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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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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축구는 어디로 갔나

등록 2006-05-26 00:00 수정 2020-05-03 04:24

축구전문가가 본 월드컵…기다리는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은 이유… 애국주의 마케팅은 판을 치는데 정작 한국 프로축구 소식은 냉대받아

▣ 서형욱 엠파스 토털사커 팀장·문화방송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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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돌아온 월드컵의 광풍이 서서히 거세진다. 미디어들은 D-30을 기준으로 모든 이슈를 월드컵과 연관짓기 시작했다. 가수들도 월드컵이나 대한민국이 들어간 가사의 노래를 시시때때로 불러대고, 화면 곳곳에는 빨간색 티셔츠를 입은 연예인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뉴스에서는 평소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아니 비정상적인 사람이라 손가락질 받았을 축구 ‘마니아’들이 그간 줄곧 만인의 부러움을 사온 용감한 사람으로 포장돼 신문 지면과 텔레비전 화면을 도배한다. 그렇다. 이제 바야흐로 월드컵 시대가 들이닥친 것이다.

월드컵,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사실, 월드컵은 한국에서 더 이상 축구 이벤트가 아니다. 월드컵이 며칠 남았다고 소리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축구를 주요 토픽으로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수들이 등장해 내셔널리즘을 자극하는 노랫말을 다양한 악기의 선율 위에 얹어 목청을 높이고, 뉴스에서는 각종 서비스 업계에서 월드컵을 어떤 식으로 장사에 활용하는지 사례를 보여주는 게 전부다. 이를테면 월드컵을 꼭 30일 남겨둔 지난 5월9일의 풍경을 다시 한 번 보자. 이날은 한국의 유일한 프로축구 리그인 K리그의 전기리그가 끝나는 날이었다. 불과 한 달 뒤면 전 국민이 애타게 부를 이름들이 전국 곳곳의 축구장에서 열심히 공을 찼지만, 스포츠 뉴스의 한 꼭지와 신문의 스포츠 지면 정도만이 그 소식을 전할 뿐이었다. 대부분의 미디어들이 무시했고, 당연히 대부분의 국민들은 경기가 있는 줄도 몰랐다. 세계 최대의 ‘축구’ 축제라는 월드컵이 전국적인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니 축구 마니아 출신의 축구해설가로서, 아니 그 이전에 축구팬으로서 월드컵을 기다리는 마음은 그리 편치 않다. 오는 6월10일, 2006년 독일월드컵의 막이 오르면 모두가 예상하듯이 전국은 붉은 물결에 “대~한민국” 구호로 가득 찰 것이다. 이때만은 대한민국 축구팬의 수가 일시적으로 최소 3천만 명은 더 늘어난다. 하지만 비약적으로 늘어난 축구팬의 수를 겁낼 필요는 없다. 추가로 경기장을 지을 필요는 없으니까. 그들 중 다수는 그 기운을 몰아 축구장에 한 번 발을 딛기도 전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테니. 애당초 축구 이벤트가 아니었던 대한민국에서의 월드컵은 그 짧은 몇 주 동안 사람들에게 자신이 축구팬이 된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지만 현혹의 효과는 그리 길지 않다. 이제 다시 대회가 끝나면 성적과 무관하게 K리그 경기장은 잠시 늘어난 관중에 즐거워할 것이고, 월드컵이 낳은 소수의 축구 스타들은 ‘태극전사’라는 명패를 달고 뉴스 카메라나 연예 프로그램 리포터들의 추적을 피하느라 약간의 곤욕을 치를 것이다. 물론, 그마저도 그리 오래가지 않을 테니 큰 걱정은 필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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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다가오고 있음을 두 팔 벌려 반기는 축구팬의 심정의 한켠이 텁텁한 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은 월드컵이 아무것도 바꿔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잠시 모두를 들뜨게 만들 뿐, 조금만 지나면 이 땅의 축구는 다시 월드컵과 무관한 종목으로 밀려 냉소적인 팬들의 시선 아래로 잠수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일반인들에게는 생뚱맞은 불평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 사실, 한국에서 축구의 인기는 대부분 그 종목 자체의 매력보다는 월드컵을 비롯한 국가대항전에서 선수들이 가슴에 달고 나오는 태극마크에서 비롯된 것이다. 프로축구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과 국가대표팀 축구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 내에서 빈 관중석 수 차이가 수만 석에 이르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는 건 이 방법 외에는 불가능하다.

