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마련 미루다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집값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는가… 무리해서 구매한 사람은 ‘불로소득’ 생겨도 금융비용 때문에 미래 불안정
▣ 제윤경 (주)에셋비 교육본부장
경기 일산에 살고 있는 장아무개씨는 올 초 30평형대 아파트를 마련해볼 요량이었다. 1억5천만원의 전세금과 현금 3천만원에 조금 무리해서 대출을 받으면 집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에서였다. 그러나 막상 주변의 아파트 시세를 알아보니 대략 3억5천만원이 필요했다.
전세금과 갖고 있는 돈을 다 해도 거의 1억7천만원을 대출받아야 했다. 장씨는 남편과 상의한 끝에 집 사는 것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1억5천만원이 넘는 부채는 무리라는 계산에서였다.
집값 올랐다고 정말 돈을 번 것인가
맞벌이인 장씨 부부의 월소득은 350만원이다. 1억7천만원의 대출을 받으면 매월 120만원가량(20년 원금 균등상환)의 부채원리금을 부담해야 한다. 아쉽지만 지나치게 부담스럽다는 생각으로 조만간 집값이 떨어지게 되면 다시 생각해보기로 하고 내 집 마련을 일단 포기했다. 그런데 그 아파트가 불과 몇 달 만에 1억2천만원이나 올랐다. 더군다나 같은 시기 친구 부부는 무리해서 집을 샀다. 1년도 안 돼서 1억2천만원을 벌었다며 즐거워하는 친구를 보니 마음이 허탈해졌다.
참여정부 들어 무주택자들은 정부의 말만 믿다가 내 집 마련의 호기만 놓쳤다며 분통을 터뜨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장씨처럼 순식간에 1억2천만원을 번 친구와 비교하게 되면 허탈함은 더 깊어진다. 왠지 자신이 눈앞에서 1억2천만원을 손해본 것 같은 기분도 들고, 한편으로는 앞으로 내 집 마련 기회는 영영 오지 않겠구나 하는 자괴감이 드는 것이다. 당연히 무리를 해서라도 저질렀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만 가득해질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제는 집을 사려면 3억원을 대출받아야 하는데 혹시 이제라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 무모한 계산도 해본다. 그러나 장씨의 내 집 마련 보류 결정은 두 가지 측면에서 크게 문제가 없다.
1. 무리한 부채 부담은 가족의 행복을 저당 잡는다
장씨가 올 초 계획했던 대로 1억7천만원을 대출받아 집을 샀더라면 분명 그 집은 몇 달 새 1억2천만원이 올라 장씨 부부를 기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그뿐, 집값이 올랐다고 장씨 부부가 부담해야 하는 상환원리금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장씨 부부는 매달 120만원가량의 부채원리금을 내야 한다. 20년 장기 모기지론으로 빌린다는 가정에서다. 장씨 가족은 부부가 30대 중반, 아이들은 이제 막 유치원에 들어가 교육비가 만만치 않다. 처음 3년간 이자만 갚고 부채원리금을 미룬다 해도 한창 교육비가 더 들어가게 될 시점에 부채 상환에만 소득의 30%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결국 집 하나에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갚아야 할 빚이 1억7천만원이라는 것은 말이 쉽지 마음에 큰 부담을 줄 게 분명하다. 장씨는 현재 집을 사게 될 때 빚 갚는 데 들어갔을 상환원리금만큼 저축을 하고 있다. 절반은 2~3년 안에 전세금 인상이나 내 집 마련의 새로운 기회를 감안해 중기로, 나머지 절반은 아이 교육비와 은퇴자금용으로 장기 투자를 하고 있다. 더불어 내 집을 갖고 사느라 빚에 허덕이기보다 부채 상환액의 20%를 연간 폼나는 여행자금 만들기를 위해 단기 저축도 하고 있다. 나름대로 미래 목표를 더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하나씩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친구가 몇 개월 만에 1억2천만원을 벌었고, 자신은 그렇게 조금씩 저축하며 적립해놓은 돈이 1천만원이 안 된다고 생각하니 허탈해진다. 그러나 다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장씨네는 계획대로 매년 여행을 즐기게 될 것이고 조금씩 늘어난 돈으로 아이들 교육비를 넉넉하게 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장씨 친구네는 집값은 올랐지만 변한 것이 없다. 대출금 상환하느라 당분간은 여유로운 생활을 계획할 틈이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집값이 올라 세금 부담이 연간 30만원가량 늘었기 때문에 가정의 가처분 소득만 더 줄어든 셈이다. 결국 오른 집을 처분하기 전에는 늘어나는 아이들 교육비도 여전히 막막한 미래로 남겨두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다.
