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북핵 해결 위한 한-미동맹 강화도, 이라크 재건의 경제적 이익도 신기루… 얻어낸 것도 없는데 남들 다 철수하는 상황에서 남아 있는 이유는 뭘까 </font>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국군 이라크 파병 결정은 ‘동맹’에서 비롯됐다. 한-미 동맹을 유지·강화하기 위해 치러야 할 ‘동맹의 대가’이자,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기회비용’으로 여겨졌다. 2003년 4월 말 서희·제마부대 1진이 출국한 지 3년4개월여가 지났지만, 파병과 국익을 둘러싼 논쟁이 여전히 쉽게 끝이 보이지 않는 현재 진행형인 것도 이 때문이다.
재건 지원 예산은 주둔 예산의 10%
전·현직 정부 외교안보팀 당국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미국은 막 출범한 노무현 정부가 제대로 진용을 갖추기 전부터 일찌감치 한국군 이라크 파병을 요청했다. 그해 3월20일 미국 주도로 이라크 침공이 단행된 직후 정부는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대국민 담화문을 내놨고, 이튿날인 3월21일 임시국무회의를 열어 파병동의안을 의결했다.
이런 발빠른 움직임은 침공 이전부터 이미 미국 쪽의 파병 요청을 받았음을 증명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정부 출범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여정부 외교안보팀의 지상과제는 ‘북핵’ 문제 해결로 모아진다. ‘올인’이란 표현까지 등장할 정도로 북핵 문제에 매달려온 정부가 ‘고빗길’에서 마주한 미국의 파병 요청을 저버릴 여력은 없었을지 모른다. 북핵 문제 해결의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고, 북한을 설득해 최소한 협상 테이블로라도 끌어내려면 미국의 지원이 절대적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라크 1차 파병은 그렇게 ‘국익’ 차원에서 이뤄졌다.
2003년 10월 중순 공식 발표된 추가파병도 ‘국익’에 따른 결정이었다. 그해 8월 말 베이징에서 열린 제1차 북핵 6자회담에서 우리 쪽은 3단계 해법을 제시했지만, 미국 쪽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회담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간 북쪽 대표단은 “우리의 기대와는 너무도 어긋나는 탁상공론에 불과했으며, 백해무익한 회담이었다”고 악을 썼다. 회담을 재개하자면 미국의 태도 변화가 절실했고, 때맞춰 미국은 그해 9월 초 추가파병을 은밀히 요구해왔다. 제2차 6자회담은 이듬해 2월 말에서야 재개됐다.
그러나 정부는 솔직하지 못했다. 파병의 명분을 ‘전후 이라크 재건·복구 지원’이라고 둘러댔다. 파병이 불가피했느냐에 대해선 따로 논쟁이 필요할 테지만, 정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국민을 설득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국방부가 지난해 11월23일 국회에 제출한 ‘파병연장 동의안’의 소요예산 항목을 보면, 2004년과 2005년 이라크 파병에 든 경상비용과 전력투자비는 각각 1807억원(결산)과 1672억원(예산)이다. 반면 같은 기간 재건지원 예산은 각각 171억원과 183억원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파병의 목적(재건·복구)에 쓰인 예산이 파병군의 수당과 급식·피복비·장비·부대운영비 등 주둔 자체에 든 예산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이라크 전후 재건·복구를 파병의 명분으로 내건 정부의 입장이 옹색하기만 하다.
파병을 둘러싼 논쟁이 극에 달했을 때 파병 찬성론자들이 내세운 ‘국익론’의 근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한-미 동맹 강화였고, 둘째는 이라크 재건·복구 사업 참여를 통한 경제적 실리였다. 그리고 이라크 재건·복구를 지원함으로써 장기적으로 ‘우방국’이 될 이라크에서 안정적인 원유 수입로를 확보하는 게 파병이 가져다줄 세 번째 ‘국익’으로 내세워졌다.
