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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북을 비판할 단계가 아닐까

등록 2006-11-01 00:00 수정 2020-05-03 04:24

‘반북’에서 ‘친북’까지 다양한 관점의 시민 활동가 4명이 벌인 난상토론 …북한 핵실험의 책임은 미국인가, 인권 문제에 ‘내재적 접근’만 해야 할까

▣ 사회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정리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해방과 분단 61년째, ‘북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극과 극을 달린다. ‘반북’에서 ‘친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대북관’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공존하고 있다. 은 10월26일 오전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성격을 달리하는 4개 시민·사회단체를 초청해 핵과 인권을 화두로 북한에 대한 바람직한 인식과 접근방법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통일운동 진영에선 정대연 민중연대 정책위원장이 나섰다. 정 위원장과 대척점에 선 ‘뉴라이트’ 진영에선 최홍재 자유주의연대 조직위원장이 참석했다. 여기에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이 평화운동 진영을, 이승용 좋은벗들 평화인권부장이 대북 인도지원단체를 각각 대표해 나와 3시간여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였다.

약소국의 핵실험은 문제가 안되나

-사회: 북한 핵실험에 대한 평가부터 들어보자.

=정대연(이하 정): 핵이 ‘옳은가, 그른가’는 이미 답이 나와 있다. 하지만 강대국의 핵독점과 핵위협이 상존하고 생존권을 말살하려는 상황에서 약소국의 핵개발을 무조건 비판할 순 없다. 미국은 공식적으로 7천여 기의 핵무기를 갖고 있다. 지난 61년 동안 1025회 핵실험을 했다. 한 해 평균 17회다. 미국이 핵실험을 한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되고, 약소국이 핵실험을 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하는 것은 잘못됐다.

북한은 핵무기를 갖지 않겠다는 입장을 일관되고 반복적으로 표현해왔다. 그런데 미국은 체제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고 있다. 지난해 6자회담에서 나온 ‘9·19 공동선언’으로 북-미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결정적인 계기를 마련했으나, 미국이 이를 뒤집었다. 뚜렷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북한에 금융 제재를 가했다.

북이 6자회담에 나올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북의 핵실험은 미국 대북 정책의 필연적 결과다. 핵실험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대단히 유감이지만, 책임은 미국에 있다.

=이승용(이하 이승): 미국이 핵실험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은 충분히 일리가 있는 지적이다. 다만 이후 문제를 풀어가는 데 그렇게만 단정하면 대안이 없다. 강대국의 핵에 맞서 모든 약자가 핵무장을 해도 좋다는 건가? 대안이 핵무장뿐이었는지에 대해선 진지하게 토론을 해봐야 한다. 미국의 대북정책도 비판해야 하지만, 핵은 그 자체가 반평화·반환경·반인권적이다. 또 핵이 북한 정권의 안보에 중요한 수단이겠지만,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는 큰 의미가 없다. 핵 자체에 반민중성이 내포돼 있다. 북핵이 지닌 모든 측면을 살펴봐야 한다.

=이태호(이하 이태): 조지 부시 행정부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의 핵심인 핵 보유국의 핵 감축 의무와 비핵국가에 대한 소극적 안전 보장을 전면 부정하면서 국제 핵관리 체제에 큰 구멍을 냈다. 미국의 이런 태도가 다른 나라의 핵개발 근거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국제사회나 인류의 염원은 핵 비확산이다. 이에 대해 보편적 태도를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핵 비확산에 대한 규범이 형성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북의 핵실험에 대해 먼저 문제 제기를 해야 한다.

북한 권력층은 안보위협을 과장했고, 독재정권이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정책 결정을 하고 있다. 안보위협을 내세운 일종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작용한 측면이 있는 북의 핵실험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국제관계나 화해협력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있는데, 북의 집권세력은 이를 선택하지 않았다. 민주주의와 평화를 옹호하는 세력이라면 북핵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진보진영의 입지를 스스로 좁힌다

=최홍재(이하 최): 핵실험을 자꾸 미국 때문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실에도 맞지 않다. 북한이 핵개발에 처음 나선 것은 1955년이다. 부시 행정부 들어 개발한 게 아니다. ‘나쁜 행동’을 했으면, 그 책임은 당사자한테 물어야 한다. 나쁜 짓을 한 원인을 찾고 해결점을 찾는 대신에 왜 주변부만 따지나? 이렇게 되면 의도와 달리 나쁜 행동을 옹호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

-사회: 북한은 핵보유를 ‘억지력’이라거나 ‘자위적 차원’이라고 말하지만, 핵실험으로 오히려 냉전적 대결 구도가 강화된 측면이 있다.

