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범국민운동본부’ 중심으로 모든 부문에서 반대 운동 확산 … 노동계는 총파업, 영화인들은 대중적 시위, 변호사들은 법률적 대응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울 남산 기슭에 있는 남산빌딩. 요즘 이 건물에 드나드는 사람이 갑자기 부쩍 늘었다. 특정 시간에 몰리는 것도 아니고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수십 명이 들락거리고 있다. 대부분 3월28일 발족한 ‘한-미 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에 온 사람들인데, 이 빌딩 1층에 범국본 공동상황실이 설치돼 있다. 방문자는 노동·환경·금융·보건·교육·문화 등 각 분야별 활동가들로, 여기서 하루에만 10개 정도의 ‘한-미 FTA 저지’ 회의가 열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거의 매일같이 아침 7시부터 회의가 시작된다. 범국본 내부 조직인 정책기획연구단 이해영 교수(한신대)는 “사실 운동본부가 구성된 지 얼마 안 됐는데, 초반에 너무 많은 회의가 열려서 이제 한숨 돌려야 할 정도”라고 말했다.
“1997년 이후 처음이다”
범국본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 민주노총, 한국노총·환경운동연합, 인도주의실천의사회 등 300여 곳에 이른다.
범국본은 “우리 사회를 통합이 아니라 해체의 벼랑으로 내몰, 미국식 스탠더드에 입각한 한-미 FTA는 우리의 길이 아니며, 한국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하고 모두에게 재앙을 불러올 뿐”이라며 “한국 경제와 국민들의 삶을 초토화할 수 있는 ‘한반도의 쓰나미’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범국본 참가 단체 중에는 한국애니메이션제작자협회·대한오리협회·한국4-H본부(농업 관련 청소년 육성단체)·한국농산물중도매인조합연합회·참교육학부모회·농가주부모임전국연합회·우리만화연대·시나리오조합 등의 이름도 보인다. 범국본 이원재 공동상황실장(문화연대 공동사무처장)은 “정부가 협상을 빠르게 진행하고 있는데, 우리도 이에 대응해 매우 빠른 속도로 반대운동 진용을 갖추고 있다”며 “기존의 국가보안법 철폐 운동이나 비정규직 법안 운동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고 빠르게 세력이 결집되고 있다”고 말했다.
범국본은 지난 4월15일 ‘한-미 FTA 저지 범국민대회’를 개최한 데 이어 19일에는 ‘비상시국선언대회’를 열기로 했다. 5월에는 전국적으로 ‘한-미 FTA 저지를 위한 국민농활’을 개최하고, 1차 본협상이 열리는 6월에 워싱턴에 원정 투쟁단을 보내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또 지역별 지부를 속속 구성해 4월19일-5월1일-5월18일-6월10일로 이어지는 한-미 FTA 반대 물결을 만들어갈 구상이다. 일각에서는 한-미 FTA 이슈를 둘러싸고 거의 모든 분야의 운동 진영에서 광범위하게 문제 제기가 이뤄지고 있는 양상은 “1997년 초 노동법 날치기 이후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는 말도 하고 있다. 스크린쿼터 문제에서 시작된 한-미 FTA 싸움이 이제 시민사회운동 세력이 총궐기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범국본 안에 각 부문별로 대책위원회가 빠르게 구성되고 있다. 지난 2월 초에 구성된 농업 대책위원회와 영화인 대책위원회를 시작으로 시청각미디어 대책위원회·문화예술 대책위원회·교수학술단체 공동대책위원회·보건의료 대책위원회·교육 대책위원회·학생 대책위원회·금융 대책위원회·공공 대책위원회·지적재산권 대책위원회 등 지금까지 11개 분야별 대책위원회가 구성돼 활동 중이다. 환경 공동대책위와 여성 공동대책위도 발족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의 한-미 FTA 협상이 농업·금융·의료·법률·교육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이뤄지기 때문에 범국본도 이에 맞춰 각 부문별로 저지 싸움을 벌여나가는 것이다. 각 부문별 분업과 협업을 통해 전개되는 이른바 ‘네트워크의 힘’을 동원한 싸움이다. 이원재 상황실장은 “범국본 참여 단체들 사이에 한-미 FTA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의 획기적인 전환점으로 보는 쪽도 있고, 한-미 군사동맹이란 관점에서 보는 쪽도 있고, 신자유주의·반세계화 운동과는 다소 다른 맥락에서 별개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쪽도 있다”며 “그러나 FTA가 몇 개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영역에 걸쳐 있기 때문에 범국본 아래 쉽게 결집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현장 전문가 300여명 ‘국민보고서’ 작성
특히 각 부문 대책위원회별로 요즘 하루가 멀다 하고 한-미 FTA 간담회를 열고 있는데, 이를 거치면서 싸움의 불이 더욱 붙고 있다. 노동 분야의 경우 민주노총에는 이미 ‘한-미 FTA 저지 특별위원회’가 구성됐다. 민주노총 김장오 대외협력국장은 “하반기에 FTA와 노사관계 로드맵을 묶어 총파업에 들어가기로 방침을 이미 정해놓았다”며 “미국의 노동단체와 연대하는 방안도 타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구성된 지적재산권 대책위 백승조 간사는 “정부의 협상 자체가 공개되지 않아 어떤 내용이 논의될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인데, 지적재산권 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는 단체별로 1명씩 담당자를 두고 일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구성된 한-미 FTA 소위원회는 조만간 외교통상부에 한-미 FTA 협상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를 공식 요청할 예정이다. 한쪽에서는 법률적으로 대응하고, 노동 쪽에서는 총파업으로, 영화인들은 대중적 시위를 벌이면서 한-미 FTA 저지 분위기를 확산해나간다는 구상이다.
