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의원의 ‘아파트 반값 공급’ 발언으로 노의되기 시작한 방식… 수요 없다는 반론은 납득하기 힘들어, 현실적합성을 고민해야 할 시점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걸리버가 소인국, 거인국을 거쳐 세 번째로 당도한 여행지는 하늘에 떠 있는 섬 ‘라퓨타’였다. 걸리버가 이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오이에서 태양광선을 추출해내거나, 지붕부터 시작해 기초 부분으로 집을 지어내려가는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대지에 발을 붙이지 못한 채 사색에 깊이 빠져 있는 이곳 사람들은 하인이 때때로 조약돌을 담은 주머니로 눈과 귀를 툭툭 쳐서 자극을 주지 않으면 깨어나지도 못한다.
건축비는 분양가의 1/3 수준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의 ‘아파트 반값 공급’ 구호로 일반에 널리 알려진 ‘토지임대-건물분양’(토지임대형) 주택 공급 제안을 들으며 엉뚱하게 <걸리버 여행기>를 떠올린 것은, 그 방식의 현실 적합성에 대한 의문과는 전혀 무관했다. 다만, (공중에 뜬) 건물만 분양받고 (건물의 뿌리인) 땅은 빌려쓰는 방식을 형상화한다면 라퓨타가 제격일 것 같다는 실없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미 어느 정도 알려졌듯 토지임대형은 집을 빌려쓰는 것(임대)과 매입하는 것(분양)의 중간 형태로, 건물은 분양하되 토지는 공공기관이 계속 보유하면서 임대하는 방식이다. 지난 2월 홍 의원이 아파트 반값 공급 구호를 내걸기 훨씬 이전부터 이 방식을 선도적으로 제기해온 토지정의시민연대의 전강수 정책위원장(대구가톨릭대 교수)은 “홍 의원 쪽에서 반값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토지임대형의 취지가 흐려진 느낌이지만,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띤다”고 평가한다. 전 위원장은 “토지임대형에선 토지를 공공부문이 계속 보유하기 때문에 토지 개발이익 환수나 사회간접자본 건설에 매우 유리하고, 값싼 주택을 공급하려는 주택 정책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대한주택공사 부설 주택도시연구원의 박헌주 원장도 “우리나라의 집값이 보통 문제가 아닌데, 서민 주거 안정과 도시 난개발 방지, 개발이익 환수를 위한 유력한 방안”이라며 토지임대형을 적극 지지하고 있다. 박 원장의 주택도시연구원은 지난해 8월 토지임대형 관련 연구 보고서를 낸 바 있으며, 해외 사례와 가상 실험 결과를 담은 후속 보고서를 준비 중이다. 이는 공공부문에서 제기되는 보고서여서 정부 정책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치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낳고 있다.
공공임대형이 실제 정부 정책으로 채택돼 시행된다면, 내 집 마련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판교 아파트의 예를 보자. 판교의 경우 평당 분양가는 대략 1200만원(채권 제외)에 이른다. 이 가운데 건축비는 평당 400만원으로 분양가의 3분의 1 수준이다(한국건설연구원 주최 2월 공청회). 공공임대형은 이같은 건축비(건설회사 이윤 포함) 수준에서 건물을 분양하는 방식이다. 넉넉잡아 건물 분양가를 500만~600만원으로 잡아도 절반 값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셈이다. 분양가 4억원의 32~33평형 아파트라면 2억원에 일단 마련할 수 있다.
“시범적으로라도 해볼 가치 있다”
물론, 건물에 대해서만 소유권을 갖기 때문에 빌려쓰는 토지의 임대료는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임대료는 대략 토지값에 해당하는 나머지 2억원에 대한 이자율로 보면 된다. 공공기관의 조달금리 연 4.5%를 적용하면 한 달에 70만~80만원의 월세를 물어야 한다는 계산에 이른다.
