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 텍스트엔 관심 없고 주관적 신념만을 설파하는 일부 목사들…“빨갱이들이 정부를 장악했다”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임상치료
▣ 정용섭 대구성서아카데미 원장· 저자
요즘 대중 설교자들의 설교를 검토하면서 필자가 그들에게서 느낀 가장 큰 문제점은 그들이 성서 텍스트에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형식적으로는 성서를 근거로 설교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자신의 주관적인 신앙 체험만을 청중에게 강요하고 있다. 다른 영역에서도 비슷하겠지만, 종교 생활에서 체험은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 매우 특별하게 기능한다. 설교자의 체험이 보편적인 타당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청중은 그것을 그대로 믿고 싶어한다.
“나는 어젯밤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라거나 “심장에 구멍이 난 사람을 내가 안수하고 기도했더니 수술하지 않고도 치료되었습니다”, 또는 “십일조 헌금을 드렸더니 사업이 번창하게 되었습니다”가 그 예이다. 심지어 “나는 천당에 갔다 왔습니다” 하는 식의 간증들이 한국 교회 강단에 흔한 이유는 청중이 그런 것에 열광적으로 반응한다는 데 있다. 그런 신앙 형태들이 설교 강단에서 반복적으로 강화되는 과정에서 신자들은 설교자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아멘!”으로 받아들인다. 일종의 ‘종교적 세뇌’인데, 프로이드는 그것을 가리켜 ‘집단적 노이로제’ 현상으로 보았다. 이런 작업을 직업적으로 잘하는 사람들이 바로 사이비 교주들이다.
흉측한 체험의 확대재생산
한국 교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분들의 체험 중에서 아주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것 중의 하나가 공산주의에 대한 것이다. 신도 수 10만 명을 상회하며, 지난해 여름 세계감리교대회(WMC)가 열렸던 금란교회의 김홍도 목사는 설교 시간에 아래와 같이 술회한 적이 있다. “저희 형제자매들은 6·25 동란으로 피난을 다니면서 별별 고생을 다 했습니다. 보릿겨, 쌀겨도 먹고 술 찌끼미도 물에 풀어먹고 구호 물자, 밀가루, 옥수수 가루를 먹으며 연명해왔습니다. 좌우간 사업하는 것도 없고 직장도 없는데 아홉 식구가 죽지 않고 살았다는 것이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해주셨던 것입니다.”(2006년 10월15일)
필자는 다른 분들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김 목사의 그런 체험에 나름의 진정성이 있다고 본다. 가족과 친지가 인민재판으로 잔인하게 처형되는 장면을 직접 몸으로 겪고, 북한 지역에서 기독교가 완전히 해체되는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어떻게 북한 정권을 용서하고 신뢰할 수 있겠는가. 북한은 원수이며, 따라서 북한에 온정적인 세력은 모두 친북좌파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깊은 정신적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김 목사는 오늘도 이렇게 설교한다. “우리나라의 형편이 월남이 망할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습니다. 미군이 철수하면 남한도 틀림없이 적화통일되고 1천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대학살을 당하거나 보트피플이 되고 말 것입니다.”(2006년 10월22일)
이런 체험과 현실 인식은 반공학습을 통해 상당히 많은 사람들에게 오늘 이 시간까지 이어져왔으며, 때로는 확대재생산됐다. 흉측한 체험의 역사화이다. 말하자면 ‘예수천당, 불신지옥’ 패러다임이 개신교 신자들에게 구조화된 것처럼 반공주의도 구조화됐다는 말이다.
