소득층 마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방치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12살 이하의 아동을 둔 경기 군포시 당동마을 213가구(기초생활수급권자 43·차상위 170)를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지역 내에서 가장 심각한 아동 문제’로 ‘방과 후 방치’(40.8%)가 꼽혔다. 성적 부진(3.3%), 정서 문제(5.6%) 등을 제친 압도적 1위다. 이 교수는 “저소득층 가정은 부모의 출퇴근이 불규칙해 주말이나 휴일에도 공백 시간이 많다”고 분석했다. 실제 혜진이와 예슬이가 유괴를 당한 날도 휴일인 크리스마스였다. 이렇게 부모가 집에 없어서 방과 후 보호가 필요한 6~18살은 전국에 20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런 아이들이 주로 머물게 되는 집과 학교 근처가 오히려 위험지대다. 청소년위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취학 중인 아동이 피해를 입은 883건 중 74%(650건)가 학교 반경 2km 안에서 발생했다. 학교로부터 500m 안쪽에서 벌어진 사건도 36%에 달했다. 더구나 가해자의 절반 이상이 피해자의 집에서 2km 안에 거주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교사 월급 주기도 빠듯한 공부방
도시의 아이들보다 농산어촌 아이들은 더 어두운 그늘에 놓여 있다. 2001년 6월1일, 초여름의 더운 날씨였다. 전남 강진군 강진읍 남포리에 사는 하은(당시 7살)이가 사라졌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넉 달째 접어드는 날이었다. 하은이가 다니던 강진 중앙초등학교에서 집이 있는 남포리까지는 아이 걸음으로 40분이 걸린다. 학교가 있는 강진읍은 슈퍼마켓, 약국, 문구점 등이 모여 있는 시내다. 그러나 10분만 걸어나오면, 인적 없는 시멘트길에 양쪽으로 허허벌판이 펼쳐진다. 마지막 목격자는 마을에서 ‘허허벌판’으로 진입하기 직전에 하은이를 봤다고 전했다. 오후 2~3시 경, 하굣길의 하은이는 그렇게 허허벌판 속으로 사라졌다. 하은이 아버지 김철상씨는 “오후 2시면 오는 아이가 5시가 돼도 오지 않아 실종신고를 했고, 수사를 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옆마을 동성리에서도 하은이가 사라지기 1년 전 똑같은 ‘어린이 실종사고’가 일어났다. 2000년 6월15일, 초등학교 2학년 김성주양도 집으로 오던 길에서 사라졌다. 이들 사건은 지금처럼 세상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시골 아이들은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적어 보이지만 사고에 노출될 위험은 오히려 크다. 등굣길이 멀고 한적해 사고를 당해도 도움을 요청할 방법이 적은 탓이다. 정선욱 상지대 교수는 “시골 아이들은 휴대전화도 없는 경우가 많고 논밭에 공중전화가 있을 리도 만무해, 사고를 당하면 더욱 위험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대책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학교를 중심으로 지역사회 공조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은 각 시설이 자신이 책임진 시간만 신경쓰지만, 가정과 학교 등이 공조하는 24시간 보호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영신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에선 12살 이하의 아동을 1시간 이상 혼자 두면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다”며 “아이들을 너무 과보호하는 한편으로 아이를 어른으로 보는 문화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역시나 아이는 아이다.
그런데도 사각지대 아동을 위한 지원은 형편없이 부족하다. 방과 후 저소득층 아이들을 돌보는 전국지역아동센터공부방협의회에는 2007년 12월 현재 2617개 공부방이 소속돼 있다. 공부방을 통해 8만~9만 명의 아이들이 사회적 돌봄을 받지만, 국가의 지원을 받는 공부방은 2029곳이고 나머지 600여 곳은 자력으로 운영하는 형편이다. 그나마 국가에서 지원되는 운영비도 월평균 220만원. 평균 72만원에 불과한 교사의 월급을 주기도 빠듯하다. 최선숙 협의회 정책팀장은 “결식 지원 아동이 40만 명인데 이들을 포괄하려면 1만여 개의 공부방이 더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공부방 수요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진 적도 없다. 한편으로는 공부방이 지금처럼 저소득층 아이들만 가는 곳으로 한정되면 아이들에게 ‘낙인’을 찍는 결과가 되는 문제도 남아있다.

더 위험한 아이들을 구하라
사회적 약자층이 범죄 대상이 되는 현상에 대해 황지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범죄의 합리적 선택이론으로 설명했다. “갈수록 재범자의 비율이 늘어나면서 재범자들이 범죄에서 최소의 비용을 들이는 방법을 체득했다. 범죄를 하기 쉬운 대상에 최소 비용이 든다는 것을 그들은 경험으로 안다. 그래서 힘없는 여성이나 아동이 범죄 대상이 된다. 반대로 잘사는 사람은 잘 막아서 잘 당하지 않는다.” 이렇게 범죄의 대상은 아동화, 여성화, 빈곤화되고 있다.
