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민주주의 강화나 자본주의 교정에 실패한 참여정부는 보수 정부…민노당이든 열린우리당이든 수평적 연대를 통해 단일 국민후보 내야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정대화 상지대 교수(창조 한국 미래구상)
① 수구보수로 가지 않는 사회적 기반 해체
노무현 정부는 굳이 표현하자면 개혁지향적 정부, 개혁 정부라고 규정할 수 있다. 진보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현 정부를 진보 정부라고 볼 수는 없다. 진보, 보수의 틀로 보면 보수인데 개혁지향적 보수 정도라고 할 수 있겠다.
정치 영역에서 진보를 얘기하려면 대의제를 넘어서는 민주주의의 질적 발전 구상이 있어야 한다. 유럽의 평의회 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 등이 진보적 정치 의제다. 직접 민주주의를 어떻게 구현할 것이냐가 중요하지 선거 과정의 투명성 강화 등은 자유주의 의제다. 경제 영역에서 진보를 얘기하려면 자본주의 교정에 관해 얘기해야 한다. 사회정책적 차원에서 보면 피지배 계급, 소외 계급 해소 등을 얘기해야 한다. 무상의료, 무상교육, 복지 확대, 참여 노동정책 실현 등이 있어야 진보적이다. 현 정부가 직접 민주주의 강화를 위해 노력했나? 자본주의 교정을 위해 노력했나? 유연성 여부를 떠나 진보라고 볼 수 없다.
참여정부에 기대했던 과제들이 있었다. 지역 구도 해체, 양극화 해소, 노사관계 안정 선진화, 교육·환경 등 여러 의제에서 기대했던 성과를 내지 못했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처럼 거꾸로 간 경우도 있다. 기대했던 과제들을 수행하는 데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개혁진보 진영에 상당한 혼란을 초래했다. 어떻든 우리 사회가 수구보수로 가지 않는 사회적 기반이 있는데 그 기반을 해체하는 작용을 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참여정부는 넓은 의미에서 실패했다.
② 참여정부와 진보는 구분해 평가해야
무능한 진보라는 표현은 어폐가 있다. 직접 정치 행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권력을 장악하지 않으면 구체적인 정책 개발과 실행에 개입하기 쉽지 않다. 진보는 자기 정책을 만들어 실행해본 적이 없다. 참여정부의 무능을 진보 진영의 무능과 등치해서는 안 된다. 진보 진영은 아직 평가받을 만한 위치에 있어본 적이 없다.
진보적 정치 세력인 민주노동당은 유능한가라는 질문은 가능하다. 대단히 유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참여정부, 민주노동당에 참여하지 않은 비정치적 진보 진영은 권력 혹은 정치와 무관해 평가하기 어렵다. 수구와 보수는 유능한가?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대안이나 미래 비전이 그들에게 있나? 없다. 진보가 무능하다는 얘기는 근거가 없다.
③ 노동자와 민중의 정치 세력화가 중요
진보 진영이 그리고 있는 미래 한국 사회의 모습은 현재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 구조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적 양극화를 비롯한 사회·경제적 문제, 분단 구조, 대미 예속 구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진보 진영의 중·장기적 과제다. 자본주의를 뛰어넘는 것이 쉽지 않은 역사적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서구적 수준의 조절된 자본주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사회를 기대하는 것 아닌가. 이런 과제를 위해 노동자와 민중의 정치 세력화가 중요하다.
④ 최장집, 오해받을 말 한 것 자체가 잘못
대안이 아닌 게 분명한 사람들이 대세몰이를 통해 대선 정국을 주도하니까 우리 사회의 미래가 암담하다. 상당한 어려움 속에 6월 항쟁을 거쳐 민주화를 해오고 있는데 한나라당이 다시 집권한다는 것은 정권 교체 차원에서 민주주의의 정착이 아니라 한국 민주화의 후퇴로 본다. 후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어서 참담하다.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그동안 활동해온 것을 감안하면 오해받을 만한 말을 한 것 자체가 잘못이다. 열린우리당이 잘못했다고 해서 정권이 한나라당으로 넘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으로 넘어가도록 해야 진보적 학자다. 진보학자의 머릿속에 진보 정당이나 다른 대안 없이 한나라당을 떠올렸다는 것은 문제다. 한나라당이나 열린우리당이나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진보 진영에서 열린우리당을 비판하는 관점에서 “그 당이 그 당”이라는 얘기는 할 수 있다. 하지만 차라리 한나라당으로 가버려라거나 한나라당이 집권해서 찬밥을 먹어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식은 굉장히 위험한 견해다. 운동이나 진보를 잘 모르는 소리다. 진보는 기회가 있을 때 하나씩 챙겨나가는 거지, 다 주고 막판에 가져오는 식의 역사 발전은 없다.
이번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이 아닌 세력이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구도다. 진보개혁 진영이 연대하는 틀을 짜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다. 한나라의 분열 가능성이 중요 변수이긴 하나 진보 진영에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니다. 연대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1차적으로는 이대로 갈 때 우리 사회가 어떻게 될 것이냐, 신보수·신자유주의의 강화를 막아야 한다는 진보적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 미래구상은 진보개혁 진영이 단일 국민후보를 내어 대선에서 승리하자고 제안한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당신이 중심이 돼달라는 얘기를 못한다. 유일 중심을 얘기하면 연대가 어렵다. 누가 중심이 되고 누가 주변이 되나. 수평적 연대가 필요하다. 연대에 더 적극적이고, 더 잘하고, 힘있는 집단이 있을 테니 누가 더 많은 지지를 받느냐에 의해 판가름이 날 것이다. 진보개혁 진영이 단일 국민후보를 내어 대선에서 승리하자고 제안한다. 수평적 연대가 필요하다. 누가 더 많은 지지를 받느냐에 따라 판가름이 날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잘하면 민주노동당이 될 수도 있고, 열린우리당이 될 수도 있다.
비판적 지지론은 양김 정치가 소멸되면서 같이 소멸됐다. ‘386 정치인’의 수혈이 마지막이다. 개개인의 선택까지 비판적 지지론으로 보면 너무 그 의미가 넓어진다. 사표 방지 심리로 볼 수도 있다. 개인 정대화가 노무현 혹은 권영길을 찍는 것을 비판적 지지로 보면 모호하다. 그런 점에서 비지론은 존재하지 않는다. 당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누구를 찍을 거냐, 진보적인 인사가 개혁적인 후보를 찍는 것은 있을 수도 있다.
⑤ 논쟁에서 정책 결정정권자는 빠져야
진보 논쟁은 굉장히 소중하다. 세 분(최장집·조희연·손호철)께 감사하다. 아직 대단히 의미 있는 콘텐츠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논쟁의 출발점이다. 10여 년의 공백을 깨고 진보 진영에서 자기 평가가 나오고 있고, 앞으로 뭘 어떻게 할지 미래를 그려가는 작업을 시작했다.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 이후 20년 만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분석하고 미래를 구체화하는 방법론을 만들어내는 논쟁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참여정부 평가에 국한돼서는 안 된다. 미래에 대한 토론으로 넘어가고 정치학자, 사회학자, 문학자 등 논쟁에 참여하는 ‘선수’들이 보강돼야 한다. 특별히 경제학자들이 많이 들어올 필요가 있다. 논쟁이 풍부해지기 위해서는 정책을 집행하는 결정권자는 빠지는 게 좋다. 이게 옳다, 저건 아니다 하고 있는데 너 왜 욕해 이런 식으로 가면 안 된다. 노 대통령은 가급적 사회적 논쟁을 지켜보는 자세를 갖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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