무주택 서민층의 피부에 좀더 와 닿을 서울 강북 지역의 2억원짜리 주택을 예로 든다면, 건물 분양가 1억원으로 집을 일단 마련하고 매달 35만~40만원의 임대료를 물게 되는 방식이다. 무주택 서민 처지에선 초기 부담을 절반으로 줄인 상태에서 내 집을 마련한 뒤 공공기관의 조달 금리에 해당하는 월세를 내는 방식으로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외국의 예에 따라 계약 기간을 최소 50년으로 정한다면, 30~40대에 토지임대형을 마련해 평생 동안 살 수 있다고 보면 된다. 중도에 팔고 나갈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박헌주 원장은 “임대료 납부 방식은 월세뿐 아니라 전세로도 할 수 있고, 월세와 전세를 섞는 혼합형으로 설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무주택자들로선 초기 부담을 던 상태에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이 하나 더 생기는 셈인데, 정부·여당 쪽에선 토지임대형에 대해 그리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열린우리당의 강봉균 정책위의장은 지난 3월9일 한국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우리 국민의 주택에 대한 보유심리를 볼 때 토지는 빌리고 주택만 사는 방식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있겠느냐”며 “열린우리당의 정책으로 채택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강 의장은 “토지와 주택에 대한 소유권을 분리하면 적지 않은 혼란이 있을 것”이라며 “예컨대 토지임대료를 안 낼 경우 토지 사용 권한을 회수해야 하는데, 집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따로 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강봉균 의장이 꼽은 두 가지 문제 가운데 수요 부진에 대해서는 2월9일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 나란히 출연한 채수찬 열린우리당 의원과 청와대 참여혁신수석을 역임한 박주현 시민사회경제연구소장도 문제점으로 꼽은 바 있다.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으로 ‘8·31 부동산 대책’을 실무적으로 이끈 김수현 사회정책비서관 역시 “(토지임대형을 도입)하면 좋다는 건 알지만, 국민의식(부동산 소유에 대한 집착)이 바뀔지 걱정”이라고 말해 ‘토지임대형은 도입해봐야 이용하려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란 게 정부·여당 전반에 확산돼 있음을 보여준다.
박헌주 원장은 이에 대해 “우리나라에선 주택 소유 개념이 강해 건물만 분양하는 방식은 잘 안 될 것이라고 하는데, 시장조사를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느낌만으로 하는 얘기”라고 말했다. 박 원장은 “시장·자본주의 나라인 영연방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들에서 채택하고 있다”며 “시범적인 수준에서라도 해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전강수 교수는 “투기 목적에 따라 집을 사는 게 일반화돼 있다 보니 토지지임대형의 수요가 없다고 지레짐작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2월9일 <100분 토론> 방영 뒤 문화방송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 채수찬 의원과 박주현 소장의 주장과 달리 “(토지임대형을) 이용할 뜻이 있다”는 반박성 의견이 줄을 이었다는 점에서도 토지임대형의 수요가 없을 것이란 단언을 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 사안을 갖고 주위의 몇몇 사람들과 얘기를 나눠본 자리에서 그런 분위기는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임대기간 만료되면 아파트 값 제로?
토지임대형 도입을 지지하는 이들은 정부·여당의 걱정대로 설사 토지임대형 수요가 부진하더라도 큰 무리는 없다고 밝힌다. 토지 임대료를 적정한 수준으로 낮춰 메리트(장점)를 높이는 탄력적인 대응 방식을 통해 수요를 늘릴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강봉균 의장이 꼽은 두 번째 문제인 임대료 미납 우려 역시 그다지 설득력을 얻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국가에 내야 할 징수금이니 부과금을 미납할 경우 그에 적절한 대응 장치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주차위반 범칙금을 내지 않을 경우 차를 압류하는 것 같은 일반적인 징수 원칙을 적용하면 된다.
토지임대형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 가운데 그래도 설득력을 띠는 것은 초기 사업비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재정적 현실론이다. 아파트를 반값으로 분양한다면 나머지 반은 국가·지방자치단체·사업시행자가 부담해야 하는데, 이를 도대체 무슨 수로 메우느냐는 의문이다. 토지 부분에 대한 임대료를 받아 장기적으로 결국 회수한다고 해도 초기에 너무 큰 짐을 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토지임대형 찬성론 쪽에선 이에 대해서도 극복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설명한다. 택지개발지구 안의 상업용지를 시장가치대로 파는 등의 방법을 통해 주택 용지의 초기비용 부담을 덜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임대료 회수가 거의 확실한 만큼 국민주택기금이나 재정을 투입하는 방안도 제시되고 있다.
