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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호랑이 등에 타고 있을까

등록 2007-05-24 00:00 수정 2020-05-03 04:24

7·1 조치 5돌, 경제 개혁은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가야 하는가

▣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2002년 7월 북한은 ‘경제관리 개선조치’(이하 7·1 조치)를 발표했다. 5년이 다가오고 있다. 변한 것은 무엇이고, 변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처음 평양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비슷하다. 예상보다 어렵구나, 공통된 첫인상이다. 충격적이라는 사람도 있다. 평양을 벗어나, 묘향산 가는 길이나 북한의 주요도시인 남포에 가보면 더욱 사정이 어렵다. 그러나 자주 방문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다르다. 북한이 변하고 있다고 한다. 전력 사정도 좋아졌고,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건물들이 흑백사진에서 컬러사진으로 변하고 있다고 이구동성이다. 절대적 기준으로 보면, 북한의 경제 사정은 여전히 어렵다. 그렇지만 1990년대 중반의 경제위기나 몇 년 전과 비교해서 보면, 북한 경제는 나아지고 있다.

7·1 조치가 처음 발표됐을 때,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있었다. 북한의 정책 변화 수준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시장 개혁인가? 아니면 계획경제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계획 개선’인가? 필자는 ‘미흡하지만’ 하나의 개혁 과정으로 볼 수 있고, 그래서 북한은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고 당시 주장했다. 흔히 사회주의권의 경제개혁을 ‘호랑이 등에 올라타기’로 비유한다. 올라타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지만, 호랑이가 달리기 시작하면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다는 뜻이다. 경제개혁은 열려 있는 하나의 과정이고, 확산 효과를 갖는다. 5년이 지난 지금 평가해보자.

북한은 호랑이 등에 올라탔을까?

7·1 조치의 핵심은 임금과 물가를 현실화하고, 종합시장을 인정하며, 노동자들에게는 일한 만큼 분배하는 차등임금제를 시행하고, 기업에는 국가 납입금을 제외한 수익의 처분 권한을 확대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해 5월 필자가 평양에 있는 3·26 전선 공장을 방문했을 때, 우연히 이 공장의 ‘재정 공시표’를 볼 수 있었다. 이 공장 노동자의 평균임금은 월 1만5천원에서 2만원 수준이었다. 월별로 보면 3만원이 넘었던 달도 있고, 1만4천원까지 떨어진 달도 있었다. 직장별로도 차이가 났다. 소속 부서와 개인별 실적에 따라 생활비(임금)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차등임금제는 탄광 노동자들처럼 북한이 우선육성 분야로 지정한 곳에서 명확하게 나타났다. 이른바 누진도급제는 계획 달성 비율이 올라가면, 지급되는 인센티브의 범위가 누진적으로 인상된다. 탄광 노동자들의 경우 당국이 정한 기본임금은 6천원이지만, 3만원을 넘게 받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북한의 공식 매체에서 소득 격차로 위화감 조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분명한 변화이다.

기업 차원에서 ‘번 수입 지표’의 도입 역시 주목할 만하다. ‘번 수입’은 기업의 판매수입에서 생활비를 제외한 판매실적 원가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기업의 소득이다. 과거에는 국가에서 내려 먹인 계획지표를 달성하면 됐지만, 이제는 많이 팔아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소득이 올라가고,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분배의 몫 또한 올라갈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계획경제에서는 소비자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는 많이 팔아야 하기 때문에, 제품의 질이나 디자인에 신경써야 한다. 과거에는 노동자의 수가 많을수록 좋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더 많이 벌기 위해 설비를 개선하고, 생산효율을 높여야 한다. 이러한 기업개선 조치들은 실질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인센티브의 효과는 시장 지향적 제도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한계가 있다. 문제는 물가다. 명목임금이 증가해도 물가가 더 빨리 오르면 임금가치는 떨어진다. 종합시장에서 국가가 시장 동향을 반영해서 탄력적인 가격지도를 하고 있지만, 시장가격처럼 유연하지는 못하다. 문제는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오르고, 공급자들은 규제된 합법시장에서 물건을 팔기보다는 암시장으로 간다는 것이다. 물가가 오르면 실질임금은 그만큼 떨어진다.

지난해 북한을 방문했을 때 경험한 일이다. 어떤 공장의 노동자는 월급이 2만~3만원이지만, 다른 분야(서비스 분야)의 노동자는 월급이 6천원이었다. 그러나 서비스 분야 노동자는 일정액의 쌀을 현물임금으로 받고 있었다. 누가 소득이 높은가? 2만~3만원 월급을 받는 노동자가 국정가격으로 쌀이나 소비재를 살 수만 있다면 좋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급 부족과 가격체계의 불안정으로 북한 원화의 가치가 떨어진 상태에서 여전히 화폐임금보다는 현물임금이 더욱 가치가 있다. 이렇게 보면 북한이 확실하게 호랑이 등에 올라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공장이 돌아가야, 개혁도 가능하다

