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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만 짓는다’는 생각 버려라”

등록 2007-07-27 00:00 수정 2020-05-03 04:25

이병철 전국귀농운동본부 대표… 자체적 생활 가능한 마을 공동체 복원을 위해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이병철(58) 전국귀농운동본부 대표는 ‘귀농 전도사’로 꼽힌다. 우리 사회에 ‘귀농’이란 화두를 처음 던지고, 1996년 설립 때부터 지금껏 귀농운동본부를 이끌고 있다.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부산대 재학 중이던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됐고, 감옥에서 풀려난 뒤부터 농민운동에 뛰어들었다. 한국가톨릭농민회와 우리밀살리기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도법 스님과 함께 전북 남원시 산내면 귀농공동체의 산파역으로도 꼽힌다. 이 대표는 7월19일 산내면 귀농공동체 10년과 한국 농업·농촌에 대한 소회를 풀어놓았다.

도시 경험을 공동체 복원에 쓴다

산내면 귀농 10년의 역사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다른 지역의 귀농은 개별적으로 이뤄지는데 산내면에서는 좀 다르다. 중학교(대안학교)가 있고 (사)한생명이라는 지역조직이 있어 귀농자들이 지역의 중심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조건이다. 다른 지역에 귀농하게 됐을 때는 개별적인 형태로 해체돼버리는 것과 차이를 보인다.

우리 사회의 농업 문제라는 큰 틀에서 볼 때 산내면 공동체는 어떤 의미를 띠는가?

=지역 단위, 작은 단위에서부터 풀어가지 않으면 한국 농업의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작은 생활권 중심으로 새로운 지역의 자립 단위를 구축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례다. 제대로 성공하면 한국 농업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경제나 사회 형태는 대외의존적이고 자연을 파괴하는 모델이었다. 자연을 파괴하고 자원을 고갈시키는 발전 모델은 한계에 이르렀다.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대외의존적인 에너지 과소비 모델을 갖고는 얼마 못 간다. 결국은 소수만 살아남고, 그 소수조차 결국 살아갈 수 없게 된다. 지역에 기반을 둔 자생적인 모델 구축은 ‘산업문명’을 대체하는 ‘대안문명’을 만들어가는 바탕이다.

산내면 귀농자들은 대체로 농업 외 별도 생계 수단을 갖는 ‘반농반업’ 상태인 듯하다. 그게 원주민들과 섞이기 힘들게 하는 요인은 아닌가?

=그 방법 외에는 불가능하다. 그건 이미 검증이 끝났다. 농촌에서는 농사만 짓는다? 그렇게 되니 마을 공동체, 지역 공동체가 유지되지 못한 것이다. 머리 깎는 사람이나 목수도 있어야 마을 자체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지금 그게 무너져 있다. 마을의 자생력, 마을·지역 단위가 그 자체로 살아갈 수 있는 자립성을 길러내는 게 핵심 과제다. 지역 단위에 학교도 있고, 문화 공간도 있어야 한다.

도시에 살면서 갖게 된 경험과 능력, 지식들이 지역 공동체를 복원하는 데 쓰여야 한다. 또 그게 생계 문제 해결로 연결돼야 한다. 자기 생계에 필요한 농사 정도는 지으면서 지역 공동체의 한 부분에서 나름의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실제 귀농 현장에 가보니 귀농자와 원주민, 또 귀농자들 사이에도 갈등 기미가 느껴졌다.

=그게 사람 사는 세상의 모습이니까. 다만, 귀농자들의 개성이 뚜렷해 보통 사람들은 용인할 수 있는 대목에도 관심을 집중하는 경우가 있다. (개성이 뚜렷한 귀농자 집단에서) 상호 차별성이 높은 경우가 많다.

귀농자가 먼저 진정성 보이면

갈등을 치유하는 방법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귀농자가 지역민에게 먼저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 마을의 원주인들은 나이가 많고 바깥 세상 경험이 적어 다름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외부에서 간 이들이 어울려 살아야 할 필요성을 공감하는 계기를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귀농한 쪽에서 배우려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이런 마음을 갖지 않으면 지역사회에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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