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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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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의 반격이 시작됐다

등록 2006-07-27 00:00 수정 2020-05-03 04:24

60% 넘던 찬성 여론이 1차 협상 뒤부터 급속히 줄어들고 반대운동 확산… ‘수치 조작’에서 협상 절차와 멕시코로 논쟁 확산되며 정부는 점점 열세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지난 2월3일 한미 FTA 협상 공식 선언 이후 60~70%에 이르던 찬성 여론이 6월5일 워싱턴에서 열린 1차 협상 뒤부터 급속히 줄어들고 있다. 7월10일 한국방송 1라디오가 전국의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2%가 ‘한미 FTA 체결 때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고 답했다. 7월13일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조사(성인남녀 700명)에서는 반대 62.1%, 찬성 33.2%로 나타났다.

한 달 전 조사(6월13일)에서는 ‘찬성’ 44.9%, ‘반대’ 46.6%로 팽팽히 맞섰는데, 이제 분위기가 완전히 역전됐다. 이처럼 반대 여론이 고조되자 정부도 급히 별도의 국내팀을 설치하고 대국민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정태인 폭로와 범국본 총궐기

그동안 ‘다수 국민이 한미 FTA를 찬성하고 있다’면서 분위기를 몰아가던 정부에 왜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린 것일까? 국면을 반전시킨 결정적 요인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의 반대 논리가 국민들한테 점점 더 먹혀들고 있다. 정부의 빠른 협상 추진에 대응해, 3월28일 발족한 범국본 역시 신속하게 광범위한 반대운동 진용을 갖췄다. 300여 시민사회단체가 속속 범국본에 들어왔고, 영화배우들이 먼저 스크린쿼터 문제를 들고 나서면서 국민의 이목이 한미 FTA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현재 범국본에는 시청각미디어·문화예술·교수학술단체·보건의료·교육·금융·공공·소비자·환경·여성 등 14개 대책위원회가 활동 중인데, 이렇듯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문제제기가 이뤄지면서 싸움은 시민사회운동 세력의 총궐기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한미 FTA 반대 물결은 최근 방대한 분량의 각 분야별 출간(7월 초)으로 이어졌다.

범국본 이원재 공동상황실장은 “1차 협상 때 워싱턴 원정시위대나 2차 협상 때 범국민대회뿐 아니라 4월부터 지역별 순회 강연회와 농성을 벌이는 등 전국적으로 수많은 활동을 전개해왔다”며 “주요 토론 프로그램에 이해영 교수(범국본 정책기획연구단장)가 나서면서 범국본의 논리가 국민들한테 쉽게 전달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운동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는 무역 시스템 전반을 잘 알면서 합리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이 교수가 한몫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이 내부 폭로자로 등장한 것도 흐름을 반전시킨 큰 계기였다. 정태인 전 비서관은 4월 초 “한미 FTA 추진은 임기 안에 업적을 남기려는 노 대통령의 조급증 때문에 시작된 것”이라는 발언으로 큰 파문을 일으켰다. 이때까지만 해도 정부가 치밀한 준비 없이 졸속으로 협정을 추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점이 주요 논란거리였다. 그러나 그 뒤부터 찬반 진영의 게임은 주요 쟁점을 바꿔가면서 굉장히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처음에는 “한미 FTA가 ‘양날의 칼’일 수도 있다”고 신중론을 펴던 사람들도 시간이 흐를수록 협상의 구체적인 진상이 드러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자연히 ‘반대’로 돌아서고 있는 분위기다. 초기에는 정부의 한미 FTA 추진을 수치로 뒷받침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거시적 경제지표(국내총생산(GDP)·수출·고용 증가 효과)가 조작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지만, 쟁점은 곧 ‘협상 추진 절차’에 대한 비판으로 이동했다. 협상 추진 과정에서 국회는 뒷전이고 정부 혼자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제기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협상 전략이 노출될 수 있다” “우리는 미국과 다르다”면서 ‘협상 전략’ 운운했지만, 그럴수록 정부는 “도대체 우리나라 협상팀은 뭐가 그리 다른데…”라는 여론에 점점 더 밀리고 말았다. 결국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17일, 협상 관련 정보를 단계별, 대상별로 분류해 국회에 적극 공개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정부가 제시한 이해득실도 ‘막연한 기대’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여론이 확산되자 정부는 이제 “득실 자체보다는 외부충격 효과, 즉 구조개혁의 계기로 삼는 게 중요하다”고 말을 바꿨다. 또 “토끼는 한 평의 풀밭으로 만족하겠지만 사자는 넓은 초원이 필요하다”(한덕수 전 경제부총리)는 말이 보여주듯 한미 FTA 반대론을 단순한 ‘쇄국론’으로 규정해 몰아붙이고 있다.

