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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고비사막엔 눈이 오지 않는다

등록 2007-03-23 00:00 수정 2020-05-03 04:24

사막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몽골의 주요 황사 발원지 횡단기

지구 온난화로 고비사막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한반도에서 일어날 고통의 전조다. 고비사막 인근에선 2월에 이른 봄의 신호탄인 비가 내리는가 하면, 4월에나 찾아와야 할 강풍이 불고 있다. 몽골에선 지금 숲과 호수가 사라지고, 모래언덕이 빠르게 동남쪽으로 이동하는 등 ‘사막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어,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실감하게 만든다. 본격적인 황사철을 앞두고 2월26일부터 일주일 동안 국내 시민단체인 시민정보미디어센터, 환경부와 함께 주요 황사 발원지 중 하나인 고비사막을 횡단했다. 편집자

▣ 울란바토르·오문고비도·우부르항가이도(몽골)=글 이정애 기자 한겨레 사회정책팀hongbyul@hani.co.kr>hongbyul@hani.co.kr
▣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khtak@hani.co.kr

“잠시 후 몽골 울란바토르의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착륙하겠습니다.”

기장의 방송이 떨어지기 무섭게 창밖으로 낮은 구릉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눈이 거의 다 녹아버린 구릉은 검붉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옆자리에 앉은 시민정보미디어센터의 오기출 사무총장이 “이맘때면 눈이 40㎝ 정도는 쌓여 있어야 하는데 벌써 다 녹은 모양”이라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출발 전 오 사무총장은 “체감온도가 영하 30~40도까지 내려갈 것”이라며 침낭까지 준비하라고 엄포를 놨지만, 공항에 도착했을 때 온도계는 영상 2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기상이변’을 몸으로 느낀 첫 순간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기온은 영상

공항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목부터 쭉 이어지는 다국적 기업의 광고 입간판들이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되고 있는 몽골의 분위기를 한눈에 보여준다. 도심 한편에선 옛 소련 시절에 지었다는 아파트가 색이 바래고 금이 간 채 낡아가고 있었지만, 또 다른 쪽에선 고층 아파트와 고급 빌라 단지가 착착 올라가고 있었다. 2005년 몽골을 처음 방문했다는 시민정보미디어센터의 김한나 부장이 “일본 등에서 원조자금이 물밀듯 밀려오면서 올 때마다 거리 풍경이 달라진다”고 몽골의 개발 붐을 전했다. 하지만 또 한편, 저 멀리 산 밑에는 판잣집과 전통 가옥 ‘게르’가 매캐한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통역으로 나온 자야는 “개발 붐을 타고 도심으로 몰려든 빈민들이 석탄, 갈탄을 때어대는 통에 매연이 심하다”며 “갈수록 공기가 나빠져 감기 환자가 늘고 있다”고 했다.

개발의 밝은 빛만큼 긴 그림자를 드리운 울란바토르를 뒤로하고, 다음날 아침 취재진은 오문고비도 달란자드가드시로 가는 쌍발비행기에 올랐다. 달란자드가드시는 황사의 발원지, 고비사막의 입구 격이다. 오전 8시30분, 비행기 바퀴가 맨땅 활주로에 닿자 뿌연 먼지가 일었다. 칼처럼 파고드는 추위에 눈, 코, 입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할 황사 바람을 상상하니 소름도 함께 일었다. 그러나 비행기 밖은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마중을 나온 야드마 오문고비 도지사는 “지난 10년 동안 날씨가 점점 따뜻해지고 있다”며 “올해는 낮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고, 평균 5회 정도 내리는 눈이 두 차례밖에 오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곳은 원래 -30~-15도까지 내려가는 추운 지역이었다. “따뜻하고 건조한 겨울은 고비사막의 토양을 바람에 날리기 쉬운 상태로 만든다는 점에서 황사 발생 증가의 주범으로 꼽힌다”는 말을 듣고 고비사막으로 향하는 차는 시동을 걸었다.

