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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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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하고 어메이징한 동남아 쇼핑 전쟁

등록 2007-06-29 00:00 수정 2020-05-03 04:25

세일·축제·쇼핑몰로 무장하고 날씨보다 뜨거운 경쟁 벌이는 나라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세계에서 가장 쇼핑하기 좋은 도시는?

저마다 견해는 다르지만, 하나의 견해를 살펴보자. 미국의 뉴스전문 채널 〈MSNBC〉가 2006년 12월 여행전문 사이트 ‘셔먼스트래블닷컴’(ShermansTravel.com)의 조사를 인용해 보도한 ‘쇼핑하기 좋은 10대 도시’에서 타이 방콕이 당당히 1위로 뽑혔다. 다양한 관광 루트에 쇼핑 공간까지 마련돼 있다는 이유였다. 세계 최대의 주말시장인 짜뚜짝이 있는가 하면, 최고 품질의 실크와 보석, 공예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명품을 원스톱으로 쇼핑할 수 있는 시암 파라곤과 엠포리움 백화점 같은 고급 백화점까지 두루 갖추었다는 평가였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2위, 수많은 길거리 시장과 유명 디자이너 부티크를 고루 갖춘 홍콩은 4위에 올랐다. 2005년 11월의 발표는 달랐다. 이 같은 상품에 대한 지역별 가격차를 따져본 결과, 홍콩이 동아시아 11개 대도시 가운데 가장 저렴한 도시로 뽑혔다. 마닐라, 방콕이 2, 3위를 차지했고, 쿠알라룸푸르와 싱가포르가 뒤를 이었다. 서울은 하위권인 9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쇼핑 천국으로 알려진 홍콩, 싱가포르뿐 아니라 방콕, 마닐라, 쿠알라룸푸르가 저마다 만만치 않은 경쟁력을 갖추고 지갑을 여는 관광객, 쇼핑객을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싱가포르가 시작하면 방콕이 맞불을

싱가포르가 세일을 시작하면 방콕이 맞불을 놓는다. 그 유명한 ‘그레이트 싱가포르 세일’이 5월25일부터 시작되면, 타이는 ‘어메이징 타일랜드 그랜드 세일’을 6월1일부터 개시한다. 세일이 무슨 국경일도 아닌데, 관광청이 지정한 세일 기간이 있다는 사실이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정부가 나서 세일 기간을 정할 정도로 쇼핑객 유치가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자, 지금부터 7월 말, 8월 초까지 ‘그레이트 싱가포르 세일’에 맞서는 ‘어메이징 타일랜드 그랜드 세일’(참으로 창대한 이름들이여!) 전쟁이 35도의 동남아 여름을 달군다. 역시나 공교롭게도 2006년은 ‘홍콩 대탐험의 해’이자 ‘타이 방문의 해’였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관광에 대해서 경쟁을 하는 나라들이라 심상찮게 보였다.

2005년 방콕의 중심가 시암은 공사 중이었다. 공사는 시암 파라곤이 2005년 12월 개장하기 전부터 시작됐다. 서울 백화점의 명품관 크기의 서너 배는 족히 되는 명품 매장들로 즐비한 1층부터 젊은 층들이 선호하는 트렌디한 브랜드가 늘어선 2층을 거쳐 멀티플렉스 영화관까지 갖춘 시암 파라곤은 방콕의 지존이자 동남아의 호걸로 떠올랐다. 여기에 1973년에 건립된 시암의 터줏대감 시암센터가 2005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에 들어가 맞불을 놓았다. 바로 옆에 디스커버리 센터라는 거대한 쇼핑몰이 존재하니 제살 깎아먹기 경쟁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논리는 달랐다. 시암 파라곤의 경쟁 상대는 디스커버리 센터가 아니라 저 멀리 홍콩의 백화점과 싱가포르의 쇼핑센터라는 것이다. 그곳으로 가는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오기 위해서는 오히려 쇼핑몰이 많을수록 좋다는 논리다. 역시나 쇼핑몰들은 뜯어보면 역할 분담을 하고 있다. 동대문의 밀리오레 같은 분위기를 원한다면 마분콩(MBK) 센터로 가면 된다. 고가의 명품을 사고 싶다면 시암 파라곤, 트렌디한 ‘준명품’을 원한다면 디스커버리 센터, 색다른 감각의 타이 브랜드를 찾는다면 시암센터로 가면 된다. 방콕을 놀고만 가는 곳이 아니라 놀면서 쇼핑도 하는 도시로 만들겠다는 야심이 느껴진다.

사실 즐비한 쇼핑몰들의 절묘한 역할 분담은 싱가포르 오차드 로드가 먼저다. 오차드 로드를 따라서 양쪽으로 즐비한 쇼핑몰들은 5천원짜리 티셔츠부터 50만원짜리 드레스셔츠까지 다양한 스타일과 가격의 물건을 갖추고 있다. 파라곤 백화점에는 명품 브랜드가 즐비하고, 니암 시티에는 자라(ZARA) 같은 인스턴트 브랜드가 기다리고, 이어진 작은 쇼핑몰에는 다양한 현지 브랜드가 쇼핑객을 기다린다. 싱가포르는 관광객을 위한 페스티벌도 멈추지 않는다. ‘그레이트 싱가포르 세일’ 외에도 3월의 싱가포르 패션 페스티벌, 9월과 10월의 싱가포르 보석 축제가 이어진다. 싱가포르의 영원한 라이벌 홍콩은 침사추이, 센트럴, 코즈웨이베이 어디 지역에 가더라도 다양한 쇼핑 공간이 나온다.

