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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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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숙성된 시나리오

등록 2006-04-19 00:00 수정 2020-05-02 04:24

대통령은 왜 약속을 깨고 중장기 과제로 여겨진 한-미 FTA에 올인 했을까… 경제 도약 논리 이면엔 업적주의도, 국민들은 두달 전에야 현실을 깨달아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노무현 대통령은 약속을 깼다. “FTA가 되면 관세가 없어지기 때문에 우리 농민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아직 관세 없이 개방할 만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한-미) FTA가 어렵다.” 2003년 5월15일 방미 중 샌프란시스코에서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다. 3년이 채 흐르지 않은 2006년 2월3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워싱턴 미 상원의사당에서다. 통상교섭본부장과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공동 기자회견 형식이었다.

2003년엔 “준비 안 돼있다”더니

상황이 달라진 것일까? 아쉽게도 관세 없이 개방할 만한 준비가 되고 농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결책을 마련해놨다고 볼 만한 근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분명한 것은 그사이 대통령의 판단이 변한 것이다.

대통령은 왜 약속을 깨고 한-미 FTA에 ‘올인’했을까? “한-미 FTA는 단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새로운 활로가 무엇이냐에 대한 고민의 결과다. 중국이 따라온다는 타령만 하고 있을 수 없다. 우리도 선진국형 서비스업에 결국 도전할 수밖에 없다.” 지난 2월26일 취임 3주년 출입기자단 북악산 산행 및 오찬에서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개방된 환경 속에서 경쟁을 통해 성장시켜가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경제의 ‘업그레이드’(도약)를 위해 ‘외부 쇼크’가 필요했다는 논리다. 그러나 왜 하필 가장 충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미국과의 FTA에 가속 페달을 밟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그리 명쾌하지 않다. “경험상 한번 기회를 넘기면 10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억하는 대통령은 이번 한-미 FTA 추진이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고 말한다. ‘업적주의’도 작용했을 것이다. 대통령 스스로도 “이것(한-미 FTA)은 아마 참여정부의 큰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화의 주춧돌을 놓은 박정희에 이어 우리 경제를 ‘선진 통상 국가’로 패러다임 전환시킨 역사적 인물로 남고 싶은 대통령에게 한-미 FTA는 피할 수 없는 모험인 셈이다. 그리고 그 모험을 위해 “보호만으론 한계가 있다. 개방과 경쟁을 통한 성장”을 주장하며 기꺼이 ‘개방주의자’로 무장했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움직임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자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거대 경제권과의 FTA를 왜 그리 서둘러 추진하느냐로 모아진다. 참여정부가 출범 직후부터 FTA를 추진해왔음에도 한-미 FTA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하다.

노 대통령은 2003년 58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 진입을 위해 FTA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보름 만인 8월30일 부총리 주재로 열린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FTA 추진 로드맵’을 확정한다. 2005년 새해 기자회견에서도 “개방과 혁신을 위해 FTA 체결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다자무역 체제에서도 적극적인 역할을 하겠다”고 확인한다.

공청회나 NSC 협의도 없이

하지만 FTA와 ‘한-미 FTA’는 다르다. ‘FTA 추진 로드맵’에서도 미국과의 FTA는 중·장기 과제로 쳐져 있었다. 2004년 5월 대외경제장관회의 때도 기조에 변화가 없었다. 같은 해 8월 대통령이 의장인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듬해 3월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야 예비 협의 중인 FTA로 미국을 예로 들며 “상반기 중 양국 정부 간 사전 협의를 통해 교역 및 투자 여건을 점검하고 이를 토대로 FTA 가능성을 검토했다”는 내용이 재경부 보도 참고자료의 맨 뒷장에 참고용으로 한 장 붙어 있었다. 한-미 FTA 추진 발표를 불과 석 달 남겨둔 지난해 11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한-미 FTA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부시 미 대통령이 방한에 앞서 “한-미 간 무역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 앞엔 FTA를 맺을 기회가 놓여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 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명확히 언급했을 때도 국내는 조용했다. 1년 앞선 2004년 1월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 대사가 고려대에서 ‘한-미 FTA의 로드맵’이라는 특별강연을 했을 때도 한-미 FTA는 먼 훗날의 일처럼 보였다.