정원 5명을 꽉 채운 랜드크루저 차량이 고물 탈수기의 빨래처럼 텅텅텅텅 소리를 내며 자갈투성이 사막길로 내달린다. 앞차가 일으키는 흙먼지로 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어린 시절 소독차를 따라 뛰던 기억을 떠올리던 찰나, 갑자기 앞쪽에 부드러운 허리곡선을 한 모래언덕이 나타났다. ‘멀츠크엘스’였다. 고비사막은 대부분 자갈과 풀로 이뤄진 황무지 사막이지만, 멀츠크엘스 같은 모래지대도 3% 정도 된다.

사라진 바얀자그숲, 말라버린 울란호수

말없이 앉은 듯 보이는 이곳의 모래언덕들은 지금 북서풍을 타고 동남쪽으로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몽골 연구진은 모래의 이동을 막기 위해 지난해 모래언덕 가장자리에 20㎝ 높이의 돌을 두르고, 25㎝ 높이의 방책을 세웠는데, 지금 그 돌은 모래에 거의 파묻혀 끝부분만 빠끔히 보일 뿐이었다. 이것은 모래언덕이 지난 1년 새 20㎝ 정도 이동했다는 뜻이다. 몽골 지리생태연구소의 하울른벡 박사는 “모래가 세워둔 돌과 방책의 높이가 될 때까지 이동을 멈췄기 때문에 그나마 이동거리가 짧아진 것”이라며 “모래 유실방지 장치가 없는 모래언덕은 (같은 기간) 200~300m 정도나 이동했다”고 말했다. 그는 “모래는 이동하면서 풀밭을 덮어 풀을 죽게 하고, 이 모래들이 공기 중에 머물다가 바람을 타고 멀리 이동하면 황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르 캠프로 돌아온 밤, 뱀처럼 스멀스멀 움직이는 모래언덕이 냉큼 초원을 삼켜버리는 꿈을 꿨다. 잠결에 똑, 똑, 비 긋는 소리를 들었다. ‘그 역시 꿈이려니’ 하며 다시 깊은 잠을 청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게르 문을 열고 나서니, 정말 비가 내리고 있었다. ‘물방울도 모으면 바다가 된다’고 할 정도로 물을 소중히 여기는 현지인들은 “무지개(솔롱고·한국을 뜻하는 몽골말)가 뜨니 비가 왔다”며 반가워했다. 하지만 4월 중순까지 눈이 내리는 이곳에서 2월 말에 비가 내리는 건 이례적인 현상이다. 동행한 환경과학원 김정수 소장은 “이 시기에 비가 내리는 건 봄이 빨리 오는 증거”라며 “그만큼 황사 바람이 부는 시기도 빨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를 맞아 한결 붉고 질척해진 길을 따라 이동하며 마음도 함께 질척거렸다.

그 길을 한 시간쯤 가니 고비 지역에서 가장 큰 숲이었다는 ‘바얀자그’가 나타났다. 하지만 그곳에 숲은 없었다. 붉은 흙과 자갈투성이 땅에 키 작은 나무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그곳에서 숲을 상상할 수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 바얀자그는 1980년대 말부터 모래와 황토 이동이 심해져, 작은 그랜드캐니언처럼 침식지형이 돼버렸다. 한창 때 이곳에선 삭사울나무가 사방 1m 안에 서너 그루씩 들어서 어깨를 견줬다지만, 지금은 개체 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삭사울은 최대 3m 높이까지 자라기도 한다. 그러나 뿌리 내릴 땅을 야금야금 빼앗긴 지금, 삭사울은 거친 자갈 틈을 비집고 나와 겨우 무릎 높이로 삶을 지탱하고 있었다. 나무가 사라진 자리에 ‘삭사울이 많은 지역’이라는 뜻의 지명이 공허하게 울리는 듯했다.

