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휴교령이 떨어지자 스크럼을 짜고 벌였던 문무대 퇴소 시위… 그 엄혹한 상황, 연병장에서 계엄군을 향해 학원병영화 반대를 외치다
▣ 방현석 소설가 bang@cau.ac.kr
아득하다. 엊그제 지나간 일 같은데 기억은 바래고 바랬다. 벌써 사반세기가 흘렀다. 1980년의 5월16일. 날짜가 날짜인 만큼 그날을 지금도 기억한다.
서울의 봄 끝자락이었고, 나는 아직 풋내가 가시지 않은 신입생이었다. 벌써 한강을 두 번인가 세 번을 건넌 다음이었다. 시청 앞까지 진출해서 올봄의 황사보다 짙은 최루탄을 뒤집어쓰고 물러난 서울역에서 역사적인 ‘회군’을 한 날로부터 하루인가 이틀 정도 지났던가.
순식간에 군기가 잡히다
교련복을 입은 우리 1학년들은 학교의 ‘연병장’에서 관광버스에 올랐다. 동기 여학생들은 사탕 같은 것을 나눠주며 배웅을 했다. 벌써 연애에 착수한 녀석들은 무슨 대단한 이별을 한다고 눈자위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한 풍경은 그 뒤로도 몇 해 더 이어졌다.
그해 유별난 것이 있었다면 버스에 오르기에 앞서 열린 집회였다. 문무대 입소에 임하는 80학번 결의대회, 뭐 대충 이런 이름이었다.
서울의 봄이 시작되면서 서울의 각 대학교에서는 일찌감치 문무대 입소를 거부하겠다는 결의를 해두고 있었다. 매주 3시간인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련교육 자체에 대해 학생들은 학원병영화 정책이라며 반발하고 있었으니까, 유별난 일은 아니었다.
문무대 입소 거부의 결의를 불태우던(?) 우리는 입소 1주일을 앞두고 입장을 180도 바꿔야 했다. 우리 학교 바로 앞 순서인 서울대가 ‘국민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민주화운동을 탄압할 빌미’를 제거하겠다며 입소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서울대가 간다는데 어느 대학교가 안 가겠다고 버티겠는가. 존심이 상했지만, 그들이 발표한 것과 비스무리한 성명서를 발표하며 우리도 입소를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학교에서 발표된 그 성명서는 물론 문창과 대표인 내가 써야 했다.
버스에 오르기 전에 열린 집회에서 발표한 성명서의 요지는 휴교령이 내리면 즉시 퇴소하겠다는 것이었다. 삼단논법이었다.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문무대 입소훈련은 교련교육의 일환이고, 교련은 학교 교육의 일환이라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휴교령이 내려지면 학교 교육이 중단되는 것이며, 학교 교육이 중단되면 당연히 교련 교육도 중단되고, 교련 교육의 일환인 문무대 입소 훈련도 중단되어야 한다, 는.
서울 도심이 최루탄 연기에 휩싸일 무렵부터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휴교령이 내릴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러나 그런 성명서를 쓰고, 또 발표하면서도 그리 실감은 없었다. 설마.
성남에 있는 학생군사학교, 문무대 연병장에 버스가 도착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우리가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몽둥이를 휘두르며 군기를 잡았다. 얼떨결에 쪼그려 뛰기를 시작했고, 우리는 순식간에 완전히 군기 잡혔다. 그리고 누가 항의할 틈도 없이 학교에서의 편재를 완전하게 바꾸어버렸다.
교련시간에도 단과대학, 학과별로 편재되어 교육을 받았는데, 그 편재를 완전히 헝클어버렸다. 한 소대 안에 전혀 다른 대학, 다른 학과 학생들이 뒤섞였다. 의도는 뻔했다. 학과, 대학 단위의 집단행동을 봉쇄하기 위해서였다.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 좌로 굴러, 우로 굴러…. 정신없이 뺑뺑이를 돌고 나니 저녁 식사시간이 되었다. 배가 등가죽에 붙었으니 밥맛은 꿀맛이었다. 점호시간, 보람찬 하루 일을 마치고서…. 씩씩하게 군가를 부르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다음 사가가 문제였다.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모두의 눈에서 물줄기가 줄줄 흘러내렸다.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어”
어쩌면 그대로 쭉~ 갔다면 우리 모두는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는 학생이 되어서 군사교육을 마치고 대학에 복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설마’가 너무 빨리 왔다.
