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비혼자는 차별 당하는가

등록 2008-03-14 00:00 수정 2020-05-03 04:25

다양한 입장 가진 4명 대담…편견 해소엔 동의, 제도적 차별 존재하는가에 의견 갈려

▣ 사회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정리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비혼자는 차별당하는 존재인가. 두 명의 비혼과 두 명의 기혼이 비혼 차별을 주제로 대담을 가졌다. 그들의 처지가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여성주의단체 언니네트워크 사무국장 이진주씨가 비혼 여성으로 비혼에 대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운동을 벌여온 사람이라면, 길윤형 기자는 비혼이 차별받는다는 주장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가진 비혼 남성이다. 두 명의 아이를 둔 40대 여성 김종옥씨는 기혼이지만 가족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갖고 있고, 2년 전 결혼해 임신 중인 김윤정씨는 가족에 대한 사회의 평균적 감수성을 갖고 있다.

한국에서 가족은 너무 무겁다

사회: 먼저 가족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궁금하다.

이진주(이): 개념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흔히 비혼을 독신과 혼용하는데, 비혼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음’을 뜻하는 미혼과 다르다. 결혼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공동체를 형성하거나 가족을 만들거나 혹은 혼자 살아가는 것을 아우르는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하지 않겠다는 선택이 가장 강하게 부정당하는 공동체가 가족이다. 비혼 여성들이 ‘비혼’을 선택하면서 가장 큰 갈등을 겪는 것도 가족 안에서다.

김종옥(김): 결혼할 때는 부모로부터 독립해 나만의 가정을 꾸린다고 생각했다. 막상 결혼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결혼은 내가 속해 있던 가족에서 벗어나는 대신 다른 가족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그것도 다른 성씨를 가진 가족으로. 한국에서 가족은 엄청 무겁다. 가족 위에 돌이 100개는 있다. 그 돌이 환상이든 현실이든, 가족의 무게가 가벼워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윤정(윤): 나 역시 결혼 뒤 부담도 챙길 것도 늘었다. 시댁이 집이랑 가까워서 그렇기도 하다. 창원에서 서울로 유학 온 뒤부터 부모의 간섭에서 자유로운 편이어서 결혼 뒤 부담이 더 컸다. 하지만 나는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타협하고 개선하려고 한다.

길윤형(길): 가족은 누구나에게나 의지인 동시에 부담이다. 결혼을 앞두고 있어 요즘 부쩍 ‘가족’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김: ‘한 지붕, 두 생각’이 결혼에서 극에 달한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며느리가 ‘내 영역’으로 들어오는 거고, 부인 될 사람 입장에선 하나의 독립된 가정을 꾸린다고 생각하니까.

사회: 한국에서 독신 인구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가히 세계 최고의 독신화 속도라고 할 만한데, 어떻게 보는가?

이: 일종의 사회적 징후 같다. 가부장 중심의 가족제도에 오랫동안 억눌려왔기 때문에 생기는 반작용처럼 보인다.

김: 예전에는 결혼하기 싫어도 ‘입 다물고 시집(장가)갔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자기 취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시대인 거지.

사회: 저출산 논의 이후에 자녀가 있는 가족에 대한 세제 혜택, 보조금 지원이 늘었다. 결국 독신을 포함한 비혼 가정에 대한 차별이 강화됐다는 주장이 있는데. 비혼에 대한 차별이냐 유자녀 기혼 가정에 대한 배려냐, 이것이 핵심 논란이다.