석유자원 확보도 허망한 꿈
침공 주축국인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음에도, 한-미 동맹이 3년여 전에 비해 강화됐다는 주장은 정부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감히 나오지 않는다. 정부가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에 본격 나선 지금 오히려 ‘한-미 동맹 파탄’을 지적하는 거친 목소리만 난무하고 있다. 동맹 강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이란 정부의 ‘야무진 꿈’도 공허해진 지 오래다. 지난해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내며 잠시 낙관론에 힘이 실리는가 싶더니, 이내 내리막길 정세로 치달으면서 6자회담은 1년 가까이 열리지 못하고 있다. 파병이 북핵 문제 해결에 가져다준 실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라크 재건·복구 사업 참여를 통해 경제적 실익을 챙기겠다는 주장도 신기루에 불과했다. 이라크 전역에서 종파 간 유혈충돌이 날이 갈수록 거세지면서, 본격적인 재건·복구 작업은 시작 단계에서 여전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자이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아르빌을 포함한 쿠르드족 자치지역은 상대적으로 안정된 치안 상태가 유지되고 있지만,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이 큰 공사를 따냈다는 ‘낭보’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저 자이툰부대 납품업체로 선정된 현지 업체들이 짬짜미를 통해 터무니없는 입찰가로 거액을 벌어들이면서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있는 소식이 고작이다(상자기사 참조).
전후 재건·복구를 도와 장기적으로 이라크에 민주정부가 들어선 뒤, 안정적으로 석유자원을 확보하겠다는 계산이 얼마나 허망한 것이었음은 긴 설명이 필요 없을 터이다. 수니파와 시아파, 아랍족과 쿠르드족으로 갈라선 이라크인들은 저마다 자기 몫의 석유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핏빛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상당수 전문가들이 “석유자원 배분을 둘러싸고 이라크가 3분할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파병이 국익에 도움이 됐느냐’는 물음의 답은 그래서 허망하다.
“북핵 문제 해결은 남북한이 갈등을 넘어 평화로 가는 긴 과정의 일부로 판단하고 장기적으로 접근했어야 한다. 조기에 해결하겠다는 과도한 의지를 갖고 북핵 문제에 접근한 것 자체가 전략적 판단 실수였다.” 박순성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소장은 “정부는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파병을 결정했지만, 북핵 문제 해결도 한-미 동맹 강화도 이뤄내지 못했다”며 “(정부의 주장대로) 국익을 위해 파병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이를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는지 이제부터라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맹의 비용, 동맹의 덫
파병 결정이 ‘동맹의 비용’이었다면, 해마다 파병기간을 연장하는 것은 ‘동맹의 덫’이다. 서동만 상지대 교수(정치학)는 “이라크 파병으로 한-미 동맹이 지역적 차원을 넘어 세계적 차원으로 확대되면서, 동맹의 비용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파병 결정 시점부터 철수를 염두에 둔 출구 계획을 마련했어야 옳았다”고 말했다. 이른바 ‘의지의 동맹’에 참여했던 나라들이 속속 자국군을 철수시키거나 이미 철수를 완료했지만, 자이툰부대 철수계획은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된 바도 없다”는 게 익명을 요구한 정부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이렇게 지적한다. “이라크 남부 사마와에 주둔했던 자위대가 지난 7월 철수를 마쳤다. 하지만 이 때문에 미-일 관계가 흔들린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자이툰부대 철수가 한-미 동맹을 파탄낼 것이란 주장은 미국이란 나라의 ‘실체’에 기반한 판단이 아니다. 그저 ‘우리 안의 미국’을 근거로 한 추측일 뿐이다.” ‘파병은 불가피했다’는 인식도 동맹의 숨겨진 ‘덫’에 스스로를 내맡긴 꼴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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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라크 특수’를 말했는가</font>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ㅋ업체의 나 사장(가명)은 잔뜩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주위에서 위험하다고 했지만 그는 기회의 땅으로 여겼다. 자이툰부대가 있어서 이라크 내 쿠르드 지역에서 돈 벌기가 훨씬 수월할 것으로 예상했다. 예상이 빗나가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4년 어느 여름날 비행기가 아르빌에 도착하면서부터 그는 자유로운 상인이 아니었다. 아르빌 시내에 나가는 것도 하루 전에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것도 용무가 있을 때라야 가능했다. 호송 차량과 쿠르드 민병대를 붙여줬지만 반갑지 않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경호보다 나 사장의 행보를 감시하는 데 촉각을 더 곤두세웠다. 하루는 나 사장이 쿠르드 자치정부의 주요 인사를 만났다. 사업 때문이었다. 하지만 부대에 들어와 정보를 다루는 군 장교로부터 ‘쓸데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다녀서 피곤하게 만든다’는 핀잔을 들었다. 거의 협박으로 들렸다. 위험은 각오했던 거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은 그를 좌절로 몰아넣었다.
나 사장만의 경험이 아니다. 은 아르빌에 진출한 여러 업체의 관계자들에게서 똑같은 하소연을 들을 수 있었다.
