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비혼이 행복해야 사회가 행복하다

등록 2008-03-14 00:00 수정 2020-05-03 04:25

가족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대출·세금·입양 등 매순간 차별받는 존재들, 그들은 벌써 우리의 20%

▣ 글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결혼하셨어요?” “아니요.” “그럼 부양가족은 있으세요?” “아니요.” “35살도 안 넘으셨죠? 부양가족이 없는 미혼 단독 세대주는 ‘전세자금 대출’이 어려워요. 다른 상품이 있긴 한데, 금리가 8~9% 정도 될 거예요. 전세자금 대출 이자율의 두 배죠.” 하루 4시간씩 걸려서 수원에서 서울까지 출퇴근하는 유지은(28)씨는 지난해 12월 회사 근처에 집을 얻으려고 서울 연희동에 전세 5천만원짜리 원룸을 봐뒀다. 그는 모아둔 돈이 2천만원쯤 있으니 나머지는 전세자금 대출로 메우면 월세를 내는 것보다 싸게 독립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동안 착실하게 신용을 쌓아왔고, 직장도 탄탄한 편이니 대출에 큰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은행에선 ‘안 된다’는 말만 돌아왔다. 주범은 ‘미혼’의 상태였다. “왜 미혼은 대상이 안 돼요?”라고 묻자 은행 직원은 “글쎄요. 전세자금 대출 상품은 국민주택기금을 이용하는 건데, 이게 주거 안정이 목표예요. 미혼은 주거 안정 대상이 아니거든요.” 유씨는 또다시 물었다. “근데 왜 35살 넘으면 가능해요?” 황당한 답변이 돌아왔다. “35살 넘어서 결혼도 못했는데 집까지 없으면 인생이 너무 서글프지 않겠어요?”

김영민(40·가명)씨는 30대 중반까지 재테크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결혼할 마음이 별로 없었던 김씨는 ‘독신으로 살면서 뭐 그리 큰돈이 필요할까’ 생각했다. 그러나 30대 중반을 넘기면서 집 한 채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0대 중반에 뒤늦게 청약저축에 가입했고, 지난해 6월 15평 임대아파트에 입주했다. 지금까지 6년을 착실히 청약저축을 부어온 그이지만 아파트 분양의 꿈이 손에 잡히진 않는다. SH공사의 가점제 기준 탓이다. 무주택 기간, 납입 횟수는 그도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세 번째 조건인 ‘부양가족이 많은 자’. “집 사려고 결혼할 수는 없잖아요. 흔히 혼자 살려면 돈이 있어야 된다고 하잖아요. 그게 사회의 안전망에서 독신은 소외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자신이 가진 자본으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으면 혼자 살지도 말라는 얘기인 거죠.” 이렇게 한국에선 결혼해야 돈 번다는 말이 농담이나 거짓이 아니다.

“집 사려고 결혼할 순 없잖아요”

비혼(非婚)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통칭한다. 실제로 결혼하지 않은 미혼 가구와, 배우자의 죽음 또는 이혼으로 다시 1인 가구가 된 ‘돌아온 싱글’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들 비혼이 아우성치고 있다. “제발 왜 ‘비혼’인지 묻지 마라”고 소리치는 단계를 넘어서 “우리에게도 ‘주거’의 권리를 달라”거나 “우리에게서 세제 혜택을 뺏지 말라”고 외친다. 우리나라의 비혼 가구 증가 속도는 세계적으로도 유례없이 빠르다. 5년마다 한 번씩 하는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서 2005년 현재 비혼 가구는 280만2636가구. 1995년 144만3439가구에서 2005년 280만2636가구로 10년 동안 증가율이 59%에 달한다. 기러기 아빠, 주말 부부 등도 일부 포함된 1인 가구 통계를 보면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980년 4.8%, 90년 9.0%, 2000년 15.5%, 2005년 20.2%로 늘었다. 현재 1인 가구 비율이 49%인 덴마크만 해도 1인 가구가 2배 가까이 늘어나는 데는 30년이 걸렸다. 현재 세계 어느 나라보다 ‘독신화 사회’로의 이행 속도가 빠른 한국이다.