교수학술 공대위 쪽은 ‘교수들께 드리는 편지’를 전국 교수들한테 보내 FTA 반대 운동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있고, 문화예술 쪽은 대학로와 신촌 등을 돌면서 한-미 FTA 저지 버스투어를 펼치고 있다. 특히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노문모)에 참여했던 120여 명 중 상당수가 “참여정부 지지를 철회한다”는 대국민 사과문을 곧 발표할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노문모에는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 문성근·명계남씨 등이 참여했는데, 다만 이 세 사람이 범국본의 FTA 저지 운동에 참여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당시 노문모 결성을 주도했던 것으로 알려진 심광현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은 현재 범국본을 이끌고 있는 핵심 멤버다.
한-미 FTA 저지 운동 조직은 이렇듯 각 분야의 대책위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범국본 중앙은 행동지침을 만들어 각 단계별로 투쟁의 리듬과 파고를 조절하게 된다. 범국본은 19일 한국 사회 원로·중진들을 중심으로 419명이 참여하는 ‘비상시국선언’을 내고, 방대한 분량의 한-미 FTA ‘국민보고서’를 작성할 계획이다. 이해영 교수는 “국민보고서는 정부가 협상하고 있는 18개 통상 분과에 맞춰 우리도 18개 각 분야별 현장 전문가들 300여 명을 모아 보고서를 집필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범국본은 또 디자인행동팀을 따로 구성해 영상·만화·팸플릿을 제작 중인데, 가칭 ‘한-미 FTA 멸망 지도’도 기획하고 있다. 특히 한-미 FTA 저지를 위한 ‘생활의 발견 3종 세트’라고 이름 붙여진, △주택에 한-미 FTA 저지 현수막 걸기 △승용차 등에 스티커 부착하기 △FTA 반대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 입기 캠페인도 벌일 계획이다. 붉은 악마처럼 티셔츠 입기 캠페인을 전국적으로 펼쳐나간다는 것이다. 이원재 상황실장은 “범국본은 집회·시위뿐 아니라 디자이너들이 참여하고 영화배우가 등장하는 이미지 포스터 제작 등을 총동원해 대국민 운동 방식으로 싸움을 전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라이트는 FTA 실현 운동으로 맞서
한편, 범국본에 맞서 선진화정책운동·기독교사회책임 등 뉴라이트 계열의 시민단체들은 ‘바른 FTA 실현 국민운동본부’(공동대표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를 16일 발족시키로 했다. 바른 FTA 실현 국민운동본부 쪽은 “FTA 체결은 우리의 생존을 위한 기본 전제”라면서 “진보 진영이 반대하고 열린우리당 내부에서도 반대 기류가 있기 때문에 노 대통령이 언제 주저앉을지 모른다. 그러면 참여정부가 아니라 우리가 책임지고 한-미 FTA를 끌고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해영 교수는 “FTA 문제는 국민의 생존권과 한국의 미래가 걸린 현실적인 문제인데, 박세일 교수 쪽이 마치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몰고 가려 한다”고 비판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윤석열, ‘사형’ 훈장으로 여길 것”…서울대 로스쿨 교수 경고
![[단독] “나경원 머리 높이지 마라” 김건희 메모장…국힘 당무 개입 정황 [단독] “나경원 머리 높이지 마라” 김건희 메모장…국힘 당무 개입 정황](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112/53_17682232429106_5417682227122231.jpg)
[단독] “나경원 머리 높이지 마라” 김건희 메모장…국힘 당무 개입 정황
![[단독] 전직 동작구의원 “김병기, 총선 전 돈 요구…돈 준 구의원 여럿” [단독] 전직 동작구의원 “김병기, 총선 전 돈 요구…돈 준 구의원 여럿”](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112/53_17682093766219_20260112503379.jpg)
[단독] 전직 동작구의원 “김병기, 총선 전 돈 요구…돈 준 구의원 여럿”

민주 김병기 ‘제명’...김은 반발, 재심 청구

‘뒤늦은 반성’ 인요한 “계엄, 이유 있는 줄…밝혀진 일들 치욕”

“이란을 다시 위대하게”…축출된 왕조 왕세자, 트럼프 지원 요청

윤석열, ‘6개월 추가 구속’ 재판부 기피신청 10시간여 만에 철회

“집 가서 뭘 하겠냐”던 윤석열, 추가 구속했다며 재판부 기피 신청

김건희 ‘작은엄마’ 부르던 전직 실세 행정관, 만취 음주운전 기소

트럼프 ‘그린란드 야욕’에…EU 국방수장 “미군 대체할 유럽군 만들자”
![[단독] 서울시가 세운3-2·3구역 용적률 올리자, 한호건설 예상수익 1600억→5200억원 [단독] 서울시가 세운3-2·3구역 용적률 올리자, 한호건설 예상수익 1600억→5200억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6/0109/53_17679679801823_2026010850388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