자이툰부대의 파병은 ‘제2 중동특수’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처럼 선전돼왔다. 국내 기업의 이라크 진출은 파병을 뒷받침하는 ‘국익’이란 명분을 실리로 포장해줬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2004년 12월31일 임시 국무회의에서 이라크 파병연장 동의안의 국회 통과를 요청하면서 “(파병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장병의 사기는 물론 이라크 재건 복구시 에너지의 확보, 기업 진출 면에서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파병이 이라크 재건 복구시 에너지의 확보, 기업 진출에 도움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듬해 2월26일치 국정홍보처의 은 “(파병을 토대로) 한국 기업의 진출 교두보도 확보했다. 아르빌시 하수도 체계 공사, 종합 스포츠 콤플렉스 건설을 자이툰부대에 의뢰해왔으며, 아르빌 주지사는 살라아딘대학 신축에 한국 기업의 진출을 희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아르빌 자치정부의 재건사업 발주는 주로 터키가 수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 기업으로는 수자원공사가 아르빌시 하수도 체계 공사에 참여하는 것이 거의 전부다.
쿠르드에 진출한 한국 기업체는 10여 개에 불과하다. 인원도 30여 명에 그친다. 이라크의 중심부인 바그다드엔 지사 형태로 나가 있는 기업이 한 곳도 없다. 미군에 납품하는 3~4개 업체의 10여 명이 미군부대 내에서 활동할 뿐이다. 서강석 바그다드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관장은 “초기에 메이저 기업들이 나와 있었지만 김선일 사건이 터지면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한국인 입국금지 조처를 내리면서 철수했다”며 “쿠르드에 진출한 기업들도 자이툰부대 내 식당 운영 및 식자재 납품업체 등으로 정상적인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의 불만은 자이툰부대가 쿠르드 지역에서 벌이는 재건복구 사업에서 철저히 배제돼 있다는 점이다. ㄱ업체에서 일했던 김아무개(가명)씨는 “한국 돈이 들어가는데 한국 업체는 배제되고 있다. 자이툰에서 아예 입찰에 참여할 기회를 주지 않고 있다”고 불만을 토해냈다. 다른 업체에서 일했던 정아무개(가명)씨도 “우리 몫은 없었다. 토목, 가스공사 등을 포함한 이라크 북부개발권 가운데 우리가 따낸 것은 하나도 없다. 겨우 수자원공사 상수도 놓는 것 하나였지, 나머지는 다 자이툰부대를 위해 들어간 기업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라크는 여전히 내전 상태다. 기업체의 활동 제약은 안전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기업들은 군의 지나친 통제와 비협조가 기업활동에 족쇄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정씨는 “정부가 기업들이 이라크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귀찮아한다. 걸핏하면 ‘위험지역이라 안 된다’ ‘NSC의 명령이라 안 된다’며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국민들과 국내 기업체에 들이대는 논리도 다르다. 나 사장은 “국내에선 한국 기업들이 진출한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거기(이라크)에선 기업들에게 위험하니 들어오면 안 된다며 이중 논리를 갖고 얘기한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국내 업체들이 빠진 군 중심의 재건복구 사업은 절름발이다. 군 스스로도 기업 진출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황의돈 전 자이툰 사단장은 2004년 9월 국방부 출입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아르빌의 산업·사회 인프라 등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재건지원이 필요하다. 이런 부분에 대해 군의 능력은 제한적이다. 궁극적으로는 국내 기업이 아르빌에 진출해 장기적인 지원이 될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에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쿠르드인들도 틈만 나면 한국 기업의 진출 확대를 바란다고 말한다. 정씨는 “자이툰부대가 시골마을에 마을회관과 학교를 지어주고, 축구공을 나눠주면서 재건사업의 홍보는 성공했는지 모르지만 실익은 없었다”고 말했다. 기업체를 중심으로 돈을 벌진 못했다는 얘기다. 아울러 현지 실정을 잘 모르고 단기적인 전시효과를 노리는 군보다 민간 중심으로 재건복구 사업이 재편돼야 한다는 얘기들도 나온다. 자이툰은 철수하더라도 기업은 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서강석 관장은 “그동안 전면 금지했는데 올 들어 이라크에 꼭 와서 프로젝트를 수행하겠다는 기업들에게 선별적으로 제한을 푼다는 방침”이라며 “조만간 LG전자와 대우인터내셔널 등이 이라크로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라크 특수’는 공염불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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