청와대나 정부 당국자가 말을 아끼는 사이 미국발로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한-미 FTA는 미국의 통상 압력 중 하나로 우려스럽게 읽힐 때가 많았다. 청와대나 정부 당국자들은 “FTA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얘기하고 있는데, 2003년 로드맵에 따라 충분히 검토하면서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한-미 FTA를 급작스럽게 추진한다는 비판에 반박한다. 하지만 이것은 FTA 비판에 대한 반박이지 한-미 FTA 비판에 대한 반박으로는 궁색하다. 제대로 된 공청회 한 번 없이 협상을 미국의 통상신속권한(TPA)의 시한인 내년 6월까지로 맞추려 한다는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또 한-미 FTA가 단순한 통상의 문제를 넘어서 중요한 외교적 현안인데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문제다.

중·장기적인 과제가 왜 갑자기 우선 과제가 되고 어떤 과정을 밟아왔는지 오랫동안 공개되지 않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노대래 국민경제비서관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공개를 안 한 것과 불투명한 것은 다르다. 외교의 상대방이 있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공개했으면 이 과정까지 오기 어려웠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집권 여당의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의원들조차 지난해 말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미국과는 투자협정(BIT)을 목표로 정부가 움직이는 것으로 이해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미국과는 2010년에나 하는 줄 짐작했다”고 말했다. 2004~2005년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산업통상 분야에서 활동한 한 민간 전문위원은 “거대 경제권과 FTA를 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뜻에 대체로 동감했지만, 미국과 중국 가운데 미국을 먼저 해야 한다는 정도의 합의가 있었지 미국과 이렇게 빨리 진행될 줄 예상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FTA는 처음부터 한-미를 위한 것?

대통령은 한-미 FTA에 대한 구상과 시나리오가 숙성됐다고 설명한다. 대통령은 “우리는 하고 싶은데 미국이 우리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제일 처음 FTA를 시작할 때의 문제였다. 그래서 미국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지 못하고 여러 나라 중 하나로 미국을 넣고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한다는 전략을 세워 준비를 했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한-미 FTA를 위한 FTA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국민들은 FTA 추진 발표와 대통령의 얘기를 들은 지난 2월에야 한-미 FTA가 조만간 닥칠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이라고 뒤늦게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자유무역협정이란

자유무역협정(FTA·Free Trade Agreement)은 특정 국가끼리 배타적인 무역 특혜를 서로 부여하는 협정으로서 가장 느슨한 형태의 지역 경제통합 형태다. 회원국 간 관세 철폐를 중심으로 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대표적이다.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의 출범을 전후로 FTA의 적용 대상 범위도 상품의 관세 철폐뿐 아니라 서비스 및 투자 자유화까지 포괄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다. 그 밖에 지적재산권, 정부조달, 경쟁정책, 무역구제제도 등 정책의 조화 부문까지 협정 대상 범위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한-미 FTA는 미 의회가 신속한 타결을 위해 국회의 권한을 행정부에 넘겨준 무역협상권한(TPA) 대상이다. 시한은 내년 6월30일까지로 정부는 가능한 한 올해 안에 협상을 끝내고 시한 내에 국회 비준을 얻을 계획이다.




한-미 FTA 추진 주요 일정

(자료: 외교통상부)
미 USTR 부대표 FTA 체결에 대한 관심 표명(2004. 5) → FTA 사전실무점검회의 제1차 회의 개최(2005. 2) → FTA 출범 가능성 모색을 위한 6차례 통상장관회담 개최(2005. 5~9) → 통상교섭본부장 미국의 주요 상·하원의원 설득 및 정부 관계자 면담(2005. 7~9) → 미국, 한국을 FTA 우선 협상대상국으로 선정(2005. 9) → FTA 추진 발표(2006. 2) → FTA 비공식 사전준비협의(200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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