어디에도 안전지대는 없다. 방어력이 부족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범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위험한 사회에서 더 위험한 지경에 놓인 아이들이 있다. 부족한 방어력을 메워줄 보호막이 충분하지 않은 아이들이다. 더욱 위험한 아이들을 구하라! 그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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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지대의 장애아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장애아들은 실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경찰청이 집계한 자료를 보면, 비장애 어린이 실종 규모는 2006년 7064명, 2007년 8602명이었는데, 나이를 불문한 지적 장애인(정신지체장애인) 실종 수는 2006년 6872명, 2007년 7239명에 이른다. 모집단 규모를 감안하면 적은 수가 아니다. 더구나 실종 뒤 발견되지 않은 경우는 2006년 124명, 2007년 98명으로 비장애 어린이보다 많다(표 참고).
장애인 실종은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07년 5월1일 경남 마산시 교방동 무학산 등산로에서 정신지체장애 2급 김아무개(11)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 소풍을 다녀온 김군이 집에 옷을 벗어놓고 사라진 지 나흘 만이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가 직장에 나간 사이에 김군은 실종됐다. 가족은 김군이 사라진 지 2시간이 지나지 않아 실종신고를 했고 경찰이 수색에 나섰지만 허사였다. 결국 등반객이 무학산 등산로 근처의 물 웅덩이에서 숨져 있는 김군을 발견했다. 김군의 집에서 4km 떨어진 곳이었다. 당시 김군의 몸에는 타살 흔적은 없었으나 산을 헤매다 긁힌 자국이 많았고 허기에 지쳐 배가 등에 달라붙을 정도였다. 김군의 사인은 저체온증과 탈수로 밝혀졌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은 “김군을 잃어버렸다 찾은 경험이 여러 차례”라고 전했다.
이렇게 장애인은 반복해서 실종된다. 보건복지부 위탁 실종아동 전문기관 ‘어린이재단’이 2006년 12월 발간한 ‘장애인의 실종발생 및 보호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실종 횟수가 두 차례 이상인 경우가 71.7%로 1회 실종 28.3%보다 많았다. 그래서 실종은 장애인 부모의 첫 번째 공포다.
박은숙 실종아동 전문기관 부장은 “예방 시스템이 잘 갖춰진 나라에선 아예 실종자 항목에 ‘장애인’이 없다”며 “그만큼 지역사회의 실종예방 시스템이 완벽하다”고 전했다. 장애인의 재활과 활동을 돕는 기관이 지역사회에 많으면 장애인이 실종되는 사례도 줄어든다. 지적 장애인도 답답하니 자꾸만 밖으로 나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복지는 실종을 예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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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사건 수사 전담팀’의 한계
▣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토요일이라 전산 처리가 안 돼서 신고 접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2006년 5월13일 토요일, 12살 딸 동은이가 밤 10시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아 파출소에 전화한 엄마 정향숙(44)씨가 들은 답변이다. 일요일에 다시 파출소에 전화했다. “읍민의 날 행사에 모두 나가서 경찰력이 없습니다.” 결국 월요일 오전 9시에야 조서를 작성하고, 11시에야 사건이 접수됐다. 경찰은 동은이가 사라진 지 이틀 뒤에야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이틀이면 제주도는 물론이고 일본, 미국이라도 갈 시간이라고요.” 정씨가 가슴을 쳤다.
기막힘은 계속됐다. 동은이가 사는 경남 양산시 웅상읍 ㄷ아파트 주변은 온통 산이다. 마을버스로 10분을 내려가면 물류창고 등이 즐비한 공단지대다. 정씨는 경찰에 “산을 한 번 더 수색해달라. 근처 물류창고도 다 수색해달라. 혼자 사는 사람들도 많으니 좀 수사해봐라”고 부탁했다. 경찰의 대답은 어이가 없었다. “어머니, 욕심이 너무 많으신 거 아니에요?”
혜진이·예슬이 사건 때도 뒤늦은 초동 수사, 허점 많은 수사는 뭇매를 맞았다. 3월26일, 경찰청은 모든 지방경찰청과 경찰서에 ‘실종사건 수사 전담팀’을 꾸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제대로 되기까지는 과제가 많다. 각 경찰서에 편성된 전담팀 형사 3명은 추가로 배정된 인력이 아니라 기존 강력계 인원에서 차출한 인력이다. 윗돌 빼서 아랫돌을 괸 격이라, 다른 사건이 터지면 언제라도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 실종 수사에 대한 전문성도 떨어진다.
5년 전 세 살배기 아들을 잃어버린 박혜숙 전국실종아동인권찾기협회 대표는 “아이를 잃어버린 때부터 계속해서 ‘전문인력 양성’ ‘실종 전담 수사과 운영’ 등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들어주지 않았다. 그동안 몇만 명의 아이들이 사라졌다. 이번에라도 잘돼서 우리 아들도 찾고 다른 아이들도 생사라도 알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실종전담반은 최근 3년간의 모든 실종사건 1만9400건을 우선순위에 놓고 재수사 여부를 가린다. 전담팀은 ‘기막혔던’ 부모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을까.
[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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