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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찬성하면 탈당 이상도 가능”

등록 2007-01-19 00:00 수정 2020-05-03 04:24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이 말하는 개헌 제안의 진정성…대통령이 개입해서 대선판을 흔드는 게 가능한 일인가

▣사회=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정리=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은 1월12일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을 만났다. 노무현 대통령의 속내를 더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2시간 가까이 진행된 인터뷰 중에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는 ‘정략’과 ‘진정성’이다. 이래서 정략적이지 않으냐고 물으면 노 대통령의 진정성을 강조하는 답이 나왔다. 이 실장은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의 개헌 제안 취지에 공감해 개헌에 찬성한다면 탈당 이상의 요구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3개월 내에 끝내면 대선에도 지장 없어

노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의 진정성이 시점 때문에 의심받고 있다. 취임 직후나, 적어도 지난해부터는 공론화를 시도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어느 때 해야 진정성이 있는 건지 되묻고 싶다. 진정성을 갖고 얘기하면 (지금이) 가장 진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시기다. 임기를 1년 남겨뒀다. 헌법학회나 정치권, 언론 모두 2006년 말이나 2007년 초가 적기라고 얘기해왔다. 국민들도 4년 연임에 대개 공감하고 있다. 시기를 문제 삼는 것 자체가 정략적이다. 대통령은 연초에 빨리 개헌을 제기해야 대선 일정이나 다른 것에 지장을 주지 않을 거라고 봤다. (개헌을) 3개월 내에 끝낼 수 있지 않겠는가? 개헌이 4월 정도에 끝나면 대선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래서 가장 적정한 시기가 지금이라는 공통분모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정치권과 많은 국민들이 왜 대통령의 진정성을 의심하고 정략적이라 보는 것 같나?

=첫 번째, 우리 사회에 특히 참여정부가 출범한 이후 지배하는 몇 가지 여론 시장의 프레임(틀)이 있다. 몇몇 신문을 중심으로 하는, 솔직히 말해 ‘조·중·동’ 프레임이 있다. 그 프레임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가 반노무현 대통령 콘셉트 아닌가? 그 속에서 대통령 정책 구상과 그에 대한 언급이 끊임없이 왜곡됐다. 그게 큰 영향을 미쳤다.

두 번째로 5년 단임제의 부정적 속성이다.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시작되는 것이 대권 레이스(경주)다. 다음 레이스 출범이 정당의 당연한 역할이자 몫이겠지만 그런 게 너무 강력하게 작용하는 게 우리 정치 구조다. 5년 단임제 아래에선 우리의 지난 20년이 보여줬지만 현재의 권력과 미래의 권력이 싸울 수밖에 없다. 이것이 대통령을 향한 프레임 속에서 상호 작용해 국민에게 그렇게(정략적으로) 비쳐진 측면이 있다.

또 하나는 우리나라 개헌의 역사 때문이라고 본다. 깜짝 놀란 게 하나 있다. 대통령이 개헌을 발의했을 때, 어느 청와대 직원이 택시를 타고 출근하는데 택시기사가 “대통령이 또 한 번 더 해먹겠다는 것이냐”고 욕하더란다. 심지어 청와대의 20, 30대 젊은 직원들 중에도 그렇게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우리 개헌 역사가 그렇다. 현행 헌법이 9차 개헌이다. 그전까지 개헌의 역사는 초·중·고에서 배운 것처럼 집권자의 집권 연장 수단이나 장기 독재 수단으로서 이뤄졌다.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사실 여부를 떠나서 개헌에 대해 오해와 편견을 가지고 있다.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당적을 유지하면서 올 연말 대선을 앞두고 판을 흔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한나라당이야말로 가장 유리한 처지

=일부 신문에서는 재집권 의도, 집권 연장이라는 표현도 썼다. 그러니 국민들에게 “대통령이 또 하자는 것이냐”는 뉘앙스(어감)를 줄 수 있다. 진정성을 자꾸 말하는데, 개헌을 제안할 때 한나라당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라는 예측은 했다. 그래도 발의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전에 몇 번 개헌에 관한 자신의 소신을 얘기했기 때문이다. 여야 간에 ‘원포인트’ 개헌은 공론화됐고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부분이었다.

현실적으로도 지금 개헌이 이뤄지면 한나라당에 과연 어떤 손해가 갈 것인지 상상이 안 된다. 한나라당은 가장 강력한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정당 지지도도 그렇고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의 개인적 지지도도 그렇다. 열린우리당이 그 반대 처지에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한나라당이야말로 개헌을 받아들이는 순간 가장 유리하게 되는 조건이 아닌가 싶다. 한나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과연 이게 정치 지형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진정성을 따지는 것은 우리의 오랜 정치공학적 사고방식 탓 아닌가?

대통령이 얻을 이익이 뭐가 있나? 임기를 마치면 다음에 대통령이 되는 게 아니다. 또 일부에서 정국 주도권을 잡는다고 하는데, 임기가 끝나는 대통령이 정국 주도권을 잡게 되면 뭐가 달라지나? ‘식물 대통령’보다는 힘을 갖고서 끝까지 국정을 잘 챙기는 게 좋지 않은가? (일부에서는) 대통령이 제기한 모든 부분을 정략적이라 주장해왔고 왜곡해 비판해왔다. 그래서 대통령을 정치 10단으로까지 만들었다. 정치권의 이런 인식이 안타깝다.

대통령이 당적을 버릴 수도 있다고 했는데?

