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미군 재편 최종합의 직후 평택에 군 투입, ‘친미’에서만은 질 수 없다?… 미국쪽 요구 그대로 들어준 한국과 달리 일본은 지역 반발과 비용부담에 신중
▣ 도쿄=이준규·평화네트워크 정책실장 minoritylee@hanmail.net
일본에서 두 가지 뉴스를 거의 동시에 들었다. 하나는 미-일 두 나라가 주일미군 재편 ‘최종 합의’를 발표했다는 것. 다른 하나는 한국 정부가 드디어 평택에 ‘군대’를 투입했다는 뉴스이다. 한국 정부가 미-일 최종 합의 발표 직후 평택에 군을 투입한 것은, 미국과의 동맹 관계에 관한 한 일본에 질 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3년 넘게 진행돼온 주일미군 재편 협상이 최종 합의 발표에 이른 상황에서 한국이 선도적인 모범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참으로 묘한 ‘극일 정신’의 발현이다.
광역사령부 설치에서 한발 물러나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5월4일 담화문에서 평택 미군기지 이전이 진전되지 못하면 “외교적 신뢰를 손상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엄포’는 무지의 소산이다. 아니라면 국민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최종 합의를 발표한 주일미군 재편조차 순탄하게 추진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필자가 일본에서 만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감하는 부분이다. 오가타 야쓰오(공산당 국제국장) 참의원 의원은 “미-일 정부가 합의를 발표한 것과 합의를 실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강조했다. 이런 평가는 단순히 희망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미-일 정부의 협상 과정과 그 결과, 그리고 주일미군 재편의 향후 과제를 검토해보면 곧바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주일미군판 전략적 유연성’이라고 불렸던 미 육군 제1군단 사령부의 자마기지 이전 문제를 보자. 원래 미국은 자마기지에 극동~중앙아시아~중동으로 이어지는 지역(이른바 ‘불안정한 호’)을 관할하는 광역사령부(UEY)를 설치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최종 합의를 보면, 자마의 미군사령부는 UEY보다 한 단계 아래인 거점사령부(UEX)가 된다. 그 역할도 육·해·공군과 해병대 4군의 통합 지휘, 그리고 일본 ‘유사사태’와 극동 유사시에 대한 대응이다.
이런 결과는 자마기지의 광역사령부 재편이 미-일 안보조약의 ‘극동 조항’과 충돌하고, 주일미군의 해외 출동을 기정사실화할 것이며, 기지의 ‘확대’ 재편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일본 국내의 극심한 논란을 의식한 것이다. 특히 일본 외무성 내에는 워싱턴 소재 미 육군 제1군단 사령부가 그대로 이전해오면 일본뿐만 아니라, 주변국들과의 관계도 문제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미 육군 제1군단이 관할하는 범위가 중앙아시아와 중동까지 이르기 때문에 미-일 안보조약에서 규정한 ‘극동’(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에 따르면, 극동은 필리핀 이북까지다)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또 주일미군 재편이 미-일동맹의 ‘군사적 일체화’와 함께 진행되고 있다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집단적 자위권’을 금지한 헌법 9조와의 충돌 문제가 심화돼 극심한 안보 논란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미-일 양국의 주일미군 재편 협의는 ‘전략적 목표 공유 → 역할분담 합의 → 개별 기지 재편’의 단계로 진행됐다. 이에 따라 정세 인식과 전략적 공동목표에 대한 합의는 지난해 2월 ‘2+2’(미-일 안전보장협의위원회)에서, 미-일 역할분담에 대한 합의와 개별 기지 재편에 대한 중간합의는 10월 중간보고에서 이뤄진 것이다. 미-일 양국의 접근법은 견해차가 크지 않은 부분에 대해 먼저 합의를 한 뒤, 개별 기지 문제로 나아가는 방식이었다. 일본 정부의 입장에선 전략적 목표나 역할분담 등은 탈냉전기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돼왔던 ‘미-일동맹 재정의’라는 흐름 속에서 충분히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이었고, 문제가 되는 기지 재편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협상을 진행한다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이는 일찌감치 ‘전략적 유연성’ 개념에 기반한 기지 재편에 우선적으로 합의를 해놓고, 결정된 시간표에 따라 기지 이전을 강행하는 한국 정부와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물론 미국의 새로운 군사전략이 해외주둔 미군의 활동 범위를 특정 지역에 한정짓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극동 조항’의 무력화, 헌법 9조 개정에 대한 압력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보면 주일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기지 재편 협상 과정에서 제한을 받게 된 것은 분명하다.
