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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은 자라 보고도 안 놀란다?

등록 2006-10-19 00:00 수정 2020-05-03 04:24

처음의 우려와는 달리 주식 시장에서 짧은 악재로 끝난 핵무기 실험…‘북한 변수’는 너무 오래되고 반복적으로 일어나 ‘상수’로 굳어진 듯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솥뚜껑’ 보고는 더 이상 놀라지 않게 된 것일까? 노상 보던 ‘자라’여서 이젠 봐도 하품만 나오게 된 걸까?

‘북한 핵실험 발표’라는 충격적인 뉴스에 따른 경제적 반응은 적어도 수치상으로는 담담해 보인다. 핵실험 발표 당일인 10월9일 잔뜩 움츠러들었던 주식시장은 바로 다음날 오름세를 보이며 안정을 되찾는 모습이었다.

코스피지수(종합주가)는 핵실험 발표 첫날 32.60포인트(2.41%) 떨어졌지만, 이튿날 8.94포인트(0.68%) 오르면서 비교적 안정세를 이어갔다. 첫날 하락 장세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순매수세를 보인 점은 특히 눈길을 끌었다.

NPT 탈퇴 빼곤 별 충격 주지 못해

돌발적인 ‘북한’ 변수는 남한 경제에 대한 악영향으로 이어진다는 흐름도가 공식처럼 각인돼 있는데, 예전과 달라진 것일까?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예전의 ‘북한’ 변수도 대부분 짧은 악재로 끝났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와 연결돼 있는 2002년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때(12월13일) 주가가 많이 떨어졌을 뿐이라는 게 김 연구원의 분석이다. 2002년 북한의 NPT 탈퇴 당시 국내 종합주가는 10거래일 동안 12.27%나 떨어졌으며 30거래일 동안 18.45%, 90거래일 동안 17.57%나 떨어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렇지만 이 밖의 북한 변수 돌출 때는 대체로 단기 하락 끝에 회복세를 보였다. 예컨대 남북 사이의 전쟁 분위기까지 감돌았던 1976년의 ‘판문점 도끼 살해 사건’ 때(8월18일) 주가는 2거래일 동안 1.81% 떨어진 뒤 오름세로 돌아섰으며 30거래일 뒤의 하락폭은 2.20%였다. 1999년 연평도 인근에서 남북 해군이 충돌했을 때(6월15일)는 당일 2.21% 떨어졌을 뿐 30거래일 뒤엔 6.20%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 당시(2002년 1월29일)엔 7거래일 동안 5.98% 빠지긴 했어도 30거래일 뒤엔 12.36% 올랐다. 김 연구원은 “2002년 NPT 탈퇴 때의 주가 하락세의 경우도 그 뒤로 이어지는 SK 분식회계 사태, 카드채 사태를 감안할 때 딱히 ‘북한’ 변수 때문이었는지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북한’ 변수는 일각의 호들갑과 달리 예전이나 지금이나 남한 경제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곁가지일 뿐인가.

김기원 한국방송통신대 교수(경제학)는 “(북한) 체제가 붕괴된다면 (남한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겠지만, 그런 건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북한이 쳐들어오거나 난민이 대거 몰려드는 상황이 아니고, 체제의 자위 수단으로 (핵실험을) 한 것이다. 미국의 북한 폭격 위험성이 증대된 것도 아니다. 칼럼니스트의 말처럼 북한 경제가 어려워질 위험성은 있어도 남한 경제가 어려워질 위험성은 그다지 없는 것 아닌가.” 칼럼니스트인 앤디 무커지는 10월9일(미국시각) ‘북핵은 투자자에게 선물’이란 칼럼에서 “북한은 이미 사실상 ‘핵 보유국’이었으므로 ‘공식적 핵 보유국’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주변국의 위험이 더 커진 것은 아니다”고 썼다.

