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임직원 10여 명 인터뷰…“두 회사 자금 관리 한 사람이 했고 직원들도 옮겨다녀”
▣ 특별취재팀
“경리(자금 담당)를 보는 분이, BBK나 LKe뱅크나 다 같이 했다.”(김현진·가명)
‘형식상’ BBK투자자문과 LKe뱅크는 두 개의 독립된 법인이다. 법인 등기부등본을 떼봐도 그렇다. 그런데 이 두 법인의 재무를 한 사람이 같이 봤다는 건 뭘 뜻할까? 이아무개(35) 회계사는 “형식적으로 다른 법인인데, 실질적으로 한 회사에서 재무를 같이 보는 곳이 있다”며 “이런 법인들은 대부분 한 사람이 실질적인 소유주다”라고 말했다. BBK와 LKe뱅크가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면 실질적인 소유주가 한 사람이란 얘기다. 형식상 대표이사나 주주 명단에서 빠져 관계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면서, 실질적인 주인을 따로 두는 건 기업들이 여러 목적으로 종종 쓰는 수법이다. BBK는 김경준씨가 대표이사였고, LKe뱅크는 처음엔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100% 지분을 지닌 1인 회사였다가 이후 증자 과정에서 김경준씨와 하나은행이 주주로 참여하게 된다.
Lke뱅크 직원들 옵셔널벤처스로
은 BBK, LKe뱅크, e뱅크증권중개(EBK), 옵셔널벤처스 전직 임직원 10여 명을 인터뷰해 ‘BBK 사건’에 등장하는 이들 회사 간 관계와 이명박 당시 회장의 역할 등을 추적했다. LKe뱅크에 있었던 김현진씨뿐 아니라 BBK와 e뱅크증권중개 설립에도 관여한 민현식(가명)씨도 “법률적으로 두 회사(BBK와 LKe뱅크)는 구분돼 있었지만, 금전 거래는 한 사람이 맡았다”고 말했다.
BBK와 LKe뱅크의 자금 관리뿐만 아니라 옵셔널벤처스코포레이션(2001년 4월27일 옵셔널벤처스코리아로 상호 변경·대표이사 김경준)의 자금도 한 곳에서 관리됐다. 2001년 초 옵셔널벤처스에 입사했다는 성민식(가명)씨는 “BBK나 LKe뱅크, 옵셔널 세 회사의 구분이 따로 없었다. 같은 회사였다”라고 말했다. 또 그룹의 계열사들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는 얘기도 나왔다. 서울 태평로 삼성생명 빌딩 17층에 있던 BBK와 LKe뱅크는 2001년 초 강남 대치동 코스모타워 8층으로 사무실을 옮긴다. 2000년 10월 증권업 예비 허가가 나온 e뱅크증권중개의 본허가가 나오면 곧바로 증권사를 차릴 공간으로 쓰기 위해서였다. 이때부터 옵셔널벤처스도 같은 사무실을 쓴다. 성씨는 “형식상 구분된 이들 세 회사의 자금도 한 곳에서 관리했다”고 말했다.
형식적으로 독립된 세 회사의 인적 구분도 실제론 모호했다. e뱅크증권중개가 2001년 4월 증권업 허가를 자진 철회할 즈음 LKe뱅크 직원들은 옵셔널벤처스로 자연스럽게 회사를 옮긴다. 이 후보의 지분이 남아 있는 LKe뱅크는 등기상 지금도 엄연히 살아 있는 회사다. 김현진씨는 “증권업 허가가 철회되면서 더 이상 존재 이유가 없어 보였던 LKe뱅크를 옵셔널이 인수한다고 들었다”며 “LKe뱅크의 직원들은 그만두지 않는 한 모두 옵셔널로 갔다”고 말했다. 성민식씨는 “별 생각 없이 옵셔널 직원으로 들어갔는데, 나중에 총무팀에 확인해보니 공식적으로는 LKe뱅크 소속으로 돼 있었다”고 말했다. 2001년 4월27일 문제의 BBK투자자문의 등록이 취소되기까지 주가조작의 대상이자 온상이었던 옵셔널벤처스와 LKe뱅크, BBK는 자금과 인사에서 한 몸처럼 섞여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BBK 직원들도 법인이 사라지면서 대부분 옵셔널벤처스로 ‘호적’을 바꿨다. 김아무개(36) 세무사는 “이런 걸 보면 실질적으로는 전형적인 한 회사”라며 “법률적으로는 지분이 있었는지 실제 경영에 참여했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증언들과 분석은 LKe뱅크의 대표였던 이명박 후보의 “BBK는 나와 전혀 관련이 없다. …BBK를 나와 관련지어 말하는 건 성립이 안 된다”(2007년 7월 한나라당 검증청문회에서)는 해명을 믿기 어렵게 한다.