=정: 미국이 한반도에서 전술핵을 철수시켰지만, 북한으로선 핵위협이 상존한다. 미국이 지목한 7개 핵 선제공격 대상국가에 북한도 포함됐다. 어느 한쪽이 상호공존을 부정하고 압살정책을 취하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아직까지도 북핵은 협상카드용 성격이 강하다고 본다. 북한은 미국이 적대·압살 정책을 포기하고 관계를 정상화하면 하나의 핵무기도 갖지 않겠다고 한다. 그것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면, (협상을 통해) 이를 검증하면 그만이다. 협상을 거부하는 것은 미국의 목표가 북핵 저지가 아니라 정권 압살에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이승: (반핵에 대한 명확한 태도를 보이지 않음으로써) 진보 진영의 입지를 좁히는 결과를 낳고 있다. 모든 핵에 대해 동일한 잣대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 정서는 핵에 대해서 협상용이든 보유를 위한 것이든,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정: 누가 북의 핵보유를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겠나? 하지만 국제관계 속에서 핵의 불평등성을 먼저 제기해야 한다. 인민들은 굶주리는데 핵개발을 했다고 하지만, 북한의 인민을 굶게 하는 미국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 미국의 압박은 오히려 북한 주민만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핵무기는 반대한다. 그러나 미국의 책임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으면, 또 미국의 ‘나쁜 행동’을 논의하지 않으면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평가는 유보하겠다.

=이태: 핵은 기본적으로 상호확증파괴에 기초해 있다. 우리가 핵우산을 인정하게 되면 북은 공포의 균형을 가지려는 것이니 할 말이 없어진다. 그래서 반전반핵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이승: 핵실험이 미국과 맞서 싸우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북한 인민을 위해 얼마나 좋은 선택인지도 의문이다. 핵이 민족적일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 반민중적일 수밖에 없다. 한편 대북 제재는 결과적으로 정권만 아니라 인민에게도 피해가 돌아간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사회: 북한의 인권 현실도 핵 문제만큼이나 다양한 견해가 있다.

=정: 인권의 가장 큰 문제는 생존권이다. 북한 정권이 미국의 10년에 걸친 직접적 위협 속에서 군사력으로 자기생존을 하려는 것을 정권 안보라고만 할 수 없다. 인권 문제를 미국이 들고 나오는 것도 악의 세력으로 몰아 정치적으로 압박하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다. 이라크가 그랬다. ‘악’의 세력으로 규정하고 인권의 이름으로 침공했다.

인권 개선은 포용정책과 함께

-사회: 남쪽 기준으로 북쪽 인권 상황을 바라볼 필요도 있을 텐데.

=정: (북의 인권 현실에 대해선) 과장된 측면이 많다. 특히 적대적 세력이 공격할 때 침소봉대하는 측면이 있다. 그 사회의 특성상 내재적 접근이 필요하다. 인류가 지향할 공동의 보편성이 있지만, 옳고 그른 것이 자기 기준이 아니라 그 나라의 특성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봐야 한다.

-최: 박정희와 전두환이 민주화 인사들을 탄압할 때 쓰던 것과 같은 논리다. 탈북자 1만 명이 한국에 있다. 중국엔 수만, 수십만 명이 있다. 과장일 수도 있지만 그 과장 속에 진실이 있다. 북한의 모든 문제가 내재적 접근을 한다고 하면서 항상 결론은 미국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답답하다.