북한, 공산당, 좌파를 향한 이런 적개심은 ‘부흥사’류의 김 목사만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장로회신학대에서 교수를 하다가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 중 한 곳인 새문안교회에서 목회하는 이수영 목사의 설교에서도 그대로 표출된다. “공산주의는 역사상 가장 현저한 하나님의 반대자이고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들의 이론 바탕 자체가 무신론이며, 하나님을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가장 철저하게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했고 그리스도인들을 말살했습니다.”(2004년 3월21일) “동양의 예루살렘 같았던 북한 땅에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하나님의 교회들을 압살했으며, 그리스도인들을 박멸한 공산당과 그 수괴 김정일이 이 땅에까지 인공기 휘날리며 나타나는 것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2004년 9월12일)
정당 대변인을 뛰어넘는 정치 설교
미국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총신대 교수를 거쳐 현재 대구동신교회의 담임 목사로 있으며, 평소에 기독교 영성에 깊이 천착하는 설교자로 이름이 난 권성수 목사도 북한 문제에서만은 설교자가 지녀야 할 평상심을 잃은 모습을 보였다. 그는 지난해 북한의 핵실험 이후 행한 설교에서 북한 정권을 깡패, 강도 집단으로 규정하면서 “김정일과의 평화 협정은 의미가 없다”고 하고, 자신은 북한 정권을 도와주는 금강산 여행을 안 간다면서, 남한 주민의 안보 불감증을 도덕적 해이와 연결시키고 있었다.(2006년 10월15일) 지금 ‘뉴라이트’ 운동을 솔선수범하는 김진홍 목사도 이런 부분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여당 국회의원 중에 주체 사상가들이 있다거나, 현 정권은 왼쪽으로 치우쳤으므로 2007년에 교체해야 한다는 발언(2005년 10월9일)은 그의 설교에서 흔하게 발견된다.
필자는 지금 설교자들의 정치 이념적 소견이 옳은가 그른가를 평가한 게 아니라, 설교가 성서 텍스트의 중심에서 벗어나 설교자의 주관적 신념이 설파되는 기회로 왜곡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은폐의 방식으로 담지하고 있는 생명의 비밀을 풀어내고 해명해야 할 설교 시간에, 정치학자들도 단정적으로 언급하기 힘든 이슈들을 칼로 두부 자르듯이 청중에게 강요하는 것은 설교가 아니라 선동이며, 성서 해석이 아니라 정치공학에 가깝다. 물론 삶과 역사에는 정치적으로 작동되는 영역이 크기 때문에 구약의 예언자들도 정치적인 발언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늘 교회 강단에 넘쳐나는 정치 설교는 그것과 차원을 달리한다. 말꼬투리 잡기에 능한 정당 대변인이나 극단적인 이데올로그가 쏟아낼 만한 아래와 같은 진술들을 보라. “청와대를 비롯하여 정부 요직에 북한의 간첩과 친북 공산주의 주체사상을 찬양하는 빨갱이들이 차고 앉아서”(김홍도, 2006년 10월15일) “김일성, 김정일 부자를 영웅으로 숭배하며 주체사상을 신봉, 선전하고 북한 체제를 찬양하며 학생운동을 주도하던 세력들이 지금 정부·여당, 정보 및 사정기관, 방송언론과 학교, 노동계와 문화계, 심지어는 군과 교회에까지 구석구석을 장악해가고 있습니다.”(이수영, 2004년 3월21일)
지난 시절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북한 정권에 대한 기독교의 체험이 아무리 고통스러웠다 하더라도 이제 전쟁이 끝난 지도 50년이 지났고, 공산주의 이념도 퇴색해버린 이 마당에 여전히 1960~70년대의 냉전적 사고방식으로 설교한다는 것은 우리 설교자들이 종말론적인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외면하고, 지나간 험악한 시절에 받은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임상치료가 필요한 대목이다. 그러나 필자는 한국 교회에 절망하지 않는다. 적개심과 분노가 가득한 설교보다는 드러나지 않지만 한민족의 평화와 상생을 지향하는 설교가 훨씬 많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그들의 목소리가 밤꾀꼬리 노래처럼 작다 하더라도 언젠가 천둥처럼 큰 함성으로 울려퍼지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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