e뱅크증권중개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BBK에서 투자 유치를 담당했던 민현식씨는 e뱅크증권중개의 이사로 금융감독원에 신고돼 있었다. 민씨는 “e뱅크증권중개를 향해 BBK와 LKe가 같이 움직였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BBK 투자 유치뿐만 아니라 e뱅크증권중개 설립을 주도했다.
BBK와 LKe뱅크, 옵셔널벤처스의 자금 거래가 한 곳에서 이뤄졌기 때문일까? 이 입수한 미국 회계법인 ‘엔젤앤드엔젤’(이명박 후보의 큰형과 처남이 대주주로 있다는 다스(옛 대부기공)가 김경준씨를 상대로 미국에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증거 자료를 작성)이 정리한 자료를 보면, BBK와 LKe뱅크는 수백억원에 이르는 금전거래를 한다. 가 입수해 공개한 2000년 2월16일 BBK투자자문과 LKe뱅크 사이의 단기대여금 대차계약서와 ‘BBK투자자문 대여 및 차입금 현황’이란 자료도 이를 뒷받침한다. 세무사 김씨는 단기대여금 대차계약서와 관련해 “형식적인 요건을 갖추고 서로 자금을 쉽게 교류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명박은 돈의 흐름을 정말 몰랐을까
하지만 이명박 후보와 그의 측근인 김백준씨는 김경준씨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낸 소송에서 ‘김경준이 LKe뱅크를 일상적으로 관리·운영했기 때문에 그가 LKe뱅크의 돈을 빼돌리는 것을 알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회계사 이씨는 “수십억원의 돈을 투자한 이명박 후보가 돈의 흐름을 몰랐다는 건 말도 안 된다”며 “회계 및 세무 처리 등은 몰라도, 이명박 후보가 실질적으로 자신의 소유인 LKe뱅크의 10원짜리 하나 움직인 것도 거의 다 보고받았다고 봐야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의 말이 사실이더라도 김경준이 2000년 6월 30억원을 LKe뱅크의 증자대금으로 납입하고 주주로 참여하기 전까지, 2000년 2월18일 설립된 LKe뱅크의 1인 대주주였던 이 후보가 자신의 회사와 BBK 간 돈거래에 대해서 몰랐을 리는 만무하다. 김경준은 LKe뱅크 설립시 대표이사로 등재되지만 지분은 1%도 없었다. 누가 봐도 LKe뱅크의 ‘주인’은 이명박이었다.
여기서 BBK투자자문의 대여 및 차입금 현황을 보자. 2000년 6월15일 이전 BBK와 LKe뱅크가 100억원 안팎에 이르는 돈거래를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뱅크증권중개 설립 과정에 참여했던 원희상(가명)씨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다. “이명박 회장이 회사(LKe뱅크 등)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또 김백준씨는 더 잘 알면 알았지, 이명박 회장보다 모르진 않았다. 더구나 김백준씨는 금융계에 오래 계셨던 분이다.” 이 말은 김경준에게 모든 걸 맡겨 LKe뱅크가 돌아가는 사정을 잘 몰랐다고 하는 이명박 후보와 김백준씨의 주장과 180도 다르다.
