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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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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동반자를 인정하라

등록 2008-03-14 00:00 수정 2020-05-03 04:25

법적 혼인 인정되지 않아 피해 입는 동성애·동거 커플…동반자 등록법으로 연금·재산분할 등에 차별 없애야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40대 남성 동성애자 김현수(가명)씨는 2007년 3월 동성 파트너와 헤어지면서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릴 만큼 힘들었다. 하지만 슬픔에만 빠져 있기도 쉽지 않았다. 6년 동안 함께 살면서 마련한 아파트를 나누는 등 재산분할 문제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성애자 부부라면 법률에 바탕해 재산을 나누면 그만이지만, 그들에겐 재산을 분할할 근거가 없었다. 아파트가 김씨 명의여서 그가 욕심을 부리면 파트너는 함께 마련한 재산을 분할받을 근거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들은 스스로 정한 기준에 맞춰 재산을 나누었다.

파트너 사망시 국민연금 승계자는 국가?

실제 동성애자 등 성소수자 파트너 사이에 법적 혼인이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가 상당하다. 2006년 5월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주최한 ‘동성애자 가족구성 발표대회 스피크 아웃(Speak Out)’에 나온 50대 레즈비언은 “20년 동안 같이 살던 사람과 헤어졌을 때 수중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렇게 오랫동안 함께 살면서 함께 재산을 일구었지만 빈털터리로 남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한국 법원은 성소수자 커플의 사실혼 관계도 인정하지 않는다. 2004년 7월 인천지방법원은 김아무개(당시 45살)씨가 같은 여성인 이아무개(당시 47살)씨를 상대로 낸 ‘사실혼 관계 해소로 인한 재산분할 및 위자료 청구소송’에 대해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20년간 동거한 김씨의 권리를 전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다시 김현수씨 이야기. 김씨와 파트너는 가족도 인정하는 관계였지만, 사회에서 배우자 혜택은 받지 못했다. 병원 간호사로 일했던 그는 배우자 수당을 못 받았다. 한 달에 3만원씩 함께 살았던 기간인 70여 개월을 곱하면 200만원이 넘는 금액이다. 김씨는 “무엇보다 국민연금이 심각한 문제였다”고 돌이켰다. 직장생활을 오래했던 그의 국민연금 납입금은 상당했다. 곧이어 전 국민 국민연금 가입 시대가 열리면서 자영업자로 분류됐던 그의 파트너에게도 국민연금에 가입하란 독촉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들은 거부했다. 김씨는 “파트너 사망시 국민연금 승계자가 실질적 배우자인 내가 아니라 국가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족이 없는 사람이 숨지면 그의 국민연금이 국고로 귀속된다는 것이다. 사실혼 관계의 배우자가 받는 최소한의 혜택도 그들은 받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그는 커밍아웃을 감수하고 지역의 국민연금관리공단을 방문해 항의했다. 그는 “사실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문제였다”고 말했다.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김씨는 파트너와 함께 살면서 생명보험 수익자를 가족에서 파트너로 바꾸었다. 처음엔 수익자를 ‘친구 ○○○’씨로 했다가 나중엔 아예 ‘동성혼 배우자 ○○○’으로 적었다. 그런데 뜻밖의 반응이 나왔다. 국내 보험사들은 수익자 변경을 해주는 데 반해 오히려 외국계 보험사들은 수익자 변경을 거부했다. 김씨는 “보험회사 직원에게 ‘수익자가 도덕적 기준에 합당해야 한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어처구니없어했다. 이 밖에도 차별의 덫은 결정적 순간에 죄어온다. 수십 년을 같이 살아온 동반자가 갑자기 중환자실에 입원해도 보호자로 인정받기는커녕 법률적 가족이 아니란 이유로 면회조차 어렵다. 국적이 다르면 생이별도 해야 한다. 이성애 배우자와 달리 결혼을 통한 합법적 체류를 인정받지 못하는 탓이다. 실제 친구사이엔 서너 해 전 한국인과 이주노동자 동성애 커플이 찾아와 이런 고통을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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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달리 정조의 의무 없어

