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전선이 민주 전선을 압도하는 상황, 여권과 한나라당은 한편…진보 세력은 집권에 목 매지 말고 ‘민주노동당+α’ 의 득표력을 확대해야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손호철 서강대 교수·정치학
①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적인 자유주의 세력
노무현 대통령을 포함해 노무현 정부가 진보라는 용어를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현재의 정치 세력은 이념적으로 볼 때 세 가지다. 냉전적 보수 세력, 자유주의 개혁 혹은 자유주의 보수, 진보 세력이다. 한나라당, 열린우리당을 포함한 범여권, 그리고 ‘민주노동당+α’ 세력이 각각 이에 해당한다.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적인 자유주의 세력이다. 진보와는 거리가 멀다.
민주 진영이라고 하면 얘기는 된다. 진보개혁 세력이라고 많이 쓰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진보개혁 세력이라고 보는 것은 민주와 반민주의 대결 구도를 중심축으로 보기 때문이다. 두 전선이 있다. 하나는 민주 혹은 반수구 전선, 또 하나의 전선은 신자유주의를 두고 갈린다. 한나라당과 노무현 정부, 조·중·동, 재벌이 한편이다. 민주 대 반민주의 대결 구도가 끝났다고 보지는 않지만 부차화됐다. 진보개혁 세력이라는 용어로 노무현 정부를 진보 진영에 포함시키는 것은 신자유주의 전선을 희화화하는 잘못된 생각이다. 노 대통령이 대연정을 제안하면서 한나라당과 정책적인 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고 한 점은 솔직한 표현이라고 본다.
민주 전선이 왜 부차화됐나. 민주화가 돼서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 개혁 이후 계급적 분화,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민주 전선을 압도하게 된 것이다. 사회적 양극화를 가져온 신자유주의 개혁이 민주 전선을 압살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주도함으로써 박정희보다 더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를 가져왔고, 지지 기반이 돼야 할 중산층과 서민이 최고의 피해자가 됐다.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국가보안법 폐지와 민주 개혁이 중요하게 여겨지겠나. 박정희 신드롬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잘 봐야 한다. 신자유주의,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파시즘에 대한 향수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② 1992년부터 어슬렁거리는 비판적 지지론의 망령
진보 진영을 하나로 볼 수 없다. 이렇게 된 데는 과거 비판적 지지론의 망령 책임이 크다. 1992년부터 진보의 틀을 만들어갔어야 하는데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이 계속 끌려갔다. 독자적인 자기 기반을 만들지 못한 전략적 책임이 있다. 또 진보적 과제를 구체화했어야 하는데 추상에 머물렀다. 여러 문제에서 서민을 설득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보자. 민주노동당이 노 대통령에게 고마워해야 할 상황이 많이 벌어졌다.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됐고 집값이 폭등했다. 과실은 누가 따먹었나. ‘반값 아파트’를 내세운 홍준표다. 한나라당 당대표실이 텔레비전에 비칠 때 ‘반전·비핵·평화·인권’이라고 나온다. 민주노동당 대표실에 붙어 있어야 할 구호가 아닌가. 21세기의 진보로 나아가지 못하고 19세기에 머물러 있다. 울산을 봐도 민주노동당이 지방자치에서 대안적인 모습을 보여줬나.
총체적인 진보의 대안을 얘기하면, 나는 진보 진영이 집권에 목맬 필요는 없다고 본다. 국가 권력을 장악하지 않고 어떻게 세계를 움직일까 하는 국가주의적 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진보 정당이 우파보다 더 우파적인 내용을 내걸어 집권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정당이니까 국가 경영 프로그램을 제시할 필요가 있고 이해는 한다. 하지만 ‘좌파 정권’은 형용모순이다. 집권하는 순간 좌파가 아니다. 건전한 야당을 압박해서 덜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펼 수 있다면 그게 더 의미 있을 수도 있다.
진보가 대안을 제시 못했다는 점에서 반성할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반성이 집권 세력의 면죄부로 작용하거나 자학하고 숙명론적 패배주의로 흘러서는 안 된다. 마르크스가 틀렸다고 폐기돼야 하는 것이 아니듯이 비판으로서의 대안과 이론도 있다. 한-미 FTA를 안 하면 되지 왜 대안을 내놓으라고 하나. 비정규직 법안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되지 무슨 대안을 찾나. 정리해고가 아니라 일자리 나누기, 공기업 민영화가 아니라 공공성과 효율성을 지키기 위한 개혁위원회, 노동자 경영 참여 등 실현할 수만 있다면 중범위 개혁안들 당장이라도 100개는 얘기할 수 있다. 문제는, 있는 것도 관철하지 못하는 사회적 힘의 관계다.
③ 사회의 급진화, 문화적 담론 만들자
21세기의 야만,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암울한 그림이 그려진다. 최악의 경우 있는 놈들은 ‘요새국가’에 살고, 나머지들은 바깥의 ‘약탈국가’에 사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를 어떻게 저지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과제다.
사회의 급진화가 필요하다. 진보 진영이 진보적 담론을 통해 파편적 민중들의 체험을 조직화하고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교육과 언론, 시민사회의 진지전이 중요하다. 정치 사회에서는 진보 정당이 21세기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박정희 모형이나 신자유주의가 아닌 민주적·효율적인 경제 모형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문화혁명이다. 고도성장이 답이 아니다. 지속 가능한 성장, 덜 일하고 덜 소비하고 가난하더라도 주변과 나누는 식의 문명 전환을 이룰 문화적 담론을 만들어가야 한다.
④ 범여권 좌파까지 포함해 단일후보 내야
대선의 목표는 반신자유주의가 주전선이다. 반신자유주의 전선에서 민중들이 약진하고 ‘민주노동당+α’ 세력의 득표력을 확대하는 것이 첫째다. 둘째는 범여권의 신자유주의 세력을 반신자유주의 세력으로 견인하는 것, 셋째가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하는 것이다. 목표는 같고 우선순위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대선을 통해 진보 진영의 개편이 필요하다. 민주노동당이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 반신자유주의, 반수구라는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범여권의 좌파는 물론, 민주노동당보다 더 왼쪽에 있는 세력까지 포함해 논쟁을 통해 강령을 조정하고 단일 후보를 내어 대선에 임해야 한다.
⑤ 내용은 래디컬하게, 스타일은 부드럽게…
때가 늦었지만 활발한 논쟁이 필요하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로 국한할 게 아니라 김대중 정부 이후 자유주의 정권 10년을 평가해야 한다. 역설적이게도 진보 논쟁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노무현 정부가 워낙 인기가 없고 여권이 풍비박산 상태이기 때문이지 않나. 진보 진영도 여권의 공황상태의 반사효과를 누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얘기는 다시 여권의 주자가 결정되면 환경이 달라지고 대선에서 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것이다.
논쟁을 활발하게 벌이되 예민한 문제인 만큼 사려 깊어야 한다. 논객들이 정치적 효과를 생각해 생산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내용은 래디컬하게(급진적으로) 하더라도 스타일은 부드럽고 섬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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