‘관광 & 쇼핑’ vs ‘비즈니스 & 쇼핑’

방콕이 ‘관광 & 쇼핑’의 조화를 내세운다면, 쿠알라룸푸르는 ‘비즈니스 & 쇼핑’에 초점을 맞춘다. 컨벤션의 도시 쿠알라룸푸르는 시간이 부족한 비즈니스맨을 위해 세련되고 화려한 쇼핑몰을 준비해두었다. 케이엘시시(KLCC) 지역에 일본계 이세탄 백화점, 영국계 팍슨 그랜드 백화점이 자리잡고 있고, 부킷빈탕 지역에는 7개가 넘는 쇼핑몰들이 즐비하다. 화려한 쇼핑몰에 세련된 도시가 어우러지는 것이 쿠알라룸푸르의 장점이다. 이곳에서도 명품뿐 아니라 ‘핫’(Hot)한 브랜드인 톱숍(TOP SHOP) 등의 매장을 만날 수 있다. 마닐라는 규모로 승부한다. 마닐라가 가졌던 동남아 최대의 쇼핑몰 기록을 마닐라가 바꿨다. 몰 오브 아시아(MALL OF ASIA)가 마닐라의 또 다른 쇼핑몰인 에스엠 메가몰(SM MEGA Mall)을 제치고 최대의 쇼핑몰로 등극했다. 이렇게 ‘유니클리 싱가포르’(Uniquely Singapore)가, ‘어메이징 타일랜드’(Amazing Thailand)가, ‘말레이시아 트룰리 아시아’(Malaysia Truly Asia)가 나름대로 한 칼을 숨기고 ‘다이내믹 코리아’의 당신을 쌍수 들어 환영한다.



센스를 보여다오, 신세계 첼시

여주에 자리잡은 명품의 성채, 제품 다양성·편의시설 미흡
▣ 여주=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경기도 여주 톨게이트를 지나 10분 정도 더 들어가면 예쁜 황토색 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성의 벽면에는 큼지막한 글씨로 ‘구치, 버버리, 코우치’ 등 명품 브랜드의 이름이 적혀 있다. 명품의 성일까? 아니다. 6월1일에 개장한 ‘신세계 첼시 프리미엄 아울렛’(이하 아울렛)이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 무더웠던 6월20일. 평일인데도 아울렛은 ‘쇼풍(쇼핑+소풍)객’들로 붐볐다. 나들이복 차림으로 아울렛 분수대 앞에서 사진을 찍는 중년 여성들도 있었고, 유모차를 끌고 나온 젊은 부부, 선글라스를 쓴 멋쟁이 여성들이 정신없이 쇼핑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명품의 성’에 정작 명품은 많지 않았다. 120개 브랜드가 입점했다는 아울렛 매장에서 명품 브랜드는 10개에 불과하다. 세계 3대 브랜드인 루이뷔통, 샤넬, 프라다는 물론 인기 브랜드인 펜디, 셀린느, 발리, 크리스찬 디오르 등도 없다. 대전에서 왔다는 최희정(가명·39)씨는 “멀리서 왔는데 사려고 했던 브랜드가 없어서 허무하다. 또 날씨도 더운데 야외인데다 넓어서 쇼핑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게다가 제품들 대부분이 2006년 이전 시즌 제품이고, 할인폭도 크지 않다. 페라가모 가죽 지갑과 신발은 20만~25만원 내외지만, 일반 면세점에서 그 정도 가격이면 2007년 제품을 살 수 있다. 구치나 코우치의 할인폭도 30% 내외. 값이 그렇게 싸지 않은데다, 제품도 다양하지 않다. 코우치 매장 직원 홍희남(28)씨는 “물건이 많이 빠져서 같은 상품을 진열해놓고 있다”며 “고객카드를 작성하면 새로운 제품이 들어올 때 고객들에게 연락해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명품이 아닌 일반 브랜드들은 할인폭이 커서 잘 사면 시중보다 싸게 물건을 구입할 수 있다. 특히 여성 가방으로 유명한 MCM의 경우 할인폭이 70%나 돼서 40만원짜리 가방을 11만원 정도면 구입할 수 있다. 다른 브랜드도 할인폭이 50% 이상이다. 그러나 싸면 뭐하나. 쇼핑객들은 사이즈가 없어서 물건을 살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서울 연희동에서 온 주부 진희진(60)씨는 “톨게이트비만 세 번 내고 겨우 찾아왔는데, 살 만한 건 사이즈가 없다”고 말했다. 게다가 편의점도 없고, 쉴 곳이나 아이들 놀이터, 식수대도 찾기 힘든 실정이다. 의류업에 종사하는 이현우(가명·20)씨는 “목이 마른데 물을 살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스타벅스’에서 아이스커피를 마셨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홍콩, 일본, 말레이시아 등 글로벌 쇼핑 전쟁이 나날이 치열해지는 요즘, 신세계 첼시 프리미엄 아울렛 등 한국의 쇼핑센터들이 글로벌 쇼핑객들을 불러들이려면 많이 분발해야 할 것 같다. 고객을 위해 ‘편의점’ 정도는 만들어주는 ‘센스’를 갖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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