2. 집값이 1억2천만원 올랐다고 정말 돈을 번 것인가
자산가치는 확실히 올랐다. 그러나 돈을 번 것은 아니다. 수익을 실현하려면 팔아서 차익을 손에 쥐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씨 친구네는 집값이 그렇게 큰 폭으로 올랐다고 해서 그 집을 팔 생각은 없다. 설사 판다고 해도 다시 전세로 가지 않는 한 수익을 실현할 수는 없다. 그 아파트만 특별한 호재에 두드러지게 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의 부동산 시장은 정책에 대한 불신과 지나친 재테크 열풍으로 매도자들의 ‘더 올려서 팔아도 된다’는 기대심이 주택 가격에 포함돼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면 전국적으로 모든 집값이 동반 상승하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결국 무리한 내 집 마련으로 몇 개월 만에 1억2천만원의 자산가치는 올랐지만 손에 쥘 돈은 아니다. 쓸 수 있는 가처분 소득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실제로 팔아 차익을 실현한다는 가정도 돈을 벌었다는 기분만큼의 수익을 안겨주지는 못한다. 대략 양도소득세로 50% 부담하고 그간 지불한 금융이자 제하고 취득·등록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을 빼고 나면 크게 남아야 4천만원가량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10개월간을 무리해서 집 사지 않고 저축을 해서 모은 돈 1천만원보다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4천만원을 손에 쥐기 위해 산 지 1년도 안 돼 집을 팔지는 않는다.
이자비용이 소득의 10% 넘으면 위험수위
결론적으로 장씨는 사려다 포기한 집값이 올랐다고 허탈해할 것은 아니다. 부동산 가격이 불안정해서 내 집 마련 전략을 합리적으로 세워나가는 게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순식간에 1억2천만원의 대박 기회를 놓쳤다는 안타까움을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매달 나가는 이자비용이 소득의 10%를 넘으면 위험해질 수 있다. 오히려 무리하게 집을 사서 단기간에 1억2천만원의 자산소득을 만든 친구의 경우 금융비용이 가족의 미래 삶을 위협할 가능성이 크다. 소득에서 이자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20%가 넘고 있다. 원금 상환까지 감안하면 35% 가까이 되는 빚을 부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20년 동안 나눠 갚는다는 가정에서다. 빚을 갚아나가는 사이 아이들 교육비를 준비할 여력도 없는 상태이고, 은퇴 준비는 꿈도 못 꾼다. 게다가 소득의 불안정이 겹치게 되면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
내 집을 갖고 싶은 소망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합리적인 방법으로 집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집으로 인해 많은 위험을 떠안을 수 있다. 그리고 부동산 시장에 거품이 많이 끼어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한계까지 다 끌어다 집에 ‘올인’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현실 때문이다. 바늘로 살짝 찔러도 터질 것 같은 위태위태한 부동산 시장이다. 장씨는 허탈함보다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피했다는 안도를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검찰, 윤석열 구속 연장 재신청…“보완수사권 당연히 인정”
‘내란 나비’ 김흥국, 무면허 운전 벌금 100만원…음주·뺑소니 전력
귀국한 전광훈 “체포하려면 한번 해봐라…특임전도사 잘 몰라”
서울중앙지법, 윤석열 구속 연장 불허…“수사 계속할 이유 없어”
법원, 윤석열 구속 연장 불허…검찰, 26일 내 기소할 듯
법조계, 윤석열 구속 연장 불허 “굉장히 이례적” “이해 안돼”
[속보] 서부지법 방화 시도 ‘투블럭남’ 10대였다…구속 기로
“윤석열 신속 처벌”…국책연구기관서도 첫 시국선언
검찰, 윤석열 구속연장 불허에 당혹…연장 재신청·기소 모두 검토
인천공항 ‘비상’, 폭설 때보다 혼잡…공항공사 “출국까지 3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