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 제정을 위해 4년 동안 땀과 눈물을 흘린 시민들… 행정 권력의 횡포와 국회의 외면으로 표류하다 식중독 터지자 바로 통과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6월28일 저녁 8시30분, 국회 교육위원회 의원들이 회의실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2년 가까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학교급식법 개정안 6건을 모아 만든 절충안을 손에 쥐고 있었다. 권철현 교육위원회 위원장(한나라당)이 “국민들의 의사를 받들어 이번 임시국회 회기 안에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새로 개정된 ‘학교급식법’은 모든 초·중·고등학교들이 내년부터 모든 급식용 식재료들을 직접 구입해 이상이 없는지 검사해야 하고, 원칙적으로 급식소를 직영으로 운영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다음날 민주노동당은 “지난 4년여 동안 국민 여러분의 절박한 요구와 희망을 모아 추진한 학교급식 법안이 드디어 햇빛을 보게 되었다”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돈 안 들이고 급식 확대하는 방법…
지난 4년 동안의 급식법 개정 과정은 현대 민주사회에서 주민들의 직접 참여가 실제 정책에 반영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하는지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주민들의 직접 참여로 이뤄낸 성과물들은 행정 권력의 횡포에 막혀 좌초될 위기에 놓였고, 전라북도에서는 189만 도민의 참여로 제정된 ‘학교급식조례’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을 위반했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막혀 휴짓조각으로 변하기도 했다. 이빈파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정부의 비협조와 국회의 외면 속에서 정말 힘들게 싸워왔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급식이 처음 시작된 것은 1953년부터다. 첫 급식은 유니세프 등 외국 원조기관이 전쟁 고아들에게 밥을 먹이기 위한 구호적 성격이 강했다. 1966년 급식은 정부 사업으로 바뀌지만, 1981년 학교급식법이 만들어지기까지 급식 업무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에 머무른다. 사실, 법이 만들어져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는 1990년 3월16일치에서 “학교급식 업무를 맡아오던 문교부 체육국이 1981년 체육부로 이관되면서 체육부가 급식 업무를 9년간 관장해오다가 3월 초 다시 문교부로 넘어오는 바람에 전담과마저 없고 정부의 학교급식 정책이 일관성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지만 사회의 변화에 맞춰 학교급식은 꾸준히 확대돼왔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서울시교육청의 위탁을 받아 2003년 12월 작성한 ‘서울특별시 학교급식 운영 개선방안 연구’를 보면, “1993년부터 2002년까지 우리 사회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학교급식이 확대됐다”고 적고 있다. 급식 확대의 수혜를 제일 처음 받은 곳은 초등학교였다. 1992년에 급식을 먹는 학교는 전체 7376개 가운데 17.6%인 1298개에 불과했지만, 1998년에는 99.2%인 5640개로 늘어났다.
1998년 정권을 잡은 DJ 정부는 학교급식을 중·고등학교까지 확대하고 싶어했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정부는 돈을 들이지 않고 중학교와 고등학교까지 급식을 확대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부실 급식의 원흉으로 지적된 ‘위탁급식’이다. 정부는 1996년 10월 학교에 급식 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조건으로 급식을 외부 업자에게 위탁할 수 있도록 학교급식법을 개정했다. 교사들은 “이윤 추구가 목적인 사업체에 학교급식을 맡길 경우 영양·위생 측면이 부실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정부 방침을 뒤집을 순 없었다. 1997년에 급식을 제공하는 고등학교는 전체의 9.8%(185개교), 중학교는 8.6%(235개교)였지만, 그 비율은 2005년에 99.0%(2074개교), 99.0%(2906개교)로 각각 늘었다.
고난 끝에 발의한 조례, 행자부가 제소
날림으로 시행된 급식 정책의 폐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가됐다. 밥과 반찬에서 머리카락·벌레·못·수세미 조각이 쏟아져나왔고, 어떤 기준으로도 “부실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식판의 모습을 찍은 사진이 인터넷 공간을 떠돌기 시작했다. 사고는 대부분 위탁급식을 시행하는 중·고등학교에서 터져나왔다.

교육인적자원부가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에게 제출한 ‘전국 시·도 교육청별 학교급식 위생사고 현황’을 보면, 2000년부터 2004년 7월까지 위탁급식을 먹고 식중독에 걸리는 학생의 비율은 직영보다 4~14.6배 정도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보다 못한 교사와 학부모들이 뭉치기 시작했다. 그들은 2002년 11월1일 학교급식전국네트워크(네트워크)를 만들어 △직영 전환 △우리 농산물 사용 △무상급식 확대 등을 뼈대로 한 학교급식법 개정운동에 나섰고, 2003년 11월에는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 제정을 위한 국민운동본부를 출범시켰다. 전국적으로는 법 개정, 지역적으로는 조례 제정운동이 들불처럼 번졌다.
정부는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에 비협조로 일관했다. 공무원들은 직영 전환을 위해 필요한 예산 부족을 탓했고, 우리 농산물을 쓰자는 외침에는 “WTO 협정에 위배된다”고 버텼다. 네트워크 서울운동본부는 2004년 5월, 6개월에 걸친 고된 작업 끝에 시민 14만6258명의 서명을 받아 △직영 전환 △우리 농산물 사용 △무상급식 확대 등을 뼈대로 한 “학교급식조례를 만들어달라”고 주민 발의했다. 주민이 직접 나서 “조례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인 주민 발의가 발동되려면 14만 서울 시민들의 서명이 있어야 한다. 서울시는 여섯 달에 걸친 네트워크의 고된 노동에 대해 “2만4천여 개의 명단에 오류가 있다”며 “이를 바로잡지 않으면 발의안을 받을 수 없다”고 통보했다. 서울시가 제시한 보정 시간은 닷새였다.
조례가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부모·교사·시민들이 “조례를 살려내자”며 자발적으로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서울 창신초등학교에서는 교장과 교사들이 “조례를 꼭 만들어야 한다”고 학부모들을 설득해 3177명의 명단을 운동본부에 전달했고, 원묵초(1638명), 한남초(847명), 증산초(171명) 등에서 학부모들의 명단이 쏟아져 들어왔다. 시민들의 참여 앞에 서울시는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16대 국회 자동폐기, 17대도 2년 묵혀
조례가 통과되자 행정자치부가 시민들을 가로막고 나섰다. 그들은 국내산 농수산물 사용을 명문화한 서울시 학교급식조례가 WTO 협정을 위반했다며 대법원에 제소했다. 2005년 9월9일 대법원 3부(주심 양승태 대법관)는 서울시 조례와 비슷한 전북도 조례에 대해 “우리 농산물을 사용하는 학교급식 업체를 지원한다는 전북도의회의 조례는 수입산의 ‘내국민 대우 원칙’을 명시한 가트 협정에 어긋나므로 효력이 없다”고 판결했다. 네트워크 쪽은 서울시 조례에 대해서도 비슷한 판결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국회는 “아이들에게 좋은 밥을 먹이자”는 외침에 철저히 무관심했다. 16회 국회 때는 10개의 학교급식법 개정안이 제출됐지만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됐고, 17대 국회 때는 6개의 법안이 제출됐지만 사학법과 로스쿨을 둘러싼 정쟁에 막혀 2년 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리고 지난 6월21일 숭의여중에서 시작된 대규모 식중독 사고가 터졌다. 국회 교육위 회의는 시작에서 의결까지 1시간9분38초가 걸렸다. 우리가 조금 서둘렀다면 더 많은 급식 사고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69분38초를 위해 어른들은 4년을 돌아왔다. 아이들의 가난한 식판 앞에서 우리는 무슨 변명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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