“시간 필요하다” 계속 되풀이
향후 주일미군 재편 과정에서 가장 큰 과제는 기지 부담의 축소를 요구하는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주민들의 요구다. 대표적인 예가 이와쿠니다. 이와쿠니는 지난 3월12일 주민투표에서 아쓰키 기지(도쿄 인근 가나가와현)에 있는 항공모함 탑재기 부대를 야마구치현의 이와쿠니 기지로 이전하는 기지 재편안에 89%가 반대표를 던진 바 있다.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실시된 이와쿠니시의 시장선거에서도 주민투표를 주도한 이하라 가쓰스케 전 이와쿠니 시장이 재선됐다. 이하라 시장은 “기지 재편안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게다가 야마구치현 지사와 이와쿠니시에 인접한 히로시마현 지사까지 나서 주민들의 의사를 존중할 것을 중앙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특히 오키나와는 미-일 정부가 합의한 “주일미군 재편안에 오키나와는 존재하지 않는다”면서 크게 반발하고 있다. 미-일 두 정부가 협의 과정에서 가장 공을 들인 부분이 오키나와의 기지 부담 경감이었다. 일본 정부가 주일미군 재편 협의의 두 가지 원칙 중 하나를 ‘기지 부담 경감’으로 제시했을 때, 그 중심은 오키나와였다. 오키나와의 오랜 숙원이 반영된 결과다. 그럼에도 여전히 반발은 거세다. 전체 주일미군 기지의 70% 이상이 집중돼 있는 현실을 개선하는 데는 훨씬 미치지 못한다는 게 현지 주민들의 평가인 탓이다.
미국은 오키나와 가네다 공군기지의 공중급유기를 확대 재편되는 이와쿠니 기지로 이전하려고 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항공모함 탑재기 부대의 이전조차 반대하는 이와쿠니시에 공중급유기를 이전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이번 최종 합의에는 포함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기지 재편안에 주일미군 기지와 관련된 55개 지방자치단체의 거의 대부분이 반대하고 있다. 일본 내에서 주일미군기지가 환영받는 곳은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시간을 더 달라고 하고, 미국 정부는 일본 정부를 향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를 질리도록 들었다”(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고 짜증 섞인 발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지이전 비용 분담 문제도 남아 있다. 오키나와 해병대의 괌 이전(약 8천 명) 비용의 59%를 일본 쪽이 부담하기로 합의했지만, 전체 기지이전 비용 분담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원래 괌 이전 비용의 30% 분담안을 제시했던 일본 입장에서 전체 비용 문제는 양보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리처드 롤리스 미 국방부 아시아·태평양지역 담당 부차관은 지난 4월25일 일본 쪽 총 부담액을 260억달러(약 24조4400억원)라고 일방적으로 발표해 일본을 발칵 뒤집어놨다. 일본 정부는 자국 여론의 반발과 부담액의 비현실성을 들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최고의 친미 내각도 비판의 목소리
일본 역사상 최고의 친미 내각으로 불리는 고이즈미 내각의 아소 다로 외상까지 나서 “미국 쪽이 제시한 이전 비용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정도다. <마이니치신문>은 최근 고이즈미 총리가 이번 국회 회기에는 ‘미군 재편 관련 법안’을 제출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일본 언론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정치적 부담을 다음 내각으로 떠넘기려 한다”고 비판했지만, 그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든 주일미군 재편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고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전략적 유연성, 기지 확장, 환경치유 비용, 기지이전 비용까지 미국 쪽의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었다. 게다가 기존 결정 사항에 대해선 군대와 대규모의 경찰 병력을 동원해 강행하고 있다. 강행의 한길로만 치닫고 있는 정부가 오히려 ‘동맹의 실패’를 낳을 듯해 위태로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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