“2차 핵실험 여부에 초점 맞춘다”

이와 좀 다른 시각도 있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북한의 핵실험은) 영향면에서 굉장히 큰 사안으로 여겨지는데 너무 불확실한 상황이니 적극 반응하기 힘든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바로 다음날 핵실험이냐, 아니냐 그런 얘기들이 나와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큰 손실을 입을 것 같으니까…. (핵실험이) 사실이라고 해도 어떻게 전개될지 모른다는 인식들을 하고 있다고 본다.” 김 위원은 “일단은 불안하게 보이는데, 다른 한편으론 긍정적인 시나리오도 있으니까 (두 요인이) 상충돼 평균적으로 안정인 것처럼 보이는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평균값이 똑같아도 중립적인 생각이 많은 상태와, 극명하게 엇갈리는 견해의 분포도가 넓은 상태는 엄연하게 다르다는 설명이다. 평균적인 수준을 보여줄 뿐인 주가지수의 수치만으로 안정을 단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우현 교보증권 연구원은 “시장 흐름은 2차 핵실험 여부에 포커스(초점)를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안감이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김 연구원은 “다시 회복되는 것이라고 보기엔 핵실험 뒤 사흘 동안에 이뤄진 지수 되돌림이 미미하다”며 “추가적인 리스크(위험)가 있을 것이란 심리가 팽배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제기되는데 가장 유력시되는 게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일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불안감을 안고 간다는 뜻이 된다.”

이찬우 재정경제부 경제분석과장도 “핵실험 자체에 대한 위기의식도 있지만, 그보다 후속적인 제재 조처와 그에 따른 추가적인 긴장 사태(예견)가 불확실한 상황을 초래하고 있다”며 “지금의 상태는 유동적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제재 조처의 진전에 따라 국내 경제에 끼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란 게 이 과장의 설명이다. 이는 예전의 북한 변수 돌출 때에 견줘 훨씬 길게 끌 것이란 관측으로 이어진다. 이 과장은 “북한에 대한 제재는 북한 쪽의 또 다른 대응을 불러오고, 그에 따라 남북 간 긴장이 높아지면, 잠재된 한반도 (안보) 리스크가 현재화함으로써 투자심리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이런 과정을 거쳐 북한 변수가 남한 경제에 영향을 주게 된다는 설명이다. 교역 규모로 볼 때 남북한 사이의 경제적 연결 고리가 그다지 긴밀하지 않음에도 ‘북한’ 문제가 남한 경제의 변수로 자주 거론되는 배경은 주로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설명이다.

방태섭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올 8월에 펴낸 보고서 ‘북한 변수와 안보 리스크’에서 “반복된 북한의 위협이 국내 경제의 내성(참을성)을 높여 수출, 기업경영 활동 등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면서도 “구조적 안보 리스크는 상존한다”고 분석했다. 그 예로 한국의 주식시장이 모건스탠리주가지수(MSCI) 산정 때 신흥시장으로 분류되고 있는 점을 들었다. MSCI는 선진국 지수와 신흥시장 지수로 구분되며, 투자자의 국가별 투자전략 수립 때 판단 기준으로 활용된다. 방 연구원은 “한국의 경제 및 증시 규모 등을 감안할 때 북한 핵 문제 같은 지정학적 리스크가 (지수 산정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추정한다.

신용평가에서도 리스크가 영향 끼쳐

S&P나 무디스 등에서 평가한 국가신용등급에서도 구조적 ‘안보’ 리스크(위험)를 볼 수 있다고 방 연구원은 밝힌다. 무디스의 국가신용등급에서 한국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 규모에서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 중국보다 한 단계 낮은 건 안보 변수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S&P도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을 (1인당 GDP 규모에서 한참 떨어지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칠레와 같은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S&P, 무디스의 신용등급 평가에선 경제지표 외에 정부 형태나 안정성, 국가안보 위험 등 정치적 위험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신용평가기관들의 신용평가 방식에 대해선 이견과 비판도 많지만, 정부나 기업들의 자금 조달 때 결정적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어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지닌다. ‘북한 변수’는 남한 경제에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미미한 곁가지라기보다는 너무 오래된데다 반복적으로 불거지는 과정에서 ‘상수’처럼 굳어졌다는 분석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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