녹초가 되어 잠에 떨어진 나를 불침번이 깨웠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도대체 몇 신데 사람을 오라 가라 하는 거야.”
“중대장이 오래. 까라면 까는 게 군대 아니냐.”
불침번을 서고 있던 회화과 녀석은 하루 사이에 군대 물 다 먹었다는 말투였다.
행정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중대장은 군화에 전투복 차림이었다. 이 시간에. 허리에는 권총도 매달려 있었다. 심상찮았다. 그는 자정을 기해서 비상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고 모든 대학에 휴교령이 내렸다고 말했다.
“이제, 세상이 완전히 달라졌어. 정신 똑바로 차리고 행동해.”
같은 시간에 다른 중대의 요주의 인물들도 중대장의 호출을 받았다. 내무반으로 돌아온 녀석들은 불침번을 통해 통문을 돌렸다. 나는 모포를 뒤집어쓰고 또 성명서를 썼다.
성명서는 오전 첫 시간 교육인 ‘귀순용사’ 반공 강연이 끝난 문무대 강당에서 단상을 점거한 과대표들에 의해서 발표되었다. 그리고 연병장으로 몰려나갔다. M1소총을 연병장 한 귀퉁이에 거치한 우리는 새벽에 결정한 대로 문무대 편재를 해체하고 단과대학, 학과별로 대오를 재편했다. 교관과 조교들이 몰려와 통제하려고 했지만 자신들이 통제해야 할 중대와 소대 자체가 사라지고 없었다. 문무대에서 다시 붙인 중대, 소대, 이름이 적인 명찰도 다 떼어낸 다음이었다. 스크럼을 짜고 연병장을 돌며 시위를 벌인, 문무대 역사에 전무후무한 사건이 계엄 확대 첫날 오전에 벌어진 것이다.
‘계엄 철폐! 민주 쟁취!’
‘휴교령 철회! 문무대 퇴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그게 얼마나 겁 없는 짓인지 알았다면 결코 그렇게 용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교관, 조교들과 연병장에서 몸싸움을 벌일 때까지만 해도 겁이 없었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서 상황은 급전했다. 전조등을 켠 군용트럭들이 갑자기 정문과 후문 양쪽으로 동시에 들이닥쳤다. 연병장을 포위한 공수부대원들의 M16총구의 끝에 매달린 대검은 한 낮의 햇빛을 받아 유난히 빛났다.
과대표들은 모두 붙들려갔다.
대위에게 고개 숙인 총장님
“제군들 여기가 어딘가?”
보안사 대위는 45구경 권총을 뽑아들고 거칠게 노리쇠를 밀었다 놓으며 우리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신성한 군사교육장에서 계엄령을 무시하고 집단행동을 해? 너희놈들 모두를 이 자리에서 내 직권으로 사살해버릴 수 있어.”
총장이 직접 문무대로 달려와 대위에게 읍소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정말 미안했다. 평생을 꼿꼿하게 살았던, 정년을 한 해 앞둔 그분은 우리들의 안전을 위해 대위에게 고개를 숙였고, 우리는 이틀 뒤 동료들과 합류할 수 있었다. 나머지 교육기간은 우리에게 공황의 시간이었다.
문무대에 이어 2학년 때는 전방입소 훈련을 받아야 교련학점이 나왔다. 교련학점을 받지 못하면 군대에 가야 했고, 그렇게 군대에 가면 복무기간 단축 혜택도 받지 못했다. 나는 교련학점을 받지 못했다. 그때, 많게는 6개월의 복무기간 단축 혜택을 받은 쫄병들이 제대하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고참 생활을 참 길~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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