이: 질문 자체가 비혼자와 기혼자를 대립시킨다. 결혼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이를 갖지 않거나 육아에 관심 없다는 것과 등호를 이루지 않는다. 결혼과 상관없이 아이들이 많이 태어나고 잘 자랄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그러려면 아이 개개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방식으로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 누구나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제도를 개선하는 것 등이 저출산에 대처하는 방법 아닐까. 지금처럼 가족을 단위로 한두 푼 세제 혜택을 주어서 아이를 낳게 하는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기혼 가정 혜택, 어떻게 볼 것인가

길: 만약 싱글맘이 아이를 낳았는데, 그 아이가 엄마·아빠 모두 있는 가정에서 받는 혜택을 못 받는다면 그것은 차별이다. 그런데 지금 그렇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한부모 가족 지원제도에 따라 양육비나 세액공제 혜택을 별도로 받고 있지 않은가. 가장 납득이 안 가는 건, 주택 문제를 두고 차별이 있다는 주장이다. 비혼을 선택해서 아이를 낳지 않는 사람과 결혼해서 아이를 낳은 사람이 있다. 유자녀 가정이 아파트를 분양받기가 더 쉽고, 세금공제도 조금 더 받는다. 그건 아이들이 커서 우리를 먹여 살리기 때문에 혜택을 주는 것일 뿐이다. 비혼 가구를 위해 아이들에 대한 혜택을 없애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미래를 위한 선택인데 비혼에 대한 차별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이: 기혼 가정에도 계층이 있듯이, 비혼 중에도 부유하거나 가난한 사람이 있다. 복지 혜택을 가난함과 부유함으로 나눠야지, 결혼 유무로 나누는 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국가가 국민에게 동일한 삶의 방식인 결혼을 강제하는 꼴이 된다. 어떤 국가도 그럴 권리는 없다.

윤: 결혼장려책인지 출산장려책인지도 중요할 것 같다. 국가가 결혼장려책이 아니라 출산장려책을 쓰는 것 아닌가. 이것에는 사회적인 합의가 있다. 인구구성이 노후화되면 세원이 줄어들고 국민 전체의 삶의 질이 낮아진다. 그래서 다자녀 가정에 출산장려금을 준다.

이: 출산장려책은 더 많이 생기면 좋겠다. 문제는 출산장려책과 결혼장려책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른바 정상 가정에서 낳은 아이에 대한 출산장려책인지, 아니면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태어난 아이에 대한 출산장려책인지, 그것이 문제다. 결혼하지 않고도 아이를 낳아서 제대로 키울 수 있다는 상상력이 있다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방법도 많아진다. 출산장려책과 결혼제도를 분리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 비혼 가구 대부분은 독신 가구다. 같은 수입인데 독신자가 결혼한 사람보다 세금을 많이 낸다면 불만이 생길 수 있다.

길: 서울시의 승용차 요일제에 참여한 사람에겐 감세 혜택이 돌아간다. 물론 요일제 참여가 강제는 아니다. 결혼도 비슷하다. 세금은 일단 정해진 요율에 따라 모두가 똑같이 낸다. 그리고 유자녀 가정에 대해 세금을 조금 더 깎아준다. 그것은 아이를 한 명 더 낳은 가구에 보조금을 주는 것과 같은 논리다.

이: 전혀 다르다. 세금 공제는 가족 단위에 주는 혜택이다. 보조금은 아이 한 명에게 주는 혜택으로, 그 아이의 보호자가 결혼으로 이뤄진 남녀든 동성애자 커플이든 싱글맘이든 구분 없이 받는다. 그렇지만 세금 공제는 법적으로 등록된 이성애자 가족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

길: 지금 말하는 비혼 차별이 애매한 것 같다. 자동차 보험료도 나이, 성별에 따라서 차등을 둔다. 여성이 남성보다, 나이든 사람이 젊은 사람보다 통계적으로 사고율이 낮아서 보험료가 싸다. 이것은 합리적인 통계적 차별이다. 기혼자에게 유리한 대출제도도 그런 것 아닌가.

김: 그 통계들이 실제 존재하는 것인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아마 그럴 것’이라는 가정에 의한 것은 아닐까. 비혼이 많아지면서 그들의 책임의식, 성향도 달라졌을 것이다. 많은 비혼들이 훨씬 무책임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상상 속의 어떤 개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제도나 통계가 변화된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는 건 아닐까.

비혼은 이기적?

이: 결혼을 한 가정이 더 신용이 있다, 그게 참 웃기다. 근거 없는 사회적인 편견이다.