정부의 헛발질 끝도 없네

사실 6월5일 워싱턴에서 1차 협상이 시작되면서부터 정부는 게임에서 깨지기 시작했다. 협상의 세부적 내용이 점차 흘러나오면서 ‘개방과 경쟁을 통한 도약’이라는 정부의 주장이 근거 약한 장밋빛 전망으로 드러나고, 한미 FTA 반대 흐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의약품과 교육 서비스 개방 같은 협상의 구체적인 내용이 자꾸 공개될수록 반발도 거세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협상을 서두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애초에 우리 정부와 미국 쪽이 다 같이 “교육 서비스 개방에 관심이 없다”고 했으나, 2차 협상 때 미국 쪽이 미국대입수학능력적성검사(SAT) 서비스에 관심이 있다고 밝히면서 거짓말 논란마저 일고 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자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선진 경제권과의 FTA를 통한 국가경쟁력 확보’를 줄곧 얘기했으나, 이제는 “당당하게 협상하겠다. 협상 시한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하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한명숙 국무총리도 최근 “시한에 쫓겨 졸속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며, 협상이 우리 쪽에 불리하다면 언제든지 도중에 중단할 수 있다”는 말까지 하면서 악화된 여론을 진화하기 바쁜 모습이다. 사실 2차 협상에서 미국과 우리 정부가 각각 몇 개 분과 협상을 일방적으로 취소하면서 파행을 빚은 것도 여론 달래기를 위한 일종의 제스처였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우리 정부가 이른바 ‘4대 선결조건’까지 내줬고, “미국은 공세적인데 한국은 전략도 없다”는 비판까지 제기되자 한국 정부도 당당하게 협상하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일부러 협상을 결렬시켰다는 해석이다.

이렇게 사태가 뒤집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범국본 이원재 상황실장은 ‘정부의 끊임없는 헛발질’도 한몫 거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국정홍보처는 ‘대학생들이 한미 FTA를 새로운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6월14일치)에서 대학생들의 인터뷰를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 사과문을 내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이원재 실장은 “정부가 설마 치밀한 준비 없이 협상을 시작했겠느냐며 처음에 신중했던 여론조차도 정부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반대로 돌아서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4대 선결조건은 없었다”고 줄곧 주장했으나 웬디 커틀러 미국 쪽 협상대표가 2차 협상 때 “4대 선결조건을 해결해주기로 한 한국 정부의 노력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발언하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되었다. 정부가 무리하게 협상을 추진하다 보니 곳곳에서 삐걱거리고 있는 것이다.

“한국 영화의 미국시장 점유율이 낮다면 미국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면 된다”(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는 말도 ‘헛발질’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가 영화의 문화적 가치를 무시한 채 오직 돈만 벌면 된다는 식으로 한미 FTA를 추진하고 있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한미 FTA 협상의 주요 쟁점 중 하나인 ‘투자자-정부 제소권’은 국가 주권과 직결된 사안이고, 그래서 오스트레일리아는 미국과 FTA를 체결할 때 이를 배제했는데도 우리 정부는 이미 인정하기로 합의해버렸다는 사실도 반대 여론 확산에 불을 붙였다.