크게보기

그러나 비혼을 보는 시선은 여전히 곱지 않다. 최근엔 저출산의 주범으로 인식된다. 지난해 8월27일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세제기획안에서 이같은 사실이 확연히 드러난다. 그간 1~2인 가구에 50만원씩 공제되던 소수자공제가 폐지되는 대신 다자녀 가정 추가공제가 신설됐다. 아이가 둘일 때 50만원, 아이가 셋일때 150만원 추가 공제가 붙는다. 기획재정부 조세정책과 담당자는 “국가의 모든 구성 주체를 동일하게 생각할 수는 없다”며 “저출산 해결이 중요한 정책 과제라고 판단한 이상, 독신 가구에 대한 혜택은 줄이고 출산 가정에 대한 혜택을 늘리는 것이 일관성 있는 정책”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같은 현상의 다른 이름인데, 고령사회는 대비하지만 독신사회엔 무관심한 형편이다.

기업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 금융회사는 회사 내 전세자금 대출에서 미혼은 대출 한도가 2천만원이고, 기혼은 5천만원으로 차등을 뒀다. 2~3년 전까지 근속연수가 기준이었지만 지금은 결혼 여부로 바뀌었다. 출산장려금도 예전에는 첫째나 셋째나 모두 100만원이었다면 지금은 첫째는 80만원, 둘째는 120만원, 셋째는 200만원으로 바뀌었다. 이 회사에 다니는 30대 비혼 남성 김아무개씨는 “부모님 못지않게 결혼을 독촉하는 곳이 회사”라고 자조 섞어 말했다. 사회는 비혼자에게 ‘늙어서 어쩌려고 그러니’라고 하면서 정작 ‘늙어서 어쩌라고’ 세금을 무겁게 매기고 기회는 빼앗는 것일까.

역사적으로도 비혼자들은 ‘인구 위기’의 책임자로 몰려왔다. 1854~55년 프랑스에서 인구통계 작업이 시작된 이래 처음 인구 증가율이 마이너스로 떨어지자 ‘독신세를 물리자’는 주장이 파리를 점령했다. 장 클로드 볼로뉴 프랑스 파리예술경영기획전문학교 교수는 그의 책 에서 “프랑스혁명기에도 인구 감소의 원인으로 독신자가 대두되면서 소득과 저택 임대료를 기준으로 내는 동산세에서 독신자에게 더 무겁게 세금을 매겼는가 하면, 출산율 독려를 위해 군대에도 독신자를 우선 징집하는 등 인구 감소가 생기면 주요인으로 독신자를 가장 먼저 꼽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어왔고 지금도 그렇다”고 지적했다.

취업·이직에서도 비혼은 적

‘비혼’은 법적으로도 소외된 상태다. 우리나라 민법에 ‘혼인’이라는 말은 100번 나온다. 민법 자체가 혼인을 별도의 장으로 다루어 섬세하게 규정하고 보호한다. 심지어 미성년자도 ‘혼인’을 하면 바로 ‘성인’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사람의 법적 지위는 어느 귀퉁이에도 언급되지 않는다. 장서연 변호사는 “1인 가구가 점점 늘고 있지만, 민법은 혈족 중심의 가족관계만 규정하고 있다”며 “우리 법 체계가 다양한 가족관계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생을 짜인 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지그재그로 살면서 열린 삶을 살고 싶어 비혼을 택했다”는 조수정(36)씨는 “사람들이 독신을 하나의 종착역이 아니라 결혼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 미완의 상태로 생각해서 늘 불만”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결혼식에 가지 않는다. “결혼식에서 축의금을 주고받는 것도 결국 모두가 결혼할 것을 전제로 하는 문화예요. 마음으로 축하하고 같이하면 되지, 거기에 꼭 돈이 개입돼야 하나요.”

