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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전쟁장치’를 반대한다

등록 2007-04-20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 한 일본 기자가 한국의 합사 생존자들을 만나며 생각한 ‘야스쿠니 신앙’의 위험성</font>

▣ 광주·대전·군산·벌교= 스나미 게스케 프리랜서 기자·전 기자

일본에는 일본을 위해 생명을 바친 사람을 신으로 받들어 모시는 야스쿠니신사가 있다. 야스쿠니 신앙은 일본이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메이지 시대에 만든 국가 종교다.

필자는 취재진과 함께 한국에 살아 있는 야스쿠니 생존 합사자들을 만났다. “어뢰로 배가 가라앉아서 뗏목을 붙잡고 15시간 정도 표류했어. 구조선이 구했을 때 안심하고 죽은 동료도 있었지. 패전한 것도 모르고 정글에서 9개월 동안이나 숨어 있었는데,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자라 있더군.”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서 만난 옛 일본 해군 군속 박원주(81)씨는 생생한 전쟁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려주었다. 일본에서 전쟁 체험자들이 하는 이야기와 같은 내용을 한국 할아버지들에게서도 들을 수 있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일본인이나 조선인 등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일본의 수호신으로 모셔져 있다.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의 완성

박씨는 한국으로 살아 돌아왔지만, 야스쿠니신사는 일본군이 낸 사망 통지에 근거해 박씨를 야스쿠니의 신으로 모시고 있다. 박씨는 “살아 있는데 내가 왜 거기에 모셔져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야스쿠니신사 자체에 대해서는 특별한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도쿄에서 훈련을 받았을 때, 아사쿠사에서 영화를 보고 우에노 공원을 구경하고 야스쿠니신사에도 갔었다”라고 도쿄의 관광코스 중 하나로 이야기할 뿐이다. 당시 조선인 군인·군속의 야스쿠니에 대한 감상은 그러한 것이었을 터다.

야스쿠니신사를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생각은 저마다 다르다. 필자의 외할아버지도 해군 군속으로 전장에 나갔다. 그는 “죽으면 반드시 야스쿠니신사에 간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애국심이 강한 사람들은 야스쿠니신사에 간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천황폐하 만세가 아니고 역시 엄마야.” 외할아버지는 “죽은 동료들도 야스쿠니에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필자의 일본인 친구(30대 남성)는 “나는 야스쿠니 찬성파다”고 말한다. 일본을 위해 죽은 사람에게 감사하는 시설이 있는 게 당연하다는 이유다. 그는 중국에 살고 있어서 “일본이 중국을 침략한 것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일본인이 전몰자를 위해 비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전후에 태어난 많은 일본인들은 야스쿠니신사에 대해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 전몰자 위령시설이 있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다. 야스쿠니신사는 “나라를 위해 생명을 버리는 것이 국민의 모범이다”라고 배우고 가르치던 시대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70년 동안 호국의 중심이 돼왔다. 전쟁이 끝났다고 야스쿠니에 대한 일본인들의 마음이 변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보통의 일본 사람들에게 1978년 A급 전범이 합사된 뒤에도 그 생각은 큰 변화 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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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은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것에 항의해왔다. 이는 야스쿠니신사에는 A급 전범이 합사되어 있기에 그들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일본 정부가 태평양전쟁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는 것의 표현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A급 전범 합사가 야스쿠니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야스쿠니의 본질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은 사람을 현창하는 종교시설이다. 이 야스쿠니 신앙이 전쟁 전과 같이 일본 국민 전체에 퍼지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는 것이 훌륭하게 되어버린다. 이것은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의 완성이다.

나는 야스쿠니에 반대한다. 국가가 만들어, 국가가 이용하고 있는 신사를 참배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일본 전통 신도에서는 죽은 사람은 적군이나 아군을 가리지 않고 모두 신이 된다. 그러나 야스쿠니신사는 천황을 위해 죽은 사람만을 신으로 하는, 메이지 시대에 만들어진 신흥 종교다. 일본을 위해 목숨을 잃은 일본인뿐만이 아니라, 조선인·대만인·영국인 등도 신으로 모셔져 있다. 천황의 나라를 지킨 영웅이라면 국적은 상관없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야스쿠니신사는 한반도 출신자 2만1천여 명도 일본을 위해 싸우다 죽은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평화헌법과 교육기본법 개정의 의도

야스쿠니 신앙은 국가와 결합해 확장돼나간다. 한국과 중국이 바라는 대로 A급 전범이 제거되면 “군대를 가지고 전쟁할 수 있는 보통 나라로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는 현 일본 정부 수뇌들은 사양하지 않고 당당히 야스쿠니 참배를 하기 시작할 것이다. A급 전범을 싫어해 야스쿠니 참배를 그만둔 천황도 참배를 재개할지 모른다. 이렇게 국가와 야스쿠니신사가 강력하게 연결되면, 일본은 전쟁 전에 가까운 상태로 된다.

아베 신조 총리의 목표는 ‘군대의 불보유’ ‘전쟁 포기’를 결정한 헌법 9조를 개정하는 것이다. 개정을 하게 되면 전쟁을 할 수 없는 자위대라는 비정규군은 전쟁을 할 수 있는 정규군이 된다. 만약 군이 생기고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지금의 일본 국민은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바보 같은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육기본법이 개정되어 일본의 교육에 봉쇄돼 있는 ‘애국심’이 교육의 테마로 포함됐다. 이것에 야스쿠니 신앙이 더해지면, ‘나라를 위해 생명을 버리는 것은 아름답다’라는 사상이 부활해 일본은 정말로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가 돼버린다. 아베 총리가 바라고 있는 나라의 형태다.

일본은 침략전쟁을 반성해 군대를 버림으로써 평화헌법을 가지는 나라가 됐다. 그러나 어느 사이에 강력한 군사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아시아와의 우호관계를 충분히 기르지 않았다. 정치인들은 지금은 사용할 수 없는 군사력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 흐름 속에서 정치인들은 야스쿠니신사라는 존재를 또다시 정치 무대에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에서 항의가 일어날 때마다 우익세력은 “일본을 위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추도하는 것이 뭐가 나쁘냐” “내정간섭하지 마라” “어느 나라라도 전몰자 추모시설이 있을 것이다”라고 반발한다.

그러나 일본은 전쟁을 하지 않기로 결정한 나라다. 전쟁을 하지 않는 나라는, 전쟁 장치의 하나인 야스쿠니신사와 결합돼서는 안 된다. 개인이 야스쿠니에 참배하는 것은 신앙의 자유가 있으므로 문제없겠지만, 야스쿠니와 관계를 만들려는 국가의 움직임에는 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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