바얀자그 인근의 만들어버군에 있는 ‘울란호수’는 아예 바닥을 드러냈다. 울란호수는 고비 지역에서 가장 큰 호수로, 한때 수심이 5m에 이를 정도로 수량이 풍부했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강수량이 줄어드는데다, 호수에 물을 대던 언귀강 발원지점에 광산이 들어선 뒤 물을 끌어다 쓰는 바람에 2000년 이후 호수는 자취를 감췄다.

“한때 이 근처에서 사람들이 낙타 1만 마리를 키우며 살았다”는 바트후 이장의 말이 믿기지 않았다. 호숫가 근처의 만들리에서 칠십 평생을 살아왔다는 그는 1965년에 찍었다는 사진 두 장을 보여주었다. 사진 속에는 억새처럼 생긴 수생식물이 키 높이로 무성한 울란호수가 담겨 있었다. 사진 한 번, 호수 한 번 번갈아 보지만 도무지 같은 곳이란 걸 믿을 수 없었다. 초콜릿 덩어리같이 검붉게 굳어버린 강바닥처럼, 울란호수의 풍요롭던 시절도 전설처럼 굳어가고 있었다.

물이 마르면서 초지도 함께 사라졌다. 방목이 어려워지자 주민들은 마을을 떠나기 시작했다. 자미앙허를 만들어버군 군수는 “3천여 명에 이르던 군민이 10년 새 1천 명이나 줄었다”고 했다. 이로 인해 “2000년 이후에만 20억투그리크(20억) 상당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다”고도 했다. 호수가 마른 것은 비단 이 마을만의 비극은 아니다. 몽골 자연환경부의 조사 결과, 최근 5년 동안 684개의 강과 1484개의 지류, 그리고 760개의 호수가 사라졌다. “산~천의~~구란 말 옛 시인의 허사로고.”( 중)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로 내내 잊고 있던 노랫말이 씁쓸하게 떠올랐다.

이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사막화 현상은 1년에 수십 일씩 황사와 싸워야 하는 몽골 주민들에게는 크나큰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인구 5천 명이 사는 우브르항가이도 보그드군에서는 집 밖으로 담장 끝까지 쌓인 모래를 흔히 볼 수 있었다. 항가이산맥과 알타이산맥 사이를 지나는 북서풍이 매년 1.5m씩이나 되는 모래를 몰아오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 바트울지는 “모래를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다. 내년쯤엔 또다시 이사를 해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모래밭이 돼버린 이 마을은 10년 전만 해도 초원이었다. 하울른벡 박사는 “몽골 전국 195개의 군에서 이동하는 모래를 피해 주민들이 계속 옮겨다녀야 하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본디 길 위의 인생으로 태어났다지만, 모래에 떠밀리는 유목민의 삶은 나날이 힘겨워진다.

“해마다 슈퍼 황사에 시달릴 것”

고비사막에서 발원한 황사는 편서풍을 타고 발해만과 서해 중북부를 거쳐 24시간 안에 한반도에 도달한다. 고비사막발 황사는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황사 가운데 24%를 차지해, 내몽골 다음으로 큰 영향을 미친다. 현재 몽골은 전 국토의 90%에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 우리나라에 닥치게 될 황사의 위협도 그만큼 커진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연간 황사 발생일수가 1980년대 평균 3.9일에서 2000년 이후에는 평균 12.8일로 3배 이상으로 증가했고, 지난해 4월8일 최고 황사농도가 2370㎍/㎥까지 올라가는 등 갈수록 농도도 짙어지고 있다. 몽골의 사막화 문제를 ‘이웃집 불구경하듯’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이유다.

