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들이 매혹당할 수밖에 없는 다섯 개의 감성소설 키워드… 오래된 전통, 외톨이와 이키, 억압 없는 가족과 깔끔한 문체
▣ 강유정 문학평론가
2007년 현재 일본 소설은 한국 문화 안에서 일종의 현상에 가깝다. 문학이라는 제명이 구매력을 갖춘 독자들의 시선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상황에서 일본 소설은 가장 잘 팔리는 문학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잘 팔린다는 것은 비단 서점가의 판매고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어서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다른 장르로의 각색까지를 포함한다. 소설 판매량에서도 그리고 영화의 원작으로서도 일본 소설은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일본 소설의 어떤 면들에 독자 대중은 매혹당하는 것일까?
keyword 1. 뻔하지 않은 멜로

. 지금 나열한 작품들은 모두 영화로 제작된 일본 소설들이다. 공교롭게도 이 작품들은 모두 우리가 멜로라고 부르는 장르에 포섭된다. 멜로로 약칭되는 멜로 드라마는 두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다 헤어지게 된다는 스토리 라인을 관습적으로 활용한다. 관습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멜로 영화가 진부하고 뻔한 이야기가 되기 쉽다는 사실을 뜻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 뻔하디뻔한 멜로적 관습을 일본 소설과 영화가 새롭게 갱신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은 장애를 지닌 여성과 남자의 사랑이라는 점에서 그 소재가 신선하고, 는 연상의 유부녀가 친구 아들과 사랑을 나눈다는 점에서 파격적이다. 이는 에 등장하는 게이와 알코올중독자의 사랑과 같은 독특한 인물들의 사랑으로 변주되기도 한다. 한국에서 읽히고 있는 일본 소설들의 대부분이 사랑과 연애, 이별을 다루고 있는 연애소설이라는 점은 이런 상황을 고스란히 반영해준다. 독특한 사랑의 양상들은 멜로적 선택에 국한되는 것만이 아니라서 사도마조히즘에 가까운 일탈성이나 선생님과 사랑을 나누는 의외성으로 연계되기도 한다. TV드라마로 제작되어 국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역시 같은 맥락에 있다. 이혼한 뒤 다시 사랑을 느끼게 되는 부부라는 소재가 현실적이면서도 독특한 선택으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실상, 연애소설은 일본 소설사에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키’(粹)라는 말로 요약되는 연애의 정서는 사랑하되 그것을 은닉하는 전략을 내포하고 있다. 진지하지만 심각하지 않은 연애, 한국의 독자는 그 낯선 정서에 매력을 느끼는 셈이다.
keyword 2. 일탈 그리고 은밀한 쾌감
가네하라 히토미의 소설 에는 온몸 구석구석을 뚫는 데서 존재감을 찾는 두 명의 젊은이가 등장한다. 시작부터 압도적인데, 이런 식이다. “스플릿 텅이라고 알아?” “뭐야 그게? 갈라진 혓바닥?” “그래, 맞아. 뱀이나 도마뱀 같은 혓바닥. 인간도 그렇게 할 수 있다. 볼래?” 소설의 주인공인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이름을 묻지도 않은 채 섹스를 나누고 혓바닥에 구멍을 뚫어 궁극엔 둘로 나눠질 순간을 꿈꾼다. 상식적 수준으론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이들의 행동은 담담한 묘사를 통해 아웃사이더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까지 이른다. 마약이나 섹스, 알코올에 중독된 인물들은 어떤 점에서 일본 소설에서 자주 목격되는 인물형이라고 할 수 있다. 무라카미 류와 같은 작가가 잘 알려져 있는데, 중요한 것은 일본 작가들의 소설에서 이 일탈이 단순한 소재의 차원이 아닌 제법 진지한 존재론적 질문으로까지 확장된다는 사실이다. 한국이나 다른 나라의 소설에서는 발견하기 힘든 일본 소설 특유의 질감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자로 읽고 상상하는 일탈적 세계는 범속한 일상의 억압 아래 놓여 있는 독자들에게 은밀한 쾌감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keyword 3. 세상에 관심 없는 나는 외톨이
일본 소설의 특징 중 하나는 주인공이 대개 독특한 인간형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재일동포 2세, 외톨이 소녀, 날카로운 것에 공포를 느끼는 의사, 요리사, 선천적 장애를 지닌 사람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일본 소설의 주인공들은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면모와는 구분된다. 그들은 삶에서 중요한 가르침을 주기도 하고 이상향을 제시하는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결국 외톨이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 사회 속 인간 관계를 상징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소설의 오랜 전통을 지닌 일본 문학 속에서 혼자라는 것, 세상으로부터 폐칩된 채 ‘나’의 문제를 고민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에 가깝다. 우리에게 읽히고 있는 일본 소설의 주인공들은 역사, 전쟁, 경제와 같은 거시적 담론에 벽을 쌓은 채 연애나 자아와 같은 개인적 문제에 매달려 있다. 10대 외톨이 소녀의 이야기인 이나 ‘나는 공부를 못한다’고 선언하는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 속 주인공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인물들은 거시적 담론에 대해 무지하거나 관심이 없다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탈강박적 가벼움, 그것은 여가 선용을 위한 독서에서 간과할 수 없는 매혹으로 받아들여진다.
keyword 4.가구나 요리 기구 같은 가족
한국의 드라마나 소설에서 가족은 억압의 중심이자 갈등의 근간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남녀 간의 사랑은 부모님의 반대에 가로막혀 좌절되기 일쑤이고 부모 대의 원한이 자식에게까지 이어져 현재의 삶이 고단해지기도 한다. 일본 소설을 읽는 주된 독자층이 20~30대 젊은 여성들임을 고려할 때, 이는 여러 가지 점을 시사한다. 실상 한국의 20~30대 여성들은 자아의 성장과 개발을 절대선으로 알고 자라온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자아성취와 평등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자라온 20~30대 여성들에게, 하지만 실제의 삶은 그렇게 간단치 못하다. 공고한 가족 이데올로기의 틈을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일본 소설은 다르다. 일본 소설 속에서 ‘가족’은 그저 가구나 요리 기구처럼 없느니 갖춰져 있는 게 더 편리한 개념으로 그려질 뿐이다. 가족의 개념이 느슨한 만큼 가족으로부터의 억압은 없다. ‘멋진 창녀’인 엄마와 함께 사는 것도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아버지가 게이가 된 것도 별 상관이 없다. 이는 곧 일본 소설 속에는 정상 가족에 대한 강박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족으로 시작해 가족으로 귀결되는 한국의 문화 속에서 이 새로운 가족의 양상은 어느 정도 매혹을 지닐 수밖에 없다.
keyword 5. 문체, 일본식 도시락처럼
많은 독자들은 일본 소설의 특장점으로 감각적이고 선명한 문체를 꼽는다. 에쿠니 가오리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일본 소설의 문체들은 고도로 숙련된 문학적 감수성의 발로라기보다 감각을 자극하는 명료함을 특징으로 한다. 대개 일본 소설의 문장은 단문일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이별을 고하고 남자가 집을 떠난다. 여자의 말은 이렇다. “놀러와.”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는 한편, 감각적으로 조형하는 이런 문체들은 어떤 점에서 번역가들의 감각에 의존하는 바도 크다. 탈강박적인 주제는 가볍고 단호한 문장들을 통해 세련된 무관심으로 확산된다. 깔끔한 일본식 도시락처럼, 일본 소설은 문학 수업이 아닌 취미를 위한 여가 선용으로서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아이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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