사회: 현대의 비혼은 합리적 아니면 이기적 선택 아닐까? 살인적인 사교육비 같은 양육비 부담에서 해방되고, 결혼해서 생기는 책임에도 자유롭고. 그래서 합리적이라면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라면 이기적인 선택 말이다.

이: 뭐가 이기적이고 이기적이지 않은지 애매하지 않을까. 편협한 가족주의가 오히려 이기주의를 낳기도 한다. 이기적이라는 것은 사회적 환원이나 경제적 재분배와 관련되는 말이다. 결혼한 가정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정상 가족과 자신의 자원을 재분배하는 비혼자가 있다면 누가 더 이기적인 존재인가? 이기·이타는 결혼 여부로 나누는 문제가 아니라 결국 개개인의 가치관 문제다.

김: 결혼 안 한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이기적인 인간” “저 인간 한참 덜 됐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굉장히 희생하면서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결혼해서 이러이러한 것을 희생하며 사는데, 니들은 그거 안 하지? 뭐 이런 논리. 가끔 남편을 보면 ‘저 사람 좀 안 됐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에겐 카메라, 오디오 등 돈 드는 취미가 있는데, 결혼만 안 했다면 버는 돈의 80%를 취미 생활에 쓸 사람이다. 근데 괜히 결혼해서 자기가 번 돈을 우리랑 같이 나눠먹잖나. 남편이 돈을 막 쓰면 내가 ‘공금횡령’이라고 하거든.

사회: 가족이 때로는 부담이 되지만 그럼에도 대부분 결혼을 하는 이유는 뭘까?

길: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혼자 사는 건 자신이 없는 거다.

윤: 제도가 주는 정서적 안정감이 분명히 있다.

김: 농담처럼 하는 얘기가, 아이들이 18살이 되면 전 재산을 팔아서 오피스텔 네 개를 얻어 네 식구가 각자 살자. 나도, 너도, 아이들도 서로 적당히 자유롭게. 모여서 가끔 밥이나 해 먹자. 5년 전부터 세뇌 중이다. 가정이라는 틀 안에 매여 있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자연인으로 돌아가 살자는 거다.

사회: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영화 제목이 있다면, ‘결혼 안 하는 것은 어린 짓이다’ 이런 통념도 있다.

김: 뭐니뭐니 해도 (결혼을) 했다가 관두는 게 제일 좋아. 그럼 안 했다고 욕 안 먹고, 안 해봤다고 주눅들 것도 없고.

윤: 비혼자들이 이기적이고 기혼자들은 이타주의적이냐,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애를 셋넷 낳는 가정이 애국심 때문에 낳았을까. 그건 아니다. 서로를 존중했으면 좋겠다.

다양한 삶을 선택하는 상상력

김: 어떤 문제든 이것이 정상이라고 규정하면서 ‘정상성에 대한 강요’가 시작된다. 그 순간에 (정상적이라고 믿는) 가해자도 알지 못하는 채 폭력을 가하게 된다. 정상에서 벗어난 사람들에 대한 제도적인 보완도 생겨야 한다.

길: 물론 비혼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없지는 않다. 그런데 비혼에 대한 제도적 차별은 명확하지 않다. 어떤 부분이 문제인가. 만약 대출, 세제에 차별이 있다면 정치의 영역이니까 공론화를 거쳐서 고쳐야 한다. 문제는 그 차별들이 굉장히 사소하거나 많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김: 우리 아이에게 발달장애가 있는데, 발달장애아동 공동체가 가족 못지않게 도움이 된다. 아이에게도, 엄마인 나에게도. 비혼도 마찬가지 아닐까. 가족을 넘어서 공동체 같은 다양한 틀을 모색한다면 훨씬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제발 가족이 조금 더 가볍고 느슨해졌으면 좋겠다.

이: 비혼여성운동은 개개인이 다양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상상력에서 시작된다. 정상·비정상의 굴레를 넘어 좀더 열린 가족 개념, 더욱 확장된 삶의 선택지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이제 우리는 결혼이 모든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비혼운동은 결혼에 대한 안티가 아닌, 다양한 삶에 대한 지향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