, 임계점에서 터지다

2차 협상이 끝난 지금은 쟁점이 이제 ‘멕시코’로 옮겨진 양상이다. 멕시코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둘러싼 진실게임 공방이 정부와 지상파 방송사 사이에 가열되고 있는 것이다. 논란은 지난 6월4일 <kbs>이 ‘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을 통해 NAFTA 체결이 멕시코 경제에 미친 부정적 효과를 집중 부각시키면서 시작됐다. 이어 문화방송 은 7월4일 ‘론스타와 참여정부의 동상이몽 1편’을 통해 NAFTA 체결로 인한 멕시코 경제의 파탄과 양극화 심화, 서민경제 악화를 집중 조명했다. 이 방송이 큰 반향을 일으키자 은 이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연일 공격하고 나섰다.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도 “의 보도는 전형적인 편파 왜곡보도”라며 “멕시코 서민경제가 어려워진 데에는 NAFTA도 일정 부분 작용했겠지만, 페소화 위기로 인한 폐해가 훨씬 컸다”고 반박했다.


7월18일 이 ‘정부가 4대 선결조건 양보를 미리 약속했다’는 내용의 제2탄을 내보내자 다음날 재정경제부, 외교통상부가 즉각 합동 기자회견을 급히 열고 이 주장을 다시 반박하는 등 범정부 차원의 대응이 속전속결로 이뤄지고 있다. 여론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정부로서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일까?
범국본이 반대 여론을 조직화하고 그 와중에 정태인 전 비서관의 내부 폭로가 촉매제로 작용했다면, 은 반대 여론이 임계점에 이른 적절한 시점에 터지면서 여론을 ‘반대’ 쪽으로 확실히 돌려놓았다고 할 수 있다. 국정홍보처가 전면에 나서 일간신문에 내용을 반박하는 전면광고를 실은 사실이 그대로 보여주듯 파괴력 측면에서도 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 특히 한미 FTA 쟁점이 ‘멕시코’로 번지면서 이제는 경제적 수치로 따지는 분야별 득실을 넘어 한미 FTA가 한국 사회 전반을 불안과 위기로 몰아갈지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다급하게 ‘반대 여론 불끄기’에 나섰지만 한미 FTA는 정당과 국회 등 주류 질서 안에서도 의견이 제각각 다르고, 자본 분파 내부에서도 이해가 엇갈린다는 점이 정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열린우리당 안에서도 국회의원들 사이에 견해가 다르다. 이처럼 정부가 수세에 몰리자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단체들로 이뤄진 ‘바른 FTA 실현 국민운동본부’는 ‘한미 FTA 지지 성명’을 내고 “노무현 정부가 준비 부족과 추진 능력 부실로 한미 FTA를 무산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무책임하고 무능한 정책 추진으로 한미 FTA가 무산되고 국익이 훼손되면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정치적, 역사적 책임을 면할 길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놓고 지지 못하는 재계

그렇다면 재벌을 중심으로 한 재계는 어떤 입장일까? 7월11일 이희범 한국무역협회 회장,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 ‘한미 FTA 민간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들은 “FTA 체결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려면 미국과 같은 거대 경제권과 FTA가 필수적”이라는 성명을 냈다. 이와 관련해 한미 FTA 민간대책위 총괄간사를 맡고 있는 무역협회 쪽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이해관계가 다르고, 언제, 어느 경제권과 먼저 FTA를 체결해야 한다는 데도 기업마다 이견이 있을 수 있다”며 “그래서 호소문이나 성명서에 특정한 이슈나 업종에 대한 내용은 넣지 않고 단어도 신중하게 표현하고, 일반적인 ‘국익’ 확보를 요구하는 수준에서 성명을 내고 있다”고 말했다.
재벌기업들은 아직 조용한 편이다. 일부 대기업은 반대 여론이 높아지는 판국에 드러내놓고 한미 FTA 지지 성명을 냈다가는 괜히 덤터기를 쓸 수도 있고,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갖고 밀어붙이고 있는 마당에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어쩌면 “한미 FTA가 체결되면 좋지만, 그렇다고 눈앞에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재계조차 눈치를 살피고 있고, 정부는 이래저래 시간이 갈수록 불리한 처지에 빠져들고 있다.</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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