=당적을 가졌다고 진정성을 따지는 것도 이해가 안 간다. 진정성이 담보 안 돼 찬성을 못한다면 대통령이 왜 탈당을 마다하겠나? 그 이상의 요구에도 필요하다면 응할 수 있다.

개헌을 왜 꼭 이 정권에서 해야 되는가?

=이 기회에 이 문제를 풀어내야 한다. 그래야 다음 대통령이 앞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개헌 문제에 발목 잡히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추진력을 갖고 해나갈 수 있다. 지금의 대통령이 (개헌을) 해주는 게 타당한 책무다.

4년 연임제, 국회의원 임기와 대통령 임기 일치에 공감한다는 여론이 60%에서 많게는 70% 이상이다. 다만 현 정부가 아닌 다음 정권이 하는 게 맞다는 의견이 많다. 그런데 그걸 놓고 따져보면 어차피 개헌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정치적 과제가 됐음을 보여준다. (대선 후보들이) 다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들도 개헌을 원하면, 다음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우리 사회와 정치권은 개헌 정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임기 말에 해선 안 된다는 게 지금 여론이고 정치 지도자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임기 초에 하라는 것인가?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개헌 정국으로 들어가는 게 합당한가? 그랬을 때 만일 4년 연임제를 하려면 임기가 어떻게 조정돼야 하냐? 다음 17대 대통령은 임기가 2013년 2월, 국회의원은 2012년 5월 말이다. 8~9개월의 간극이 생긴다. 4년 연임제를 맞추려면 대통령이 임기를 1년 단축해야 한다. 그게 가능하겠는가?

제안이 옳으냐 그르냐를 보라

대통령이 개헌을 통해 여권에 불리한 대선 판세를 뒤집어보려고 한다는 게 한나라당의 기본적인 시각인데?

=대통령이 현실적으로 야당이 항상 주장하듯이 개입해서 대선판을 흔든다는 게 가능한 일인가? 우리 국민 수준에서 용납될 일인가? 주장을 위한 주장이고 시비를 위한 시비다. 제안이 옳으냐 그르냐로 봐달라. (한나라당에서) 다음 정부에서 하겠다고 했는데 그때 하면 큰 혼란이 눈에 보이는데 그걸 알면서도 왜 안 하는지 모르겠다. 왜 찬성하고 반대하는지가 토론 과정에서 제시되고, 국민들이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그 기회를 정당정치, 의회정치에서 무시하겠다면서 함구령을 내린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개헌을 제안하면서 한나라당이 받아들이지 않을 게 빤히 예상됐던 것 아닌가?

=한나라당의 태도가 어떨지 반반으로 봤다. 한나라당이 지금 국면에서 불리한데도 대통령이 강요해서 하는 상황이라면, 그건 우리가 정략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에도 공감대가 있었다. 제안하는 순간 한나라당이 받아버리면 그야말로 조용히 국회에서 끝난다. 여야 중 제1당인 열린우리당과 제1야당인 한나라당으로 개헌선이 확보되는 것 아닌가? 국가에도, 다음 정부에도 좋다. 한나라당에도 불리한 게 하나도 없다. 그런 쪽에 무게를 뒀다.

국가의 장래를 위해서 옳다면 누가 제의했든지 그걸 수용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더군다나 헌법 개정을 합법적으로 제의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밖에 없다. 한나라당은 오히려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노무현 대통령 임기 안에 빨리 처리하고 다음 대통령이 부담 없이 가는 게 좋은 일 아닌가.

개헌안 통과를 낙관적으로 보나?

=당장 현실적 난관이 생겼다. 개헌의 필요성과 취지를 국민들도 다수가 공감하고 있지만… 정치권에선 정파별로 이해관계에 따라서 태도들이 다르다. 하지만 이게 옳은 방향이다, 맞다 싶으면 국민적 동의 아래, 한나라당의 태도와 접근 방법도 달라질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참여정부가 얼마나 최선을 다하느냐가 전제돼야 하겠지만.

한나라당은 대화에 응하지 않는 무시 전략으로 나가고 있다. 태도 변화가 있을 거라고 보나?

=예단할 수 없다. 당위적으로 얘기해서 ‘지도자가 되겠다, 다음 정권을 책임지겠다’는 정당과 지도자라면 옳고 그르냐가 판단의 가장 큰 잣대가 돼야 한다. 어떤 행동을 하고, 그것을 선택하는 데 용기·지혜·소신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 정치사를 보면 직선제 이후 그 과정에서 지도자들도 태어나지 않았는가.

3년 안에 다 하라는 얘기인가

부결됐을 경우 노무현 대통령이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지 않겠나?

=뚫어야 할 어려운 과정은 있지만 최선을 다할 것이다. 부결을 가정하는 것은 성급한 얘기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결과가 성공할지는 반반이다. 아직 시간이 있다. 대통령은 자신의 신임 문제를 걸 이유는 없다고 했다. 그런 문제는 아니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사회가 모든 것을 정략의 프리즘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게 커다란 국력 소비 현상으로 돼버린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그 폐해가 너무나 크다. 때론 5년 단임제 대통령제에서 임기를 1년 남겨둔 대통령은 다 식물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게 우리 인식 프레임 아닌가? 임기를 1년 남겨둔 대통령이 왜 시대적·역사적 책무를 챙기냐는 거다. 하지만 5년 중 1년은 임기의 20%나 된다. 임기 초기 1년, 임기 말 1년을 빼면 나머지 3년 안에 다 하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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