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을 삶의 일부로 안고 살아온 부산 시민들… 자세히 모르면서 정치적 입장에 따라 목소리 높여
▣ 부산=최상원 기자 한겨레 지역부문 csw@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한반도 대운하- 2부 사람들]
“야야! 이 얘기는 고마하자. 술맛 떨어진다. 이라다 쌈 나겄다.”
3월14일 저녁 부산대 앞 술집. 부산대 88학번 동창생 몇몇이 오랜만에 모여 술잔을 기울였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소감부터 직장생활의 애환, 자녀교육 문제를 거쳐 내 집 장만의 비법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면서 술자리는 한껏 무르익었다. 이야기 끝에 경부운하로 대표되는 ‘한반도 대운하’ 얘기도 튀어나왔다.
열에 아홉은 “두고 보면 알 것”
의견은 좀처럼 모아지지 않았다. 운하 건설에 찬성하는 쪽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라고 했고, 반대하는 쪽은 “심각한 착시현상에 빠져 있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고 했다. 결국 한 명이 나서 “이 자리에서 정치, 종교, 운하 얘기는 하지 말자”며 대화를 끊었다.
한반도 대운하는 ‘경제 운하’가 아닌 ‘정치 운하’다. 시민 모두가 운하를 알지만, 그 누구도 자세히 모르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기 때문이다. 최소한 지금까지는 그렇다. 그런 현상은 적어도 18대 국회의원 선거가 끝나는 4월 초까지 이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부산 사람들에게 운하는 단순한 정치 문제만은 아니라는 점이다. 부산 사람들에게 낙동강은 삶의 일부다. 낙동강 하류 끝에 살며 낙동강 물을 먹고, 강이 만들어내는 모든 문제를 최종적으로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공단을 세운다고 할 때마다 강물이 오염될까봐 깜짝깜짝 놀라고, 1990년대 초부터 최근 사고에 이르기까지 낙동강에 페놀이 흘러들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리곤 한다. 그뿐인가. 낙동강 상류에 큰비가 내렸다고 하면, 부산 사람들은 맑은 하늘을 보면서도 범람 걱정을 한다. 낙동강의 모든 문제는 결국 부산을 거쳐야 끝이 난다. 부산 사람들이 누구보다 운하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다.
그렇다고 부산 사람들이 경부운하에 대해 특별히 더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부산 시민들은 낙동강과 한강을 연결하고 그 위에 짐을 실은 배를 띄워 서울과 부산을 오가도록 하는 것이라고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이것만으로는 부산은 물론 우리나라 전체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 종잡을 수 없다. 누구라도 한마디만 툭 던지면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내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언론에서도 하루가 멀다하고 떠들어대지만, 좋다는 것인지 나쁘다는 것인지 좀처럼 판단할 수 없다. 갈수록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래도 한 가지 공통점은 발견된다. 친이명박 또는 친한나라당 성향의 사람들은 대체로 경부운하에 찬성하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반대한다는 것이다. 경부운하가 ‘정치 운하’인 까닭이다.
“지금까지 같은 돈 내고도 똥물을 걸러서 먹었는데, 운하를 건설하면 낙동강이 맑아져 부산 사람들도 좋은 물을 먹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경제도 좀 나아질 것이고요.” 택시기사 김종우(49)씨는 경부운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기다렸다는 듯이 시원하게 답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를 찍었다는 김씨는 다가오는 총선에서도 “당연히 한나라당 후보를 찍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야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말도 했다.
그러나 대학생 김아무개(27)씨는 “운하를 건설하면 생태계가 파괴되고 홍수 통제 기능을 잃어 온갖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자손 대대로 골치를 썩거나 아니면 건설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 원상복구해야 할 것 아닙니까.” 자신을 민주노동당 당원이라고 밝힌 그는 “지난 대선 때도 그랬고 다가오는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후보를 찍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시민들이 말하는 운하의 장점과 단점은 별개의 지점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운하가 경제를 되살릴 것이라는 사람도 있고 망칠 것이라는 사람도 있다. 물류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고 무용지물·애물단지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수질 문제에서도 개선될 것이라는 주장과 악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인지 정비하는 것인지도 혼란스럽다. 끝끝내 합의점에 이르지는 못한다. 열에 아홉은 “두고 보면 알 것”이라는 말로 끝맺음을 한다.
지역 전문가들의 의견도 엇갈리기는 마찬가지다. 한성대 경남대 교수(토목공학과)는 “이분법적으로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국가 장래를 생각할 때 경부운하는 역기능보다 순기능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당연히 역기능이 있을 것이나, 이 역기능을 얼마나 해소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박준일 경상대 교수(건설공학부)도 “토목 전문가가 입안한 것이 아니라서 건설공학적 측면에서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은 것은 인정한다”면서도 “철저한 조사를 통해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대안을 마련한다면 시도할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닌 사업”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엇갈리긴 마찬가지
반면 옥치율 부산대 교수(산업토목학과)는 “당장 개발 측면만을 생각할 때는 긍정적이지만 낙동강 치수와 제방 붕괴 우려 등 장기적으로 볼 때는 곤란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며 “특히 곳곳에 보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에 운송수단으로서 가장 중요한 속도 경쟁력을 공약에서 제시했던 만큼도 갖추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박재현 인제대 교수(토목공학과)도 “낙동강 모래를 퍼내 운하 건설비용으로 충당하겠다는 것은 생태계를 한 방에 파괴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라며 “이익보다 손실이 더 클 수도 있는 상황에서, 운하를 통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물론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엇갈리는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설익은 공약으로 경부운하 문제를 꺼내놓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경남환경연합은 “실체도 없고 계획도 없는 유령과도 같은 존재”라고 현재의 경부운하를 정의했다. 김상화 낙동강공동체 대표는 “어떻게 하는 것이 미래를 살아갈 자손들을 위한 결정이 될지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은 상태로 사업을 밀어붙인다면 대통령 스스로 말한 ‘국민을 섬기는 자세’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고스란히 책임을 떠안게 될 국민들, 특히 부산 시민들을 더는 현혹해서는 곤란하다”고 덧붙였다.
경부운하를 둘러싼 논쟁은 어떤 결말을 맺을까. 분명한 것은 운하가 하루빨리 ‘정치 운하’에서 ‘경제 운하’로 제자리를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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