반쪽짜리 토지임대형으로라도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확보하기를 바라는 이들에게 끝까지 남는 의구심은 ‘임대기간 만료 뒤엔 어떻게 되느냐’ 하는 문제인 듯하다. 토지임대형으로 확보한 건물은 감가상각으로 시일이 지남에 따라 가치가 떨어져 최종적으로는 제로(0)가 될 것이다. 지은 지 20년밖에 안 된 멀쩡한 아파트를 재건축한다고 허무는 걸 흔하게 봐온 처지에선 토지임대형으로 마련한 아파트 값이 20~30년 뒤에 제로가 될 것이란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 토지임대형에 대해 30년쯤 지난 다음엔 아파트 값이 제로가 된다는 식으로 많이 알려졌으며, 정부·여당 쪽의 수요 부진에 대한 걱정도 여기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렇지만 철근 콘크리트 건물의 수명이 대략 100년이고, 현행 법 체계에서 감가상각 기간을 50년으로 잡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20~30년 만에 집값이 제로가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토지임대형을 이미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예에 따라 최소 임대기간을 50년으로 정한다면, 25년 뒤에도 집값의 반은 남아 있다. 또 50년 뒤에도 재건축에 따른 우선분양권을 받게 되며, 이를 상속·증여할 수 있다. 투기적 수요에 따라 집을 사는 이들에게는 성에 차지 않을지 몰라도 거주 목적의 실수요자라면 달리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임대아파트와 달리 집 아껴쓸 것
토지 부분에 대한 임대료가 아주 낮게 책정되지 않으면 임대아파트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는 의문을 가질 법하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게 있다. 내 집이기 때문에 임대와 달리 집을 아껴쓰고 애정 어린 관리를 하게 만드는 강력한 유인효과(인센티브)가 있다. 깨끗하게 쓸수록 집의 잔존 가치는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는 멀쩡한 아파트를 허물 필요성이 점점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져 환경적으로도 유용한 방안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토지임대형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라퓨타’가 아니라 이미 많은 나라들이 도입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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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와 분양의 중간 형태인 ‘토지 임대-건물 분양’(토지임대형) 방식의 역사적 뿌리는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사상가인 헨리 조지(1839~97)에 닿아 있다.
사회가 발전하는데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건 토지사유제로 불로소득이 지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본 헨리 조지는 토지와 건물을 구분하지 않고 ‘부동산’이란 용어를 쓰는 건 잘못된 관습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건물을 비롯한 인간 노동의 산물은 사유(私有)하고, 인간 노동의 결과물이 아닌 토지는 공유(公有)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주택(건물)은 인간의 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부의 범주에 속하지만, 토지는 그렇지 않다. 토지는 인간의 노력은 물론 인간 자체와도 무관하게 존재하는 자연적 터전이자 환경이다. 자연적 정의는 부의 사유를 인정하고 토지의 사유를 부인한다.” 여기에서 건물은 분양하되 토지는 공적 통제 아래 두고 임대하는 방식을 통해 불로소득을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국내에서 ‘토지임대형’ 도입을 본격적으로 제기한 곳은 지난해 2월 출범한 시민단체인 ‘토지정의시민연대’였다. 토지정의연대는 지난해 하반기 경기도 판교 지역에 대한 투기 바람의 와중에서 공영 개발보다 한발 나아간 토지임대형 방식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토지정의연대의 한 축인 헨리조지연구회 소속의 김윤상 경북대 교수,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교수 등이 이론적 바탕을 제공했다. 헨리조지연구회와 함께 토지정의연대의 주축을 이루는 ‘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성토모)의 인터넷 토론방에서는 토지임대형 제안이 이보다 앞서 제기된 바 있다.
토지정의연대의 제안에 이어 지난해 8월에는 대한주택공사 부설 주택도시연구원이 ‘토지임대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공영개발 확대와 토지 및 주택공급 방식의 다양화’라는 보고서를 내놓았고, 올 2월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이 이를 받아 ‘아파트 반값’ 구호로 내걸어 관심을 집중시켰다. 정부·여당 쪽에선 아직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는 가운데 이해찬 국무총리가 ‘골프 파문’으로 물러나기 전인 지난 2월28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송파 신도시 분양 때 토지임대부 분양 방식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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