취업·이직에서도 ‘비혼’은 적이다. 예컨대 남자의 경우 30대 초반까진 결혼하고, 30대 초·중반에는 아이를 만들고, 마흔 전에 집을 장만하고…. 한국의 각종 대출·보험·조세정책 등은 모두 이러한 ‘다수’의 생애주기를 따른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인생의 다양한 변곡점에서 불편한 시선과 질문을 받는다. “여자랑 자본 적은 있어요?” 장동준(38·가명)씨는 2006년 봄 서울의 한 구청에서 보건소 의사로 일하기 위해 면접을 보다가 이런 질문을 들었다. 당시 36살의 비혼이던 그는 아프리카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HIV) 감염인과 난민을 진료하는 자원활동을 하고 돌아와 직장을 구하는 중이었다. 아프리카로 자원활동을 떠나기 전엔 서울의 한 구청 보건소에서 1년간 일했다. 그러나 면접관 중 한 명이던 50대 구청 직원은 그런 경험에 대한 질문보다 ‘여자랑 잠은 자봤냐’ 등의 질문에 우선순위를 뒀다. 장씨는 “업무와 관련 없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고 말한 뒤 해당 구청장에게 항의 메일을 보냈다. 구청장의 답변은 돌아오지 않았고, 구청은 그를 보건소 의사로 고용하지 않았다.

아직도 결혼이 너무나 당연한 문화인 한국에서 비혼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배제된다. 일상적 대화에서부터 회사의 부조금, 금융기관의 대출까지 모든 사회의 단위가 개인이 아니라 (결혼한) 가족을 기초로 맞춰져 있는 탓이다. 그렇게 가해자는 없지만 피해자는 존재한다. 직장에서 결혼적령기를 넘긴 30대 중반부터 비혼자는 결정적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 평균적 감수성이 부족한 인물로 여겨진다. 승진 차별을 상징하는 ‘유리 천장’은 여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혼도 비슷한 장벽에 부딪힌다. 그래서 비혼자 중에 유난히 40대에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이 많다.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한 36살 독신 남성의 말이다. “30대 초반까지 게이인 나는 남다른 시각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됐지만, 30대 중반의 독신인 나는 철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고 느낀다. 같은 미혼이던 또래 동료들 절대다수가 이제는 결혼을 했다. 그들은 인생의 진도를 나갔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남들은 물론 스스로도 그런 생각이 든다. 차별의 내면화다. 이제야 비로소 게이로 태어나서 독신으로 죽는다고 느낀다. 어쩌면 나에게 게이는 소멸하는 정체성이고 독신은 강화되는 정체성이다.”

비혼들이 뭉치고 있다

2006년 독신자 입양 허용 법안이 통과됐지만, 비혼에게 입양은 여전히 닿기 힘든 꿈이다. (가족구성권모임 발간 예정)엔 남자친구와 동거하며 입양을 고려해본 36살 비혼 여성의 경험이 나온다. 그가 겪은 첫 번째 아이러니는 8년을 동거해온 파트너와 동거 커플로 공동 입양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독신인 자신이 혼자서 입양하는 것만 가능하다는 현실이다. 제도가 그러니 독신 입양을 고려했다. 그는 “(독신이 입양을 하려면) 내 부모님이 살아 계셔야 하고, 내가 싱글맘으로 입양할 경우에 내 부모가 (아이의) 양육자가 되고 내가 부양자가 되는 개념”이라고 전했다. 젊은 자신을 70대 노부모보다 믿지 못하는 법이 어처구니없었다. 또 다른 난관도 있었다. “입양을 보내는 미혼모에게 누구한테 입양됐으면 좋겠다고 말할 권리가 있다고 한다. 자신이 미혼모라 못 키우는 건데 독신에게 아이를 주려고 하지 않는다. …나한텐 돌아올 기회는 없는 거다.”