그래서 동반자 등록법이 전 지구적 이슈다. 법률혼에서 배제되는 성소수자 파트너뿐 아니라 결혼 제도에 편입되지 않은 이성애 동거 커플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다. 파트너십 제도, 시민결합(Civil Union) 등 나라에 따라 이름은 다르지만 1989년 덴마크에서 처음 제정된 동반자 등록법은 전세계로 확산되고 있다(표 참고). 서구의 얘기만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동반자 등록법 운동이 시작됐다. 지난 대선에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의 공약에 동반자 등록법이 포함됐고, 이번 총선에 서울 종로구에서 출마하는 진보신당 최현숙 후보는 동반자 등록법을 핵심 공약으로 삼았다. ‘최현숙 성소수자 선거운동본부’가 외국의 동반자 등록법을 한국에 적용해본 결과에 따르면 상당한 변화가 생긴다. 우선 동반자 등록법이 생기면 전세 계약의 당사자인 파트너가 갑자기 숨져도 다른 동반자는 살던 집에서 쫓겨나지 않는다. 동반자로 등록한 사람에게 임차권이 양도되기 때문이다. 등록 이후에 취득한 재산에 대해선 반씩의 소유권이 인정돼 빈털터리로 쫓겨나는 일도 없어진다. 그리고 공동으로 세금을 납부하게 돼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동반자가 가입한 사회보장급여의 혜택과 사망시 보상금도 받는다.

동반자 등록법은 결혼과 몇 가지 점에서 다르다. 우선 정조의 의무가 없다. 결혼에선 한쪽이 정조의 의무를 지키지 않을 경우 이혼의 사유가 되지만, 정조의 의무를 지키지 않더라도 파트너십 해소의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상속권은 독일 등에서 일부 인정되고 입양권도 스웨덴 등에서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동반자 등록법은 단지 동성애 이슈가 아니다. 실제 프랑스의 동반자 등록제인 사회연대계약(PACS)은 동성뿐 아니라 이성 사이에도 등록을 허용한다. 프랑스의 동거 커플 비율이 결혼한 사람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독일의 생활동반자법은 동성 커플의 등록만 인정한다. 이렇게 파트너십 제도는 각 나라의 상황에 따라서 내용이 다른데, 독일의 생활동반자법이 프랑스의 사회연대계약보다 전통적 결혼에 가깝다. 예컨대 생활동반자법에선 등록된 파트너와 헤어지기 위해서 당사자 양쪽의 합의가 필요한 반면, 사회연대계약에서는 한쪽의 의지로 관계 해소가 가능하다. 동반자 제도냐 결혼 제도냐라는 논쟁도 있다. 성소수자가 무너져가는 결혼 제도의 알리바이가 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은 동반자 등록법을 지지한다. 반면 결혼을 이성 간의 ‘신성한’ 결합으로 제한하려는 보수파에 맞서 결혼의 빗장을 풀자는 동성결혼 찬성론도 있다. 한국의 성소수자운동은 동반자 등록법 제정을 주장한다. 최현숙 성소수자 선본 정책팀 관계자는 “한국에서도 법률혼에서 배제된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성애 커플이 혜택을 받게 된다”고 밝혔다. 특히 사실혼 관계에 있는 노인들에게 동반자 등록법은 유용하다. 민감한 상속권과 관련돼 있어서 가족들이 고령에 만난 동반자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결혼과 사실혼 사이의 효력을 지니는 동반자 제도가 대안으로 떠오른다. 실제 서구에서 오래된 동성애 커플의 동반자 등록이 초기의 추세였지만 갈수록 이성애 커플의 등록이 늘었다.

국가와 가족의 카르텔 깨기

동반자 등록법은 철학의 문제다. 현재의 자유주의 법률은 가족이 아닌 타인을 적으로 보는 관념에 기초하고 있다. 타인을 내 재산을 강탈할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재산권을 포함해 법률적 권리의 주체는 가족이 아니면 국가가 독점한다. 가족이 없는 사람이 사망할 때 보험금이 국가로 귀속되는 것처럼. 그래서 최현숙 선본 관계자는 “동반자 등록법은 가족과 국가의 카르텔을 깨고 다양한 주체를 만드는 길”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이타적 관계에 대한 상상인 것이다.

*참고 자료: ‘다양한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 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과 민주노동당이 2008년 3월 공동 발간할 예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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