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히타치마루 침몰 사건 때 영국인 유족들의 의견을 물은 전례가 있어</font>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야스쿠니신사에 강제 합사된 한국인 유족들이 분노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합사 과정에서 유족들에게 이 사실을 통보하거나 동의를 구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유족들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는 야스쿠니신사의 ‘무단 합사’ 전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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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유족들이 항의해도 무시할텐가
야스쿠니신사의 무단 합사 전통의 폭력성은 1960년대부터 꾸준히 지적돼왔다. 1969년 개신교의 스노다 사부로 목사는 유족으로는 처음으로 야스쿠니신사에 모셔져 있는 두 형의 합사를 취하해달라고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스노다 목사의 요구에 대한 야스쿠니신사의 회답은 “당 신사의 창건 취지와 전통으로 비춰보아 도저히 요구를 들어드릴 수 없습니다”라는 것이었다. 야스쿠니신사의 이케다 권궁사는 스노다 목사와 만난 자리에서 “전사자의 합사는 천황의 의지에 따라 메이지 시대부터 유족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뤄졌기 때문에 취하할 수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인들이 야스쿠니신사에 무더기로 합사되기 시작한 것은 전쟁이 끝난 뒤 14년이 지난 1959년부터였다. 그때 숨진 사람들은 1952년에 발효된 샌프란시스코조약으로 일본 국적에서 이미 이탈한 뒤였다. “외국인들을 함부로 합사한 것은 옳지 않다”는 한국인 유족들의 항의에 신사 쪽은 여전히 무단 합사 전통을 내세우며 버티고 있다.
그러나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이하 위원회)가 지난달 발표한 ‘야스쿠니신사 한국인 합사에 관한 진상조사’ 최종보고서를 보면 야스쿠니신사의 주장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남상구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은 “조사 과정에서 러-일 전쟁 당시 러시아 함대에 의해 침몰된 배 히타치마루(常陸丸)에서 사망한 영국인 3명을 합사하는 과정에서 유족들의 동의를 얻은 사례를 발굴했다”고 말했다. 히타치마루는 러-일 전쟁 당시 일본 본토에서 만주로 파견되는 병사들을 실어나르던 배로, 현해탄에서 러시아 함대의 포격을 받아 침몰해 탑승자 1238명 가운데 1091명이 숨졌다. 사건이 터진 뒤 3년이 지난 1907년 이들의 야스쿠니신사 합사 문제가 이슈로 떠올랐다. 당시 다나카 궁내대신은 이토 히로부미 당시 조선통감에게 “히타치마루에 승선 사망한 영국인 선장, 운전사, 기관사 3명을 이번 야스쿠니신사 합사 때 특별히 합사하려 한다”며 의견을 물었다. 이토는 “제국에 귀화하지 않은 외국인을 합사하는 선례를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며 부정적 의견을 내놨다. 그러나 얼마 뒤 “영국대사관을 거쳐 유족의 의사를 조회하고 그 의향을 확정한 오늘에 이르러 이를 중시하는 것은 어렵고 철회할 길이 없다”며 합사를 인정한다는 회신을 보낸다. 일본 정부는 단순히 유족들의 의향을 묻는 차원을 넘어 “합사가 취소됐다”는 사실을 전했을 때 유족들이 가질 서운한 감정까지도 배려했다. 야스쿠니신사에 강제 합사된 미국인들이 있고, 무단 합사에 대한 유족들의 항의가 이어질 경우 신사가 한국인 유족들에게 했던 것과 같이 무단 합사 전통을 고수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옛 황족의 합사 과정에도 동의 물어
유족들의 동의를 묻는 사례는 옛 황족인 기타시라카와노미야 요시히사신노(北白川宮 能久親王)와 기타시라카와노미야 나가히사오(北白川宮 永久王)의 합사 과정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옛 황족은 이미 황적에서 이탈돼 법적으로는 평민과 다름없는 신분이었는데도, 유족의 동의를 구한 다음 합사가 이뤄졌다. 남상구 연구위원은 “야스쿠니신사는 무단 합사가 메이지 시대부터 이어져온 전통이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분명히 있었다”며 “외국인인 한국인의 무단 합사는 결코 전통이나 관습이란 말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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