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9% 민주화 세력 집권에 부정적, 전연령층 평균보다 훨씬 높아…스스로 민주화를 위해 싸웠으나 이제는 삶의 안정을 간절히 원해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김진명(43·서울 동작구·가명)씨는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찍었다. 정책과 이념 노선이 맘에 들어서였다. 80년대 대학을 다닌, 이른바 ‘386’의 전형인 그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등 민주화 세력의 집권으로 정치개혁과 민주화, 인권신장을 가져왔으며 궁극적으로 우리 사회에 좋은 점이 더 많아졌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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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여당 안찍겠다 49%
5년새 그의 맘에 무슨 변화가 생겼을까? 최근 그는 내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거론되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찍겠다고 맘을 굳혔다. 한나라당을 지지하진 않지만 이명박의 탁월한 정책 추진 능력을 높이 샀다. 그는 경영관리직으로 월 400만~500만원의 수입을 올리며 남 부럽지 않게 살지만, 언제 직장을 떠나야 할지 모른다는 고용 불안에 항상 짓눌리고 있다. 스스로의 정치 이념이 그래도 진보적이라고 밝힌 그가, 이제는 산업화 세력으로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 지난 12월5~6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에 맡겨 실시한 서울의 40대 유권자 대상 여론조사에서 응답한 500명 가운데 한 명이다. 이번 조사에서 가장 놀라운 결과 중 하나는 40대의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에 대한 태도다. 응답자의 무려 78%가 “이제는 산업화 세력으로 정권이 교체되어야 한다”고 응답했다. 지난 대선 때 노무현을 지지했던 69.5%, 현 열린우리당 지지층의 절반 가까이(47%)도 산업화 세력의 집권을 지지했다. “그래도 민주화 세력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응답은 불과 20.2%에 불과했다. 스스로가 민주화 세력이자 그 세력의 핵심적 지지층이라고 할 수 있는 386 출신(30대 후반~40대 초반)들마저도 민주화 세력에 등을 돌리고 있는 현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김씨도 이같은 세대 전반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불신에서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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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다른 어느 세대보다 인색했다. 응답자의 63.9%가 지난 10년간 민주화 세력의 집권을 통해 우리 사회의 “나빠진 점이 더 많아졌다”고 답했다. 긍정적 평가는 32.1%로, 절반에 불과했다. 이는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11월28일 전국 성인남녀 모든 연령층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같은 질문에 대해 나온 응답(부정적 평가 49.3%)보다 훨씬 비관적이다. 40대는 민주화 세력이 잘한 부분으로 정치개혁 및 민주화(31%) → 인권신장(29%) → 남북 간 평화 정착(24.9%) → 부패 해소(18.5%) 등을 차례대로 꼽았다.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는 40대가 민주화 세력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까닭이 “40대 스스로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지만, 이제 민주화나 인권신장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며 “현재 한 가정을 책임지고 회사의 중견 간부로서 위치한 이들이 부딪히는 어려움, 특히 경제적인 부분을 다시 산업화를 진전시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현실정치에서 산업화 세력을 대표하는 한나라당이나 보수 정당이 40대가 고민하는 문제를 실제로 해결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서, 최소한 이들에 대한 40대의 기대감이 강하게 존재하는 것이 사실인 셈이다. 이런 기대감은 이명박(55%)과 한나라당(45.2%)에 대한 절대적 지지로 나타나고 있다. 반대로 현 참여정부의 선장인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최근 여러 조사에서 10%대에 머물러 있으며, 40대의 49%는 내년 대선에서 절대로 열린우리당을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무게의 균형추는 이미 한쪽으로 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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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성향은 진보 쪽이 더 높게 나타나
그렇지만 쉽사리 40대가 보수화됐기 때문에 그렇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이번 조사에서 ‘당신의 정치적 이념 성향은 어디에 속하냐’는 물음에, ‘진보’(34.6%) - ‘중도’(30.4%) - ‘보수’(33.9%)로 나타났다. 이어 중도라고 답한 경우에 한해서, ‘진보와 보수 중 어느 쪽에 더 가깝냐?’고 묻자, 진보(48.7%)와 보수(48.4%)가 엇비슷하게 나왔다. 주관적 이념 성향만 따진다면 한쪽으로 쏠렸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질문을 달리해봤다. 진보는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도덕적 우위를 지닌 브랜드(상표)가 되었다. 그래서 통상 여론조사에서 ‘진보냐, 보수냐’고 물으면, 진보라는 응답 비율이 조금 높게 나오는 특징이 존재해왔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9월12일 조사에서 본인의 주관적 정치 이념 성향이 ‘진보에 가깝다’는 응답이 44.6%로, ‘보수에 가깝다’는 응답의 42.8%보다 높게 나타난 바 있다. 진보란 브랜드를 뗐더니, 상황은 조금 달라졌다. ‘개혁과 안정 중에서 어느 쪽에 가깝냐’고 물었더니, 40대의 65.9%가 안정이라고 답했다. 32.9%에 그친 개혁의 두 배에 이른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연구실장은 “안정이란 단순히 불안에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라, 삶의 안정 또는 생활의 안정을 기대하는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며 “40대의 안정에 대한 높은 여론은 경제적 안정, 교육 환경의 안정, 의료 및 주거 환경의 안정 등 삶과 직결된 ‘생활 정치’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을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정치세력이 생활의 문제에 대한 비전 제시나 문제 해결을 못할 경우 내년 대선에서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 40대의 가장 큰 고민은 뭘까? 대체로 자녀 한둘을 둔 40대의 가장 큰 불안감은 사교육비 등 교육 문제라는 응답이 27.7%로 가장 높게 나왔다. 다음으로 높은 집값 등 주거 문제(27.4%) → 실업 등 고용 문제(24.5%) → 노후생활 문제(16.1%) → 질병 등에 따른 의료 문제(3.5%) 등의 순이었다.
김진명씨가 내년 대선에서 누구를 찍을지 이미 맘을 정했다고 하지만, 동시에 후보가 제시하는 미래 비전을 기준으로 투표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고민을 풀 만한 비전을 제시해주고 그것을 추진할 만한 능력이 있는 인물이 지금 당장은 이명박이지만, 다른 인물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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