농업정책에서 농지정리와 관개시설 확충, 적극적인 종자개량 사업과 더불어 수매정책의 변화로 농업생산이 증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의 식량수급 사정은 불안정하다. 비료, 농약, 농기계 등 농업기반 시설이 회복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마다 새로운 의욕이 넘쳐나지만, 문제는 설비 개선이다. 지난해에 대안친선유리공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대안이 어떤 곳인가? 1960년대 형성된 북한의 경제관리 체계를 북한에서는 ‘대안의 사업체계’라고 부른다. 김일성 주석이 대안전기공장을 현지지도하면서 내놓은 방침이기 때문이다. 대안은 1960년대 북한 경제의 심장부였다. 대안전기공장을 비롯해 대안중기계연합기업소 등 핵심 공장들이 밀집해 있다. 그러나 차창으로 비친 대안의 풍경을 보며 착잡했다. 공장들은 낡고 녹슬고 인적이 드물었다. 공장들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 그런 대안에 중국에서 전액 투자해 만든 대안친선유리공장이 서 있는 풍경은 오늘날의 북한 경제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대안친선유리공장의 사례에서 보듯, 소비재 분야의 부품과 설비들은 외국에서 들여와야 한다. 문제는 북한의 외환사정을 고려할 때 설비수입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많은 공장들이 설비 현대화에 나서고 있지만, 현대식 설비를 갖춘 곳은 남쪽과의 위탁가공 생산을 하는 업체나, 우선순위가 높은 핵심 공장에 한정된다. 남북경협에서 위탁가공은 대부분 ‘설비 제공형’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공장이 돌아가야 개혁도 가능한 것이 아니겠는가? 북한이 남쪽에 경공업 원자재 지원을 요청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발이나 교복 자체도 필요하지만, 원자재를 받아서 지방 공장들을 돌려야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북한이 더 많은 설비 개선을 하기 위해서는 남북 경제협력을 비롯해서 대외경제 관계를 활성화해야 한다.

북한의 경제개혁은 여전히 초보적이다. 북한의 공식 매체들은 경제정책의 방향에 대해 사회주의 원칙을 고수하면서, 실리와 실용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계획경제의 틀을 유지하는 원칙에서 경제주체들의 동기를 제한적으로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 경제가 경제개혁을 향한 문턱을 넘어섰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핵심은 가격체계다. 농산물 공급체계에서 수매 방식을 개선하고, 소비재 부분에서 종합시장을 확대하고, 생산재 유통시장을 일정 부분 허용하고 있지만, 가격 제정에서 여전히 시장보다는 국가의 역할이 강하다. 중국이나 베트남의 경제개혁은 계획을 초과해서 생산한 농산물을 시장에서 처분할 수 있었기에 시작될 수 있었다. 농산물의 시장가격이 형성되면서, 다른 분야의 가격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지방공업인 향진기업이나, 쿠바의 경제개혁을 주도한 자영업 등은 생산과 유통, 소비 분야에서 시장가격을 확산하는 근거로 작용했다. 북한은 여전히 자영업 혹은 개인 수공업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개방과 개혁은 동전의 양면이다

북한의 미흡한 경제개혁은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경협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개성공단에서 핵심적인 문제는 환율이다. 현재 북한에서 공식 환율은 1달러에 북한 원화로 145~150원 정도다. 그렇지만 암시장 환율은 지방에 따라 다른데, 1달러에 2500원이 넘는다. 북한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은 하루에 200달러에 육박하는 호텔비에 놀란다. 공식 환율과 시장 환율의 격차는 그만큼 북한 원화의 가치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환율 문제는 개성공단의 임금 직접 지불 문제의 핵심이다. 개성공단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1인당 평균임금인 60달러를 당국에 지급하면, 당국은 그것을 공식 환율로 환산해서 노동자들에게 지급한다. 북한 원화로 9천원에 해당된다. 그러나 북한의 암시장에서 60달러는 15만원에 해당된다. 지급되는 돈의 가치와 지급받는 돈의 가치 사이에 엄청난 차이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개성공단 노동자들은 임금의 30% 정도를 현물임금으로 받고 있기 때문에, 북한 인권 문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말처럼 착취라고 평가할 수 없다. 하지만 이중환율제도에서 국가가 환차익을 과도하게 수취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다. 환율제도의 개선이 개방 지역과 국내 경제의 선순환을 유도하는 통로가 아닐 수 없다.

경제개혁은 북한의 입장에서 양날의 칼이다. 성장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시장의 도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른바 ‘시장화 과정’은 통제사회와 양립하기 어렵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상하이에서 광둥에서 혹은 선전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경제개혁의 ‘천지개벽’할 성과와 정치체제의 지속성이 과연 같이 갈 수 있을지가 핵심적인 고민이었을 것이다.

6자회담과 북-미 관계, 한반도 평화체제를 둘러싸고 북한의 국제환경은 변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개혁은 결코 정치적 협상으로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북한이 선택할 문제다. 앞으로 북한이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경제통계를 국제기준에 따라 개방해야 한다.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일반특혜관세를 부여받기 위해서는 노동정책을 변화시켜야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서 개성공단을 비롯한 남북협력 거점들이 역외가공지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도 핵 문제의 해결뿐 아니라, 노동환경의 개선이 선결조건이다.

경제개혁은 북한 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남북 경제협력의 도약을 위해, 그리고 북한의 국제 경제체제 편입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북한이 망설이지 말고 과감하게 호랑이 등에 올라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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