축구 문화 발전의 뇌관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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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씁쓸한 것은 스스로 ‘골수’ 축구팬이라 믿는 사람들이 기댈 언덕이 결국엔 월드컵을 비롯한 국가대항전뿐이라는 역설적 현실이다. 따지자면 그러한 ‘골수분자’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월드컵을 통해 축구의 참맛을 느끼고 그 안에 몸을 던졌다. 프로축구가 생겨나기 전부터 축구팬을 자처했던 사람들이야 두말할 나위 없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프로축구가 먼저 생겨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대표가 형성돼 국가대항전을 치렀던 유럽인들의 축구사를 고스란히 거꾸로 밟아온 한국 축구의 역사를 부정할 수 없는 탓이다. 축구사를 시초부터 뒤집어쓰지 않는 한 현재의 패러다임을 바꾸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결국 한국에서 축구의 존재란 내셔널리즘을 빼놓고는 성립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그렇다면 월드컵은 일반인들이 축구의 스펙터클에 흠뻑 빠져 이 종목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인 셈이다.

물론 이것이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본선 진출 여부가 중요하다는 유의 주장은 아니다. 한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 한국 축구 발전을 좌우하고 한국 축구 문화 정립의 가능성을 이어주는 것이라는 절망적인 견해와는 오히려 배치되는 외침이다. 월드컵이 반영하고 있는 내셔널리즘을 통해 붐을 이루고, 그 안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축구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월드컵을 목표로 하는 수많은 예선전 경기들을 통해 축구의 환희를 경험한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궁극적으로 내셔널리즘이 희미해진 경기, 즉 일상에 침투한 축구를 즐길 수 있는 여력이 마련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앞으로 축구 문화 발전의 커다란 잠재력을 가진 사회다. 전 국민이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통해 축구를 동시에 호흡한 경험이 있어서다. 이러한 경험은 폭탄의 뇌관과도 같아 언제든 그 재미를 재현할 수 있는 자극만 있다면 다시 불이 붙어 폭발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래서 축구팬이면서 축구 해설자로 살아온 내가 월드컵을 더욱 기대하는 이유는 월드컵 안에 잠재돼 있는 뇌관을 다시 한 번 건드릴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점 때문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번은 내가 축구해설가로서 맞는 두 번째 월드컵이다. 4년 전, 나는 2002년 월드컵 개막전 중계를 위해 서울월드컵경기장 중계석에 앉아 떨리는 가슴을 쓰다듬고 있었다. 당시 나는 문화방송 라디오 중계를 맡아 임택근-이윤철 두 노장 캐스터들과 함께 세네갈의 ‘대이변’을 전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현장의 열기를 전했다. 잠시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쿵쾅거릴 만큼 4년 전의 기억은 언제나 새롭고 뜨겁다.

그래도 축구 자체를 즐기는 사람 늘어

그러나 해가 네 번이나 바뀌는 동안 월드컵 덕에 축구에 쏠렸던 관심은 다시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렸다. 마이크를 잡고 당시의 열기를 되살리는 데 미력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다는 의욕이 부담스러워질 만큼 냉담해진 분위기라고나 할까. 물론 월드컵의 흔적을 밟고 올라 축구팬의 정체성을 흡수한 팬들도 적지 않다. 게다가 매일같이 안방을 파고드는 케이블 방송의 축구 중계는 그들의 눈높이까지도 한껏 높여놓았다. 이제 우리네 축구팬들은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의 경기만을 찾지 않는다. 월드컵이 한국의 16강을 기대하게 해서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축구 제전이기 때문에 즐긴다는 사람의 수가 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가 바로 월드컵을 통해 축구팬과 축구판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수확이며, 이를 위한 ‘추수’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2006년 월드컵 중계를 준비하는 가슴은 더욱 두근거린다. 물론 축구팬으로서 현장에서 경기를 직접 지켜보게 된 것에 대한 기대감이 심장을 자극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월드컵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축구팬들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길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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