=이태: 북한은 지독한 독재 체제다. 2000년 6·15 정상회담은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좋은 기회였다. 독재권력 스스로 바뀌는 경우는 없다. 북한이 좀더 개방돼야 한다. 그것이 북한 인권을 위해서도, 한반도 전체의 생존권과 평화를 위해서도 좋다. 한편, 미국은 북-미 수교가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한 좋은 기회였는데 핵 문제를 꺼냈다. 대량살상무기 확산 저지에만 관심이 있었다. 북한은 북-미 수교를 해보려고 했는데, 북한 인권 관련 단체들은 핵 문제를 빌미로 북-미 수교를 하지 말도록 했다. 북한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사람들이 대북 포용정책을 반대해선 안 된다. 오히려 포용하려는 몸짓을 정확히 보여줄 때, 북한 인권 개선에 훨씬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이승: 국가는 국민의 신체와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북한 정권은 ‘최선을 다했느냐’는 물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북한 정권이 자주적일지는 몰라도, 정권 대 인민의 측면에서 보면 반인권적·반민중적 정권이라는 것이 명확하다. 굶어죽는 사람들, 탈북자 발생은 내부적 책임이다. 자주적 정권으로서 체제를 분명히 인정하되, 주민들에게는 분명히 독재정권이라는 말이다.

-사회: 북한 인권 논쟁은 오히려 보수 진영에서 주도하고 있다.

=이태: 그렇다고 보수세력이 북한 인권 개선에 더 적극적이었다는 평가엔 동의하지 않는다. 인도적 지원에도 보수 진영이 특별히 앞장섰다는 증거는 없다. 인권의 중요한 조건은 평화를 정착시키고 북한과 주변국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보수세력은 오히려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데 역량을 집중했다. 북한 민주화를 소망하지만, 남한 정부가 이를 지원하거나 어떤 입장을 취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냉전과 분단의 한 당사자인 남한이 우월적 지위를 내세워 북을 변화시키겠다는 식의 접근은 오히려 북한 체제를 움츠러들게 할 수 있고, 북한 내부에 있을지 모를 민주세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정: 국제사회는 도덕과 가치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작용한다. 인권 문제로 남의 나라 일에 간섭하는 것은 새로운 인권 문제를 만들어낸다. 북한 인권이나 민주화를 얘기하는 다수는 대북 압살정책에 협력한다. 그 결과는 필연적으로 한반도 긴장 고조로 이어지고, 만약 북한에 인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더 악화시키고 만다.

남한의 군사정권을 떠올려 보라

-사회: ‘만약’이란 전제를 깔았다. 북 인권에 문제가 없다고 보나?

=정: 북의 인권 실상을 정확히 알 수 없으니, 실체를 알아보자는 거다.

=이승: 70~80년대 남한의 군사정권도 자유를 억압하고 침묵을 강요하면서 북한의 위협을 얘기했다. 북한 정권도 그렇게 할 수 있다.

-사회: 여전히 ‘친북좌파’란 도식이 통용될 정도로 진보 진영 내부의 북한에 비판적인 목소리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이태: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권력의 기초가 시민에게서 나오고, 시민참여를 통해 발전한다는 점이다. 그런 차원에서 북은 분명히 변화가 필요한 체제다. 그 변화가 권력 통제로 지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북한을 대할 때 분쟁·갈등 해소와 평화 정착, 민주주의 심화·확대란 원칙을 일관되게 견지하는 게 중요하다. 한반도 평화는 북한과 남한 정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런 원칙을 공고히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주도돼야 한다.

=정: 민족적 통합성이 더 높아지면 북 내부의 문제를 조심스럽게 얘기할 수도 있다. 지금은 그런 내부의 문제를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

=이승: 북한은 다양한 문제를 한꺼번에 갖고 있는 사회다. 남북한 전체 인권을 위해서도, 전쟁을 막고 핵도 폐기할 수 있도록 여론을 모아나가야 한다. 인도적 지원을 줄이는 것은 핵위기 아래서 새로운 인권 침해를 낳는다. 사상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이동의 자유 등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과 삶의 질 향상도 중요하다. 교류협력은 북한이 다양성의 사회로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정치적 갈등이 있더라도 끊임없이 이어져야 한다. 보수단체는 인도적 지원에 나서고, 진보단체는 북한 인권이나 핵 문제에 대해 좀더 적극적으로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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