특히 올해 몽골의 따뜻하고 메마른 겨울은 한반도에 강력한 ‘황사 테러’를 예고한다. 잉흐둡신 몽골 기상청장은 “1962년 이후 처음으로 고비 지역에 2월 말에 비가 내리는 등 봄이 빨라졌고, 몽골 전체 면적 중 50%에만 눈이 오는 등 겨울에 눈이 매우 적게 내렸다”며 “몽골의 강우량이 3~5월에 가장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봄 몽골발 황사는 발생 횟수도 늘어나고, 기간도 길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기출 사무총장도 “이런 추세라면 우리나라는 향후 5년 안으로 해마다 ‘슈퍼 황사’라는 재해에 시달릴 것”이라며 “사막화를 몽골이나 중국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고 함께 대처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는 길, 차가 달릴 때마다 사막 위로 누렇게 마른 풀 더미가 칭기즈칸 무리의 말이 되어 빠르게 따라온다. 생각은 바람이 돼 정복길에 나선 칭기즈칸의 뒤를 쫓는다. 드넓게 펼쳐진 초원 위로 위풍당당하게 말을 달렸을 칭기즈칸의 무리 위로, 갑자기 지금처럼 심한 황사 바람이 부는 장면이 그려진다. 기침을 콜록이는 칭기즈칸. 모래가 지나간 뒤 초원은 모래밭이 되고, 말 먹일 호수는 바닥을 드러낸다. 천하의 칭기즈칸이라도 정복전쟁을 계속할 의욕을 잃지 않을까. 빈곤한 상상 뒤에 추위와 모래바람으로 붉게 거칠어진 그의 후손들의 얼굴이 오버랩됐다.



황사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몽골 정부 그린벨트 조성, 한국은 ‘동북아 환경협력체’ 추진

몽골은 지금 전 국토의 90% 이상에서 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따라 몽골에선 6만9천㎢의 목초지가 사라지고, 식물종의 75%가 멸종됐다. 몽골자연환경협회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 △강수량 저하 등 자연적 요인과, △무분별한 지하자원 개발 △지나친 방목으로 인한 목초지 파괴 등 인위적 요인을 사막화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이에 따라 몽골 정부는 사막화를 막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토의 동서를 잇는 그린벨트 조성사업이다. 몽골의 사막은 개발 등 인간 활동으로 점차 북쪽으로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몽골 정부는 2005~2035년까지 3단계에 걸쳐 북위 46도 지점에 3500km의 그린벨트를 조성하고 있다. 그린벨트를 조성하면 녹지는 지금보다 1.6배 이상 늘어날 것이다.
이와 함께 ‘물 부족’을 극복해 사막화를 저지하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 몽골 서부 에깅강에 댐과 수력발전소를, 동쪽 헤를렌강에 저수지를 건설해 몽골 밖으로 빠져나가는 물을 보관하고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몽골은 1990년대 가축 사유화와 광산 개발의 활성화로 초지가 파괴되는 현상이 가속화되자 무계획한 방목 대신 목초지를 개발하는 방식과 광산 개발 뒤 복구를 의무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사막화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지구 온난화라고 보고 온실가스 주요 배출국에 몽골의 양을 팔고 대신 지역개발자금을 지원받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한국의 대책은 재난 피해 최소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 황사로 인해 연간 3조~5조원의 피해를 입고 있는 한국은 3월13일 황사를 국가안전관리기본계획에 포함시켜 재난관리 차원에서 대응하는 체계를 마련키로 했다.
이를 위해 황사 피해 방지를 위한 별도 위원회를 구성해 5년마다 피해 대책을 만들고, 황사특보 기준도 강화(황사주의보 500㎍/㎥ → 400㎍/㎥ 이상, 황사경보 1000㎍/㎥ → 800㎍/㎥ 이상)하기로 했다. 특히 황사 예보의 정확성을 높이는 방안의 하나로 황사관측망을 국내 21개에서 27개로, 해외 8개에서 20개로 확충하고 개성공단과 금강산 지역 등 북한 내에 황사 관측 장비를 설치하는 것도 추진키로 했다.
황사 대응을 위한 국제 협력체 구성도 추진된다. 정부는 황사 발원지인 몽골과 황사 피해국인 북한을 환경장관회의에 참여시켜 황사 대응 국제협력체계를 개선하고 황사뿐 아니라 황해 오염, 산성비를 포함한 대기오염 등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 ‘동북아 환경협력체’를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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