이런 차별을 ‘사적인 잡담의 영역’이 아니라 ‘공적인 담론의 영역’에서 해결하려 비혼들이 뭉치고 있다. 여성주의단체인 언니네트워크는 오는 3월19일 ‘저용량(2MB) 시대에 여성으로 버티기’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이번 총선에서 어떤 ‘액션’을 취할지, 이명박 정부 시대에 어떻게 대응할지를 논의한다. 지난해 12월15일, 각 대선 후보들에게 비혼 차별과 관련한 입장과 의견, 해결책을 물었던 것의 연장선상에서 취하는 ‘액션’이다. 장지영 언니네트워크 대표는 “우리가 직접 비혼여성당을 만드는 데 앞서 현재 출마하는 정치인들에게 비혼 감수성을 높이고, 비혼과 관련한 입장들을 묻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동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 추혜인(32)씨는 2년째 뜻을 같이하는 여성 의료인들과 네트워크를 꾸리고 의료생활협동조합을 준비 중이다. “지금의 의료 서비스는 비혼자들에게 매우 불편한 형태예요. 우리 의료 서비스는 우리가 만들자는 게 ‘비혼여성의료생협’의 취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불편이 이런 상상력의 기반이 됐다. 장애여성공감의 전 대표였고 현 진보신당연대회의의 공동대표인 박김영희씨는 1997년부터 두 명의 친구들과 서울 고덕동에서 살았다. 같이 살던 친구가 어느 날 자궁근종으로 갑자기 배가 아파 응급실에 가게 됐다. 그러나 입원 과정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이 친구가 왜 아픈지, 무엇이 필요한지 함께 사는 동거인인 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가족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요. 수술이 급했는데 발만 동동 굴렀죠. 또 이미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가족에게 얘기해서 가족이 다시 의사에게 전달하는 방식으로 해야 했어요.” 추혜인씨는 이런 불편을 해소할 의료생협을 2012년 마포구에 만들 꿈에 부풀어 있다. “비혼들이 매달 10만원씩 회비를 내고 자신에게 필요한 의료 서비스들을 스스로 만들어가요. 1인 가구인 비혼 여성들은 아파서 입원해도 간병인이 없는 경우도 많아요. 이럴 때 회원들이 돌아가면서 간병인을 해줄 수도 있죠.”

또 다른 존재 방식을 인정하라

오는 5월에는 제2회 비혼선포식도 열린다. 비혼을 선언함으로써 ‘결혼 제도’를 의심해보는 것이다. 지난해 제1회 비혼선포식에 남성으로는 유일하게 참여했던 박강성주씨는 “결혼만이 정답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박강성주씨는 "결혼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비혼을 택했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사람에게는 ‘결혼’ 자체가 투쟁해서 쟁취해야 하는 경우도 많아요. 결혼이라는 제도가 모든 사람을 포괄하지 않으면서 ‘당위’가 되면 그 자체로 너무 일방적인 제도가 되는 것 같아요.” 박강성주씨는 이런 고민들을 안고 비혼선포식에 참여했다. 그는 “물론 저도 건강문제 등 혼자 살면서 생길 문제들에 대한 두려움과 고민이 많지만, 비혼 축제에 참여하면서 다른 방식의 삶을 고민하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한국 비혼의 대부분은 잘나가는 골드미스, 골드미스터가 아니다. 집 마련, 노후생활 같은 기본적인 ‘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애쓰는 생활인이 대부분이다. 4인 가족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 분위기에서 “나 차별당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들이 불쑥불쑥 고개를 내밀지만 괜히 잘못 말했다가 “너 그거 히스테리다” “억울하면 결혼하라”는 답을 들을까 걱정이 앞선다. 차별을 차별이라 부르지 못하는 그들은 21세기의 ‘홍길동들’인지 모른다. 그런 홍길동이 사는 1인 가구가 벌써 280만을 넘어섰고, 전체 가구의 20%를 차지한다. 더 이상 ‘혼인하지 않음’은 스쳐지나가는 삶의 과정이 아니다. 그것이 또 다른 존재의 방식임을 인정한다면 가로 혼인관계, 세로 혈연관계로만 짜인 가족중심 사회에 오히려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앞으로 아니 이제는 비혼이 행복해야 사회가 행복하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