‘e뱅크코리아(LKe뱅크) 브로슈어’와 관련해 당시 근무를 했던 직원들은 그 실체를 모두 인정했다. 브로슈어는 2000년 10~11월에 제작됐다. 원희상씨는 “왜 기억하냐면, 그때 사진을 찍는다고 해서, TV에 출연할 때처럼 화장을 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은 일찍이 이명박 후보를 비롯해 당시 BBK, LKe뱅크, e뱅크증권중개 임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찍은 사진이 실린 브로슈어를 공개한 바 있다. 인쇄까지 된 이 브로슈어는 실제 활용됐을까? 직원들의 말은 조금 엇갈린다. BBK의 한 직원은 “인쇄까지 됐지만 실제 쓰인 적은 없다”고 말했고, LKe뱅크 직원은 “실제 전산 쪽에서 인터넷으로 브로슈어 내용을 소개하는 작업을 했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직원들은 BBK 투자금 유치를 이명박 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오순복(가명)씨는 “이명박 회장이 금융 쪽에 손댄다고 해서 당시 인터뷰 요청이 많이 왔다. 또 펀드를 운영하는 BBK엔 이명박 회장을 ‘봐서’ 자금을 투자하는 분들도 있었고, 이 회장을 ‘통해서’ 자금을 투자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옵셔널벤처스에 오기 전부터 김경준씨를 알았던 성민식씨는 “(BBK에) 당연히 MB(이명박)를 보고 돈이 들어온 줄 알았다. 그래서 김경준씨한테도 MB를 어떻게 알았냐고 물은 기억이 난다”며 “차익거래 전문가(김경준)라는 게 컴퓨터 단말기와의 싸움인데, 인적 네트워크가 필요한 펀딩(자금 모집)을 어떻게 했는지 의문이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누군가 세팅 해놓은 걸 김경준이 집행”
옵셔널벤처스에서 김경준이 한 역할도 의문이다. 한 직원은 “김경준이 아무리 트레이딩(주식 매매)을 잘해도, 전혀 영역이 다른 M&A(기업 인수·합병) 등을 할 수 있었는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자란 김경준이 정말 창업투자회사를 인수할 정도로 국내 자본시장과 M&A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었을까? 옵셔널벤처스는 2001년 광은창투(뉴비전캐피탈)를 M&A하고, 세림아이텍과 이지닷컴 등에도 투자했다. 성민식씨는 “누군가 세팅을 다 해놓은 걸 김경준이 집행만 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누군가의 이름을 말했지만, 물증이 없고 심증만 있다고 선을 그었다. 당시 코스모타워의 옵셔널벤처스 사무실엔 이명박 후보과 김백준씨의 방이 있었고, 김백준은 매일 나오다시피 하면서 사무를 봤다고 직원들은 또렷이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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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지난 몇 개월 동안 BBK, LKe뱅크, 옵셔널벤처스 전 임직원과의 접촉을 꾸준히 시도해왔다. 쉽지 않았다. 거의 절반 이상이 아예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사를 가거나 연락처를 바꾼 이들이 많았다. 해외로 나간 이들도 있었다. 5~6년이란 긴 시간이 흘렀기 때문만은 아니다. 다들 피하고 싶어했다.
간신히 연락이 닿은 이들도 말을 아꼈다.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후보와 직접 관련된, 특히 해가 될 수 있는 얘기를 하는 건 평범한 이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한 직원은 “굉장히 두렵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건이 몇 년을 끌면서 한국의 금감원과 검찰, 미국 연방검찰의 조사에 지쳐 있었다. 그나마 이명박 후보에게 우호적인 이들은 연락도 쉽게 닿았고, 얘기도 거침이 없었다.
한국 검찰은 서울중앙지검으로 이들을 다시 불러들일 것이다. 수사가 문서와 계좌 추적, 김경준 입에만 의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연방법원은 BBK와 옵셔널벤처스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2002년 한국 검찰의 조사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송 당사자들의 변호인과 연방검사를 네 차례나 주한 미국대사관으로 보내 관련자들의 증인신문을 직접 했다. 연방법원은 김경준씨의 재산 몰수 소송을 판결하면서, ‘사건 관련자들이 한국 검찰에서 증언을 하는 데 신변의 위협을 느꼈다’고 명시했다. ‘누구로부터의 위협’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진 않았다. 이 소송에선 김경준이 이겼다.
사건 관련자들에게 이 후보가 두려움의 대상이라면, 김경준은 불신의 대상이었다. BBK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한 직원의 어머니는 김경준을 “희대의 사기꾼”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김경준을 잘 알거나 불신하는 이들도 그가 어디서 돈이 나서 사업을 할 수 있었는지, 어떻게 그 많은 BBK 투자금을 끌어왔는지, 어떻게 창투사를 M&A 할 수 있었는지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를 사기꾼이라고 부르면서도 모든 게 김경준의 단독 범행이라고 보는 이는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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